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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04
1. 백화점 구두매장 (낮)
충식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다. 보면...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보라. 그리고 그 뒤의 태웅.
충식, 태웅 향해 입모양으로 “어떻게 된거야?”하는데 어색하게 웃기만 하는 태웅.
보라 : (구두 보면서) 한득구 내 운전기사로 들어온거 몰랐어? 뭘 새삼스럽게 놀라고 그래?
충식 : 아, 알죠! (얼른 넉살좋게) 아가씨! 우리 득구 잘 좀 부탁드립니다!!!
보라 : 그거야 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너, (태웅 턱짓하며) 쟤 구두나 하나 골라봐.
충식 : 에?
보라 : 귀먹었어? 내 운.전.기.사한테 어울릴만한 구두나 하나 골라달라구.
충식 : (재수없지만 참고) 아.. 예.. 알겠습니다. (돌아서는데)
태웅 : (충식 잡으며) 충식아, 됐어. (보라보며) 나 구두 필요없다.
보라 : (바로) 필요하고 안하고는 내가 결정해. 넌 고맙게 생각하고 잘 신기나 하면 돼.
태웅 : 필요없다고 했잖아.
보라 : 참 이상하네? 삼천만원은 덥석 받아놓고 이깟 구두는 못 받겠다는거야?
태웅 : (굳은 표정)
보라 : 왜, 기분 나빠? 그럼 당장 돈 갚든가.
충식 : 아니 듣자듣자하니까.. 이봐요 아가씨..! 그돈 회장님이 빌려줬지 아가씨가 빌려줬어요? 사람이 왜 그래?
(하며 부르르 나서는데)
태웅 : 넌 가만 있어. (보라 보며) ..니가 날 여기에 왜 데려 왔는지 알겠어. 충분히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보라 : (천연덕스럽게)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난 니 구두 사주러 온 것 뿐이라니까?
태웅 : 충식이 앞에서 나 망신 주고 싶어서 온거잖아. 이만하면 된거 같은데.. 아직도 부족하니?
보라 : !!!
태웅 : (보는데)
보라 : 흥 친구 앞에서 스타일 구기고 싶지 않다 이거지? 그래 좋아. 그 정도 자존심은 내가 지켜주지. (확 돌아서가고)
충식 : 저, 저.. (화가 나서 차마 말이 안나오는데)
태웅 : (툭 치며) 충식아.. 나, 간다? (애써 담담하게 웃으며 따라나간다)
2. 백화점 일각 (낮)
앞장서서 빠르게 걸어가는 보라. 태웅이 뒤따라 가고 있다.
보라 : 나온 김에 땟국물 좀 빼주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힐끗 돌아보며) 앞으로 굳이 양복을 입을 필욘 없어.
하지만 촌스러운건 용서 못해. 지저분한 건 더 용서 못해. 세차는 매일매일 하루도 빼먹지 말고 해.
과속금지. 급정거금지. 에어컨 사용 절대금지. 난 에어컨 바람만 쐬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거든.
태웅 : (묵묵히 듣는)
보라 : (돌아보며) 냄새나는 로션이나 향수도 절대 쓰지마. 아저씨 냄새라면 딱 질색이니까.
보라, 휙 돌아서서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3. 엘리베이터 (낮)
사람들 사이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보라와 태웅.
엘리베이터가 서고 사람들이 우르르 탄다.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사람들에 밀려 서로의 어깨가 부딪치는 보라와 태웅!
태웅, 흠칫 놀라 얼른 몸을 떼는데 순간 미묘하게 기분이 상하는 보라.
보라 : ....아참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태웅 : (보면)
보라 : (악의에 찬) 너 삼천만원이나 빌린 이유가 뭐야?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태웅과 보라에게 주목된다.
보라 : (태연하게 사람들 보며) 얘가 돈 땜에 제 운전기사 노릇을 하게 됐거든요. 꽤 큰돈인데 어디다 썼는지 궁금해서요.
(태웅 보며) 대답해봐. 왜 빌린건데?
태웅 : (노려본다)
보라 : 아아... 사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하긴 니가 도박을 했든 카드값 메꾸려고 사채를 썼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근데 승리라고 했나? 걔도 니가 이렇게 내 밑에서 운전기사 노릇 하는 거 알기나 하니?
태웅 : (표정 굳어진다)
보라 : (힐끗 보고) 왜, 말 안했나보지? 하긴.. 서로 오빠동생하면서 폼잡는 사인데 내 밑에서 일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사람들이 수군대며 우루루 내린다.
둘만 남은 보라와 태웅.
태웅 : 나 하나만 말해도 될까?
보라 : (도전적으로) 해봐.
태웅 : 니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는데.... 승리 얘기는 하지마. 너한테서 승리 얘기 듣고 싶지 않아.
보라 : (얼굴 확 달아오르는!)
태웅 : 그리고 니 말대로 나, 너랑 사적인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싸늘한) 난 그저 니 운전기사일 뿐이잖아. 안그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태웅이 먼저 나가버린다.
보라 열 받은 표정.
4. 주차장 (낮)
보라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서있는데 태웅, 보라 앞에 멈춰선다.
태웅 차에서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어준다.
태웅 : .... 타.
보라 : (노려본다)
태웅 : 안타고 뭐해?
보라 : (문 쾅 닫고 휙 노려보며) 너... 정말 맘에 안들어.
태웅 : .... 니 맘에 들고 싶은 생각 없어.
보라 : (눈빛 변하다가 부르르 나지막하게) 꺼져. 넌 해고야.
태웅 : 날 고용한 건 회장님이야. (무시하고 다시 차 문 열어주며) 어서 타.
보라 : (가방 집어던지며 버럭) 꺼지라니까?!!!
태웅 : (동요없이 보라를 보며) 타. 어서.
보라, 태웅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앞좌석 쪽으로 간다.
태웅이 말릴 틈도 없이 운전석에 앉아 거칠게 엑셀을 밟는 보라.
굉음을 내며 앞으로 돌진하는 보라의 차. 쾅! 하고 벽에 부딪친다.
5. 보라집 차고 앞 (밤)
범퍼가 박살난 차 앞에서 태웅이 오실장에게 혼나고 있다.
오실장 : 자네 정신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아가씨한테 운전대를 맡기면 어떡해?
면허도 없는데 큰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 했어?
태웅 : ....죄송합니다.
오실장 : 아가씨 다친데 없으니까 그냥 넘어가지만 내일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알았어?
오실장, 집 안으로 들어가고 착잡하게 혼자 서 있는 태웅. 한숨 푹 쉬고 돌아서는데
팔짱 낀 채 노려보고 있는 보라와 눈이 마주친다.
태웅의 앞에 척척척 다가오는 보라.
보라 : (싸늘하게 웃으며) 내가 각오하라고 했지? 이제부터 시작이야.
보라, 확 돌아서 가버리고 착잡한 태웅의 표정.
6. 술집 (밤)
소주잔 비우고 탕! 내려놓는 충식.
충식 : 너, 당장 그만둬! 삼천만원? 내가 무슨 짓을 해서든 구해줄테니까 무조건 때려쳐.
(혼잣말) 돈 없으면 벨도 없는 줄 알아? 나쁜년.
태웅 : (씁쓸하게 웃으며 술을 마신다)
충식 : (보고) 야! 넌 뭐가 좋다고 웃어!
태웅 : 그래도 난 좋다... 어쨌든 고맙잖아.
충식 : (버럭) 고맙긴 뭐가 고마워! 구두 사준다고 지랄 떤게 고맙냐, 싸가지 없이 반말 찍찍 갈기는게 고맙냐! 으이씨.
(열받아 술마시는데)
태웅 : 그래도... 누가 나한테 삼천만원이나 빌려주냐...
충식 : (표정)
태웅 : 너도 알잖아. 은행마다 다 퇴짜 맞은거.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고... 직장도 없는데 누가 그런 돈 빌려주겠어.
충식 : (안타까운) 야, 그러니까 내가 검정고시 보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학벌이야, 학벌.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지!
태웅 : (조용히 충식 보면서) 충식아... 걱정하지마. 나 잘 할테니까.
충식 : (안타깝게 보다가) ...한잔 하자. (마시고) 참... 엄마 돈은 드렸냐?
태웅 : (멈칫) 어? 어...
충식 : 짜식... 니가 이번에 효도 한 번 제대로 했다. 엄마 좋아하시지?
태웅 : (어색하게 웃으며) 그럼....
충식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데 어두워지는 태웅의 표정.
엄마(소리) : 삼천만원, 정확히 맞네.
7. 실비집 (플래시백-낮)
엄마가 수표가 든 봉투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으며 태웅을 본다.
엄마 : (싸늘한) 어쨌든 고맙구나. 이렇게 쉽게 해올 줄 알았으면 한 일억쯤 해달라고 할 걸 그랬네...
태웅 : (걱정되는) 돈 더 필요하신 거에요?
엄마 : (빈정대듯) 왜....? 필요하다면 더 갖다 줄 순 있나부지?
태웅 : .....
