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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각의
생사해탈을 위한 모든 수행인의 마음가짐(學佛通途)
인광대사 지음
묘림법사 편집
대선 옮김
1. 생출리심(生出離心) –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려는 마음을 내야함
생사 역시 큰일이니, 슬프지 아니한가.
생사가 비통한 일이 됨을 알았다면 따라서 생사 마치는 법을 구해야 됨이니, 곧 비통함을 즐거움으로 전환해야 될 것이오.
만일 생사를 요달하는 법을 구하지 않으면 도로 태어나 슬픔을 느끼니 무슨 이익이 있겠소. 대장부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일마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것이 없다오. 유독히 생사 일대사에는 도리어 많은 이들이 묻지 않고 방치하오. 명을 다하게되면 줄곧 기다렸다가 과보를 받으니 곧 업에 따라서 과보를 받게 되니 이 일념 심식(영혼)이 또한 어느길(육도)을 향하여 가는 가운데 생을 받는지 모른다오. 인천은 나그네가 잠시 머무는 곳이니 삼도가 고향이 된다오. 삼도의 한번 과보가 백천겁이니, 다시 인천에 태어날 기약이 없소.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데 곧 생사를 마치는 법을 급히 추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오.1)
'고인이 이르기를, 죽고 태어나는 일이 역시 크도다 어찌 비통하지 아니한가? 삼가 말씀드리면 비록 슬프더라도 그 이유를 몰라 구하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모름지기 일체 중생은 업에 따라서 유전하는 것이니 육도에 태어남을 받게 됨을 알아야 하오. 태어나도 온 곳을 모르고, 죽어도 가는 곳을 모르오. 죄와 복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르고 내리는 것이며 전전하며(바뀌어 가며) 윤회하는 것이니 끝마칠 때가 없다오.
여래께서 이를 불쌍히 여겨 미혹으로 인해 업을 일으키고 업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는 인연으로부터 적조원융의 본체인 상락아정에 이르기까지 개시하셨소.
무명으로 말미암아 이 몸을 이루고 이러한 색신은 전부 환망(실체가 없는 거짓된)에 속함을 알게 하셨다오.
사대가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게다가 또한 오온이 모두 공하고 이미 오온이 공한 줄 알면 진여법성, 실상보리가 철저히 원만하게 밝아 드러나게 되오.2)
2. 귀의삼보(歸依三寶) - 삼보에 돌아가 의지함
세곳에 돌아간다 함에서 귀자는 歸, 또는 皈라고도 쓰오. 皈(귀)라는 글자는 白(속인)으로부터, 나쁜 것에 물듦으로부터 그 반대(反)의 깨끗함을 취한다는 의미오.
첫째 귀의불
둘째 귀의법
셋째 귀의승
귀라는 것은 던져서 돌아감이오, 의라는 것은 의지하여 맡김의 뜻이오.
사람이 바다에 떨어진 경우 문득 배가 오게 되면 배를 향해 헤엄쳐 가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던져서 돌아감이오, 배에 올라 편안히 앉으니 이것이 기대어 맡김의 뜻이오, 생사가 바다가 되고, 삼보가 배가 되는 것이오.
중생이 귀의함으로 피안에 오를 수 있는 것이오.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니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때까지 천마 외도, 삿된 귀신, 삿된 신령에 귀의하지 않아야 되오.
이미 불법에 귀의하였으니, 불법을 스승으로 삼고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때까지 외도전적에 귀의하지 않아야 되오.
이미 스님에게 귀의하였으니 스님으로 스승을 삼고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때까지 외도 무리들에게 귀의하지 않아야 되오.3)
너희들은 어찌해서 귀의하였는가? 서방극락에 태어나 생사를 완전히 벗어남을 구하고자 하는 외에는 결코 바라는 것이 없어야 될 것이오.
어떠한 단계를 밟아야 극락사토에 도달할 수 있는가?
모름지기 즉 삼보에 귀의해야 하나니, 이른바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이오, 삼보에 귀의해서 여실하게 닦아 지닐 수 있어야 서방에 왕생하여 완전히 생사를 벗어나게 되오.
또한 이른바 삼보에는 자성, 주지 두가지가 있소. 부처는 깨달음을 뜻하오. 자성불이란 곧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망념을 여읜 신령한 지각의 진여불성을 말함이오. 법이란 것은 표준(본보기)을 의미하오. 자성법이란 곧 마음 바탕에 본래 갖추어진 도덕, 어짐(자애), 의리의 아름다운 모범을 말함이오.
스님이란 청정을 의미하오. 자성승이란 곧 마음 바탕에 본래 갖추어진 물들지 않은 청정한 정행을 일컫소.
주지삼보란 것은 석가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가 곧 불보가 되오. 부처님 입멸 후에는 금불, 동불, 석불, 목불, 물감으로 그린 불상 등 모두가 불보가 되오. 부처님이 설한 바 탐욕을 여의는 모든 청정한 법 및 모든 대장경이 다 법보가 되오. 출가하여 물들인 옷을 걸치고 청정한 행을 닦음이 모두 승보가 되오.
귀라는 것은 돌아간다는 것이니, 물이 흘러 바다로 돌아감과 같고 백성이 왕에게 돌아감과 같소. 의라는 것은 의지하여 맡김이니 아들이 모친에게 의지함과 같고, 건너가려면 배에 의지하는 것과 같소. 사람이 생사의 큰 바다에서 만약 자성삼보와 주지삼보에 귀의하지 않으면 곧 생사를 벗어날 방법이 없소. 만약 수긍한다면 지성심을 발하여 삼보께 귀의해야 곧 생사고해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니 생을 마치면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오.
마치 사람이 발을 헛디뎌 바다에 떨어져 미친 파도가 용솟음쳐 죽을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가득차 이러한 위기일발을 당해 생사가 왔다 갔다 할 때 갑자기 배가 다가오니 배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던져서 돌아간다는 의미요, 자성삼보를 앎으로써 자기를 성찰하여 절제하게 되고, 두려워 근신하게 되며 다시 주지삼보 및 시방삼세 일체삼보를 추구하면 악업을 없애고 선근이 증장되어 도업을 판단함을 이루어 영원히 생사윤회를 벗어나게 되오.
구호됨을 만나 배에 올라 편안히 앉아 해안에 도달하면 예전의 험난함은 이미 지나버려 지금은 다시 살아나 축하를 받는 것과 같소. 이로 말미암아 무한한 이익을 얻었으니 이것이 의지하여 맡긴다는 뜻이오. 세상일이 어지럽고 번잡하고, 번뇌가 많아 고통스러우니 이러한 생사바다에 처해서 마땅히 삼보로 배를 삼아야 하리다. 중생이 귀의할 곳을 얻어 노를 젓고 돛을 달아 게으르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면 저절로 피안에 오를 것이오.
