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구들 만나는 날!"
ㅡ진정 귀하께서는 눈물젖은 빵을 잡수어 보셨는가?ㅡ
<우리들의 황혼의 건배 제의는/ 건강하게! 만나자!>
"우리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란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는 와중에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에 '아름다운 미항 여수'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동문수학했던 동창친구들이 붉게 물들어 가는 황혼의 석양 노울색을 찬미하며 아름답게 색칠하기 위해 '여수의 맛과 멋집'을 수소문 하여, 여수시 좌수영로 1077(여수농업기술센터 바로 옆)에 있는 '500평 규모의 음식백화점'으로 '200대 이상의 주차장 완비와 14개의 크고 작은 룸'이 완비된 <여수관>에서 모여 '여수 최고의 소고기'로 식도락을 즐기고, 또 이웃에 있는 멋진 커피숍에서 다도를 즐기면서 우리들의 쏟아지는 즐김의 대화와 이야기는 끝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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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한 나의 이야기도 옆지기 친구에게 살짝 꺼내놓고 왔는데, 이야기인 즉슨!
"진정 귀하께서는 눈물젖은 빵을 잡수어 보셨는가?"
<왜?
"지금은 안돼!"돌에 손수 새겨 목전에 두고 살아온 인생길!>
ㅡ담대하라!
그러나 지금은 안돼!,
그래도 나는 이제 말할 때가 되었다ㅡ
[나는 여수'여상학원재단'인 '여수S고등학교'와, 부속 'J중학교' 제1.2부 전체에서'지각 1등' 의 성적으로 빛나는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여수 '여상학원재단'인 여수 S고등학교와 부속인 J중학교 제1.2부의 1968학년도 졸업식은 학교 형편상 학생 숫자가 많은데다 학교 시설이 학생들 전체를 수용할만한 강당이 없어 학교측의 입장으로 '여수시민극장'을 대여하여 그곳에서 졸업식 행사를 갖게 되었다.
졸업식일은 1968년 2월12일!
나는 당시 졸업식이 있기 전년도인 1967년 12월 중에 '여수수산모처'에 취직이 되어 졸업식 당일도 직장근무를 하게된 경우로 근무중 시간 맞추어 졸업식장인 '여수시민극장'으로 달려가 졸업식에 참석하게 됐다.
대 여수S고등학교와 부속인 J중학교 졸업식은 졸업생들을 비롯한 재학생들과 학부모님 혹은 축하객들의 참여속에 성대히 거행되었고, 졸업식이 끝나자 각자의 졸업생들에게 담임선생님들로부터 빛나는 졸업장이 전달되었고, 졸업생 각자의 형편을 좇아 졸업 축하의 퍼포몬스 및 기념사진 촬영이 졸업장 분위기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었는데, 졸업장을 수여하여 주고 계신 우리 담임이셨던 고 박ㅇ찬선생님께서 유일하게 나에게는 졸업장을 주시지 않으면서 하신 말씀이 "김종규 너는 학교 교무실로 와서 졸업장 받아가"라는 말씀 좇아 학교로 뛰어가 교무실 담임선생님 자리로 갔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반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야, 김종규!
너는 여수 S고등학교와 부속 J중학교 제1.2부 졸업생 전체중 지각이 제1등이다, 재학중 형편으로 졸업을 못할줄 알았는데 끝내 하고야 말았구나, 너에겐 정말 장한 졸업장이되겠구나, 그러나 이제 사회에 나가면 제발 지각생이 되지 말아라" 하시면서 졸업장을 건내주시며 손을 굳게 잡아주시며 악수를 해주셨다.