엄마 : 쫌 있으면 손님들 들이닥칠 시간이야. 그만 돌아가봐. (벌떡 일어나 달그닥거리면서 그릇정리한다)
태웅 : (착잡하게 보다가 애써 명랑하게) 엄마! 저 밥 좀 주세요!
엄마 : (멈칫 한다)
태웅 : 엄마가 담은 열무김치 먹고 싶은데... 찬밥 남은거 없어요?
엄마 : (돌아보며) 뻔뻔한 놈.. 돈 좀 줬다고 이제 아들 대접까지 받으려고 해?
태웅 : !!
엄마 : (싸늘한) 가. 너 줄 밥 같은거 없으니까... 당장 나가. (다시 돌아서버리고)
태웅 : (참담한)
8. 태웅의 방 (밤)
잠자리에 누워 있는 태웅...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며 생각이 많다.
9. 병원 복도 (낮)
보라가 씩씩대며 병원 복도를 걸어간다.
10. 병원 회의실 (낮)
장박사를 비롯한 의사들 앞에서 MRI 사진들 걸어놓고 발표하고 있는 건우.
건우 : .....다음은 Hippocampal sclerosis(해마경화증)를 동반한 측두엽 간질 환자입니다.
항 간질약제 치료후 첫 1년간 발작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측두엽 절제술을 받아야....
하는데 갑자기 문이 쾅 열린다.
건우와 의사들, 놀라 돌아보는데 보라다!
장박사 : (놀라며) ...보라야?!
보라 : 어머, 안녕하세요 장박사님? 잘 지내시죠?
장박사 : 아니 니가 여길 어떻게.. (하는데)
보라 : (먼저) 서건우 선생님과 급히 할 얘기가 있어서요... (건우 보며 이를 가는) 잠깐 저 좀 보실까요?
건우 : (표정)
11. 병원 일각 (낮)
마주보고 선 보라와 건우.
보라 : 장박사님한테 나랑 잘 만나고 있다고 뻥쳤다면서요? 우리 아빠가 그 얘기 듣고 서건우씨 한 번 보겠다고 하시는걸
내가 간신히 말리고 오는 길이에요. 도대체 그런 뻥은 왜 치는거에요?
건우 : 우리 잘 만나고 있는 거 사실 아닌가? 저번에 병원에서도 만났고, 집 앞에서도 만났고. 오늘도 이렇게 만났고.
맞선 보고 삼세번 만나면 잘 만나는 거 아니에요?
보라 : (열 확 받지만) 짧게 정리하죠. 앞으로 또 나랑 사귄다는 유언비어 날조하고 다니면 그땐 정말 가만 안있을거에요.
똑똑한 분이시니까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일은 없겠죠? (확 돌아서 가는데)
건우(소리) : 우리 진짜 사귀면 안돼요?
보라 : (돌아보며) 뭐라구요?
건우 : 나 꽤 괜찮은 사람이에요. 직업도 의사고, 인간성도 남들이 좋다고 하고, 외모도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우리 그냥 사귀죠.
보라 : (야멸차게 웃으며) 정말 미안한데요, 딴 데 가서 알아보시죠.
건우 : 왜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에요?
보라 : (순간 망설였다가 결심한 듯) 그래요.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너무너무 좋아한 오빠가 있는데....
전 그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은 좋아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건우 : 그럼.. 첫사랑? 오호... (그러다) 근데 그거 정말이에요? 괜히 나 들으라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보라 : (약올리듯 웃으며) 사실인데 어쩌죠? 건우씨보다 백만배쯤 멋있는 사람이에요. 첫만남부터가 엄청 운명적이죠.
중학교 1학년 때 가출했다가 만났거든요. 시시하게 맞선으로 만난 건우씨랑은 비교도 안되죠? 이제 됐어요?
건우 : 그 사람 지금 뭐해요?
보라 : 네? 지, 지금... (얼른 둘러댄다) 미국 유학중이에요. 하버드에서 엠비에이과정 밟고 있는데
조만간 돌아오면 한 번 소개시켜드리죠. 그럼 전 이만.
보라, 핑 가버리고 피식 웃으며 보라의 뒷모습을 보는 건우.
그때 민호가 다가온다.
민호 : 저 여자냐?
건우 : 어떠냐?
민호 : 쉽지 않겠다. (심각하게 보며) 그냥 포기해라.
건우 : (픽 웃는 표정)
12. 병원 앞 (낮)
씩씩대며 나오는 보라.
보라 : 내가 누굴 좋아하든 말든 지가 무슨 상관이야! (주위 둘러보며) 그나저나 한득구 얘는 아직까지 안오고 뭐하는 거야?
보라, 태웅이 오길 기다리는 표정 위로-
김회장(소리) : 우리 보라...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애야.
13. 김회장 서재 (낮)
김회장과 태웅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
김회장 : 난 보라를 보면 항상 불안해. 지금이야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지만 언제 다시 사고 치지 않을까.. 마음이 쓰여.
태웅 : (표정)
김회장 : (힐끗 태웅 보며) 난 장삿꾼이야. 밑지는 장사는 안해. 무슨 뜻인지 알지?
태웅 : ....제가 단순히 운전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김회장 : 그래. 자네한테 투자한 이상.. 나도 본전은 뽑아야하지 않겠나? 앞으로 잘 해봐.
태웅 : 네. (꾸벅하고 나가려하는데)
김회장 : 아.. 한군. 자네. 바둑 좀 둘 줄 아나?
태웅 : 네?
김회장 : (옆에 둔 바둑판 가리키며) 오실장이랑 내기바둑을 두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밀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자네가 훈수 좀 둬보지 그래?
태웅 : (어색하게 웃으며) 저 바둑 잘 못 두는데.... (그러면서도 바둑판을 유심히 본다)
김회장 : (돌 하나 들고) 이걸 여기다 두는게 아무래도..
하다가 일부러 바둑돌들을 툭 쳐서 흐트려버리는 김회장.
김회장 : 아이고, 이런! 이를 어쩌나... 오실장이 보면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겠는데? 이게 어떻게 돼 있었더라..?
김회장, 슬쩍 태웅을 보는데 태웅, 아무렇지도 않게 바둑돌들을 놓기 시작한다.
태웅의 손이 망설임 없이 척척 돌들을 아까 위치대로 갖다놓는다.
김회장, 놀란 눈으로 보는데-
태웅 : (김회장 반응 모른채 바둑돌 놓으며) 여기.. 여기.. 여기... 그리고... 마지막 수는 회장님이 여기에 놓으려고 하셨는데...
(머리 긁적이며)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을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김회장, 놀라서 말도 못하는데 이때 오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오실장 : 아니, 한기사! 여기서 뭐해? 아가씨 기다리신다고 하던데.
태웅 : 그럼 가보겠습니다. (얼른 인사하고 나간다)
김회장 : (혼자 의미심장하게 웃는)
14. 병원 일각 (낮)
보라, 시계 보며 씩씩대고 있는데 저 멀리 태웅의 차가 들어선다.
보라 앞에 멈추는 태웅의 차.
보라 : 도대체 뭐하다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보라가 투덜대며 차에 오른다. 보라의 차가 병원을 빠져나온다.
15. 차 안 (낮)
교차로 앞에서 멈춰선 보라의 차.
보라, 말없이 잡지만 뒤적이고 있다. 신호가 바뀌고 다시 차가 출발하는데 문득 창 밖을 보는 보라.
보라 : 잠깐....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태웅 : 학교.
보라 : 뭐?! 학교?! 누구 맘대로 학교엘 가? 당장 차 돌려.
태웅 : (계속 운전만 한다)
보라 : 한득구, 내 말 안돌려?! 당장 차 돌리라니까?!
태웅 : 안돼. 앞으로 주중엔 파티장이나 백화점, 술집 같은데는 못가. 학교와 도서관 외에 다른 곳은 전부 출입금지야.
보라 : 뭐?! 야 한득구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태웅 : 불만 있으면 회장님께 직접 말해. 난 지시대로 할 뿐이니까.
보라 : 뭐야?!!! (기가 막혀하다가) 차 세워!! 나 내릴 거니까 당장 차 세워!!!
태웅 : (들은 척도 안하고 운전만 한다)
보라 : 야!!!!!!!!
더 속력을 내서 달리는 태웅.
보라, 분한 듯 노려보다가 달리는 차의 문을 그냥 팍 열어버린다.
깜짝 놀라 끼이익 급브레이크를 밟는 태웅.
16. 도로 (낮)
보라의 차가 끼이이익 도로 한가운데 멈춰선다.
다짜고짜 차에서 뛰어내리는 보라.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친다.
태웅 : 너 거기 안서!!!
부르다가 안되겠는지 얼른 운전석에서 내려 보라의 뒤를 쫓는다.
그런데 좌우 살피지도 않고 도로를 막 달려 달아나는 보라 앞에 빠앙! 날카롭게 경적을 울리며 자동차 한 대가 달려온다.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에 확 몸을 던져 보라를 끌어당기는 태웅!
보라를 꽉 끌어안고 돌아선 태웅의 뒤로 자동차가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태웅 : 너 미쳤어? 차도 안보고 그냥 뛰어들면 어떡해?!