만약 이미 삼보에 귀의하고서 외도를 믿고 삿된 마와 귀신을 존경하여 받든다면 비록 날마다 염불을 닦아 놓치지 않더라도 또한 진실한 이익을 얻기는 어렵소. 삿됨과 바름을 분간하지 못하면, 결정코 생사를 마칠 희망은 없소. 그러니 각자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오.4)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일체 중생은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될 수 있다. 비유하면 한장의 흰 종이에 여래를 그리면 여래가 되고, 거지를 그리면 거지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땅히 이를 삼가하여 처음부터 다만 위로는 고독한 부처됨에 다다르지 않아야하고 아래로는 자기의 신령함을 저버림에 이르지 않아야 되오.5)
일체 중생의 일념심성은 곧장 삼세제불과 둘이 아니며 차별도 없소. 다만 깨닫지 못함으로 수용하지 못할 뿐이오. 따라서 [화엄경 여래 출현품]에 이르기를 "일체 중생은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다. 단지 망상 집착으로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 만약 망상을 여의게 되면 일체지, 자연지, 무애지가 현전하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지혜와 망상 집착은 원래 두가지 물건이 아님을 알아야 하오. 이에 미혹하면 곧 전체 지혜가 망상 집착을 이루게 된다오. 이것을 깨달으면 곧 전체 망상과 집착은 지혜를 이루게 된다오. 비유하면 말아 쥐면 주먹이요 펴면 손바닥이니 원래 한 손인 것과 같소. 응결되면 얼음이고 녹으면 풀어지니 원래 하나의 물인 것과 같소. 심체(心體 일념심성)는 변하지 않음을 따르지만 작용은 항상 인연을 따르는 것이오.
체가 불변이기에 범부라 해서 줄어듦이 없고 성인이라서 늘어남이 없으며, 속진에 살아도 물들지 않고 더러운 때를 여의게 되면 생사에 있어 윤회고를 받지 않게 되오. 열반을 증득해도 적멸에 예속되지 않으며 무상(無象)으로 삼라만상의 주(主)로 삼으며, 비법(非法)으로 만법의 종(宗)으로 삼으며, 근본을 쫓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스스로 여여부동하여 범부와 성현이 부처가 되면 조금도 차이가 없다오.
이것을 깨달으면 현인이라 부르며, 이것을 증득하면 성인이라 이름하는 것이오. 만약 단지 결코 조금도 수덕이 없으면 단지 육도윤회하는 범부가 되는 것이라오. 작용(수용)은 인연을 따르는 고로, 즉 사성육범이 있게 되고 괴로움 즐거움 오르고 내림이 다르다오. 따라서 인연은 오염과 깨끗함이 있으며 반드시 그 하나를 따르는 것이오. 오염의 인연을 따르면 즉 미혹을 일으켜 업을 짓고 육도를 윤회하게 되오.
청정함의 인연을 따르게 되면 즉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게 되어 항상 열반에 머무르게 되오. 혹업으로 말미암아 가볍고 무거움이 있게 되고 인, 천, 선도 및 아수라의 선악의 섞임의 길이 있게 되는 것이며, 아울러 축생, 아귀, 지옥의 삼악도가 있게 되는 것이오.
미혹으로 말미암아 미혹을 일으키고, 업으로 말미암아 업을 짓고, 혹은 선 혹은 악, 조금도 결정되어버린 길이 없소.
생명을 받아 이르게 되는 곳을 전전하며 옮기게 됨이 마치 수레 바퀴와 같아 시작과 끝이 없이 문득 올랐다 문득 내렸다 하는 것이오. 이미 번뇌혹을 갖추게 되면 모두 업의 속박을 입게 되고 업에 따라 생명을 받게 되어 스스로 주인 노릇을 못하게 되오. 끊고 증득함에는 깊고 얕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견사혹을 끊는 자는 성문과를 증득한다오. 습기가 남아있는 자는 연각의 과보를 증득하게 되오. 무명을 깨뜨리는 자는 보살의 과보를 증득하게 되오. 만약 무명이 깨끗이 다하면 복혜가 원만하고 수덕의 공력이 지극해지고, 성덕이 온전히 드러나는 자는 곧 불과를 증득하게 되며 또한 철저하게 구경을 증득하지만 범부의 지위에서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의 공덕력을 작용하여 친히 전체를 수용함을 얻지만 실제로는 그 처음에서(본각) 털끝만큼도 더하지는 않는데 불과하오. 만약 성문, 연각, 보살이라면 비록 단지 증득하는 바 높고 낮음이 같지 않지만 모두 성구공덕 전체를 수용하지는 못한다오. 따라서 일체 범부는 도리어 이러한 부사의한 심성의 공덕을 육진경계에서 탐진치를 일으켜 살도음을 지어 삼악도에 떨어져 영겁토록 침륜하게 되니 모두 이것과 비교하면 슬프지 아니하리오.
가령 오계 십선을 닦아 인천의 몸을 얻었다 합시다 하지만 인간의 복락이 타락의 근본이 되는 것이오. 천상이 비록 인간의 맹렬한 번뇌 미혹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천복이 한번 다하면 결정코 밑으로 내려와 태어나게 되오. 쌓인 복이 다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누린다오.
향복(享福)으로 인해 업을 짓게 되오. 이미 업을 지었으니 곧장 순식간에 악도에 떨어지게 되오. 하물며 천명을 마치고 숙세의 악업이 이미 성숙된 힘을 입어 즉시 악도에 떨어지는 자랴 그러므로 고덕께서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바른 생각으로 정업을 수지함이 없으면 오직 인천의 복보를 얻을 뿐이니 이름하여 삼세의 원한이라 하셨소. 법화경에 이르기를 "삼계는 편안한 곳이 없으니, 마치 불타는 집과 같고 여러 고통이 충만하니 매우 두려울만 하다." 좋고 나쁨을 아는 자는 마땅히 급히 벗어남을 구하여 안온함을 꾀해야 제일 좋은 계책이라 할 것이오.6) 일체 중생은 모두 불가사의한 심력을 갖추고 있지만 불력 법력의 가지해 주는 힘이 없으므로 다만 업을 짓게 되고 그것을 받아 쓸 수가 없다오. 단지 불성을 구비했을 뿐 전혀 이익되는 바가 없소. 일단 선지식의 일깨워줌을 듣고는 목숨을 던져 정성을 다해 귀의하게 되면 부처님의 자비로운 서원력과 더불어 감응의 길이 교차되어 부처님의 자비력에 기대어 서방극락에 왕생하게 될 것이오.
