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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담배는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아니었다
윤희정
1964년 담배는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아니었다. 담배회사들은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정했다. 이들은 자체 조사를 통해 흡연이 아닌 스트레스 등의 요인이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흡연의 유해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1996년 석면은 발암물질이 아니었다. 석면은 저렴하고 유용한 자재다. 건설업자들이 석면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긴 논란 끝에 단계를 거치며 규제되던 석면은 2009년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2010년 반도체 산업은 안전하다
2010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은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아니다.
한 조로 일하던 여성 두 명이 비슷한 시기에 백혈병으로 숨졌으나 우연일 뿐이다. 근무자가 열 명이 좀 넘는 작은 라인에서 두 명이 선천성 기형아를 출산했다. 같은 부서 엔지니어 세 명이 희귀질환에 걸렸다. 세상에는 우연이 참 많을 뿐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에 근무하다 예기치 못한 질병이 생긴 이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 현재 100여명이 제보를 해왔다. 백혈병, 다발성 경화증, 난소암, 루게릭과 같은 희귀병은 물론 정신질환까지 제보되고 있다. 이 중 16명이 반도체 직업병임을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2010년 삼성의 입장은 이러하다. 반도체 산업은 안전하다. 백혈병의 주원인으로 이야기 되는 벤젠은 작업장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벤젠이 꼭 백혈병의 원인이라 말할 수 없다.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의 95%는 벤젠에 노출된 적이 없다. 신경독성물질 TCE(트리클로로에틸렌) 또한 사용된 적 없다. TCE는 95년 이후 폐기되었으며 회사에서 자체 제작한 환경수첩1)에 TCE가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표기일 뿐이다.
무슨 일을 했어요?
도금공정에서 설비랑 약품 교체작업을 주로 했어요. 도금에는 전기도금하고 납도금, 2가지가 있는데 약품을 많이 써요. 20kg짜리 통에 든 약품을 탱크 안에다가 부어요. 이물질 제거하려고 산성 용액도 쓰고 해서, 붓는 과정에서 용액이 튀면 안에 속옷에도 구멍이 나고 그랬어요. 납을 녹이는 약품도 사용하고 그랬는데 심한 경우에는 고무장갑이 녹아요.
냄새는?
약품을 한 두가지 쓰는 것도 아니고 지독하죠. 문 열어놓으면 옆 공정에서 문 닫으라고 난리였어요.
보호장비는?
약품이 안 좋다 그래서 초반에는 면마스크? 좀 지나다 보니까 필터달린 거 줬고요.
-송창호. 악성 림프종. 현재 치료 중. 39세. 1993년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 엔지니어 입사
무슨 일을 했어요?
솔더크림을 회로기판에 골고루 발라요. 그걸 열처리 기계에 넣고, 불량이 나오면 빼요.
솔더크림에 납이 섞인 건 알고 계셨어요?
아니요. 못 들었어요. 그런데 손에 묻으면 물이 아니라 IPA(이스프로필알코올)로 닦으라는 얘기는 들었어요. 냄새도 많이 났고요.
냄새? 어떤 냄새요?
음…… 평소에는 맡기 힘든 그런 냄새에요.
- 한혜경. 뇌종양 제거 수술 후 1급 장애 판정 받음. 34세. 1996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무슨 일을 했어요?
마킹이요. 칩에 묻은 얼룩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TCE를 사용했나요?
없으면 일을 못했어요. 용기에 담아서 옆에 두고 썼어요. 그게 정말 잘 지워졌거든요.
용기에 담아서 각자 가지고 있었다고요?
옆에 있어야 빨리 지우고 (다음 공정으로) 넘기죠. 물량이 계속 밀려오니까.
-김기숙(가명). 제보자.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 근무
무슨 일을 했어요?
LCD 화면에 화소나 색상, 패턴 등에 불량이 있나 검사했어요.
어떻게 검사했는데요?
눈으로 보고 찾아내요.
얼마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화면을 보나요?
(눈에서 한 뼘 거리에 손바닥을 마주하고) 이 정도에서요.
몇 백 개를 그렇게 가까이서 봤다고요?