보라 : (두 팔로 거칠게 밀쳐내며) 비켜. (가려고 하는데)
태웅 : (보라의 팔을 확 잡는다) 어딜 가!
보라 : (잡힌 손목 보더니 철썩! 태웅의 뺨을 때린다) 이거 못 놔!
태웅 : (다시 거칠게 보라의 팔을 잡아 돌려세운다)
보라 : 이게 정말... (하며 다시 뺨을 때리려 하는데)
태웅 : (재빨리 손목을 잡는다) 너한테 맞는 건 한 대면 충분해.
태웅, 보라의 손목을 끌고 차를 향해 걸어간다.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리며 피해가는 차들.
보라, “이거 못 놔!” 발버둥치며 악을 쓰지만 태웅은 대꾸도 하지 않고 질질 끌고 간다.
태웅 : (차문 열어주며) 타.
보라 : ... 나쁜 자식. 너 내가 가만둘 줄 알아?
태웅 : 미안하지만 나도 돈값은 해야하지 않겠어?
보라 : 흥... 맘대로 될까?
보라, 갑자기 확 돌아서 태웅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차고는 잽싸게 달아나버린다.
정강이 움켜쥐고 아파하며 낭패한 표정의 태웅.
17. 체육관 (낮)
동필, 금수, 은복이 치킨 뜯다가 닭다리 든 포즈 그대로 입 딱 벌린 채 굳어있다.
보면, 치마입고 꽃단장한 승리. 조금 어설프다.
승리 : 뭐, 뭘 그렇게 쳐다봐?
동필 : 너 지금 치마 입었냐?
금수 : 오.. 화장도 했는데?
은복 : 심지어 마스카라도 했어.
동필 : 뭐? 카스테라?
승리 : 아 시끄러! 여자가 치마입고 화장한 거 첨 봐?
동필 : (심각한 척) 남자가 한 건 첨본다.
승리 : (기가 막힌 듯 보다가) 그래 관두자 관둬. 먹을것만 밝히는 오빠들한테 내가 뭘 바라겠어.
승리 씩씩대며 돌아서 나가는데 뒤통수에 대고 놀려대는 동필. “승리야 다리털 좀 깎아!”
으하하하 박장대소하는 사람들.
18. 체육관 앞 (낮)
풍풍대며 나오는 승리.
승리, “흥, 웃기고 있어. 누가 지들 보고 웃으라고 화장한 줄 알어?”하면서 내려오다가 문득 걸음이 멈추는 승리.
# (3부 59씬)
태웅 : 근데... 나, 니 마음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난 누굴 사랑할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없어.
승리, 착잡한 표정인데... 괜히 마음을 다 잡겠다는 듯 가방에서 콤팩트 꺼내서 바른다.
승리 : (거울에 얼굴 비춰보면서) 이뻐질거야. 그래서 득구 오빠 맘 변하게 만들거야. 사랑할 마음의 여유, 내가 만들어줄 거라구!!!
하면서 분을 토닥이는데 태웅 엄마가 서성이는 걸 본다.
승리, 동작 멈추더니-
승리 : (다가서며) 무슨 일이세요?
엄마 : (멈칫하다가) 저.. 여기.. 한태웅이라는 사람을 찾아왔는데요.
승리 : 한태웅이요? 한태웅... (생각하다가) 저희 회원 중에 그런 분은 안계신데요?
바깥 청소를 하던 관장이 빗자루를 들고 나오다가 듣고 멈칫 선다.
엄마 : 이상하다... 틀림없이 여기 있다고 했는데...?
승리 : (다가오는 관장 보고) 어, 아빠?
관장 : 내가 아는 분이다. 승리 넌 가서 니 볼일 봐. ..어서.
승리 : (갸우뚱한 표정으로 관장과 엄마를 보다가 가고)
관장 : (엄마를 보며) ....태웅이 어머님... 맞으시죠?
엄마 : (표정)
19. 다방 (낮)
엄마 : (어이가 없는) ...득구..요? 지금 득구라고 하셨습니까?
관장과 커피잔 놓고 마주 앉은 엄마.
관장 : 여기선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엄마 : (마음 상한) 아니.. 부모가 지어준 멀쩡한 이름 놔두고 왜 다른 이름을 쓴답니까?
관장 : 아시잖습니까.. 득구, 아니 태웅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힘들었던 기억 다 잊고 싶어서, (하는데)
엄마 : (독기어린) 다 잊고 싶어서, 그래서 이름도 버리고 에미도 잊은 채 살았답니까?
관장 : .....태웅이.. 그동안 어머님 많이 찾았습니다.
엄마 : (표정)
관장 : 그녀석, 집 나오고 처음 1년 동안은 사람꼴 아니었습니다. 마음정리하고 어머님 찾았을 땐 이미 떠나셨더라구요.
그날... 그녀석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 : (가슴아프지만 내색 않는)
관장 : 어머님.. 그만 용서해주세요. 자기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는데 어린 나이에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겠습니까.
엄마 : 낳아준 에미보다 태웅이 속내를 이렇게 더 잘 아시니..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놈.. 여기서 뭐하고 산답니까?
관장 : (멈칫 하다가) ...권투합니다.
엄마 : 권투라구요? 걔가 권투를 해요..?! 허.. (관장보며) 우리 태웅이 어떤 앤 줄 아시죠? 그런데 걔가 권투를 한다고요.
관장 : 어머님...! (하며 뭔가 말하려 하는데)
엄마 : (벌떡 일어나며) 제가 잘못 온 거 같습니다. 그럼...
인사하고 나가버리는 엄마. 관장, 얼른 쫓아나간다.
20. 다방 앞 (낮)
태웅엄마를 따라나오는 관장.
관장 : (엄마를 붙잡으며) 이렇게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태웅이 얼굴이라도 보고 가셔야...
엄마 : (뿌리치며) 됐습니다. 그놈 얼굴 보자고 온거 아닙니다. 저 왔었단 얘기나 하지 말아주세요.
엄마, 총총 가버리고 착잡하게 보는 관장.
21. 패션쇼장 (몽타주)
화려한 옷차림으로 워킹을 하는 모델들의 모습과 패션쇼장의 짧은 스케치.
여기저기 심심찮게 보이는 유명인들의 모습 사이로... 앞자리에 앉아 시큰둥하게 쇼를 보고 있는 보라의 모습.
22. 패션쇼장 앞 (낮)
쇼가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 사이 디자이너와 인사하는 보라. “보라양이 입어준다면 저로선 아주 영광이죠.”
보라, 시큰둥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눈이 커진다.
저만치에서 두리번거리며 보라를 찾고 있는 태웅의 모습.
보라, 놀라서 확 돌아선다. 그때 보라를 발견하고 뒤에서 큰소리로 부르는 태웅.
태웅 : 김보라!!!!
보라 : (으.. 걸렸다)
보라, 뒤도 안돌아보고 냅다 도망을 치고...
“너 거기 못 서!”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얼른 쫓아가는 태웅.
23. 패션쇼장 근처 일각 (낮)
보라, 태웅을 피해 달아나다가 이쯤이면 괜찮겠지? 하고 뒤를 돌아본다.
보라 : 아.. 진짜 끈질긴 놈이네.. 아니, 저 자식은 내가 여기 있는걸 도대체 어떻게 안거야?
(투덜대면서 가는데 누군가 앞을 탁 가로막는다) 뭐야..?
하며 짜증스럽게 올려다보는데 보라의 얼굴이 확 굳어진다.
2부에 나왔던 싸가지다! 친구 두명과 함께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보라를 보고 있다.
싸가지 : 아니 이게 누구야... 그 도도하신 사채업자 딸래미 아냐?
보라 : (표정)
싸가지 : (빈정대는) 그렇잖아도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만나냐?
보라, 당황스러운데... 저만치에서 보라를 찾아 돌아다니는 태웅의 모습을 본다.
보라, 태웅과 싸가지를 번갈아보며 어떡할까 머리를 잽싸게 굴리는데...
싸가지 : 그날 나한테 맥주 끼얹은 거 기억하시겠지? (팔 걷어붙이며) 내가 오늘 같은 날을 기다렸다 이거야.
보라 : (갑자기 미소 지으며 얼른) 나도 오늘 같은 날을 기다렸었어.
싸가지 : (어리둥절해서 보면)
보라 : 저번일.. 사과하고 싶었거든. (유혹적인 표정으로 보며) 근데... 그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너, 꽤 괜찮다. 근사한데?
24. 패션쇼장 근처 일각 (낮)
태웅, 보라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다니는데 뒤에서 보라 소리가 들린다.
보라(소리) : 너 재주도 좋다?
태웅 : (돌아본다)
보라 : 내가 여깄는 줄 어떻게 알고 왔어?
태웅 : 득남씨가 패션쇼 갔을 거라고 하더라. 덕분에 서울시내 패션쇼장은 다 뒤졌다. 가자..
보라 : 어머,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난 데이트가 있는데.
태웅 : 데이트?!
태웅, 의아하게 보는데 보라가 뒤에 선 싸가지를 가리킨다. 싸가지를 알아본 태웅의 얼굴이 굳어진다.
싸가지, 손흔들며 “Long time no see”하면서 거들먹거린다.
