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상종 / 김 난 석
사범학교를 나와 다시 대학에 들어간다고
생고생을 했던 기억이다.
특히 영어가 문제였는데
숙어를 숙지하는 것도 고생이었다.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새는 같은 날개끼리 어울린다)
끼리끼리 또는 유유상종의 의미인데
그 깊은 뜻을 몰라 그냥 단순히 외웠던 기억이다.
살아가려면 두루두루 어울리라 한다.
그러나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는 결국 피부색에 따라 블럭화 한다고 했다.
백인이 흑인이나 황색인종과 어울리던가?
황색인종이 흑인과 어울리던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어울리던가?
하사와 병장이 장군과 어울리던가?
더러는 그러기도 하겠지만
아니다.
그래서 그런 영어의 숙어가 나온 것 같다.
나는 두루 어울리는 게 서툴다.
그럼에도 고쳐지질 않아 외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
세상은 다양하지 않던가..
어느 글벗과 석촌호반을 걸었다.
봄비는 내려 땅을 촉촉이 적시고
호수엔 검둥오리 여남은이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흰오리는 물에 들어가기 싫었던지
물가에서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리들은 그렇다 치고
함께 걷는 우리 둘은 유유상종일까...?
나는 그네와 성이 다르다.
나이도 세 살 터울을 몇 차례 뛰어넘는 차이다.
고향도 다르거니와 취미도 다르다.
단지 카페에서 만난 인연 하나뿐인데
오래도록 호감을 나누는 사이다.
그렇다고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요
카톡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해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걸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가평 자라섬 가을꽃길을 답사하고
청량리역에 내려 저녁을 먹을 때였다.
나는 따끈한 생선탕이 먹고 싶었는데
그네는 갈비탕을 시켰다.
조금 먹으려니 생선탕이 매워 입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쩝쩝, 하고 있었는데
그네가 자기의 갈비탕과 바꿔 먹어보자는 거였다.
바꿔 먹어보니 입맛에 딱 맞던데
이런 일은 모자(母子)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아마도 그로부터 서로 호감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작은 배려가 관계의 끈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주는 거라 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우린 자기 입장만 고수하며 살려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사랑을 말한다면 口頭禪에 지나지 않으리라.
저 흰오리는 물에 들어가기 싫은 걸까?
물에 들어가 데면데면하기보다 바라보기나 한다는 걸까?
미워하고 싸우기보다 끼리끼리 노는 게 뱃속은 편하리라.
비록 외로움이 찾아와도 말이다.
이게 실버세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첫댓글 세상은 어쩔수없이 유유상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틀리다고 무시하고 경멸하는게 문제입니다.
그런현상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언덕저편님 이야기니 뭐~
공감하는 바이지만,
끼리끼리도
결국은 쪼개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내가 즐기는 곳으로 단체를 이루려면,
서로 서로 화합을 이루어야 살 길입니다.
마음에 가시가 없어야...^^
그래서, 간단히
不可近不可遠이라 하지요.
불가근불가원~
그것도 뱃속 편한 말이겠네요.
피부색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오래 섞여 살다보니
그들 나름의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배려와 존중의 에티켓이 있어야 했었구나... 알 것 같았습니다.
인정에 기반한 우리들과는 그런
차이점이 있더라구요.
어쩌면 편하고 어쩌면 겉도는 예절
같은 것.
그런건 마음님이 누구보다 잘알겠지요.
이솝이야기< 두루미와 여우>가 생각납니다.
그렇.
석촌호반은 나도 가끔 걷습니다
거기 걷다가 거기 자주 걷는 석촌선배님을 본적이 없어서 아쉬워요
충성 우하하하하하
언덕저편님이 한번 걸어보자 하니
적당한때 걷지요 뭐.
네 좋아요
네에.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냥 지나가길 잘했네요.
그러다가 스스로 지치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