네. 스트레스 엄청 받았어요. 제 쪽에서 그냥 보냈는데 뒷공정에서 불량을 잡아내면 다시 다 재검사를 해야 하거든요. 그럼 한두 시간씩 남아서 다시 검사해야 되요.
- 이희진. 다발성 경화증. 재발 우려로 인해 현재 직장생활을 하지 못함. 27세. 2004년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무슨 일을 했어요?
보드에 칩을 심은 디바이스(제품)을 고온 챔버에 넣고 구운 다음에 불량을 빼는 일이요. 기계가 불량을 골라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직접 할 때도 있었어요.
칩을 손으로 만졌어요?
칩을 판에 심어야 하는데, 칩이 너무 작아요. 장갑 끼면 안 끼워지니까 맨손으로 만지기도 해요. 칩 만지면 손이 벗겨지기도 했어요. 껍질 까지는 거처럼. 그 손으로 얼굴 만지면 빨갛게 되고.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들어가자 얼마 안 되서 12시간씩 근무를 하게 됐어요. 잠 잘 시간도 없고. 식당이 멀리 있어서 밥을 빨리 먹고 돌아와 교대 해줘야하는데, 힘드니까 안 먹고 건너뛰고 그랬어요. 제일 힘든 건? 불량 못 잡아낼까 봐 긴장한 거? 기숙사에 와서도 불량 나올까봐 잠이 안 왔어요.
- 유명화.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2주에 한 번씩 수혈을 받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움. 29세. 2001년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가스가 새는 일도 있었다면서요?
라인에서 전화가 와요. 가스가 새는 거 같다,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그럼 지하로 내려가서 새는 가스관을 찾는 거예요.
어떻게요?
원래 경보기가 작동돼야 하는데 오래돼서 작동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럼 냄새로 맡아서 찾는 거예요.
코로 직접 맡아요?
그러니까 보호 장비가 있어도 못 쓰죠. 그게 다 화학약품이 기체화된 가스들이거든요. 몸에 안 좋은 줄은 알죠. 그런데 그런 게 만연하니깐 점점 무뎌지는 거 같아요.
-이성현(가명). 제보자.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엔지니어
우리가 만만해서 쓴 것 같아요
10월 5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피해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다. <반올림>이 생긴 이래, 3번째 제기되는 문제다. 양복을 빼입은 국회의원들과 산업안전보건공단 전문가들 사이에 질의가 오갔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가 지금 몇 번이나 국감에 올라왔어요. 이게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증인으로 출석한 산업안전보건공단 소장이 노동부 장관을 대신해 말한다.
“삼성 반도체 발병율이 현저히 높다면 당연히 산재임을 고려할 겁니다. 그런데 조사한 결과, 10년 동안 19명이 발병, 7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일반인들이 림프종이나 백혈병에 걸리는 확률과 비교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통계적 유의성이 떨어집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가 반대 의견을 냈다.
“그 조사는 신빙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 쪽에서 자체적으로 발병을 한 사람들의 제보를 받은 결과, 공단은 19명이라 주장하지만 저희에게 제보된 수는 96명이고 이중 사망자가 31명입니다2).”
발병자 수가 크게 다르자 의원들은 웅성거렸다. 그때 남색 잠바를 걸친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검은 양복들 사이에서 소리쳤다. 삼성 백혈병의 첫 제보자인 故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였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제보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보 안 된 사람들이 더 있어요.”
발언권을 얻지 못한 그의 말은 “조용히 하세요”라는 엄포 속에 묻혔다.
피해자들은 더 있다. 병마와 싸우느라 다른 것은 생각할 여력이 없는 당사자와 평생 산재가 무엇인지 들어보지도 못한 부모들, 삼성이 쥐어준 보험금이나 모금액에 감동받아 의심해볼 생각은 추호도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능하고 고등교육까지 받은 젊은 노동자들도 자신의 병을 산재라 인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뇌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윤정 씨는 자신의 병이 산재라고 확신하는 남편과 달리, 말을 아꼈다. 어느 날, 그녀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산재가 맞는 거 같아요. 나만 그러면 모르겠는데, 내 입사 동기들 중에 둘이나 뇌에 종양이 생겼어요. 나만 그러면 내가 운이 없어 그런 거라 하겠는데…….”