태웅 : (나직히) 너, 미쳤어? 저런 놈이랑 무슨 데이트를 하겠다는 거야?
보라 : 내가 누구랑 뭘하든 니가 끼어들 일은 아니잖아?
싸가지 : (끼어들며) 당연한 말씀. 운전기사 주제에 어딜 감히 끼어들어?
태웅 : (무시하고 보라만 보며) 암튼 안돼. 집에 가는 거야. (하는데)
싸가지 : 보라야 니 운전기사가 싸가지 없다는 건 저번에 봐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 간뎅이 부은 건 미처 몰랐네.
내가 손 좀 한번 봐줄까? (덤비려하는데)
보라 : (말리며) 됐어. 어서 가자. 좋은 데 데리고 간다며?
돌아서 가버리는 보라. 싸가지, 야비한 웃음을 짓고 보라를 따라간다.
태웅, 걱정스러운 마음에 “보라야!”하며 쫓아가려 하는데 앞을 확 가로막는 싸가지의 친구들.
심상찮은 기세에 얼굴이 굳는 태웅.
25. 근처 일각 (낮)
싸가지의 차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보라와 싸가지.
싸가지 : 너, 생각보다 화끈한데?! 아주 맘에 든다. 내가 오늘 끝내주는 데로 모실테니까 신나게 놀아보자구.
보라 : (멈춰서며 싸늘하게) 됐어. 끝내주는 데는 너나 많이 가라.
싸가지 : 얘가 또 왜 이래....? 아 맞다. (보라 어깨에 팔 얹으며 느끼한) 넌 튕기는게 매력이었지?
보라 : 드러운 손 당장 못치워? (손을 팍 쳐낸다)
싸가지 : 야, 너 왜 이래? 정말 이럴 거야? (하며 팔을 잡는데)
보라 : (다짜고짜 싸가지 뺨을 찰싹 때린다) 손 치우랬지?
싸가지 : (확 열받은) 이게 정말 보자보자 하니깐!!! (보라 강압적으로 확 끌며) 이리와!
니가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모양인데... 너 혼 좀 나야겠다. 이리와!!! (자신의 차로 보라를 질질 끌고 간다)
보라 : 이, 이거놔! (그러다 겁에 질려) 사, 사람 살려! 드, 득구야? 한득구!!!!!
싸가지 : (끌고가며) 불러봤자 게임 끝이야. 니 운전기사는 내 친구들한테 이미 작살났어.
26. 근처 일각 (낮)
빵빵 맞고 나가 떨어지는 싸가지의 친구 1,2.
태웅, 싸가지와 보라가 사라진 곳으로 달려간다.
27. 호텔 일각 (낮)
태웅,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이때 저 앞에서 보라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태웅, 바라보면 싸가지가 보라를 어떻게든 차에 태우려고 질질 끌고 있고 보라는 안끌려가려고 바둥대고 있다.
태웅, “보라야!!!”하면서 달려간다.
28. 주차장 일각 (낮)
싸가지가 보라를 거의 차에 던지다시피 하는데 이때 뒤에 태웅이 나타난다.
태웅(소리) : 그 손 놓으시지!
보라 : (눈물 그렁한 눈으로 보면 태웅이다)
싸가지 : (보라놓고 돌아보며) 어허... 이 자식 봐라. 너 아직 안 죽었냐?
(건들건들 하며) 그래, 좋아. 오늘 내가 인생 쓴맛이 뭔지 보여주마.
하더니 싸가지, 태웅에게로 다가간다.
태웅과 싸가지,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데 싸가지가 당연히 밀린다.
싸가지, 마지막 한방을 맞더니 일어나지 못하고 땅바닥에 척 늘어진다.
태웅 : (싸가지 멱살 잡고) 어떻게 해줄까? 경찰서에 넘겨줄까? 아님 누구누구 아들이 남의집 귀한 딸래미 납치하려고 했다고
신문 일면에 대서특필 나게 해줄까?
싸가지 : ... 이 자식이....!
태웅 : (무서운) 너 다신 보라 근처에서 얼쩡대지마. 그땐 정말 끝장이야. 알았어?
싸가지 : (겁에 질려서 고개 끄덕이고 후다닥 달아난다)
태웅, 돌아서는데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보라와 눈이 마주친다.
답답하고 화난 태웅.
29. 근처 일각 (낮)
보라가 벤치에 앉아서 덜덜 떨고 있다. 커피를 사온 태웅이 건넨다.
태웅 : 마셔..
보라 : 됐어.
태웅 : (보다가) ....너 만약에 내가 안따라왔으면 어쩔 뻔했어? 겁도 안나?
보라 : ....나,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태웅 : (답답한) 너 바보냐? 니가 못생긴 애도 아니고, 데이트하자고 꼬시는데 혹하지 않을 남자가 어딨어?
그래놓고 뺨 때리고 면박주는데 열 안받을 남자가 어딨냐구! 남자 그렇게 몰라?
보라 :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이렇게 된 거 다 너 때문이니까!
태웅 : (본다)
보라 : 내가 왜 그 자식이랑 친한 척한 줄 알아? 니가 쫓아다니는 거 너무 지겹고 짜증나서, 너 골탕 먹여주려고 그랬어.
그러니까 괜히 내 걱정해주는 척 가증스럽게 굴지마. 하나도 안고마우니까.
태웅 : (멍한 표정)
씩씩대며 차를 향해 걸어가는 보라. 그런데 왠지 괜히 눈물이 난다.
보라 : 나쁜 자식... 진짜 나쁜 자식이야.... (하는데)
태웅(소리) : 보라야......
보라 : (멈칫 선다)
태웅 : ...너... 내가 그렇게 싫으니?
보라 : (쿵.. 한다)
태웅 : (보라 보며) ... 그 자식 따라갈 정도로 내가 부담스럽고 싫었어?
보라 : (표정)
태웅 : ...내가 그만둘게.
보라 : (쿵..해서 본다)
태웅 : 아무래도 그게 좋을 거 같아. 회장님껜 내가 말씀드릴게.
보라 : (마음에도 없이 괜히) 마, 마음대로 해. 니가 그만 두든 말든 난 신경안써.
보라, 휙 돌아서 차를 향해 가는데 혼란스러운 표정.
30. 집 앞 (밤)
보라의 차가 멈춰선다.
태웅,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려고 다가가는데 혼자 문을 열고 내리는 보라. 싸늘하게 태웅을 지나쳐 대문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태웅, 심란한 표정으로 보라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태웅 : 네, 관장님?! (얼굴색 바뀌며)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31. 병원 응급실 (밤)
태웅이 다급하게 응급실로 뛰어 들어온다.
태웅,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 멀리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있는 동필과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관장을 발견한다.
태웅 : 어떻게 된 거에요?
관장 : 헤드기어도 안쓰고 스파링을 했다지뭐냐. 눈도 잘 안보이고 머리도 너무 아프다고 해서 데려왔다.
태웅, 걱정스런 표정으로 동필을 지켜보는데 이때 동필의 눈을 검사하던 의사가 몸을 일으킨다. 민호다.
민호 : (피곤해서 사무적인) 그냥 일시적 충격에 의한 단순외상 같습니다.
일단 입원하시고 내일 안과 쪽으로 가서 검사 해보시면 될거 같네요.
관장 : 저, 근데 코피는 왜 안멎는 거죠? 아까부터 계속 흐르던데...
민호 : (멈칫하다가 솜을 빼본다) ... 멎었는데요? (어깨 으쓱하고 가버리고)
동필 : 이상하네. 아까 계속 났는데...
관장 : 좀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난 입원수속하고 오마. (나간다)
태웅 : (멈칫 이상한 느낌으로) ....코피가 계속 났어?
동필 : 어. (그러다 갑자기 얼굴 뒤로 들며) 아씨, 또 나네.... 차라리 코로 나오지 목으로 넘어가고 있네... 기분 드럽게.... (하는데)
태웅 : 형, 고개 좀 숙여봐. (다짜고짜 동필의 고개를 누른다)
동필 : 자식아 뭐하는거야...
태웅, 동필의 코에 손을 대본다. 눈빛 확 변한 태웅, 얼른 민호를 쫓아간다.
32. 응급실 밖 복도 (밤)
건우와 걸어가는 민호.
민호 : (짜증난) 어제부터 한시간도 못잤는데 또 무슨 회의야..
건우 : (픽 웃으며) 가서 자면 되잖아.
민호 : 농담할 상태 아니다.. 아.. 피곤해...
하는데 “선생님!” 부르며 태웅이 다가온다.
민호와 건우 돌아보면,
태웅 : 아까 그 환자, 다시 한번 봐주실 수 없나요? 코피가 목으로 계속 흐른다고 하는데 제 생각엔,
민호 : (말자르며 짜증섞인) 혈관이 터진 거 같은데 간호사한테 말씀하세요. 지혈해줄 겁니다.
태웅 : 아뇨, 그게.... (조심스런) 잘 모르겠지만 코피가 너무 묽은게 뇌척수액이 흐르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요.