되돌아와서 (중생들이) 육도윤회하는 것을 보게되면 위아래 수레바퀴와 같아 불쌍하고 가련함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7)
귀의라는 명칭은 매우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귀의를 실천하여 닦는 것은 지극히 어렵소. 모름지기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의 오계를 지녀야 되오. 아울러 모름지기 마음 속에 허망하게 나타난 탐진치를 제거해야 하오.
수덕과 성덕 속에는 본래 계정혜가 구비되어 있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 선(십선, 육바라밀)을 받들어 행하시오.
진실한 믿음, 간절한 원, 성실하게 염불하여 서방극락에 왕생함을 구해야 하오.
위로는 부모님께 권하고 중간에는 형제에게 권하며, 아래로는 처자, 비복에게 권하여 같이 정토업을 닦아야 하오.
이와 같이 하면 곧 이것이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자기와 남의 도덕(도리)을 세우는 것이니 항상 생활하는 가운데 인간의 도리를 지키면서 행해야 되오. 그러한 공덕 이익을 무엇으로 칭량할 수 있으리오.8)
3. 심신인과(深信因果) - 인과를 깊이 믿음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은 모두 인과 밖을 벗어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는 아득히 멀어져 (잠시도) 머무르지 못함을 뜻하오. 즉, 선인선과를 버리고 악인악과를 취하게 되오. 인과를 믿음으로써 부들부들 떨며 조심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여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 하여 이에 그 덕을 기르게 된다오. 인과를 믿지 않게 되면 성격이 괴팍하여 삿됨이 많고 천명도 절대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인의 말씀을 감히 업신여기며 방자하여 거리낌 없이 행동하게 되오.
따라서 '서경'에 이르길, '선업을 지으면 여러가지 상서로움을 내리고, 악업을 지으면 여러가지 재앙을 내린다고 했소. '주역'에 이르길, '선근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자손에 미치는) 조상의 은덕이 있고, 악업을 쌓으면 반드시 자손에 미치는 재앙이 있다.' 하였소.
집안의 흥망성쇠, 나라의 다스림과 혼란은 이것으로 인하여 발생하지 않음이 없다오. 그러므로 공자께서 "사람이 밝은 덕을 밝히고자 할진대 격물을 근본으로 삼으라." 하셨소. 물이 무엇인가, 즉 자기의 청정한 마음의 이치에 맞지 않는 사사로운 욕심이오. 격이 무엇이냐, 용감한 대장부가 적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 (적들이) 멀리 도망침을 기약할 수 있는 것과 같소. 자기 마음의 사욕을 제거하면 본래 갖추고 있는 바른 지견이 저절로 드러난다오. 옳고 그름이 원만하게 모두 명료해진다오. 뜻은 정성스럽고 마음은 곧게하여 몸을 수양하는것이오. 그러한즉 격물 한가지 일은 곧 밝은 덕을 밝히는 근본이되는 것이오. 이미 사욕을 일으키는 내용을 버렸으면 이치에 맞지 않는 삿된 지견과 그릇된 견해를 끊어 없애야 되오.
이로 말미암아 닦아 나가지만 마친 것은 아니오. 성현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하면 하고자 하여도 얻지 못하게 되오. 애석하게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살피지 못하니 솔직하게 나의 지식을 전부 밀쳐내고 천하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치밀하게 연구해야 알게 될 것이오. 이것은 지말로 근본을 삼는 것이며, 근본으로써 지말을 삼는 것이니 손실이 크다 할 것이오. 단지 성인도 생각을 이기지 못하면 미치광이가 되고, 단지 미치광이도 생각을 이기면 성인이 되는 것이오. 최초 일보는 다만 사욕을 버릴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소. 사욕을 버릴 수 있으면 높은 성현의 영역에 오를 수 있소. 사욕을 버리지 못하면 어쩌면 금수의 무리에 들어갈 수도 있소. 부처를 배우는 사람은 계정혜를 닦아 탐진치를 끊고 또한 격물의 뜻을 치밀하게 알아야 될 것이오. 반드시 인륜을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하며, 삿됨을 막고 정성을 간직하며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세간의 선행을 닦아야 할 것이오. 또한 만덕홍명인 아미타불로 일상칭념해야 하오. 오래오래 지속되면 불성과 서로 합해질것이오. 스스로 성현과 동류가 되어 여래의 경계에 몰입될 것이외다.9) 세인은 인과를 몰라 통상 말하기를 , 사람이 죽은 후엔 완전히 벗어나 선악의 과보가 없다고 하니, 이것은 가장 그릇된 천하후세의 삿된 견해가 되오. 모름지기 사람이 죽은 후 신식은 없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하오. 사람마다 신식이 없어지지 않음을 안다면 즐거이 선업을 쌓게 될 것이오. 만약 신식의 불멸함을 모른다면, 임의대로 욕심을 부려 부모를 살해하기도 하고, 가지가지 죄악이 이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오. 이러한 종류의 지극히 악하고 윤리를 거스르는 행위를 짓게 되는 것은 모두 단멸사견(斷滅邪見)으로 빚어진 결과라오. 사람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여러가지 선업을 받들어 행할 수 있으면 천하가 태평하고 인민이 편안하고 즐거워할 것 이외다. 또 사람의 신심은 모름지기 어렸을 때 배양해야 하오. 무릇 부모된 자는, 그 자녀들이 어릴 때 마땅히 인과보응의 이치와 윤리를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하는 도리를 가르쳐야 할 것이오. 만약 성장하여 커지기를 기다리면, 습성이 이미 성숙되어 힘을 쓸 수 없게 되오.10)
도덕인의(道德仁義)는 곧 우리들이 본디 갖추고 있는 성덕(性德)이오. 인과보응은 진실로 천지가 만물을 양육하는 큰 권리라오. 사람이 천지간에 태어나서 이와 같이 칠척의 작은 체구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광대하고 높고 두터운 측량하지 못하는 천지와 더불어 삼이 되니 삼재라 일컫는다오. 그들은 천지의 덕을 우러러 경모하는 주체가 되어 모두 요순이 될 수도 있고, 부처가 될 수도 있어 그러한 양육에 참가하여 돕게 되오. 그러므로 성인은 주역의 건곤의 이(二)쾌의 형상에서 하나는 스스로 강함에 그치지 않고 하늘의 모범이 되고, 하나는 만물을 싣는 두터운 덕으로 땅의 모범이 되어 사람을 가르친다오. 대저 스스로 강함에 그치지 않음은 즉, 삿됨을 막아 정성을 간직하고 자기를 억제하여 예로 돌아가고, 반드시 밝은 덕을 밝힘에 도달하고, 지극한 선(善)에 멈추며, 인간의 욕심을 소멸하고, 자연의 이치를 널리 퍼지게 하여 본래 구족하고 있는 성덕(본각)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되오.