그녀는 정리를 한 듯 말했다.
“아프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멀리서 나를 뽑은 게, 어리고 시골에 있으면 뭘 잘 모르니까. 그래서 쓴 것 같아요. 시키는 대로 일하고 의심도 안 하고. 만만해서 우리를 쓴 것 같아요.”
기흥공장 엔지니어로 일한 남편을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 씨도 남편이 죽은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산재 신청을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직업병일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산재는 어디 팔 다리가 부러져야 산재인 줄 알았어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3년 동안 산재에 대한 교육 한 번 받아본 적 없다. 삼성에 들어온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일하다가 도장 찍으라고 해서 보면, 그게 안전교육을 했다는 내용이에요. 가끔 그런 건 했어요. 정전 시 대비 교육. 그런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정전이 되면 깜깜해진단 말이에요. 비상구 표시만 보여요. 그것만 보고 뛰는 거예요. 작업하는 사람이 10명, 20명도 아니고. 여기는 정전되면 자동잠금장치가 풀려서 가스누출이 될 위험이 크거든요. 그런데도 무조건 뛰라고만 시키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무서운 거예요, 그 어마어마한 반도체 공장에서 안전교육 하나 없었다는 게.”
그녀가 웃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반올림에 연락을 하기까지 한 달 동안 뭘 고민했냐면, ‘삼성이 나한테 울타리나 마찬가진데……’ 그 생각을 했어요. 지금 보면 일종의 세뇌 같은 거예요. 삼성에 대한 막연한 믿음? 안전교육은 하나도 못 받았으면서 그런 교육은 많이 받은 거 같아요.”
“무슨 교육이요?”
“삼성이 최고라는 거. 얼마나 좋은 회사인지 글로벌한지, 그런 것들을 계속 얘기해요.”
기흥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이성현 씨(가명)도 ‘세뇌’라는 말에 동의한다.
“늘 위기라는 거예요. 국내 경쟁업체 하이**가 따라온다. 밖으로는 중국이 따라온다. 유럽이 어쩐다. 10년 내내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어. 그렇게 외부의 적을 상정해놓고 안으로 똘똘 뭉치게 하는 거죠. 삼성이라는 틀에 딱 묶여서 일 잘 하고 복종도 잘하는 거죠.”
삼성에 대한 직원들의 믿음은 대단했다. 자부심도 컸다. 삼성을 퇴사하고도 사원카드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다니는 건 당연한 일로 치부됐다. 이러한 자부심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흥공장에서 6년 동안 발암물질인 납을 사용한 한혜경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한 번도 위험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삼성은 좋은 회사이니까, 당연히 그런 (위험한) 거 안 쓰겠지 생각했나봐요."
그 믿음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소뇌에 종양이 생겼고, 이를 제거하는 수술 후 언어, 보행, 시력에 있어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혼자서는 앉지도, 서지도, 걸을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6년간 납을 만졌어요. 산재가 아니라고요?
작년 3월, 한혜경 씨는 산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불승인 했다. 그녀는 회로기판에 솔더크림을 바르고, 열처리 한 후 불량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솔더크림의 33%가 납성분이다. 납은 발암물질이다. 불량을 찾기 위해 솔더크림이 묻은 기판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이 잦았다. 천마스크 하나가 그녀에게 안전물품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작업환경은 그녀의 병과 무관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그녀는 올해 4월 재심사를 요청했다. 그 결과 또한 불승인이다. 근로복지공단은 그 이유로 역학조사 결과를 든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팀은 납과 유기용제 등에 노출됨은 인정하나, 과거 근무 당시 시행된 ‘작업환경측정’에 따라 그 노출량이 미비하고 … 공정은 국소배기장치가 가동되고 있는 밀폐장치였음이 확인되는 바 … 작업환경과 암의 발병의 상당한 인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3)
불승인 판정을 받은 날, 한혜경 씨는 휠체어에 앉아 높고 뚝뚝 끊기는 목소리로 물었다.