건우 : (확 돌아본다! 어떻게 이런 걸 알지? 보는데)
민호 : (신경질적으로) 콧물과 섞이면 코피도 묽게 됩니다. (건우 보며) 가자. (돌아서는데)
태웅(소리) : 두개골 골절일지도 모른단 생각은 안드십니까?
건우/민호 : (돌아보는!)
태웅 : 머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 외상이라고 하기엔, (하는데)
민호 : (태웅에게 성큼 다가서며 신경질적으로) 이봐요, 당신 두개골 골절이 뭔지나 알아? 도대체 당신 뭐야? 당신이 의사야?
(싸울 듯 덤비는데)
건우 : (끼어들며) 그만해! (태웅 보며) 죄송합니다. 저희가 바로 정밀 검사를 해볼테니까 너무 걱정마시고 기다려주세요.
태웅 : (건우를 보는 표정)
33. 입원실 (밤)
태웅과 관장이 곤히 잠든 동필을 내려다보고 있다.
관장 : 별 거 아니어야 할텐데....
태웅 : (걱정스럽게 관장 보다가)... 오늘은 제가 있을 테니까 관장님은 집에 가서 주무세요.
관장 : (앉으며) 됐다. 너야말로 내일 출근해야 할 사람인데 집에 가서 쉬어.
태웅 : (망설이다가) 저... 어쩌면 그 일 그만둬야할지도 몰라요.
관장 : (무슨 일 있었구나 보다가) ...관둘땐 관두더라도 내일은 나가봐야 할 거 아니냐. 긴 말 말고 들어가봐.
태웅 : (어쩔 수 없다. 꾸벅하고 들어가는데)
관장 : (태웅보며) 참, 득구야. 너희 어머니...
태웅 : (돌아본다) 네?
관장 : 아, 아니다. 어서 가서 쉬기나 해라.
34. 체육관 (밤)
어두운 체육관. 태웅, 혼자 링에 걸터앉아 생각이 많다.
35. 보라 방 (밤)
태웅의 모습에서 연결되어,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보라. 손톱 물어뜯으며 착잡한 표정이다.
보라, 생각떨치듯 머리 흔들고 괜히 책정리를 하는데 문득 사전을 보게 된다.
사전을 펼치는 보라. 은방울꽃이 곱게 잘 말려져서 놓여 있다.
보라, 은방울꽃을 조심스럽게 집어든다.
태웅(소리) : 내가 그렇게 싫으니....?
은방울꽃을 보는 보라의 표정이 혼란스럽다. 싫은 건 아닌데... 뭔지 모르겠는 느낌.
36. 보라집 계단 (낮)
보라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태웅과 순자가 얘기하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태웅 : 회장님 어디 계신가요?
순자 : 서재에 계실텐데.... 왜?
태웅 :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보라 : (멈칫하는 표정)
태웅, 김회장의 서재로 향하려 하는데 보라 소리가 들린다.
보라(소리) : 너,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태웅, 돌아보면 도도한 표정으로 착착착 다가오는 보라.
보라 : (오만한) 출근했으면 차나 닦고 있어야하는 거 아냐? 지금 당장 나갈거니까 바로 준비해.
태웅 : (영문을 몰라 보는데)
보라 : (돌아보며) 뭐해? 운전 안할거야?!!
태웅 : (보라를 보는 표정!)
37. 마당 (낮)
보라 뒤를 따라 나오는 태웅.
태웅 : 보라야... (뭔가 말하려하는데)
보라 : (먼저) 니가 뭔데 니 맘대로 그만둬? 넌 그냥 무조건 내 밑에서 일하는 거야. 내가 관두라고 말할 때까지. 알았니?
태웅 : (표정)
보라 : (흘낏 돌아보며) 그렇다고 착각하진마. 난 손해보는 짓 절대 안하거든? 삼천만원이나 줬는데 본전은 챙겨야하지 않겠어?
태웅 : (쿡 웃는다)
보라 : (불끈해서) 왜, 왜 웃어?
태웅 : 아니, 너 말하는게 회장님하고 많이 닮은 거 같아서. 근데 아침부터 어디 가는 거야?
보라 : (오만한) 학교.
태웅 : 뭐?!
보라 : 학교 몰라? 학교 간다구!
하더니 보라, 핑 돌아서서 먼저 가버리고 태웅, 신기하다는 듯 보라를 바라본다.
38. 몽타주
대학생들이 활기차게 오가는 대학 캠퍼스. 보라의 차가 대학 안으로 들어온다.
차창을 내리고 오래간만에 학교를 둘러보는 보라의 표정. 오가는 대학생들을 보며 왠지 신선한 느낌인데..
태웅, 룸미러로 그런 보라를 힐끔 쳐다본다.
태웅의 시선 느끼자 괜히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윈도우를 올려버리는 보라.
39. 경영대 건물 앞 (낮)
경영대 건물 앞에 보라의 차가 멈춘다.
태웅이 차문을 열어주자 유유히 차에서 내리는 보라. 수업 받으러 가던 학생들이 “쟤 뭐냐” 수군대며 보지만 태연하다.
보라 : (투덜대며) 오랜만에 왔더니 시간표도 모르겠네.
태웅 : 너 학생 맞아?
보라 : (째려보다가) 근데 너, 나 수업 듣는 동안 뭐할거야?
태웅 : 구경해야지. (주위 가리키며) 예쁜 여자들 많다야.
보라 : (기가 찬 듯 보면)
태웅 : (피식 웃으며) 내 걱정은 말고 공부나 잘 하고 와.
보라, 흥 돌아서 가버리고 태웅, 웃으며 멀어지는 보라를 본다. 그러다가 쓱 학교를 둘러보는데....
잔디밭에 앉아 토론하는 학생들, 기타치며 노래하는 학생들, 바쁘게 어딘가로 오고 가는 학생들 등
활기찬 대학과 대학생들의 모습.
태웅, 왠지 쓸쓸한 느낌인데...
정규(소리) : 태웅아...
# 인서트
잔디밭에 누워 책보다 말고 흘낏 돌아보는 정규.
정규 : 대학가면 넌 뭐할거냐?
태웅, 오랜만에 떠오른 정규 생각에 착잡하다.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서 간다.
40. 병원 진료실 (낮)
동필의 씨티촬영 사진들이 걸려있다. 사진들을 보고 있는 건우와 민호.
건우 : 어제 그 친구 말이 맞는데? (민호 보며) basal skull fracture (기저부 두개골 골절).... 확실해.
민호 : (얼굴 감싸쥐며) 아... 쪽팔려.
건우 : 야. 실수할 수 있어. 다음에 안하면 되지. (사진보며) 그나저나 참 신기하네. 어떻게 딱 보고 짚어냈을까?
민호 : (머리 막 헝클며) 몰라아.. 의대생인가보지... 아씨.. 안과나 가보라고 했는데 basal skull fracture란 말을 어떻게 하냐..
아 미치겠네.. (건우 붙잡고) 니가 말해주면 안될까? 건우야! 제발! 응?
건우 : 미안한데 난 오프다. 오늘 업무 끝!
민호 : (근처 물건 막 집어던지며) 야 이 치사한 자식아 니가 친구냐?
건우, 민호를 피해 도망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번호 확인해 보고 놀라는 건우.
건우 : 보라씨?
41. 도서관/병원진료실 (낮)
도서관에서 경영수학 책 넘겨보며 전화통화하는 보라.
보라 : 의대 갔을 정도면 수학 잘 했을거 아니에요? 간단한 경영수학 문젠데 설마 못푼단 말은 안하겠죠?
건우 : 아..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수학 레포트 좀 써달라고 전화한거다.. 이거죠?
보라 : (당당한) 내가 언제 써달랬어요?! (궁색한) ...도, 도와줄 수 있냐 이거죠.
건우 :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어쩌나? 나 지금 엄청 바쁜데.
보라 :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바, 바빠요?!
건우 : (태연한) 저 수술 들어가야되거든요? 그럼 이만! (뚝 끊어버리고)
보라 :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러다가 부르르) 끊.었.어?!!!
42. 다시, 진료실 (낮)
신나서 가운 갈아입는 건우를 도끼눈 뜨고 보는 민호.
민호 : 흥 수술 좋아하시네. 신경과에서 수술하는거 봤어?! 꼴에 튕기고 있어.
건우 : (씩 웃으며) 튕기는 것도 나름의 전략이지.
민호 : (재수없다는 듯 보는데)
건우 : 그럼 수고!!! (신나서 나간다)
43. 도서관 (낮)
핸드폰 확 덮으며 분통터트리는 보라.
보라 : 뭐? 바빠? 내 참 기가 막혀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치사하고 드러워서 내가 혼자 하고만다. 으휴 신경질나....
투덜대는데 태웅이 책을 한아름 안고 와서 선다.
태웅 : 조용히 좀 해라.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
보라 : (산더미 같은 책 보고) 이렇게 많아? 오늘 오후까지 이걸 어떻게 다 봐... 아이씨.. 이런 줄 알았으면 학교 안나오는건데..
태웅 : (피식 웃으며 쳐다보는 표정)
(시간경과)
도서관에 마주 앉아있는 태웅과 보라.
태웅, 앞에 쌓아둔 보라의 책들을 뒤적이는데...
