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 랠프 월도 에머슨
도시에서, 잡초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
2014.9.5.
‘잡초’라는 식물은 없다
빌딩 숲에 가려 있어 하늘도 보기 힘들고, 아스팔트 때문에 흙도 잘 보이지 않는 곳. 우리에게 도시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이런 회색빛 공간 속에서도 꿋꿋하게 녹색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존재가 있다. 길가나 가로수 밑, 아스팔트 틈새, 공터 담벼락, 주차장 한구석, 기르고 있는 작은 화분 속. 이런 도시 한구석의 얼마 안 되는 땅을 발견해 악착같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그 작디작은 존재를 우리는 ‘잡초’라 부른다. 자신을 ‘길가 풀 연구가’로 소개하는 저자는 ‘바라지 않는 곳에 자라는 식물’ ‘도움이 되지 않는 훼방꾼’ 취급을 받아온 잡초를 주인공으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도시에서, 잡초》는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잡초’라 불리는 식물의 가치를 도시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일상 속에서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잡초’라는 식물은 없다. 같은 풀이라도 밭에 심은 채소를 잘 자라지 못하게 하면 잡초, 데쳐서 맛있게 무쳐 먹으면 나물, 현관을 장식하기 위해 꽂아둔다면 화초가 된다. 잡초란 결국 식물의 ‘가치’와 관련이 있는 단어다. 발밑으로 잠시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도시라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늠름한 생명체와 조우할 수 있다.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법.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면 도시에 사는 잡초는 더 이상 훼방꾼이 아닌 의미 있는 식물이 될 것이다.
잡초는 밟혀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잡초가 무엇인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잡초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째서 그렇게 잡초는 항상 씩씩하고 늠름한지, 잡초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보통의 식물들이 태양을 향해 위로 줄기를 뻗는 것에 반해, 사람들에게 많이 밟히는 잡초는 옆으로 줄기를 뻗는 전략을 구사한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잡초라고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다. 잡초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밟혀도 일어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심지어 씨앗을 멀리 전파하기 위해 밟히는 것을 적극 이용하기까지 한다. 잡초의 생존 전략을 듣다 보면 ‘역경을 내편으로 만드는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잡초의 인생철학에 감동하게 된다. 아무리 뽑아도 다시 싹을 틔우는 질긴 생명력의 잡초는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져서 더욱 애정이 간다.
도시의 잡초를 발견하고 즐기는 법
잡초라는 친구의 매력은 애써 시간과 돈을 들일 필요도 없고, 애써 만나기 위해 산으로 들로 멀리 나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잡초 관찰을 시작하면 매일 걸어가는 그 길이 아이디어를 낳는 훌륭한 산책 코스가 될 수도 있고,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관찰을 시작하다보면 의외로 빌딩 옥상, 아무것도 심지 않은 화분, 아스팔트 틈 같은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도 잡초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저자는 도쿄, 나고야, 오사카의 역사 속에서 잡초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도 들려준다. 알고 보면 잡초는 친숙한 지명, 우리의 식탁, 자주 부르던 동요 등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읽으면서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의 잡초와 관련한 기억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제비꽃, 쑥, 서양민들레, 강아지풀, 토끼풀 등 도시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친근한 잡초 12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 책을 덮을 때쯤이면 모르고 있었던 잡초의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시선이 발밑으로 향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