“6년간 납을 만졌어요. 그런데 산재가 아니라고요? 배기장치가 있었다고요? 분명히 내 가까이에 없었어요. 종일 납 냄새를 맡았다고요.”
그러나 그녀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말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 그녀가 일했던 공정은 사라졌다. 그녀는 1995년 입사해 2001년에 퇴직했다. 이미 10년 전이다. 마이크로칩의 밀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깨고, 반도체 산업은 이제 1년마다 칩의 밀도가 2배로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반도체는 빠르게 성장한다. 더 미세한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하여 공정은 교체된다.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설비는 끊임없이 가동되며 노후화는 빠르게 진행된다. 낡은 공정은 이미 폐쇄되거나 외주화됐다. 그러나 암의 내재기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다. 그/녀들이 병에 걸린 것을 알아챌 즈음, 자신이 일했던 라인은 사라지고 없다. 황유미, 이숙경 등 백혈병 환자를 배출시킨 기흥공장의 1~3라인 또한 이미 교체됐다.
작업장이 사라졌으니 산재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기록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산재신청인들의 증언 대신 ‘작업환경측정’을 증거로 채택했다. 이것은 삼성 반도체의 자체적인 조사결과다. ‘작업환경측정’에는 발암물질 벤젠도, TCE 사용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산재신청을 한 16명 중 결과가 나오지 않은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국정감사가 있던 날,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반올림 기자회견에서 정애정씨는 유가족 발언을 하며 울먹였다.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어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왜 병에 걸렸는지를 입증하라
최근 반올림에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제보 글은 “회사에 <반올림> 온라인 카페가 차단되어 있네요”로 시작됐다. 삼성 사내 컴퓨터로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레디앙, 프레시안 등 진보정당․단체․언론에 접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들은 이야기라 놀랍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제보자가 현재 삼성 반도체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제가 처음 입사할 때 PM작업 시 필요한 IPA용액을 그냥 통째로 들고 와서, IPA용액이 묻은 웨이퍼가 구분이 안 가 냄새를 직접 맡아서 용액이 묻은 건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은 그냥 다반사였죠.>
IPA용액은 기본적으로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독성물질이다. 정화가 덜된 순도 낮은 IPA 용액에는 벤젠과 같은 발암물질이 섞여있을 가능성도 컸다.
<요 몇 년 사이 백혈병 문제가 화두가 된 이후로 회사에서 이것저것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별로 신경 안 썼단 이야기죠. 백혈병 문제가 터졌을 때, 회사와 연관 없다는 말로 외부에 대응하면서 내부로는 PM 작업 시 기존에 없던 규칙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파티클 측면에 좋다는 이유로 얼마 전부터는 IPA 용액이 메탄올 용액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때 느꼈습니다. 파티클 때문에 바꾼 게 아니고 ‘그 전에 사용했던 IPA 용액이 건강에 많이 안 좋았구나’ 라구요. 현재는 그런 위험용액이 필요한 일들은 외주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어요.>
제보를 한 이가 걱정됐다. 삼성 반도체를 그만둔 후, 반올림에 작업환경을 제보한 한 엔지니어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긴 거예요. 12시간은 당연한 것처럼 되니까. 젊은 친구가 메일을 돌린 거죠. 장시간 근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하다가, 마지막에 근로기준법 몇 개를 붙여 넣은 내용을요. 별 거 없었어요, 고작 그거였어요. 그런데 다음날, 그 친구가 불려가더니 며칠 후에 잘리고 협력업체로 자리를 옮겼죠. 회사에서 메일내용을 다 검사했다는 거잖아요.”
이후 그녀는 다시 반올림을 찾아올 수 있을까? 앞서 제보를 해준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한 남성 엔지니어는 제보를 하고 몇 달 후 제보 내용을 증언에 넣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찾아오더니, 국정감사에 회사 쪽 증인으로 나왔다.