보라 : (레포트 쓰며 대수롭지 않게) 근데 너 말이야.. 아빠한테 돈 왜 빌렸어?
태웅 : (멈칫 보면)
보라 : 빈정대는 거 아니니까 말해봐. 정말 왜 빌린거야?
태웅 : ...엄마한테 급히 돈이 필요했어. 그래서 빌린거야.
보라 : 한마디로 자식 등골 빼먹는 엄마네?
태웅 : (기분 나빠 확 보며)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보라 : (자기도 깜짝 놀라) 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 니네 엄마 모욕할 뜻은 없었어.
태웅 : ....
보라 : 어쨌든 니네 엄마는 괜찮은 편이야. 자식, 남편 다 팽개치고 바람나서 도망간 어떤 엄마에 비하면.
태웅 : (멈칫 보며) ...그게 무슨 소리야?
보라 :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엄마도 있단 얘기야. (확 일어선다)
태웅 : 어디가?
보라 : 책 찾으러. 순 쓸데없는 책만 찾아왔어... (투덜대는데)
태웅 : (일어나며) 뭐 찾는데. 내가 갈게.
44. 서가 일각 (낮)
서가에서 책을 찾는 태웅. 보라의 참고서적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목록 보며 한참 책을 찾다가 무언가를 보고 멈칫하는 태웅. 구석에 먼지 뒤집어쓴 채 수학학회지들이 꽂혀있다.
태웅, 수학학회지를 바라보는 눈빛에 설레임과 쓸쓸함이 교차한다.
손으로 표지의 연도를 확인하며 훑어보는데 1994년 학회지가 보인다.
태웅, 떨리는 손으로 1994년 학회지를 꺼내본다.
# (1부 21씬)
정규 : (학회지 보이며) 94년도 수학학회집니다. 영어로 된 걸 제외하고 수식과 증명방식 모두 한태웅 논문과 똑같습니다.
그 논문이 실린 페이지들을 넘겨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
45. 도서관 (낮)
인상 쓴 채 나름대로 열심히 레포트를 쓰고 있는 보라. 다 썼는지 펜을 탁 놓는다.
보라, 휴-하면서 한숨을 쉬더니 문득 시계를 본다.
보라 : 얘는 도대체 어딜 가서 이렇게 안오는 거야?
보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안되겠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46. 서가 일각 (낮)
태웅을 찾아 서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다니는 보라. 그러다가 문득 서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태웅의 모습을 발견한다.
보라 : 너 여기서 뭐하는....
하며 다가가려하다가 멈칫한다.
햇살 들어오는 서가 통로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책을 보고 있는 태웅.
다가가 말걸기가 미안할 정도로 몰입해있는 태웅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다.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멍하게 바라보는 보라. 책을 읽는 태웅의 모습이 왠지 잘 어울리고 보기 좋다.
(시간경과)
창밖은 늦은 오후의 햇빛.
여전히 서가에 쭈그려 앉은 채 책을 보던 태웅이 이윽고 마지막 페이지를 접고는 고개를 들다가
자기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보라를 보더니 허걱 놀란다.
보라 : (시계보고) 정확히 한 시간 십 칠 분 동안 기다렸어. (일어서며) 너 완전히 근무태만인 거 알지?
태웅 : (일어난다) 미, 미안. 벌써 그렇게 됐냐?
보라 : 도대체 무슨 책을 본거야? (책 확 뺏어보고) ....수학 학회지?!! 니가 왜 이런 책을 봐?
태웅 : 어? 그, 그게...
보라 : (책 중간 훑어보면 온통 영어다. 콩글리쉬) 아이덴티피케이션 오브 콘스탄트... (막힌다) 아씨 이게 무슨 단어야?
(휙 태웅 보며) 너, 이게 무슨 뜻인지나 알면서 보는 거야?
태웅 : (둘러대는) 아니 뭐.. 너 경영수학 레포트 써야한다며? 혹시 필요한가 해서....
보라 : 어~ 영어는 쫌 한다 이거지? (코웃음치며) 근데 헛수고해서 어쩌나? 난 벌써 다 했는데.
태웅 : 벌써?!
보라 : 조교실에 내기만 하면 돼. (레포트 척 내밀며) 가서 내고 와.
태웅 : (얼떨떨해서 보면)
보라 : (도도한) 날 기다리게 한 댓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
보라, 휙 돌아서 가버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 보는 태웅.
47. 도서관 앞 (노을)
보라, 해방된 기분으로 신이 나서 도서관을 나오는데 “보라씨!”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의아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건우가 웃으며 다가오고 있다.
보라 : (쌀쌀맞은) 누구시더라?
건우 : 어?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시원찮아요?
보라 : 엄청 바쁘신 의사선생님께서 저희 학교까지 왠일이실까요?
건우 : 에이 왜 그래요? 보라씨 도와주려고 수술도 바꾸고 달려왔는데...
보라 : 저는 매너없이 먼저 전화 끊는 사람이랑은 긴 얘기 안해요. 그리고 저, 레포트 다 썼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돌아서는데)
건우 : 어어... 여기까지 왔는데 나보고 그냥 가라는거에요? 보라씨? 보라씨!!
48. 근처 일각 (낮)
태웅, 레포트 들고 가다가 문득 표지를 보는데 “경영학과 김보라”라고만 적혀있다.
태웅 : (피식 웃으며) 바보.. 학번도 안적었잖아?
태웅, 다시 돌아서 가는데 저만치 멀리 보라와 건우가 실랑이 하는 모습이 보인다.
얼굴색 변하는 태웅.
49. 도서관 앞 (노을)
보라, 건우에게 붙잡힌 가방을 빼내려고 실랑이하고 있다. “싫다니까 진짜 왜 이래요?”
건우, 보라에게 장난치듯 가방 당기면서 “그러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니까요?” 하는데
갑자기 태웅이 뒤에서 건우의 팔을 우드득 뒤로 꺾어버린다. 악! 비명을 지르는 건우.
태웅 : 멀쩡하게 생기신 분이 이러시면 안되죠. 싫다는 여자한테 왜 자꾸 집적대는겁니까?
건우 : 아아악.. 뭐, 뭐야? 너, 누, 누구야?
태웅 : 그건 알거 없고...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실래요 아님 (더 세게 꺾으며) 경찰서로 가실래요?
건우 : 아니 이 자식이 정말! 이거 못놔!!! 엉?
하며 돌아보는데 태웅이다. 깜짝 놀라는 두 사람.
건우 : 어?! 어, 어제 병원에서... 맞죠?
태웅 : !
보라 : (의아하게 보며) 두 사람... 아는 사이에요?
50. 학교 일각 (노을)
건우는 벤치에 앉아서 여전히 팔이 아픈지 만지고 있고 태웅은 난감한 얼굴이다.
태웅 : 괜찮으세요?
건우 : (억지로 웃으며) 네 뭐 그럭저럭... 아무튼 희한한 인연이네요. 보라씨 운전기산줄은 몰랐어요?
보라 : (끼어들어 약올리듯) 서건우씨 오늘 운 좋은 줄 아세요. 득구 얘, 운전기사 하기 전엔 권투선수였어요.
건우 : (의외라는 듯 태웅 보며) 권투선수? 난 의대생인 줄 알았는데?
보라 : 무슨 말이에요?
태웅 : (멈칫하다가 가로채서) 아무튼 죄송합니다. 보라랑 아는 사인 줄 몰라서...
건우 : 그럴 수도 있죠 뭐. 어쨌든 권투선수라니까 마음은 든든하네요. 앞으로도 보라씨 자알 지켜 주십쇼. 오늘만 빼구요.
(보라보며) 여기까지 왔는데 밥은 같이 먹어줄거죠?
보라 : 내가 왜요?!
건우 : (불쌍한) 중요한 수술도 제끼고 왔는데 보라씨 자꾸 이러면 나 상처받아요?
보라 : (망설이다가 태웅보며) 먼저 들어가. 난 서건우씨랑 (강조하는) ‘최후의 만찬’을 하고 들어갈테니까.
(건우 보고) 밥만 먹으면 되죠? (앞장서 간다)
건우 : (보라 가리키며 태웅에게) 쫌 귀여운 데가 있어요.
태웅 : (보라 보며 웃는데)
건우 : (돌아서려다 생각난듯) 아참, 득구씨가 두개골 골절이라고 한거.. 맞더라구요. (웃으며) 제 친구 실수, 이해해줄 수 있죠?
하며 웃는데 저만치 먼저간 보라가 소리친다.
보라 : 서건우씨!!! 뭐하는거에요!!!!
건우 : 네! 갑니다아!
건우, 태웅에게 인사하고 보라를 향해 뛰어간다.
“보라씨 성질 좀 죽여요. 이쁜 여자가 왜 그래” “흥 이쁜건 아시네?!”
보라와 건우, 티격태격하며 건우의 차를 향해 멀어지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태웅의 눈에는 왠지 다정하게 보인다. 태웅, 왠지 씁쓸한 느낌으로 보다가 돌아서는데..
태웅 : (주머니에 꽂힌 레포트 보고) 아차, 학번!
