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그러므로 우리가 자비를 받은 것과 같이 이 직분을 받았으니 우리는 낙심치 아니하노라.
오히려 감추어진 수치스러운 일들을 버리고 교활함 가운데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되이 다루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각 사람의 양심에 추천하노라.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주이신 것과 우리 자신이 예수를 위하여 너희의 종인 것을 전파하노라.
이는 어두움 속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비추셨기 때문이라.
그러나 우리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그 능력의 탁월하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님이라.
고린도후서 4장 1절 ~ 7절
1. 우리가 자비를 받은 것과 같이 받은 이 직분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이 직분은 새 언약의 능력 있는 일꾼입니다.
새 언약이란 옛 언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과 부활로 이루어진 새로운 언약입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두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즉 새 언약이 나오면 옛 언약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법도 새로운 법이 나오면 과거의 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맺은 새 언약은 요한복음 3장으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O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같이 인자도 그렇게 들려올려져야만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니라.
O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4절 15절 16절
위의 새 언약으로 유대인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옛 언약이 소멸된 것이며,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옛 언약도 소멸된 것입니다. 새 언약으로 옛 언약이 소멸되었으나 새 언약이 옛 언약을 본질로 포함하기 때문에 옛 언약을 대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방법이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새 언약의 일꾼은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바르게 알려서 그들이 듣지 못하여 믿지 못함이 없도록 하는 역할 입니다.
옛 언약이 형식의 언약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새 언약은 본질의 언약으로 형식보다 위에 있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새 언약은 그런 부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 고 말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 고 하시더라.
요한복음 3장 5절 6절 7절 8절
새 언약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며, 또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것이 본질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네게는 믿음이 있으나 내게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그러면 내가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오 허황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 2장 18절 19절 20절
믿음은 이렇게 살아있는 믿음이 있고 죽은 믿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들이 나중 되리라.
이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적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
마태복음 20장 16절
새 언약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 있어야 하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며, 살아있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하며 또한 택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새 언약도 쉽고 자유로운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로 보면 구원은 (살아있는) 믿음으로 느껴집니다.
믿음은 그냥 믿는다는 것이 아닌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본질로의 믿음은 거듭남이며, 그것은 곧 택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라는 속성을 가졌으므로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되었을 때가 청함이라면 복음으로 나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 거듭남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질로 믿음을 갖는 것으로 구원받음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그 새 언약도 쉽지는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옛 언약의 모든 것들은 새 언약으로 모두 흡수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새 언약의 직분입니다. 그것은 영의 직분이며, 의의 직분이고 살리는 영입니다.
2. 위 말씀에 나오는 이 세상의 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하여
진리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조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저는 그러한 이 세상의 신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한 셈이 됩니다.
이 세상의 신이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은혜로 이 세상의 신의 거짓된 계략에 속지말고 그를 이기고 하나님안의 빛으로 들어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에베소서 2장 2절 3절
위의 말씀으로 보면 이 세상의 신이나 공중 권세의 통치자는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존재로 보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통로는 불순종의 자녀들안에서 역사를 통하여 공격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자녀들이 그 안에 역사하는 영의 명령에 따라 우리를 유혹하거나 핍박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우리를 핍박하는 존재는 이 세상의 신이나 공중 권세의 통치자가 아닌 그것들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조종하는 권세를 가진 존재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주인을 자신이 되고자 하여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실상 자신의 주인 자리에 자기가 있지도 못하고
이 세상의 신과 공중 권세의 통치자 아래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신과 공중 권세의 통치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주인된 것으로 착각하게 한 후에 그들의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조종을 받는 것을 알지 못한채 악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종노릇한 그 사람들은 이 세상의 신과 공중 권세의 통치자에게 솟아서 복종하다가 그들이 가는 곳에 결국은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지옥입니다.
즉 이 세상의 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속여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도록 그들의 욕심과 이기심을 부추기고 그들의 마음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계속 조종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며, 어둠가운데 있는 자들은 빛을 두려워하며 피하고 어둠속에 계속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죄라. 즉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빛보다는 오히려 어두움을 더 사랑하니
이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혹 자기의 행위가 책망받을까 함이라.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하나님 안에서 행한 자기의 행위를 나타내고자 함이라." 고 하시더라.
요한복음 3장 19절 20절 21절
3. 우리가 왜 질그릇인지와 그것에 담긴 보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질그릇입니다. 우리가 왜 질그릇인지는 그것은 만드신 이에 뜻일뿐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모두가 다 동일하게 질그릇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그릇도 아니고 못한 그릇도 없습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로마서 9장 21절
그런데 질그릇은 같으나 그 안에 담기는 것에 따라 질그릇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똑같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무엇이 담기냐에 따라 그 그릇의 용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그릇에는 귀한 보석을 담고 어떤 그릇은 쓰레기를 담았다면 그릇은 같지만 그 쓰임새는 내용물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앞에서 평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우리 안에 복음이라는 말씀이라는 보석이 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그런 그릇에서 가장 가치있는 그릇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금덩이 보다도,
최고의 건강과 아름다운 외모보다도,
최고의 권세 명예보다 더 귀하고 귀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를 믿고 따라가는 사람이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움이 담긴 사람그릇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