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충동이 인간 본모습” 인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속에서 ‘형성된다’ 왜 사람만 정신병에 걸리나 ‘상징계로의 이전’은 또 뭘까
인간은 흔히 이성적 동물로 이해된다.그러나 현대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을 충동과 욕망의 존재로 봄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인간 이해를 제시했다.
플라톤과 데카르트를 논박하는 이런 인간 이해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는 라캉의 말에 집약되어 있다.
현대인의 특징들 중 하나는 ‘무의식’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전통 사유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서 파악되었으며,근대 사유에 이르러서는 ‘주체’로서 파악되었다.많은 사상가들은 인간의 주체를 일종의 ‘실체’로서 생각했다.
실체란 다른 존재를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존재가 필요없는 존재다.데카르트는 인간을 ‘사유하는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근대 주체철학의 장을 열었다.이 주체는 18세기 계몽사상을 통해 세속화되었으며 19세기 실증주의에 의해 변형되었다.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멘 드 비랑에서 니체,베르그송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합리주의적’ 철학자들에 의해 인간의 주체는 ‘의지(volont/wille)’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되기 시작했으며,샤르코를 비롯한 심리학자에 의해 무의식의 개념이 개발되기 시작했다.이런 흐름은 프로이트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정신분석학을 낳았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무의식이란 내가 모르는 나다.즉 의식적 나는 무의식적 나를 모르며,무의식적 나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 의식적 나에게 영향을 준다.이것은 인간을 이성과 주체로 정의했던 서구 사유의 전통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제 인간은 원초적으로 ‘분열증’환자가 된다.내가 의식적 나와 무의식적 나로 갈라진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은 분열적 존재임을 말해준다.이로부터 현대인의 갖가지 얼굴들이 그려지기 시작한다.오늘날 우리는 싸구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 분열된 인간들의 갖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주체는 하나의 실체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 속에서 ‘형성된다’.라캉은 이 주체 형성의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진다.
라캉은 현실계 상상계 상징계라는 세 차원을 구분한다.
현실계(실재계)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고,
상상계는 그 세계/사물에 대한 우리의 이해다.사물은 하나지만 그에 대한 이해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하나의 사과를 화가와 생물학자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한다. 이 점에서 상상작용은 일종의 거울의 반사와도 유사하며,증폭의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상징계는 현실계와 상상계를 일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게 하는,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성이다.
생물학자는 생물학이라는 상징계 안에서 사물을 보며 따라서 사과라는 현실을 일정한 방식으로 상상한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에서 방황한다.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아기는 어머니와 자기를 구분하지 못하며,둘을 합한 상태를 우주로 생각한다.
이 단계는 상상적 단계다.그러나 아기가 말을 배우고 상징계에 진입하게 되면,이제 문화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며 상상계로부터 단절된다. 대부분의 정신병은 이 상상계로부터 상징계로의 이전(移轉)이 원활하게 일어나지 못한 데서 유래하는 것이다.
서구 역사를 관찰해보면 대개 마르크스에 대한 믿음이 붕괴할 때 프로이트가 등장한다.즉 사회변혁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인간이 비합리적인 존재가 아닌가라고 묻게 되고,이때 프로이트나 니체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국 사회를 볼 때,80년대가 마르크스의 시대라면 90년대는 프로이트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이것은 우리 사회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었음을 말한다.다시 말해 정신분석학이란 후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병리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을 사회역사적 차원에서 유리시켜 무의식과 욕망의 층위에서만 바라본다면,그 결과는 사회의 규범이나 가치를 냉소(冷笑)하면서 골방에 처박혀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거나 대중문화가 부추기는 의미없는 반항을 추구하는 인간만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신분석학이라는 담론을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이정우 서강대 철학과 교수>
◎라캉은 누구인가/구조주의 연구·전파 큰 공헌 자크 라캉(1901∼1981)은 메폴로 퐁티,레비 스트로스,야콥슨 등과 교분을 나누면서 ‘구조주의적’사유 양식을 제시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라캉은 프랑스에서 무시되던 프로이트를 대중적 관심사로 만들었으며,‘파리 프로이트학회’를 만들어 활동했다.그는 여러 편의 뛰어난 논문을 발표했는데,이들을 하나로 묶어 펴낸 것이 ‘선집(Ecrits)’이다.이 선집은 프랑스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푸코의 ‘말과 사물’과 더불어 구조주의 운동의 정점을 형성하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라캉은 특히 세미나에 몰두했으며,그가 행한 세미나를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강의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