얼른 돌아보는데 이미 저만치 떠나버린 건우의 차.
51. 조교실 (낮)
조교실에 붙어있는 학생 명단을 훑어서 보라의 이름을 찾아낸 태웅. 학번을 레포트에 옮겨적는다.
아무도 없는 조교실. 이 레포트를 어쩌나... 난감한 표정으로 둘러보다가
무심코 보라의 레포트를 넘겨보는데 한 눈에 봐도 엉터리인 보라의 레포트.
태웅 피식 웃으며 넘겨보는데 마지막 증명 문제를 공란으로 남겨놨다.
곰곰이 보다가 슥슥 증명을 해나가는 태웅.
태웅, 종이가 꽉 차게 증명을 끝내는데 문이 열리고 조교가 들어온다.
바쁜 일이 있는 듯 급하게 책들을 챙기다가 문득 태웅을 본다.
조교 : 무슨 일이시죠? (그러다 레포트 보고) 아! 경영수학 레포트? 이리 주세요!
조교, 레포트 확 가로채서 들고 얼른 다시 나가버린다.
태웅, 당황스러워서 쫓아가며 “저, 저기요! 저기요!!!”하는데 이미 사라진 조교.
태웅, 벙찐 표정.
52. 보라집 (밤)
태웅이 차고에 차를 놓고 나온다.
그때 태웅을 부르며 다가오는 순자.
순자 : 한기사! 한기사!!!
태웅 : 네?! (돌아보면)
순자 : ...회장님이 부르셔.
53. 보라집 일각 (밤)
김회장 : (태웅 잔에 술 따라주며) 한 잔 들게.
태웅 : 괜찮습니다.
김회장 : 어려워할 거 없어. 이제 우리 식구나 마찬가진데... 들게.
태웅 : (몸 돌려 술 마시는데)
김회장 : (힐끗 보고) 자네... 학교는 왜 그만 뒀어?
태웅 : (멈칫 한다) ...그냥.. 공부에 뜻이 없었어요.
김회장 : 공부에 뜻이 없었다... (태웅 보며) 아무리 그래도 학교를 그만두긴 쉽지 않은 법인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
태웅 : ....그런 거 없습니다.
김회장 : 아닌 것 같은데...?
태웅 : (표정)
김회장 : 하긴 뭐 젊을 때 방황할 수 있어.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방황하더라도 목표는 있어야해. 자네 인생의 목표는 뭔가? ...세계 챔피언?
태웅 : 권투를 좋아하긴 하지만 세계챔피언이 될만한 재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은 권투선수는 되고 싶습니다.
김회장 : (의미심장한) 권투말고 자네한테 다른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나?
태웅 : (본다)
김회장 : (마주 본다)
태웅 : (시선 피하며) ...안해봤습니다.
김회장 : (거짓말하는거 안다는 눈빛으로 보는데)
순자가 안주 접시를 들고 들어온다.
순자 : (접시 내려 놓으며) 아이구, 안주도 없이 벌써 드시고 계셨어요... 회장님 이 전복 좀 드셔보세요...
김회장 : (분위기 바꾸며) 자, 안주도 왔는데 한 잔 하지! (하며 잔 내민다)
태웅 : (잔 부딪치고 마시는 표정.. 조금 불편하다)
54. 뷔페 (밤)
돌잔치자리. 돌잡이를 하고 있다.
아기가 청진기를 집자 환호하는 사람들.
건우 : (박수치면서) 아이고 큰일났네. 의사해서 돈 버는 시대는 갔는데 그걸 왜 집냐. 골프공을 집어야지...
보라 : (쏘아보며) 이런데 올 거였으면 혼자 오지 뭐하러 날 데려와요?
건우 : 요즘 돌반지가 얼만데요! 혼자와서 먹으면 수지가 안맞잖아? (일어나며) 자, 슬슬 우리도 먹으러 가볼까요?
보라 : (기막힌 표정으로 본다)
(시간경과)
건우는 열심히 먹고 있는데 보라는 시큰둥하게 물이나 홀짝이며 못마땅한 표정이다.
건우 : 배 안고파요? 왜 안먹어요?
보라 : 먹든 안먹든 내 맘이에요. 배고픈 서건우씨나 실컷 드세요.
건우 : 에고, 한기사 힘들겠다.... 나야 어쩌다 보라씨 보니까 귀엽고 좋지만
한기사는 하루종일 이 특이한 성격 맞추려면 얼마나 힘들까....?
보라 : (코웃음치며) 그렇게 걱정되면 건우씨가 내 운전기사하지 그래요? 그럼 하루도 안되서 나한테 도망가게 만들수 있는데....
건우 :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난 하루도 안되서 보라씨가 나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데...
보라 : (대꾸도 귀찮은 듯 보다가.. 문득 생각난) 참, 아까 한기사가 의대생인 줄 알았다는 건 무슨 소리에요?
(번뜩) 혹시 걔가 가짜 대학생 행세라도 했어요?
건우 : (푸하하 웃고) 실은 한기사가 어제 친구 때문에 우리 병원에 왔었는데... 우리가 놓친 환자 증상을 알려줬거든요.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basal skull fracture란 걸 알았는지 진짜 신기하다니까요?
보라 : 베, 베이설.. 뭐요?! 하여튼 의사들, 툭하면 영어쓰는거 진짜 밥맛이야.
내 앞에서 한 번 만 더 영어 쓰면, (다짜고짜 포크로 살벌하게 방울토마토를 콱 내리찍는다) ...알죠?
건우 : (컥! 웃겨서 목이 메인다)
55. 건우 차 안 (밤)
운전하고 가는 건우 옆에 앉아서 창밖만 보고 있는 보라.
건우 : (힐끗 보라 보고)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보라씨 첫사랑은 어때요? 잘 있어요?
보라 : !
건우 : (놀리듯) 벌써 잊었나? 첫사랑 한국 오면 소개시켜준다고 했잖아요.
언제 들어온대요? 보라씨 보고 싶어서 금방 오겠다? 그죠?
보라 : (짜증난다) 그래요. 그거 다 뻥이에요. 첫사랑 아니고 짝사랑이었어요. 됐어요?
건우 : 짝사랑? 그럼 진짜 좋아한 사람인건 사실이네?
보라 : 그럼요.. 얼마나 많이 좋아했는데요..
건우 : 근데 왜 헤어졌어요?
보라 : (표정)
건우 : 말하기 싫음 안해도 되요.
보라 : ......헤어지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두 번 밖에 못 만났거든요...
놀이공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말도 없이 안나왔어요. (착잡한) 그게 다에요.
건우 : (갑자기 눈 번뜩이며 나즈막하게) 나쁜 자식!
보라 : 네?!!! (놀라 보는데)
갑자기 거칠게 끼이이익 차선을 바꾸는 건우. 보라의 몸이 옆으로 확 쏠린다.
보라 : 지, 지금 뭐하는 거에요?!
건우 : (흥분해서 지그재그로 운전하고 있는 앞 차 가리키며) 방금 봤어요? 저 앞에 코란도 9310!
제가 딴 건 몰라도 저렇게 몰상식하게 끼어드는 놈들은 용서가 안되거든요?! 저런 자식은 혼 좀 내줘야해요.
(힐끗 보며) 보라씨, 안전벨트 맸죠? (부르르 불타오르며) 너 오늘 죽었다!!!
보라 : (겁에 질려) 이, 이것보세요 서건우씨!!!
건우, 들은 척도 않고 거칠게 액셀을 밟는다. 흰색차를 쫓아 인천 쪽으로 빠지는 건우의 차.
56. 보라집 거실 (밤)
보라가 씩씩대며 들어서면 득남이 걱정한 얼굴로 나와 있다.
득남 : 어? 보라야, 왜 이렇게 늦었어?
보라 : (씩씩대며) 몰라! 인천까지 갔다 왔단 말야.
순자 : (부엌에서 나오며) 인천? 인천은 왜?
보라 : 아 몰라요!!!! 정말 웃기는 남자야!!! (하고 올라간다)
득남 : (순자보며) 남자? 엄마, 지금 보라 남자라고 했어? (질투에 불타서) 호, 혹시.. 한기사오빠랑...?
순자 : (뒤통수 퍽 때리며) 한기사 아까 퇴근했잖여!
득남 : (머리 문지르며) 그럼 누구지?
57. 보라방 (밤)
옷 벗으며 풍풍대는 보라. “진짜 별꼴이야..”
옷장에 옷 걸다가 생각난 듯 옷장 속을 뒤지는 보라. 낡은 어린 시절의 보물 상자가 나온다.
주저 앉아 상자를 열어보는 보라. 잡다한 어린 보라의 보물 사이에.. 삐삐가 보인다.
보라, 삐삐를 꺼내 전원을 켜본다. 액정에 불이 들어온다. No Page.
삐삐에서 연결되면...
# 인서트
손바닥안의 삐삐를 들여다 보고 있는 어린 보라.
노란 우산을 쓰고 설레이는 표정으로 태웅을 기다리고 있다. 놀이 공원 앞에서.