후덕하여 만물을 싣는다 함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만물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를 밀쳐 남에게 미치게 하고, 반드시 충성과 용서를 중심으로 하고, 자비를 행하며 감싸안고 품으며, 만물과 나를 같이보며 참가하여 돕는 천직에만 그치지 말고 반드시 책임을 다해야 하오. 사람마다 각자 정성스런 마음을 취하게 하여, 각자 효도와 공경을 다하여 각자 자비와 선업을 행하고, 고아 홀아비 과부를 불쌍히 여겨 돕고, 재난을 구제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 돕고, 살생을 경계하고 생물을 놓아주며, 채식을 먹으며 염불해야 하리다. 사람이 선업으로 감동시키면 하늘이 복으로 응답할 것이오.
자연히 비바람이 순조롭고 백성은 편안하고 물자는 풍부하리다. 평상시 비가 와서 가뭄이 들지 않고, 결코 급성 전염병이나 황해를 입지 않으며, 태풍 지진등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오. 계절은 온화하여 풍년이 들고 사람은 그 직업에 즐거워할 것이오. 더하여 사랑 화목 인자 양보를 서로 익혀서 미풍양속을 이루어야 할 것이외다. 가령, 한 둘 우매하고 완고한 자가 있어도 역시 감화되어 선량한 사람이 될 것이오.11)
생각을 억제하고 관찰하여 살피고 반성하는 공능이 없음으로해서 밝은 덕은 미혹된 허망한 사리사욕에 가리워지게 되어, 드러내지 못하고 수용할 수 없게 되오. 장차 이것을 밝히는 법은 생각을 억제하는데 있소. 극념의 공부 순서는 몸을 닦는데 있고, 바른 마음, 정성을 간직한 생각, 치밀하게 앎, 사리사욕을 버림이오.
물(物)이 무엇인가 하면, 경계에 따라 생기는 바가 자연의 도리에 맞지 않고, 인정(人情)을 따르지 않는 미혹된 허망한 사리사욕이며, 외부의 사물을 말함이 아니오. 이렇게 사욕이 단단히 맺어진 마음으로 인해 모든 지견이 모두 사욕에 따라 치우쳐 삿됨을 이루게 된다오.12)
세상은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또한 결과 없는 원인이 없소. 마치 오이 심은데 오이 나고, 콩 심은데 콩을 얻는 것과 같다 하겠소. 소리에 화답하여 메아리가 따르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가 단정한 것과 같소.13) 고락길흉의 법칙은 모두 자기의 죄와 복으로 감응하는 바이며,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니며, 이로써 군자는 이에 그 덕을 닦으며, 진실한 위치(본래의 위치)에서 행하며,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남을 탓하지 않는다오.
이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 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 한다.' 하였소. 인을 두려워 하게 되면, 곧 계•정•혜(삼학)로 그 마음을 통제하여 조복받으면, 탐진치 생각을 내려 하여도 쫓아서 일어나는 곳이 없고, 그 머무르고 있는 마음을 움직여 말하고 행동하는 바가 육도만행 아닌 것이 없으며 남을 이롭게 하고, 재물로 구제하는 보살도 및 그러한 최고의 공덕을 쌓아 순숙해지면 복과 지혜 두 가지가 구족하여 철저하게 자기의 본래 마음을 증득하게 되어 원만하게 불도를 이룰 것이오.14)
4. 발보리심(發菩提心) - 무상보리심을 발함
무릇 정토업을 닦는다 함은 제일 첫 번째가 반드시 엄격하게 청정계율을 지님이요, 둘째 반드시 보리심을 발해야 됨이요, 셋째 반드시 진실한 믿음과 발원을 갖추어야 되는 것이오. 계율은 모든 불법의 기초가 되며, 보리심이 도를 닦는데 주도하는 스승이 됨이며, 신원이 왕생을 앞에서 인도함이 되는 것이오.15)
염불할 때 간절하지 못함은 사바가 고통이고 극락이 즐거움 뿐이란 걸 모르기 때문이라오. 사람 몸 얻기 어렵고, 중국에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고, 정토법문 만나기 거듭 어렵다고 이렇게 생각해 보시오, 만약 일심으로 염불하지 못하다가 한 숨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 숙생과 금생 중 가장 무거운 악업을 따르게 되어 있고 삼도악도에 떨어져 만겁 동안 고통을 받아 결코 나올 기약이 없는것이오. 이와같이 다만 지옥고를 생각한다면 보리심을 발하게 될 것이오. 보리심이란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뜻하오. 이러한 마음을 한 번 일으키는 것은 마치 기계에 전기를 통하는 것과 같고 약에 유황을 더하는 것 같아 그 효력이 매우 커지고 또한 신속한 거와 같소. 그것이 업장을 소멸시키고, 복과, 지혜를 증장시키며, 평상시 복덕 선근으로 능히 비유할 바가 못된다오.16)
일상생활 가운데 한오리 한터럭 만한 선행 및 송경 예배 가지가지 선근 모든 이러한 공덕을 왕생에 원만 회향하시오. 이와 같이 하면 일체 행문이 모두 정토조행이 되는 것이오.
마치 여러 티끌이 모이면 대지를 이루고, 여러 물줄기가 모이면, 바다를 이루어 광대하고 매우 깊으니 그 누가 다할 수 있으리오.
모름지기 무상보리심을 발하여 맹세코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을 세워야하오.
지닌 모든 공덕을 널리 네가지 은혜를 베푼 삼계와 법계 중생에게 회향해야 되오. 바로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고 싹에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하겠소.
이미 일체 중생과 더불어 깊이 법연을 맺었으니 속히 자기가 대승의 뛰어난 행을 성취해야 될 것이외다. 만약 이러한 깊은 뜻을 모르면, 곧 범부 이승의 자기만을 이익되는 견해가 되어 비록 묘행을 닦는다 하더라도 감응의 결과는 저열하게 된다오.17)
염불 법문은 신원행 삼법으로 종을 삼소. 무상 보리심으로 근본을 삼고, 이 마음으로 부처가 되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 원인이 과보의 바다를 갖추고 과보가 원인의 근원을 관통함이 진실한 의미이며, 육근을 모두 거두어 청정 염불이 서로 이어지게끔 함이 손쉽고 가장 절묘한 요점이 되는 공부라오. 이로 말미암아 행을 일으키고, 다시 사홍서원으로 항상 마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면, 마음과 부처가 합해지고, 마음과 도가 합해질 것이오.