삼성은 거대하다. 작업환경을 말해줄 공정은 이미 사라졌다. 그런데도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신청인들에게 ‘왜 병에 걸렸는지’를 입증하라고 한다. 산재신청인과 그 가족은 병들고 상처받은 몸을 이끌고 자신의 병의 원인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4) 산재를 인정받기 위한 공단의 문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근로복지공단은 3년째 흑자경영을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1조 2천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내가 이건희보고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는 건데도 뭐가 이렇게 힘든 건지.”
한혜경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현재 노동부에 산재 재심사청구를 준비 중이다. 이종란 노무사가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원래 복지공단 기준이 너무 높아서 행정소송으로 가면 오히려 피해자들이 승소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기다려 봐요.”
그러나 10월 17일 국정감사 날, 이미경 의원에 의해 근로복지공단 내부 공문 하나가 밝혀졌다.
<소송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임을 감안하여 소송 수행에 만전을 기하라 ... 삼성전자가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산재 관련한 행정소송에 삼성이 적극 개입할 것을 요청하는 근로복지공단의 공문이었다.
삼성에 적극 개입을 요청합니다
“사회적 파장이 클 것 같으니 적극 개입을 하라고? 사회적 파장이 클 거 같긴 하니? 그건 아니?”
19일, 피해자들이 공문을 복사해 들고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정애정 씨가 소리를 질렀다.
“너희가 이렇게 양복입고 펜대 굴리는 동안 산재피해자들은 그 싸인 하나에 밤잠을 못 자! 너희가 아빠 얼굴도 모르는 애들을 보는 심정을 알아!”
정애정, 황상기, 김시녀, 그리고 중증 재생불량성빈혈로 9년째 투병 중인 유명화씨의 아버지 유영종 씨가 근로복지공단 1층 접수처에 주저앉아 이사장 면담을 요구했다. 공단은 6층 이사장실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 전원을 내렸다. 불 꺼진 엘리베이터 안에 유영종 씨가 들어가 앉았다.
“나오세요. 이러다가 엘리베이터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난 괜찮아. 내 딸이 9년 째 집 밖엘 못 나가. 걔는 지금 몸이 나빠져서 골수가 와도 못 받아. 걔는 골수이식을 못 받으면……. 자식이 부모 앞세우고 가는 건 죄지만, 부모가 먼저 가는 건 당연한 거야. 괜찮아.”
반대편에서는 계단으로 가는 문을 막는 직원들과 황상기 씨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내 딸만 산재인정이 안 된거면 나는 여기서 나가도 돼. 하지만 너희가 이러고 있는 동안 이건희는 계속 사람을 죽여!”
처음 근로복지공단을 찾은 정희수 씨는 조금 당황한 얼굴이다. 그는 보험국장을 붙잡고 물었다.
“공단이 정말 깨끗합니까? 삼성과 아무 연관이 없는 게 확실해요? 책임질 수 있으세요?”
보험국장은 책임질 수 있다며 ’아니면 내 배를 째라’고 했다. 그리고 역학조사 결과대로 불승인을 한 거니 공단에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
“공단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제는 법원이 알아서 할 문제에요.”
그렇다면 재판에 삼성이 적극 개입할 것을 요청하는 공단의 공문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서 모른다고 했다.
“책임자라면서요?”
“우리 부서가 아닙니다.”
소동이 가라앉은 후, 정희수 씨를 붙잡고 물었다. 그는 뇌암에 걸려 시한부 1년을 선고받은 이윤정씨의 남편이다.
“산재 인정될 것 같으세요?”
“오늘 와보니까…… 멀었네요.”
그가 씁쓸히 웃다 말을 이었다.
“저는 솔직히 산재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산재라 인정이 되도 문제인 게…… 내 아내가 삼성 다닐 때부터 뇌에 종양이 있었다는 건데 그게 유전이 되는 거라면서요? 그럼 애들 낳기 전에 그랬다는 건데. 아내 떠나고 애들한테까지 이상이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랑 자식들 중 하나를 택하라는 문제도 아니고…….”
