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한낮의 온도가 35℃를 넘어서는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축산농가들이 더위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경북 영천시의 한 양계장에서 실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악의 폭염…축산농가 ‘4중고’ 신음
25일 기준 217만마리 폐사 닭, 204만마리로 가장 많아
고온 스트레스로 식욕 떨어져 산유량 줄고 산란율 저하
전기료 부담도 늘어 걱정 돼지·생닭 등은 판매량 줄어
축산농가들이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가축폐사, 성장 저하, 전기료 부담 증가, 소비둔화 등 ‘4중고’를 겪고 있다. 축산농가마다 선풍기를 돌리고 물을 뿌려주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더욱이 당분간 이렇다 할 비 소식도 없어 폭염에 따른 축산농가의 고통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하루에도 수백마리씩 죽어나가”=전북 고창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조명옥씨(64·월산농장)는 요즘 폭염 때문에 속이 바짝 타들어간다. 선풍기를 틀어주고 있는데도 전체 5만마리 가운데 1만마리의 닭이 죽었다. 조씨는 “현재까지의 피해규모가 이미 2017년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며 “죽은 닭들을 처리하느라 남아 있는 닭들을 관리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폭염이 8월 상순까지 지속될 것이란 예보까지 나오면서 조씨의 마음은 더욱 무겁다. 조씨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닭이 죽어나갈지 걱정”이라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전북 익산의 한 육계농가 역시 “닭은 온몸이 깃털로 덮여 있고 땀샘도 발달하지 않아 35℃를 넘어서면 죽기 시작한다”며 “요즘엔 하루에 수백마리씩 죽어나가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삼복(三伏)더위가 있는 여름철이 최대 성수기이기는 하지만 손실이 너무 커 앞으로 사육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5일 9시 기준 217만7000여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축종별로는 닭이 204만2000여마리로 가장 많고, 이어 오리 10만4000여마리, 메추리 2만마리, 돼지 9400여마리 순이었다.
◆식욕 저하…산유량·산란율·체중 증가속도 저하=폭염은 가축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축은 고온일 때 식욕이 떨어지고 살이 찌는 속도가 느려진다. 이 때문에 폭염이 지속되면 축산농가는 비상이 걸린다.
젖소 사육농가인 오용관씨(60·경북 경주)는 산유량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씨는 “대형 선풍기와 스프링클러를 가동하고 있지만, 축사 내 온도가 35℃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젖소의 사료 섭취율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며 “이 탓에 한마리당 산유량이 폭염 직전(하루 33~34㎏)보다 12~15% 줄었다”고 토로했다.
한우농가 권대기씨(62·경북 영주)도 “한우가 하루에 주는 사료량 10~11㎏ 가운데 절반도 먹지 못한다”며 속상해했다. 사료 섭취량이 줄면 살이 잘 찌지 않아 생산비 부담만 늘기 때문이다.
양돈농가 안병영씨(62·전남 광양) 역시 “폭염 전만 해도 돼지를 6개월 동안에 117~118㎏ 되게 키워 출하했지만, 지금은 105㎏도 겨우 만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닭의 피해는 더 심하다. 좁은 공간에서 대량 사육되는 탓이다. 특히 고온 스트레스가 심하면 산란계는 달걀을 잘 낳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양계농가는 계사 온도를 떨어뜨리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산란계농가 장모씨(경기 양주)는 “대형 선풍기 30대로 계사 내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주고 있지만, 산란율이 폭염 전보다 4~5% 떨어졌다”고 푸념했다. 그는 또 “(언론에서) 폭염 여파로 달걀값이 올랐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여전히 생산비엔 턱없이 못 미쳐 이래저래 죽을 맛”이라며 답답해했다.
◆전기료, 폭염 전보다 크게 증가=전기료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젖소농가 홍현정씨(34·충북 진천)는 “축사 온도를 낮추고자 가동하는 장치나 시설 대부분이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한다”며 “특히 올여름엔 온종일 가동할 수밖에 없어 한달 전기료가 폭염 전(40만~50만원)보다 갑절 이상 늘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갈수록 폭염이 심해지고 일수도 늘면서 전기료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양주의 한 산란계농가도 “대형 선풍기를 온종일 틀어주다보니 전기료가 폭염 전보다 60% 이상 늘었다”고 토로했다.
◆돼지 구이부위와 생닭 판매량 감소=축산농가가 더 걱정하는 것은 무더위로 위축되는 소비심리다. 소비심리가 둔화되면 축산물값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철우 농협유통 돈육과장은 “대형마트를 찾는 고객 자체가 감소해 축산물 전체 판매가 주춤하다”고 설명했다. 보통 돼지고기는 날씨가 더워지면 삼겹살·목살 등 구이부위 판매가 증가한다. 하지만 나들이하기도 힘든 폭염이 지속되자 구이부위를 찾는 소비자가 줄었다.
그나마 복경기를 맞아 활기를 띠었던 생닭 판매량도 초복 이후 급감하는 추세다. 폭염으로 직접 집에서 삼계탕이나 백숙을 해먹으려는 수요가 줄어서다.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까지는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폭염 장기화에 대비해 소비촉진 등 수급 안정방안을 미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