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변신은 무죄
옷장을 열면 가끔 낯선 내가 기다리고 있다. 늘 손이 가던 무채색 옷 사이에서 유난히 환한 노란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평소라면 잠시 바라보다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은 마음이 먼저 손을 뻗는다. ‘오늘은 한번 입어 볼까.’ 옷 한 벌을 갈아입었을 뿐인데 거울 속 사람이 달라 보인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입가에는 이유 없는 미소가 번진다. 여자의 변신은 그렇게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노란 원피스를 입고 숲길에 서면 여자는 한 송이 꽃처럼 환해진다. 초록의 숲과 노란 옷이 만나니 여름 햇살을 한 아름 품은 듯하다. 작은 베레모를 비스듬히 쓰고 목에는 긴 목걸이를 겹쳐 걸었다. 양손을 큼직한 주머니에 넣은 모습에는 소녀 같은 장난기가 묻어난다. 나이가 몇이든 마음속에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소녀 하나가 살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그 소녀를 자꾸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이제 이런 색은 너무 화려하지 않을까, 이런 모자를 써도 괜찮을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그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는다.
그러나 옷에는 나이가 없다. 색깔에도 나이가 없다. 노랑이 젊음의 전유물도 아니고 분홍이 소녀에게만 허락된 색도 아니다. 검정이라고 언제나 무겁고 점잖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느냐에 있다.
분홍색 옷으로 갈아입으면 분위기는 또 달라진다. 부드럽고 우아하다. 넉넉하게 떨어지는 블라우스와 바지, 허리를 살짝 잡아 주는 벨트, 목을 감싼 여러 겹의 목걸이가 세련된 분위기를 만든다. 조금 전 숲에서 햇살처럼 웃던 여자가 이번에는 도시의 어느 갤러리 앞에 서 있어도 어울릴 듯하다. 같은 얼굴인데 옷 하나로 표정까지 달라 보인다. 변신이라는 것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머리 모양을 조금 바꾸고, 평소 하지 않던 귀걸이를 하고, 좋아하는 색의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풍경은 달라진다.
그리고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으면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난다. 깊게 파인 목선에 푸른색 장식이 선명하고, 길게 내려오는 치맛자락 사이로 걸음이 가볍게 드러난다. 손에는 커다란 뜨개 가방을 들었다. 노란색이 자유로운 소녀였다면 분홍색은 우아한 여인이고, 검은색은 자신의 취향을 당당하게 드러낼 줄 아는 여행자 같다. 한 사람 안에 이렇게 여러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결같음’을 미덕으로 배워 왔다. 사람이 변하면 쉽게 “예전과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달라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계절도 한 모습으로 머물지 않는다. 봄은 연둣빛이었다가 여름이면 짙은 초록이 되고, 가을에는 붉고 노랗게 물든 뒤 겨울에는 모든 색을 내려놓는다. 나무가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것을 두고 변덕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 변화를 아름답다고 한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조금 달라도 괜찮다. 평생 단정하게만 살아왔다면 어느 날 조금 화려해져도 좋고, 늘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면 하루쯤 자신을 위해 예쁜 옷을 골라도 좋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를 수도 있고, 늘 검은색만 입던 사람이 빨간 구두를 신을 수도 있다. 변신은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나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특히 중년 이후의 여자에게 변신은 조금 특별하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아내였으며, 어머니였고, 직장인이었다. 가족을 챙기고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감당하다 보면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시간은 뒤로 밀리기 쉽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울 앞에 서서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더라. 어떤 색을 좋아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더라.
그 질문에 거창한 대답은 필요하지 않다. 옷 한 벌에서 시작해도 된다. 오늘은 노랑을 입고 내일은 분홍을 입는다. 어느 날은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고 낯선 길을 걸어 본다. 모자를 쓰고 거울 앞에서 슬쩍 웃어 보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에게 허락하는 자유다. ‘이래도 괜찮아.’ 그 짧은 허락이 사람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움의 기준도 달라진다. 젊은 날에는 남에게 예쁘게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면 세월이 흐른 뒤에는 내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보다 편안하게 웃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행하는 옷보다 자신의 취향을 알고 입는 사람이 멋스럽다. 결국 멋은 옷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숲길의 노란 원피스도, 부드러운 분홍빛 옷도, 자유롭게 흩날리는 검은 원피스도 모두 한 여자의 모습이다. 어느 것이 진짜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모두 진짜다. 사람은 하나의 색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아직 입어 보지 않은 수많은 색이 있고, 살아 보지 않은 표정과 만나 보지 않은 자신이 남아 있다.
그래서 가끔은 변해도 좋다. 아니, 기꺼이 변해 보아도 좋다. 어제와 다른 옷을 입고, 평소와 다른 길을 걷고, 전에 없던 표정으로 사진 한 장을 남겨 보는 것이다. 그것은 젊어 보이기 위한 몸짓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치장도 아니다. 여전히 삶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표시이며 아직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허락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변신에는 애초에 죄가 없었다. 오히려 오래도록 한 모습으로만 자신을 가두어 둔 마음의 문을 열어 주는 일에 가깝다. 노랑도 나이고, 분홍도 나이며, 검정도 나다. 오늘의 나도 나이고 내일 조금 달라질 나 역시 나다.
숲 사이로 햇살이 내려온다. 노란 원피스 자락에도, 검은 치맛자락에도 같은 햇살이 머문다. 여자는 모자를 고쳐 쓰고 다시 길을 걷는다.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한 가지 모습으로 굳어 가는 일이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하나씩 발견해 가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일 옷장 앞에서 마음을 끄는 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면 망설이지 않아도 좋겠다. 어쩌면 그 옷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새로운 내가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