엄마 아빠를 닮아 유달리 예쁘게 생긴 그 집 남매가 떠오른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그의 불안을 그저 스쳐들을 수 없는 것은, 삼성 반도체 제보자 중 불임이나 기형 출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몸이 굳어가고 있는 이윤성(기흥공장 엔지니어) 씨도 병을 진단받기 전에 가진 둘째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부모 세대의 가난이 자식에게는 병으로, 그 다음 세대에는 유전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시녀 씨는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춘천에 두고 온 한혜경 씨를 돌봐주는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수면제를 먹으려나 봐. 6인실 병원인데 애가 밤에 잠을 못 자. 잠꼬대를 하고 막 몸을 벌떡 일으키고. 한번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잘 수가 없어. 의사 말이 쟤는 깊이 잠드는 게 10분도 안 된데요. 깨어있을 때 몸이 불편하면, 잘 때라도 편해야 하는데…….”
그녀는 불안한 시선으로 시계를 흘끔거린다. 두고 온 딸도 걱정이지만 하루 간병인 값도 부담이다. 벌어둔 돈은 모두 수술비에 들어갔다. 혼자 힘으로는 숟가락도 들 수 없는 딸을 돌보느라 일을 못해 벌이가 없다. 그래도 이사장을 면담하겠다며 밤새 공단 접수처를 지키고 앉아 있다.
“이사장 만나면 무슨 얘기 하고 싶으세요?”
“산재 인정해달라 그래야지. 이건희가 못하겠으면 좀 그냥, 사회가, 어느 회사를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사회가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해요. 내가 너희들 돈 주니까 너희들은 당연히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해야 한다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내가 가진 게 없으니까 얘를 공장에다가 보냈어요. 그것조차 정말 미안한데, 그 병이 들어가지고 사지육신 못 쓰고……. 잘 좀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
2003년 IBM 반도체를 대상으로 늙은 두 노동자가 소송을 한다. 제임스무어는 비호지킨림프종에, 알리다 에르난데스는 유방암에 걸렸다. 그/녀들은 “IBM의 독성 화학물질로 인한 유해한 작업환경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다국적 기업 IBM을 상대로 이들은 소속 노동자들의 암사망 위험이 일반인들에 비해 114.6%(여성 기준)나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5) 그러나 판사는 이들이 제출한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것은 IBM 사업장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적인 발병의 결과다. 어떤 노동자에게도 일 때문에 그들의 병이 생겼다는 증거는 없다.”
그 후 IBM은 중국과 대만 아시아 등지로 문제가 된 설비를 이전시킨다.
2010년 반도체 산업은 발암산업이 아니다. 1964년 담배는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아니었다.
IBM 노동자 알리다 에르난데스는 증언 중 이러한 말을 남긴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 가난한 채로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내가 반도체 산업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벗겨낼 기회를 가졌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제임스 무어와 나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겪을 고통을 미래의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고 싶은 말은?
이건희 죽어. -한혜경
하고 싶은 말은?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삼성에 가지 않을 거예요. -유명화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일했던 회사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건강 같은 거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노동자란 무엇이며 노동자의 인권이니 건강권 같은 문제는 선생님의 연애담을 듣는 자투리 시간에도 들어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유해한 작업환경 때문에 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지금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 정애정
하고 싶은 말은?
만약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내 딸은 안 죽었어요. 노동조합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병이 걸리게 했겠어요? 삼성에 있는 노동자들도 반성해야 되요. 다른 사람이 병 걸린다는 거는 삼성에 다니는 지금 그 사람도 병에 걸릴 수 있는 거라고요. - 황상기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를 다른 부모들은 겪지 않은 편안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딸 너무 예쁘고 진짜 사랑해. 가엾고. -김시녀
<참고자료>
반도체 산업과 백혈병 /박일환․반올림 지음/삶이보이는창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테드 스미스 외 지음/공유정옥 옮김/메이데이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존 우딩 ․ 찰스 레벤스타인 지음/한울아카데미
기흥공장의 화학물질 관리실태와 문제점 /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환경수첩(1997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엔지니어 지급용)
노동과 건강 /노동건강연대 계간지
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반올림 자료집 및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
*현실주의 문학운동을 추구하는 문학집단 '리얼리스트100'에서 발간하는 반연간문예지 <리얼리스트> 3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