보라 : (착잡한) 그때 진짜 많이 기다렸는데.... 그 오빠...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58. 체육관 (낮)
출근준비를 하고 나서는 태웅. 운동하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나오는데 승리와 마주친다.
섹시한 스포츠룩. 그런데 80년대 촌발 화장.
태웅, 완전히 바뀐 승리의 모습에 어리둥절한데,
승리 : (명랑한) 어? 득구오빠 오랜만이네? 출근하는구나? 잘 다녀와!!
승리,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태웅을 스쳐가버리고 놀라 돌아보는 태웅.
금수 : (태웅 보며) 승리, 확 바뀌지 않았냐? 딴사람 같애.
은복 : 쟤는 저걸 이쁘다고 한거겠지?
태웅 : (표정)
59. 체육관 일각 (낮)
거울보면서 스트레칭으로 몸 풀고 있는 승리. 휙 휙 잽도 날려보는데...
거울 속에 태웅의 모습이 보인다. 멈칫 하는 승리.
태웅 : 승리 너... 며칠새 많이 달라졌다?
승리 :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그치? 내가 신경 좀 썼어. 나 이제 이쁘게 하고 다닐거다?
(괜히 수다스러운) 막상 화장해보니까 재밌네?! 진작할걸 그랬어!
태웅 : (물끄러미 보기만 하는데)
승리 : (한숨쉬고) ....그렇게 보지마. 난 괜찮으니까.
태웅 : (표정)
승리 : 내 생일파티 때 있었던 일, 또 오빠가 나한테 했던 말들... 나 다 잊었어. 나 원래 단순해서 금방 잘 잊잖아.
그러니까 오빠도 잊어. 뭐 잊지 못하겠음 그냥 맘속에 묻어버려. 백년이 걸려도 못찾게.
태웅 : 승리야...
승리 : 근데 오빠!! (갑자기 주먹으로 퍽 치며) 왜 달라졌다고만 하고 이뻐졌단 말은 안해? 나 첨으로 머리 세팅도 했는데... 이씨...
태웅 : (아파하며) 이뻐 이뻐...
승리 : 흥! 엎드려 절받기지. (태웅 보며) 출근 안해?! 그 기집애 성깔도 드러운데 한소리 듣기 전에 빨리 가.
태웅 : 알았다! 근데 세계 챔피언은 동필이 형이 아니라 승리 니가 해야할 거 같다. (괜히 아픈척하며 돌아서는데)
승리 : 득구오빠!
태웅 : (돌아보면)
승리 : 나 오빠 동생 맞지? (슬픈)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 맞지?
태웅 : 그럼. 당연하지!
태웅, 씩 웃어주고 돌아서 가고 착잡한 표정으로 태웅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승리.
60. 강의실 (낮)
경영수학 시간. 교수가 레포트를 나눠주고 있다. “이용연! 김범상! 이지선!”
교수 : 김보라!
보라 : 네! (하며 다가가는데)
교수 : (레포트와 보라 번갈아보다가) ...이거.. 자네가 푼거 맞나?
보라 : (긴장해서) ...네.. 그런데요?
교수 : ...그래..? (의미심장하게 웃고) 경영과 학생이 이런 증명을 해낼 수 있다니 놀랍구만. 이렇게 훌륭한 리포트는 처음이야.
보라 : ?!!!!
아이들 : (수군수군 대는데)
교수 : 다음시간에 자네가 이걸 발표하도록 해. 알았지? (학생들 둘러보며) 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냅니다.
교수 나가고 어리둥절해서 선 보라.
보라 : (레포트 들추며) 도대체 뭐가 훌륭하다는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레포트를 들춰보는데... 마지막 문제에 알 수 없는 숫자가 가득 적혀있다.
깜짝 놀라는 보라. (보라가 푼 문제는 전부 틀렸다는 표시. 마지막 태웅의 문제에는 Excellent!!)
61. 학교 일각 (낮)
걸어나오면서 곰곰이 생각하는 보라의 모습.
# (4부 60씬)
교수 : 경영학과 학생이 이런 증명을 해낼 수 있다니 놀랍구만.
# (4부 54씬)
건우 : 난 한기사가 정말 의사나 의대생 쯤 되는 줄 알았어요.
# (2부 29씬)
태웅 : 서부 어디 촌구석에서 영어 좀 배웠나본데 그렇게 잘난척할만한 실력은 아니지 않아?
그때 농구장에서 대학생들과 농구를 하던 태웅이 보라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금방 갈게!”
잽싸게 한 골 넣고 보라를 향해 다가오는데...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런 태웅을 보는 보라.
보라 : (중얼거리는) 한득구.. 도대체 정체가 뭐야?
62. 학교 일각 (낮)
태웅과 조금 떨어져서 걸어가는 보라, 흘낏 태웅 돌아보며,
보라 : 저번에 서건우씨가 그러더라? 너... 의사 뺨치게 많이 안다면서?
태웅 : 어?
보라 : 의사도 놓친 걸 찾아냈다고 하던데.. (멈춰서며) 그런건 어떻게 알았어? 너 혹시... 의대 다녔니?
태웅 : 야, 대학 문앞에도 못가봤다. 의대는 무슨... (하며 피하는데)
보라 : (가로막으며) 그거 참 이상하네? 너, 나 병원에서 처음 봤을 때도 무슨 동맥 무슨 동맥...
의사처럼 막 말했었잖아. 기억 안나?
태웅 : (굳었다가 얼른 웃어넘기려하며) 야 야.. 내가 뭘로 봐서 의사로 보이냐?
보라 : 당연히 의사로는 안보이지. 그러니까 더 이상하잖아? 의사 뺨치는 의학지식에 영어도 잘하고... 거기다 수학까지.
(수학레포트 탁 내밀면서) 이거... 니가 쓴거 맞지?
태웅 : (보라의 레포트 보고 멈칫한다)
보라 : (한 발 성큼 다가서며) 한득구! 너, 정체가 뭐야?
태웅 : !!!!!
보라 : (꿰뚫을 듯 보며) 진짜 정체가 뭐냐구!
긴장감 넘치는데.... 갑자기 푸하하 웃어버리는 태웅.
보라 : 야! 왜 웃어!!!
태웅 : 그럼 웃기지 안웃기냐? 내가 무슨 간첩도 아니고 정체가 뭐냐니 웃기잖아!
보라 : (신경질 난다) 빨리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태웅 : (짐짓 한숨 쉬고) 영어는, 몇 년 전에 충식이랑 이태원에서 알바 한 적 있었어.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거고.. 의학지식은...
(대수롭지 않게) 두개골 골절, 권투선수한테는 종종 있는 병이야. 선수 중엔 그 정도 아는 사람 많아.
보라 : 그, 그럼 레포트는? (레포트 흔들며) 교수님 말로는 이렇게 훌륭한 레포트 처음이라던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태웅 : 그, 그거? 그거는... 베꼈지.
보라 : 뭐?! 베껴?!
태웅 : 수학 학회지. 도서관에서 내가 보던 책, 생각안나? 그거 베낀거야.
보라 : (한심하다는 듯 보는데)
태웅 : (태연하게 보는 표정)
63. 도서관 서가 일각 (낮)
보라와 태웅이 수학 학회지를 뒤적이고 있다.
보라 : (짜증난) 야, 니가 베껴놓고도 어디서 베낀 건지 모르겠단 말야?
태웅 : 어... (괜히 눈치보며) 미안해서 어쩌냐... 못찾겠는데...?
보라 : (씩씩대며 노려본다)
태웅 : 아, 알았어. 찾는 데까진 찾아볼게. (하며 뒤적이는)
보라 : 아씨, 다음시간 발표는 어떡하지?
보라, 투덜대며 학회지를 막 뒤지는데 태웅,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보라를 본다.
그러다 문득 북트럭을 보고 어? 하는 표정이 되는 태웅.
보라, 학회지 문득 열심히 뒤지다가 보면 북트럭에서 다른 책을 보고 있는 태웅.
보라 : 야! 안 찾고 뭐해?
하며 보는데 눈의 여왕을 들고 있는 태웅.
보라, 멈칫 놀란다.
태웅 : (힐끗 보라 돌아보며) 이 책 읽어본 적 있니?
보라 : (굳어서 끄덕)
태웅 : 그럼... 너 눈의 여왕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
보라 : (멍하게) ...라플란드.
태웅 : 어? 아네? 이거 아는 사람 거의 없는데...?
보라 : (설마.. 아니겠지만) 넌...? 너는 어떻게 알아?
태웅 : 나는...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때 가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난 여자애가 가르쳐줬어.
보라 : (눈커지며) 뭐...?
태웅 : 그앤 라플란드에 가보고 싶어 했었어. 그곳에 가면 왠지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엄마가 돌아가신 애였거든.
(보라보며) 보라 너처럼.
보라 :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인데)
태웅 : (책 보며) 라플란드엔 눈의 여왕의 궁전이 있단다. 그곳은 일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덮여있지.
자유와 행복이 있는 멋진 땅이야... (보라 보며 조용히 웃는) 그애가 말해줬어. 라플란드.. 그곳에 눈의 여왕이 살고 있다고.
멍하게 태웅을 바라보는 보라의 표정에서 4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