현생에 곧 성인의 무리에 흘러 들어가고, 임종에 곧바로 상품에 오르게 되오. 이생에 무거운 짐을 거의 벗어버리게 되리다.18) 염불하는 마음이 하나로 돌아가지 못함은 생사심이 간절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소. 만약 끓는 물에 담가지고 불에 태워진다면 구원을 바라는 생각 밖에 없을 것이오. 또는 장차 죽게되어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시오. 즉시 마음이 저절로 하나로 돌아가 모름지기 달리 묘법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따라서 경 가운데 여러 곳에서 이르시길, "지옥 고통을 생각하여 보리심을 발하라." 이것은 대각 세존의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법문이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진실한 견해를 긍정하지 못하는구려.
지옥의 고통을 물불의 참상에 비하면, 심하기가 무량무변하다오.끓는 물을 붓고 불에 데워지는 생각을 하면 두려워하지만 지옥을 생각함은 대강대강하는 듯하오.
하나는 곧 사람 마음의 인내력이 작아서 그 고통의 일을 다 상세히 할 수 없음이라오. 하나는 곧 몸소 눈으로 보아 알 수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하게 되는 것이라오.19) 비록 염불이 숙업을 소멸시킬 수 있다 말하지만, 모름지기 대참괴심을 내야 되고 대포외(큰 두려움)심을 내야 되오.
중생이 남에게 손해를 주고 자기를 이롭게 하는 마음을 바꾸어 보살의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는 행을 실천해야 하오. 그러면 숙업이든지 현업이든지 모두 이러한 대보리심 가운데 불호광명(佛號光明)을 입게 되어 이것들을 소멸시켜 청정해질 것이오.
만일 전생 및 과거에 일찌기 대업을 지었다면 지금 비록 악을 그치고 힘써 여러가지 선업을 닦지 않으며, 다만 대충 대충 염불한다면 공덕이 허물을 상대하여 대적하지 못하다가 공고해지면 면하기 어렵거나 악의 과보를 당하게 되오. 염불의 공덕이 헛되이 버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리심을 발하지 못하여 특히 악업이 광대하여 상대하여 덮을 수가 없소.
만일 보리심을 발할 수 있다면, 마치 밝은 태양이 공중에서 서리와 이슬을 즉시 녹이는 것과 같다고 하겠소. 세상 사람은 반 평생을 악업을 짓는 일이 많으며 한참 후에 고치고 참회하기 일쑤라오. 완전히 악의 과보를 없애지 못함으로 인해 드디어 불법은 영험하지 않으며, 수지해 봤자 이익이 없다라고 말하게 된다오.20)
범부가 수행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남을 이롭게 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겠다는 대보리심을 발해야 될 것이오. 남과 만물에 이익을 주는 그러한 일은 힘써 해야 되고 권면하여 이것을 하게끔 해야 될 것이오. 하지 못하는 자라도 반드시 이러한 마음을 항상 간직하도록 해야 될 것이오. 굳어지면 대승을 발원하는마음과 더불어 서로 위배되지 않게 된다오.21) 대승보살의 마음은 큰 허공 과 같아 포괄(포함)하지 못하는 것이 없소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고 가지가지 방편을 지어 먼저 계략으로 끌고자 하고 후에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여 범부의 지견으로 망령되이 헤아리지 못하게 함이라오.
그들이 이미 무생인을 증득함으로써 결코 나와 남이 없다는 도리를 얻게 되는 것이오.
오로지 일체 중생을 섭수하여 여래의 큰 깨달음의 법해(法海)에 들어가게 하고자 할 뿐이라오.
만일 계산하여 비교하게 되면 문득 감정의 견해에 속하게 되며 문득 나와 남이 없는 도리와는 계합할 수 없는 것이오. 참으로 머리 눈 골수도 보시하게 되는 것이오.22)
근래에 북경에 사는 널리 불법을 공부했지만 안으론 힘이 부족한 해염서울여 거사가 일종의 항문이 빠지는 병을 얻었는데 이미 2년이 지났다 하오. 매 대변 후에는 반드시 잠시 눕기를 기다렸다가 스스로 나온 것을 들어올려 집어 넣고서야 바야흐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오. 민국 8년 정월에 대변 후 중요한 일이 있어 바삐 서둘러 차를 타려고 문을 나서다 고통을 느낌으로 인해 드디어 영원히 들어올려 집어 넣지 못했다오. 7 주야를 침 찌르는 듯 고통을 받았는데 잠시도 멈춤이 없었다 하오. 7 주야를 눈을 붙이지 못했다는구려. 우선 비록 염불했지만 역시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하오. 결국 대보리심을 발하여 말하기를 "이 병의 극심한 고통 제가 다 받기를 원하고 세상사람 모두 이 병에 걸리지 말기를 원합니다." 드디어 지성으로 염불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병이 나았고 이로부터 병근이 뽑아졌다는구려. 거사가 서신을 보내와 언급했소. 이 병은 곧 숙업에 해당되며 귀하께서 대보리심을 발하므로 말미암아 이 숙업이 소멸되고 따라서 병의 뿌리가 뽑혀진것이라고 말해줬소.23)
5. 엄지정계(嚴持淨戒) - 청정계율을 엄격히 지킴
불법의 광대함은 법계와 같고, 구경에 이르면 허공과 같소. 그 요체를 말하게 되면 오직 계정혜 삼법일 뿐이오. 그렇지만 이러한 삼법은 서로 돕고 융합하는 것이지 독립을 허용치 않소. 따라서 처음 발심한 자가 도에 들려면, 계를 지키는 한 가지 일에 더욱 힘써야 되는 것이오. 능엄경에 이르길 "마음을 거둠을 계로 삼는 고로 계로 인하여 선정을 내고, 선정으로 인하여 지혜을 개발하게 되나니 이것이 바로 삼무루학이라 이름한다." 하였소.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께서 최초 정각을 이루시고 곧 범망경 보살계를 설하셨소. 일체 보살, 아울러 범석제천, 왕, 대신, 거사, 서자, 승이거나 속인이거나, 창녀, 배우, 노비, 삼도 악도 일체 중생에 이르기까지 같이 모두 받아지니게 했소. 이것으로 이 계가 곧 여래께서 성인을 단련하고 범부를 삶는 큰 대장간의 용광로임을 알 것이오.
