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산마루
오월 둘째 주 토요일이었다. 오른손이 마비가 와 불편하긴 여전하다만 실내에만 머물 수 없어 집을 나섰다. 아직 산행을 나서기에는 무리였다. 산비탈을 오르려면 바위를 짚거나 나뭇가지를 부여잡을 수도 있는데 손을 쓰지 못하면 위험해서다. 대신 임도와 같이 전방에 장애물이 없는 훤한 길은 조심스레 걸을 수 있지 싶었다. 그리하여 내가 마음에 둔 곳을 걸으려고 길을 떠났다.
반송시장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해 댓거리로 가는 704번을 탔다. 그곳은 구산이나 삼진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갈아타는 길목이다. 나는 진전면 서북동으로 가는 73번을 탔다. 버스는 허연 아카시꽃이 일렁거리는 밤밭고개를 너머 동전터널을 지났다. 진동환승장을 둘러 진전면소재지에서 덕곡천을 따라 시골길을 지났다. 이모작 논배미는 보리가 패어 이삭이 여물고 있었다.
금산마을을 지나면 학동마을과 영동마을이었다. 버스는 영동마을을 지난 서북동이 종점이었다. 아마 서북산 아래 마을이라 서북동이라 불리지 싶다. 여남은 채 농가에 촌로들만 지키는 산간마을이었다. 마을 뒤 임도로 오르는 들머리 산기슭에는 종파가 다른 가야사와 구원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곳 일대는 조선의 왕손 전주 이씨 효령대군 후예들의 무덤들이 더러 보였다.
마을 뒤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신록이 싱그러웠다. 내가 서북산 임도를 더러 걸었다만 겨울이나 봄이 오는 길목에 걸었다. 작년엔 한여름에 걸었던 적이 있다. 봄이나 가을에는 서북산을 찾아갈 겨를이 없었다. 북면이나 용제봉 산기슭으로 산나물을 채집하거나 열매를 따느라 그곳을 나갈 틈을 내지 못해서였다. 손이 불편하고 보니 들릴 수 있었다.
서북동 종점에서 임도를 따라 얼마간 오르니 산허리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가면 부재고개로 의림사와 미천마을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가면 감개고개로 함안 여항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그간 부재고개로 많이 다녀 이번엔 감재고개로 향했다. 그곳은 지난해 겨울이 오는 길목 곱게 문든 단풍이 거의 떨어진 즈음 한 차례 걸었던 길이다. 이후 언제 다시 찾아 걷고 싶었다.
감재고개를 내려서니 오른쪽으로는 길고 긴 임도가 봉화산 허리를 감돌아갔다. 지난해 가을 내가 걸었던 길이다. 비탈로 곧장 내려서면 여항에서 가장 깊숙한 산중마을인 버드내로 재작년 겨울에 눈 쌓인 산길을 걸었다. 왼쪽은 법륜사 방향으로 간다고 이정표가 안내했다. 다녀본 길이 아니라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봉화산 방향 넓은 임도와 달리 솔숲 사이 좁다란 오솔길이었다.
산비탈을 넘으니 약수터 가든이 나왔다. 인적 드문 산중에 있는 쉼터였다만 찾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했다. 다시 산자락을 하나 더 넘어갔다. 언덕의 오동나무 높다란 가지에선 보라색 꽃이 피어났다. 아카시아꽃이 저물 무렵 피는 오동꽃이었다. 길섶 낮은 자리에는 국수나무에서 자잘한 꽃이 피었다. 숲 그늘에선 벌깨덩굴이 보라색 꽃을 피웠는데 송홧가루가 묻어 얼룩이 졌다.
산비탈을 내려서니 법륜사가 나왔는데 인적 드문 산중 암자였다. 절을 돌아내려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가져간 김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상별내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산마루로 올랐다. 건너편 올려다 보이는 곳은 여항산 정상이고 골짜기는 용지사였다. 산비탈을 내려서 임도를 따라 걸으니 좌촌마을과 봉성저수지가 보였다. 숲길과 임도를 많이 걸었다.
아직 함안역까지 가야할 길이 제법 남아 있었다. 외암초등학교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인 봉성저수지 가장자리 솔숲을 걸었다. 내려다보인 저수지물은 바닥이 비칠 정도로 아주 투명하였다. 내가 타고 갈 무궁화호 열차 출발 시각에 맞추려니 발걸음을 서둘렀다. 함안면사무소 못 미친 봉성마을엔 시설원예시험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함안역에서 창원중앙역까지는 금세 닿았다. 1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