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렬회장 취임 이후 처음 맞는 시산제날이다. 기자는 약속 시간을 예전 것으로
착각, 10시 5분 전에 나갔는데 김회장이 10시 정각에 나타난다. 그는 착각이 아닌
“준비”로 30분 전에 나온 것이다.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연이어
총무 바오로도 나타난다. 집행부의 긴장되고 민첩한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조금 있으니 임종수내외가 男負女戴하여 각자 짐 두 덩어리씩 갖고 등장. 떡과
돼지고기다. 웬 음식을 이렇게 많이 갖고 오시느냐고 하니 25인분을 준비했다는
김여사의 대답. 그동안의 산행 참가 실적에 비추어 보면 오늘 참가자도 두 자릿수
채우기가 간당간당할 텐데, 좌우지간 손 큰 김경자여사는 못 말린다.
술을 담당한 17회 酒仙 노창송이 묵직한 가방을 메고 들어온다.
“長壽막걸리 한 댓 병 지고 왔나?”
“아니여. 韓山素麯酒여.”
그러면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닌 노창송이 이런 날 싸가지 없이 막걸리 병이나
지고 올 사람인가. 물어본 내가 그르지. 지난 번 강남회 때도 자기가 스폰서하는
날 소곡주를 두 병이나 갖고 와서 참석자들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더니...
현해수는 오자마자 시산제 祭文을 꺼낸다. 자기가 쓴 것이라고.
“아니, 제문은 김숭자회장한테 부탁하기로 안 했던가?”
“김택렬회장이 나더러 써 오라는데 우짤기고?”
“쓰느라고 고생 많았네.”
“까짓거 일도 아니야.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시산제 제문 모델들이 널려 있어.”
이때 옆에 있던 김택렬회장이 거든다.
“김숭자회장은 요즘 산에도 잘 안 오고... 현해수로 말하자면 10년 이상 붓글씨
공부해서 요즘 立春帖 휘호로 북촌 어느 名士댁 한옥 대문을 휘황찬란하게
繡놓고 있는데, 가까운 사람 제쳐놓고 굳이 김숭자회장한테 부탁할 거 있나?”
딴은 옳은 말씀.
마지막으로 오늘의 지명 지게꾼 임한석 등장. 잔뜩 쌓여 있는 박스들을 보더니
“내가 아무리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지게를 많이 졌지만 저 많은 걸 나 혼자
어떻게 다 지고 가나? 나누어 지자.”
“좋다. 분빠이 하자”
김윤기는 최근 이를 뽑아 등산은 못 하고 시산제 현장에도 올지 못 올지
불확실한 상황이고, 김숭자회장은 차 몰고 열심히 오고 있는데 지금 청계산
자락에 들어섰다는 임종수총장의 전언.
김택렬회장이 “오늘 회비 징수는 없다”고 선언하면서, 대신 나중에 절하는 값
넣으라고 흰 봉투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올 사람 다 온 걸 확인하면서 10시 30분 정시에 9명이 출발.
3월 중순. 벌써 驚蟄도 지났고 일주일 후면 춘분인데 봄기운은 어느 곳에도 없다.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가 삼천리금수강산을 떠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날씨는
도통 풀릴 줄을 모른다.
원터골 계곡길 따라 조금 올라가다가 왼쪽에 있는 광장에 바오로가 자리 잡는다.
제사 지낼 장소 확보 겸 음식물 보관을 위해 자기는 거기서 기다릴 테니 나머지
사람들은 산행하고 12시까지 돌아오라고 지시한다. 일단 “심장을 한 바퀴 돌려야
하는” 현해수와 짝을 지어 두 번째 팔각정을 목표로 계속 전진. 팔각정에 후속
팀이 다 도착했지만 평소와 달리 오늘은 입 다실 일이 없다. 아무도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모든 1종 보급품은 시산제 장소에 있으니.
12시에 맞추느라 10여 분 휴식 후 바로 하산을 시작. 정확한 시산제 지점이 미처
확인 되지 않아 긴가민가하면서 내려오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숭자회장의 소리였다. 원터골 계곡 따라 아직 먼 거리
인데도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한다. 아들이 탁 트인 엄마의 목소리를 평소에
부러워할 만큼 그의 음성은 stereophonic 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니....
시산제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울상대 17산악회 시산제...2014. 3. 14.”
라고 쓴 대형 현수막이었다. 언제 이런 것까지 다 준비했는지... 집행부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떡, 과일, 돼지고기에 한산소곡주로 산신령께 절을 올려야 할 시간이다. 제문을
읽어야 할 텐데 지원자가 없어 기자가 나섰다. 제문을 읽다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산신령을 불러야 할 곳에 산신령은 없고 갑자기 “하느님”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느님께 제사지내는 모습은 생전에 본 적이 없는데. 시산제 제문에서
산신령을 하느님으로 둔갑시킨 조화는 독실한 천주학도 현해수의 손에서 이루
어진 것이었다.
제사 후 음복이 길게 이어졌다. 푸짐하게 남아도는 돼지고기와 아직 따끈따끈한
호박시루떡으로 배를 채우면서 산 아래 내려가 식당에 가자는 파와 지금 여기서
충분히 먹었는데 가지 말자는 파로 나뉘어졌다. 결국 회장 재량으로 장 가는
서울면옥엘 가기로 했다. 각자의 체질과 체온에 따라 일부는 더운 국물로 몸을
덥히고, 일부는 냉면으로 열을 식히는 2차를 했다.
배불리 먹고 서울면옥에서 우리에게 사은품으로 주는 포장비지까지 얻어 갖고
나오면서, 지난 번 산행 후 시산제를 안 지내기로 의견이 모아졌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시산제는 2년 후인 2016년에나 가야
있는데...
이날 음식 준비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김경자여사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가자(11명): 구명회, 김숭자, 김윤기, 김택렬, 노창송, 박정수, 이정수,
임종수(김경자), 임한석, 현해수
첫댓글 서울면옥이 아니고 조선면옥으로 바로 잡습니다. 그리고 시산제 준비를 주관한 김택열 회장과 가장 힘든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임종수 총장의 부인 김경자 여사에게 큰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신 이정수, 임한석 동문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시산제 준비에 도움을 주신 현해수, 노창송 동문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참석해 주신 다른 모든 동문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시산제 준비와 진행애 수고해준 모든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예상보다 참여가 저조한게 아쉬웠지만 꽃샘추위속 참여하신
모두의 협조로 의미있는 시산제를 지냈습니다.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산행에 많이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7학년도 훌쩍 중반에 들어선 터라 산신령님도 너그러울실 꺼라 반대했었는데
집행부는 물론이고 김보살님의 능숙한 보살핌에다 숙련(?)된 산우들의 협조로
적은 인원이지만 뜻깊은 시산제를 치룬 것같아 기쁜마음입니다.
수고 많으셨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