육도 중생이 비록 존비귀천이 있지만 여러가지로 같지 않소. 그러나 일념심성은 오히려 삼세제불과 더불어 둘도 아니고 차별도 없다오. 단지 숙세선악업이 각기 다름으로 말미암아, 금생 과보로 하여금 같지 않음에 이른 것이라오. 여래께서 근본자취를 자세히 살피시고 널리 권하여 받아지니게 하신 것이오. 만일 가르침에 의지하여 봉행하게 되면 숙세 악업이 몰록 소멸될 것이오. 현생에 복혜가 속히 원만해질 것이외다. 처음에 허망함이 없어져 참됨이 드러나고, 다음엔 오직 참 성품만 있고 허망함은 결코 없다오. 스스로 본래 마음을 회복하게 되며, 친히 진여 묘성을 증득하게 되오. 그런고로 이르시기를 "중생이 부처님의 계를 받게 되면, 제불의 지위에 들어가게 되니라. 지위가 대각과 같게 되나니, 참으로 이것이 제불의 자식이니라. 또한 너희들은 당래 부처를 이루게 되며, 나는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항상 이와같이 믿게되면, 계품은 이미 구족하였느니라." 이것이 여래께서 일체 중생을 위해 금구로 보장하고 담당하신 바 되니 믿지 아니하리오. 틀림없이 정토에 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히 해야 되오. 그 마음의 청정함에 따라 불토도 청정해진다오. 그 마음을 청정히 하고자 한다면 부처님의 청정계율을 지니지 않으면 안되오. 계율을 지니게 되면 탐진치심이 일어나지 않게 되며 계정혜 삼학이 철저하게 원만히 드러날 것이오.
현생에는 항하사 같은 공덕 무량한 묘의(妙義)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되고, 현재 마음 속에 갖추게 되오. 이른 바 계를 법계로 삼으면 일체법이 계를 향해 나아가며, 이렇게 취향함을 초과하는 법은 없소. 게다가 또한 진실한 믿음 간절한 원, 아미타불의 만덕홍명을 집지(執持)함을 더한다 합시다. 염불하는 마음과 염불을 받는 부처가 서로 그윽히 서로 계합하게 되어 현생에 굳어지면 마음과 부처가 둘 아니며, 임종에 정토에 나지 않으면 장차 어디에 태어나겠소? 설령 근기가 열악해서 이와 같을 수는 없더라도 불계를 엄격히 지니는 청정한 신심(身心)으로 참으로 생사를 위해 보리심을 발하고, 깊은 믿음과 발원으로 부처님 명호를 지녀야 하오.
임종에 다달아 감응의 길이 교차하여 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서방에 왕생하게 될 것이오. 즉 업장을 띤채 왕생케 하여 견고해지면 영원히 윤회를 벗어나 삼계를 높이 초월하게 될 것이오.
종종 아미타불의 직접 가르침을 받아 저절로 속히 법신을 증득하게 된다오. 하물며 이미 업이 다하고 감정이 텅빈 자이랴. 혹시 스스로 고명(高明)하다고 뽐내고 계율을 경시하면서, 정토에 이르러서는 말하기를, 자성이 청정하거늘 무슨 선악지범(善惡持犯) 자타정예(自他淨秽)가 있는가? 다만 때묻지 않은 순수한 즉 여여함이 부처와 같다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오. 이로부터 입으로는 공(空)을 말하지만 유를 행한다오. 그 말하는 걸 들어보면 구천(九天) 위를 오를 듯하오. 그 행(行)을 살피면 비루하기가 구지(九地)에 들어갈 듯 하다오. 살아서는 정법문중을 망치는 종자가 되고, 죽어서는 지옥의 주인이 될 것이오. 저 대업왕생자와 비교하면, 그 불운과 행운이 하늘과 땅 차이니 비유로도 부족하다오. 하물며 위에서 언급한 자이겠는가?
장차 현생에 직접 진실한 이익을 얻고, 임종에 결정코 왕생하고자 하는 자는 부탁컨데 지계 염불로 진실하게 수행해 나감으로써, 저절로 바라는 바를 얻게 되리다.24)
가장 중요한 말이 계율을 지님이고, 또한 먼저 계를 간략히 말씀하신 부처님의 두 구절을 지켜야 되오. 그러한 계율은 단지 무엇이냐면 가로되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 선(善)을 받들어 행하라." 이 두 구절이 일체계법을 망라하며, 남겨 놓은 것은 결코 없소.25)
오계라 함은
1. 살생하지 말라.
2. 도둑질하지 말라.
3. 사음하지 말라.
4. 거짓말하지 말라.
5. 술 마시지 말라.
첫째 살생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살려주면 좋아하고 죽이면 싫어하니, 동물과 내가 다 그렇소. 내가 이미 삶에 애착하거는 동물들이 어찌 죽기를 원하리오? 이로 말미암아 이것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것을 죽이겠소. 일체 중생은 육도윤회한다오. 선악업에 따라 오르고 내리고 뛰어넘고 가라앉소. 나와 그들이 다겁을 지내는 가운데 상호간에 부모가 되기도 하고 자녀가 되기도 하였소. 마땅히 건져내어 제도해주기를 생각해야 하거늘 어찌 차마 죽인다 말이오.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고 미래생에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오. 내가 만약 (악도에) 떨어진다면 또한 건져 제도해주기를 바랄 것이오. 또 이미 살생업을 지었다면 반드시 악도에 떨어질 것이오. 숙세의 빚을 갚으면서 번갈아가며 서로 죽이며 끝마칠 기약이 없을 것이오. 이로 말미암아 이것을 생각하면 어찌 감히 죽이겠소. 그렇지만 살생하는 이유는 고기를 먹는데서 비롯되오. 만일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인연을 알았다면 저절로 감히 고기를 먹진 못할 것이오. 또한 어리석은 사람은 고기가 맛있다고 말하니 이것은 본래 정혈로 이루어진 바를 모르기 때문이오. 안으로는 똥오줌이 가득차고 밖으로는 똥과 더러움이 섞여 있소. 비릿내와 노릿내, 더러운 냄새가 나는데 어디로부터 맛있다고 하는 것이오. 항상 부정관(不淨觀)을 짓게되면 이것을 먹더라도 마땅히 토해내게 될 것이오. 또한 살아있는 것은 사람과 금수, 구더기, 벌레, 물고기, 두꺼비, 모기 등에 벼룩이를 말하고, 무릇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이렇소.
큰 것은 죽이면 안되고 작은 것은 죽여도 된다고 말해선 안되오. 불경에 널리 계살 방생의 공덕이익을 설해 놓았으나, 세속사람은 얻어서 읽지 못할 것이오. 마땅히 안사선생의 만선선자(萬善先資)를 보면 그것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게 될 것이오.