<뒷줄 왼쪽에서 첫번째 꽃목걸이를 뒤집어쓴 김종규/졸업식이 있었던 여수시민극장 앞*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후 56년이 지난 2024년 8월달까지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수시 전체를 거의 섭렵했다?>
여수시의 한쪽 끝지점이 오동도가 있는 수정동을 지나 여수역이 있는 공화동, 구 여수시청과 경찰서가 자리잡은 관문동, 아름다운 여수의 밤바다와 포차거리를 이용 케이블카로 관광객 유치 선점을 잡아버린 종화동, 뱃고동소리로 여수를 알렸던 중앙동, 동부지방의 날씨를 소상히 전달해주는 측우소가 있는 고소동, 여수의 명물 진남관이 있는 군자동, 여수의 수원의 배수지를 안아주는 동산동, 충무동, 연등동, 미평, 여수지역 학생들의 소풍지로 문화를 이어주는 구봉산이 있는 서교동과 봉산동, 나의 사춘기의 열정으로 향학을 불태웠던 고등학교 모교를 품어주었던 애암산과 나의 첫직장으로 수산물의 공판장과 여수의 그 유명한 일명 '뱅목아지'골목을 품었던 남산동에서, 또 당시에 유일하게 고등학교가 전문학교로 승격한 여수수산전문학교를 품어주었던 신월등 등등 여수시내 각종 관공서ㆍ회사ㆍ상가ㆍ가정 등등을 샅샅이 훑으며 뛰고 뛰고 또 뛰다 마지막 순서로, '전교 지각의 1등'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여수의 당일 신문기사를 서울본사로 보내기 위한 수순으로 '오후 6시 여수발 서울행 풍년호 열차에 소화물 표를 붙여 열차에 싣기 위해' 지역 신문사 업무 형편으로, 기사 마감 작성상 시간에 쫓겨, 달리는 열차내에서 겨우 마감하고, 최고의 속력을 내기 시작하여 달리는 열차의 지점인, 미평과 덕충동 사이의 소위 만성리 터널 입구에서 주검까지의 위험도 무릅쓰고 뛰어내리었던, 학창시절의 그 의지와 집념은 오늘도 내 삶의...
그러면서 나의 고등학교 3년 세월은 처음엔 신문배달에서 부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지 1개와 지방지 1개를 포함한 2개의 신문사의 배달에서부터 총무까지를 짊어지고 언론사 지사&지국의 기사 작성의 흐름과 경영의 모든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며 '여수합동기자단'에서 공히 각 언론사의 지사ㆍ지국장&주재기자들과, 각 신문사의 배달 소년들과 총무들 사이에서 ,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각 언론사와 언론인과 언론과 관계된 여수의 각처의 시민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정말 공히 '맹난 놈'으로 고등학교 3년의 여수 시절을 버티면서, 그야말로 '빛나는 졸업장'을 받게 되었으나, 결국은 여의치 못한 3년 동안의 우불합리한 객지의 취약한 자취방 생활과, 전일 발생한 뉴스가 실린 서울에서 발행된 각 중앙일간지를 싣고 밤새껏 달려온 서울발 열차가 여수역에 아침 6시에 도착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로 새벽 5시부터 시작되어, 열차가 도착하자 마자 열차에 뛰어올라가 실려온 신문 뭉치를 어깨에 둘러메고 '여수역 대합실'로 달려와 대합실에 놓인 의자 위에서 각 배달소년들의 배달 분량의 만큼의 붓수를 세어 나눈 뒤 그 배분된 신문 속에 각종 의뢰된 광고 전단지를 삽입 작업한 후 배달 방향으로 튀기 시작함을 시작으로 그 시간 이후로는 바로 시작되는 신문대 수금으로 이어지는 일상 속에, 밤.낮 24시간 가리지 않는 쫓기는 형편으로 식사 소홀과 과로로 인한 '건강'이 망가지고 있었던 것도 모르는 상황으로, 결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가 군대를 가기 위한 수순에서 건강 이상이란 문젯거리로 사단이 터지고 말았는데...
