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과 보람과 일탈 / 김 난 석
이반 일리치는 귀족으로 태어났다.
남들이 바라는 대로 명문학교를 나오고
남들이 열망하는 법관이 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급저택을 구입해 정원을 꾸미고
남들이 못하는 귀한 집 여성을 맞아 결혼도 했다.
아내와 자식들?
그들도 이반과 상관없이 귀족의 가족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뿐이다.
이반은 어느 날 새집의 커튼을 손보다가 넘어져
옆구리를 다쳤다.
괜찮거니 했지만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들러봤으나 여기인지 저기인지 맥을 못 잡고
더 지켜보자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통증은 날로 더 심해지고..
직장에선 쉬라 하고..
이때가 마흔아홉이었다.
'내가 왜 이럴까?
온갖 규범을 철저히 지키면서 살아왔는데
하나님이 데려가시려는 걸까?
하인 게라심은 태평하기만 한데...'
이반은 하인 게라심을 불러 묻는다.
"너는 무엇 때문에 사느냐?"
"네에, 남들이 필요로 하는 걸 하면서 삽니다요.
이웃을 도와주고요."
이때 이반은 자괴감에 빠져든다.
'행복이나 보람은 그런 건데
나는 왜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만 좇아 살아왔나...'
이건 톨스토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대강이다.
주인공 이반은 금수저로 태어나
온갖 규범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왔는데
왜 이런 불행이 닥쳐왔느냐고 한탄하다가
게라심을 통해 살아온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법규, 윤리, 도덕 등은 삶의 규범일 뿐이다.
착하게 산다는 건 그 규범 안에서의 일일 뿐이요
행복이나 보람을 찾는 삶은 다른 데에 있지 않은가?
착하게만 살아야 하나?
아니면 즐겁게 살아야 하나?
착하게 살면 행복과 보람을 느낄까?
인간이 인간인 건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누구나 다 그런가?
누구나 이성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가?
아니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있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정언명령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보편적 규범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남이 싫어할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허나, 이런 제약 안에서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을까?
남이 싫어하는 것도 하려는 게 인간이 아닐까?
이기적 인간으로선 손해난만큼 보상을 받으려 하는데
그래서 신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하기에
來世가 있어야 한다는 게 칸트의 생각이다.
그런데 來世가 있던가?
신이 보상을 해주던가?
동양사상은 이를 대체적으로 부정한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
만물을 풀강아지 취급한다는 거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노자)
그러니 어찌 보상까지 바라랴..
그저 인간의 심성이 선하다는 사상도 있고
악하다는 사상도 있을 뿐이요
어떤 경우나 마음을 수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동양사상의 요체다.
하지만 서양사상은 이와 반대다.
대체적으로 來世와 神의 구원을 말한다.
불란서의 철학자 파스칼은 이와 같이 말한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살다가 신이 있다면
낭패라는 거다.
그러나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신하면서 산다면
만약 신이 없다 해도 손해 볼 건 없다는 거다.
그러니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착하게 살라는 건데
(팡세),
그렇다고 자신을 한없이 양보하면서 살아야 할까?
아니다.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전부 부정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참고
자신의 살점을 얼마만큼 내주어야 할까?
칸트는 고향 쾨니히스베르그에서 태어나
팔십 평생을 살면서
고향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보지 못하고
결혼도 못한 채 궁구 하고도
이 문제는 답을 찾지 못하고 타계했으니
범부가 무어라 하랴.
그저 이웃이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을 뿐이요
그러노라면 가끔은 규범을 벗어나기도 하느니
그게 일탈이라는 숨통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대다수 소시민들은 규범을 잘 지키려고 다들 노력들 하지요.. 그리고 대체로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삽니다. 욕심부린다고 욕심이 채우지기도 어려우니까요.. 한동안 코로나로 세상이 난리가 났을때 사람들은 <아무일없이 하루가 평범하게 지나가는 게 제일 큰 소원이다>라고 말했죠..
그게 제일 맞는 말입니다. 석촌선배님 희망이 넘치는 3월입니다. 우리도 날잡아 석촌호수 걷는 번개한번 해야죠?
그래야지요.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삶은 본인이 엮어나가야지요.
타인의 시선은 둘째고.
마음밭에 생각이 싹 트면
양심에 반 하나 응 하나 보고
응 하면 따라 가지요.
어렵게 생각하면 힘이 들어요.
맞아요.
수긍이 가는대로.
악과 선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제데로 알아차리는 것은 선이고,
못 알아 보는 것은 악일 겁니다
어거지를 썼어라도 우뚝 서고
뛰어나고 싶은 마음은
일 순간, 물거품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처세하는 것은 선이고
그렇지 못한 처세는 악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의 선과 악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비워주고 ...채우고...
채우고... 비워주고...^^
알아차리긴 해야하는데
그래서 우선은 교육이 필요하지요.
그다음엔 본인이 알아서~
여자들 한텐 소소한 일탈이 활력소가
됩니다^^
맞아요.
그게 안전변입니다.
선배님의 「규범과 보람과 일탈」을 읽으며 깊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규범은 삶을 붙드는 울타리 같고,
보람은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이며,
일탈은 또 다른 길을 찾는 인간의 몸짓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정하지도, 치우치지도 않은 시선이 인상적이었고
담백한 문장 속에 삶의 무게가 고요히 배어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정월대보름 글도 잘읽었습니다.
풍습이 충청도와 다름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