둘째, 훔치지 말라는 것은 즉 이것을 보고 생각을 하는데 주지 않으면 취하지 않는 것이오. 이 일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곧 범하지 않을 것이오. 대성대현(大聖大賢)이 아닌 바에야, 모두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어째서인가 공적인 명분으로 사리를 채우고, 남을 이기어 자기를 이익되게하고, 세력으로 재물을 취하고, 계략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남의 부귀를 시기하고, 남이 가난해지길 원하며, 선(善)이라는 명분으로 떳떳하게 취하며, 모든 선사(善事)를 만나더라도 마음에 진실성 있게 인식하지 않고, 혹은 의숙을 설립하는데 엄한 스승을 택하지 않아 남의 자제를 그르치기고 하며, 의약을 처방하는데 진위를 분별하지 않아 남의 성품, 생명에 해를 끼치기도 하며, 무릇 위급한 난을 보고도 무관심하여 속히 구제할려하지 않으며, 완만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혹은 일을 그르치기도 하며, 다만 일을 맡아 남의 재물을 함부로 낭비하면서도 심중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대강대강 해넘기며 마치기도 하니 이와같은 부류를 모두(도둑질)이라 이름한다오.
셋째, 사음하지 말라는 것은 세속인 남녀가 부부생활하면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데는 위로는 아름다운 풍조를 형성하고 아래로는 제사와 연관되어 있으니 부부관계는 금할 바가 아니오. 다만 서로 공경하며 손님과 같이 대해야 하며 조상의 제사를 잇는 것으로 여겨야만 되오. 쾌락으로 삼아 욕망을 좇아 몸을 망쳐서는 안되오. 비록 이것이 자기의 아내지만 쾌락에 탐닉하면 역시 범한 것이 되니 단지 그 죄가 경미할 뿐이오. 만약 자기의 아내가 아닌데 교합하게 되면 즉 사음이라 하며 그 죄는 지극히 무겁소. 사음하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 짐승 짓을 하는 것이오. 현보를 다하게 되면 먼저 지옥 아귀에 떨어지고 후에 축생도에 태어나게 되오. 천만억겁이 지나도 벗어날 수 없소. 일체 중생은 음욕으로부터 생기는 것이오. 따라서 이 계는 범하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렵다오. 가령 현인 달사라도, 간혹 발을 헛디딜 수 있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사람이랴. 만일 뜻을 세워 닦아 지닐려면 먼저 이해(利害)와 대치방법을 명확히 알아야 하니 바로 독사를 보는 것과 같이 하고 원적을 만난 것과 같이 해야 할 것이오. 무섭고 두려움이 가득차서 음욕심이 저절로 멈출 것이오. 대치방법은 널리 불경에 실려 있지만 속인은 살펴 볼 인연이 없을 것이오. 마땅히 안사선생의 [욕해회광(欲海回狂)]을 보면 그 대강 줄거리를 알 것이외다. 이(利): 범하지 않음으로 얻는 이익을 말함. 해(害): 범하여서 받는 해악, 재앙.
넷째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은, 말을 하면 믿음이 있어서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오. 만일 보고도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삼고, 유로 무를 삼는 등이오. 대체로 마음과 입이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이니 남을 속이고자 하는 것이 모두 여기에 속하오.
또한 만일 자기가 혹(惑)을 끊지 못했으면서 끊었다고 말하며 자기가 도를 얻지 못했으면서 얻었다고 말하면 대망어라 하며 그 죄는 지극히 무겁소. 명을 마친 후 결정코 곧바로 아비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나올 기약이 없소. 지금 수행한다고 하나 불법의 도리를 모르는 자들은 어느 것이나 모두 이렇다오. 마땅히 철저히 이를 경계함이 절대로 필요하오.26) 만약 본 것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며 보지 않았으면서 보았다고 간혹 말하는 것이 곧 망어의 부류요. 얻지 못했으면서 얻었다고 말하고 망령되이 뛰어난 경계를 함부로 말하면 마치 허공에 기대어 누각을 짓는 것과 같나니 곧 대망어계를 범하는 것이 되오. 바로 얻지 못했으면서 얻었다고 말하고,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했다고 말하면 그 죄는 살도음의 백천만억배보다 심하다오. 그러한 사람이 만약 힘써 참회하지 않다가 숨 한번 들어오지 않으면 곧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되오. 그것은 불법을 파괴하고 어지럽혀 중생을 의심케하고 그릇되게 하기 때문이오.27) 이상 네가지 일은 출가자나 재가자 수계 불수계를 막론하고 이를 범하면 모두 죄와 허물이 있소. 체성(體性)이 악이 되기 때문이오.
그렇지만 수계하지 않은 자가 일층의 죄과라면 수계한 자는 이층의 죄과가 되오. 악한 일을 한 죄위에 또 하나의 계율을 범한 죄가 보태지기 때문이오. 만일 지니고 범하지 않으면 공덕이 무량무변하니 모름지기 간절히 이것을 권해야 하오.25)
다섯째 술마시지 말라는 것은 술은 사람 마음을 혼미하게하고 정신을 어지럽히며 지혜 종자를 파괴한다 했소. 이것을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혼미한 미치광이로 전도시켜 망령되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게 되니 고로 부처님께서 계율로 제정하셔 이것을 끊으라고 하셨소. 무릇 수행자는 모두 음주를 허락치 않으신 것이오. 아울러 마늘, 부추, 달래, 파, 양파, 다섯가지 톡쏘는 냄새를 가진 채소는 기운과 맛, 악취 자체가 청결치 못하다 하였소. 익혀서 먹으면 음욕심을 내게하고 생으로먹으면 진심을 증장시킨다오. 무릇 수행자에게는 모두 취식을 불허하오. 그렇지만 이 한가지 일은 미수계자는 음주와 오신채를 먹어도 죄과는 없소. 수계자가 마시고 먹게 되면 한층의 죄와 허물을 짓게 되오. 즉 이것은 부처님이 정한 계율을 범한 죄이기 때문이오. 부처님은 이미 제정하여 금하게 했는데 너희가 또한 범했으니 따라서 죄가 생기게 된 것이오.
십선(十善)이라 함은
1. 살생하지 말라.
2. 훔치지 말라.
3. 사음하지 말라.
4. 거짓말하지 말라.
5. 번지르한말을 하지 말라.
6. 이간질하지 말라.
7. 험한말 하지 말라.
8. 인색하지 말고 탐하지 말라.
9. 화내지 말라.
10. 삿된말 하지 말라.
이 가운데 앞 세 가지를 신업(身業)이라하며 가운데 네 가지를 구업(口業)이라하며 뒤 세 가지를 의업(意業)이라 하오.