#1.당시 여수시내의 알바 신문사 배달소년들 건들면 " 김종규에게 맞아 죽는다"
#2. '고등학생 김종규'가 단독으로 보도시켜 각 언론사를 깜짝 놀라게 하며 혼란시켰던 기사 내용으로 "간밤에 가정집 아가씨 방에 '달비도둑' 침입하여 머리 싹뚝 잘라 달아나"
*그후 3일후,
"3일 전 한 밤중에 가정에 침입 아가씨 머리 싹뚝 잘나간 '달비머리'도둑은 계모 슬하에서 용돈이 궁한 의붓딸의 소행이었음이 경찰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가 단독으로 나갔다.
해설/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각지역마다의 형편으로, 여수지역에서도, 각 언론사 지사&지국 주재기자들의 기사 작성 형편이, 각 관공서의 보도자료 및 사회적 새로운 뉴스꺼리는 기사 작성 마감시간에 각 언론사 주재기자들 마다 주고받기 형식이 주로였는데, 당시 내가 맡고 있는 신문지사 지사장 겸 주재기자께서는, 자신의 개인적 '부부친목계'에서, 단체 제주도 여행 일정으로 기사작업이 어렵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본사에 보내는 기사 작정시 남기는 자신의 '싸인'을 나에게 맡기고 떠남으로 발생했던, '단독보도'의 형편이었던 본 기사가 보도되자, 여수지역 언론사 쪽의 각 본사 측 등에서 난리가 난 것은 물론, 부부단체 제주도 여행중이었으나, 맡긴 싸인을 이용 감쪽같은 보도로 인한 즐거운 비명과, 속내용을 알 수 없는 지역언론사 주재기자들로부터, 이율 배반적 항의 원성에 대한 해명성 사연이 나가자, 결국은 나를 향해 여수지역 주재기자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저 쳐죽일 놈! '김종규' "가 되어 버렸고, 결국 여수지역 각 언론인들로부터 '똘것! 별난놈!'으로 부상되어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 입장으로,여수시 합동기자단 사무실 내에서도, 기자들끼리 잘 가는 시청 앞 '송월식당'과, '청명다방'과, 구 헌병대 앞 '배나무집 정마담 집'등, '여수지역의 언론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업소'에서도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드나들었으며,
여수지역의 언론지사 소속이었던, 서울신문의 김기○기자님과, 조선일보의 방O환 기자님과, 중앙일보의 우리 고흥 풍남 출신 황영○기자님과, 동아일보의 반충○기자님과, 한국일보의 남화○기자님과, 경향신문의 이영○기자님과, 지금은 폐간된 신아일보의 정순○기자님들의 공통된 사랑을 받으며, 신문 업무상 관공서 출입도 자연스러웠으며,
특히, 여수지역 언론사 쪽에서,가장 연세 고참에다가, 젊은시절, '보통고시'까지를 합격한 이력과, 여수지역에서 '만년필 글씨 최고의 달인'의 실력파로 인정받은, 언론동지들 뿐만 아니라, 여수지역에서 내노라는 시민들로부터 인정 속에 대접을 받은 형편이었으나, 가정의 문제로 인한, 가족들간과 자자식들간에서 발생되고 있는, '사랑 문제?'를 나에게서 얻어내려는 '대리 만족형'으로, 오나가나 껌딱지처럼 붙이고, 나의 고등학교 3년을 같이해 온 '南仁泳남인영지사장 겸 주재기자님'과,
*지방지로는, 호남매일 신문의 지사장 겸 주재기자로, 여수신문기자단에서의,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어주심으로, 신문배달에서 부터 수금까지 모든 지사 경영은 나에게 맡겨주시면서,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시고 뒷배경이 되어주신 여수 언론계에서 가장 망나니 격 정의파 정완O 주재기자님께서는, 사나죽으나 나를 곧이 곧대로 믿어주심으로, 여수시내 신문사 계통에서 신문배달과 신문대를 수금하며 지사ㆍ지국을 운영해 가는, 신문 배달원들과 총무들을 비롯해 여타 종사들에게 부러움의 일인자이기도 하였는데......
"올림픽 금메달은 운으로 딸 수 없어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선수의 변을 들어보자.(아래 주소줄 길게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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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민선수 아버지의 명언!
"인격의 World class월드 크레스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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