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구원의 설계도, 믿음
티토 3,1-7; 루카 17,11-19 /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2024.11.13.
세상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이 만나는 장입니다. 진화과정에서 문명을 이룩한 인간은 불과 농사를 발명한 이래 수많은 자연법칙을 발견하여 인간의 뜻이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하고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자연을 변형시켜왔고 의식주 생활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문명을 이룩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의식이 깨였을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계시하심으로써 인간이 이룩하는 문명이 하느님 나라를 향해 진보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변형하고 생활을 발달시키며 사회의 여러 제도를 만들어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수단은 이성이었습니다. 인간 이성은 미시적으로는 미생물과 원자 물질을 탐구할 수 있게 되고 거시적으로는 지구의 해양과 지질 그리고 기후변화에서 우주 탐사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켰는가 하면,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와 화폐 금융이라는 경제 제도, 통신과 교통과 주택으로 이루어진 대도시 체계, 음악과 미술과 건축과 영화 등의 예술, 인류가 축적한 그 방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제도, 인간 생활의 온갖 필요를 연구하는 학문 체계 등을 발달시켰습니다.
하지만 이성만능주의의 시대에 있어서도 종교와 신앙이 인간 이성에 의한 문명에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할 결정적인 차원은 인간 자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 문명은 인간 이성이 발달시킨 그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인간 자신의 신비를 아직도 다 모르고 있으며 더욱이 인간 의식의 성숙과 진보에 있어 여전히 미숙한 행보를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달된 물질문명에서도 범죄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억압과 불평등의 구조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와 평화의 가치가 그 오랜 문명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도 여전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불확실성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느님의 관심사는 인간 이성이 이룩한 문명이 아니라 인간 자신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고, 세상에 오신 구세주께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여러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기적들을 일으켜 보여주시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인간 이성이 이룩하는 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 사례를 우리는 오늘 복음의 상황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의술 수준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었던 병이 나병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나병환자들을 격리시켜 가두기만 했을 따름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부르셔서 몸을 깨끗이 낫게 해 주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인간 이성과 문명의 시각으로는 이 기적을 주목할 것입니다만, 예수님께서는 기적적인 치유를 체험하고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시며 감사를 드리러 온 단 한 사람, 그것도 유다인들에 으해 경멸받던 사마리아 사람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에나 오늘날에나 인간 이성을 맹목적으로 의지하며 하느님의 참모습에 무지하여 믿음을 상실한 인류 문명에게 주는 구세주의 메시지라고 할 만합니다. 문명은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후계자가 될 티토에게 사도 바오로가 주는 훈계는 신앙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그 신앙을 드러낼만한 도덕과 윤리에 관한 성격의 메시지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자면 하느님께 향한 믿음이 필수적이지만, 그 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자면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도덕과 윤리적 처신이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여 남긴 이 메시지가 메신저인 사도와 신자들의 도덕과 윤리적 처신에 주목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메신저의 도덕성이 메시지의 진리성에 미치지 못하면 그 메시지는 전혀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통치자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종하라든가, 모든 선행을 할 준비를 하라든가, 모든 이를 온유하게 대하라든가 하는 충고가 다 그런 성격을 지닌 훈계입니다. 종교와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자면 그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한 눈높이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의사소통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의 중시하는 가치를 존중하는 가운데, 그들이 질문을 해 오거나 그들이 도움받기를 원하는 때까지 기다려서 그 진리를 말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믿음이 인간 구원의 요체이고, 이것이 인간 이성이 이룩하려는 문명의 원동력이 되어야 함을 알리기가 이처럼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