업이란 행위를 뜻함이오. 만약 지키고 범하지 않으면 십선이 되오. 만일 범하고 지키지 못하면 곧 십악이 되오. 십악을 상중하로 나누게 되면 천 인 아수라 삼선(三善)의 몸과 감응하게 된다오. 선으로 인하여 선의 과보를 받고, 악의 원인으로 악의 과보를 받게 되오. 결정코 의심할 것 없고, 털끝 만큼도 그르치지 않소. 살도음망은 이미 오계 가운데 설명했소. 기어(綺語)라는 것은 무익하며 공허한 말, 감언이설, 음담패설, 사람들을 삿된 생각이 나게 유도하는 말 등을 말하오. 양설이라는 것은 저사람을 향해 이사람을 말하고 이사람에게 저사람을 말해 시비를 도발하게 하고 쌍방을 모함하게 하는 등이오. 악구라는 것은 언어가 거칠고 흉악함이 마치 칼과 검 같아서 사람의 숨겨져 있는 악함이 꺼리거나 피함없이 드러난 것을 말하오. 또한 남이나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대악구라하며 장래에 마땅히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오. 이미 불계를 받았으면 절대로 이를 범해서는 안될것이오.
간탐이라는것은 자기의 재물을 남에게 베푸는 것을 허락치 않음을 간(慳)이라하며, 남의 재물을 단지 나에게 귀속시키고자함을 탐이라하오.
진애라는 것은 원한과 분노를 말함이오. 남이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 슬퍼하고 화를 내며, 남이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후련하게 생각하며 또한 세력으로 맘 먹은대로 이루며 기세를 과시하며 남과 물건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것 등이오.
사견이라는 것은 선사(善事)를 행하면 복을 짓고 악을 지으면 죄를 얻는다는 걸 믿지 않으며, 인과가 없다고 말하며 사후 세상은 없다고 말함이오. 성인의 말씀을 무시하고 깔보며 불경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등을 일컬음이오. 그래서 이 십선이 반드시 일체 법을 총괄한다오. 만일 따라 행할 수 있다면 끊지 못할 악이 없으며, 닦지 못할 선이 없소. 당신들이 몸소 살피지 못할까 염려되어 지금 대략 한 두개를 들어 보겠소.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되며 어기거나 거역해서는 안되오. 왜곡된 지식은 부드럽게 말씀드려 깨닫게 하여 도에 입문하게끔 권해야 되오. 만일 결단코 따르지 않으시더라도 또한 억지로 핍박하여 효도를 잃어서는 안될 것이오. 다만 불전에 부모를 대신하여 죄과를 참회함이 맞소. 형제 사이엔 우애를 다하고 부부 사이엔 공경을 다해야 하오. 자녀들은 힘을 다해 가르쳐서 어질고 착한 사람이 되게 해야 하오. 절대로 제멋대로 하게하여 거만한 습관을 길러 불량배가 되게 해선 안되오. 마을에선 마땅히 참고 양보하여 화목을 도모하고 선악인과를 설명하여 허물을 고치고 좋은 방향으로 옮기게끔 해야 될 것이오. 친구간에는 신의를 다하고 머슴에겐 자애로운 맘으로 시켜야 하오. 공적인 업무에 있어선 마음에 힘을 다하고 사적인 일도 마찬가지요. 무릇 친히 알고지내는 사람을 보면 부모를 만난듯 상냥하게 말을 하고, 자식을 만난듯 효도를 말해야 하오. 만일 장사를 하게되면 본래 이익을 추구함이 마땅하지만 모조품(불량품)으로 남을 속여선 안되오. 만일 이러한 기풍으로 고향 마을을 교화한다면 문득 재앙과 난리가 싹트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며 형벌이 소용없게 될 것이외다. 가히 재야(민간)에서 충성을 다하고 집안에서 정치를 한다고 이를 만할 것이오.28)
6. 기청정심(起淸淨心) – 청정한 마음을 일으킴
심성이라함은 십법계 일체 성인과 범부, 지옥에 떨어지고 하늘에 나고, 진리를 증득하고 성불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오.
인과라 함은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 성현이 태평하게 천하를 다스리고, 중생을 해탈시키는 큰 권세가 되는 것이오.
그래서 이러한 심성은 사람마다 각자 갖추고 있소. 참된 성품은 항상 고요히 비추고 있으며 묘함이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다오.
다만 미혹으로 인해 깨닫지 못하고 받아쓰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러한 심성의 힘을 입어 미혹을 일으켜 업을 짓고 업으로 말미암아 고취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오. 전전하며 깊이 미혹되어 육도를 윤회하며 미래제가 다하도록 결코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오. 우리들의 석가세존에 이르러 특별히 불쌍한(가련한) 마음을 드리우사 인연 없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일으켜 동체대비심을 운용하시어 상적광토를 여의지 않으시고 세간에 시현하기 위해 나오신 것이오.
치밀하게 청정범행을 닦아 무상정각을 성취하시고 이에 감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기이하도다! 기이하도다! 일체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 덕상을 구비하고 있거늘 단지 망상, 집착으로 인해 증득하지 못하는구나. 만약 망상을 여의기만 한다면 곧 일체지, 자연지, 무애지가 즉시 현전하게 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근기에 따라 설법하시어 윤회를 벗어나게 하시었소. 다만 근기와 도량의 차별로 말미암아 따라서 법에는 정해 놓지 않은 형태로 다스리게 되었소. 혹은 점으로, 혹은 돈으로, 혹은 권(방편)으로, 혹은 실(실상)로, 혹은 현(드러냄)으로 혹은 밀(다라니)로, 혹은 성(체성)으로, 혹은 상(모양)으로.
반드시 이것을 투철하게 깨달음을 기약하는데 있어 범부라해서 줄어들거나 성인이라해서 늘지 않는 것이며 종일 인연을 따르되 종일 불변하는 묘진여성(妙眞如性)이며 원만하게 철저히 증득한 후에야 일대사를 마치는 것이오. 이러한 심성을 근거로 체(體)는 비록 불변하나 용(用)은 항상 인연을 따른다오. 미혹되고 오염된 인연에 따라 두텁고 얇음이 같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여섯갈래 범부의 법계를 이루고, 깨달음의 청정함이 인연을 따라서 얕고 깊음이 각자 다름으로 인해 사성법계를 이루게 되오.
이미 체가 항상 불변함을 알았지만 미혹되어 거슬리고 깨달아 수순함으로 말미암아 상(모습)과 용(작용)이 천양지차로 다르게 되오.
그 누가 미혹되어 오염된 인연을 버리고 깨달아 청정한 인연을 따라 다시 본래 지니고 있는 천진 불성을 회복하여 원만히 위없는 보리도를 이루려고 하지 않겠소. 십법계 하나하나가 인과밖을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을 버리고 즐거움을 얻어 범부를 초월하고 성인에 들어 가고자 할진대 마땅히 신중하게 선택하는 바가 되어야 할 것이오.29)
첫댓글 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