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은 젊었던 시절 출장 차 왔다가 장불재 까지만 허겁지겁 올랐고 몇해 전엔 느림보를 따라
두번째로 입석대와 서석대의 비경을 처음으로 구경 했던 기억만이 그득한데 이번 산행은 무등산 북쪽
원효사 방향에서 꼬막재를 넘어 하늘이 숨겨 둔 절경 광석대와 규봉암을 경유하여 안양산으로 하산
한다는 산행계획을 보곤 어쪔 이번 생에서 다시 올 수 없는 마지막 기회란 생각에 등산끈을 조여 매고
매가리 없는 가운데 다리를 지팽이로 의지하여 감히 채비를 챙겨 본다.
경기도 광주는 넓을 광자를 이곳 광주는 빛 광자를 쓰는데 예전엔 무진주,무주 혹은 광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상대방의 성씨를 물어 보면서 본관이 어데냐고 물어 본다. 본관이란
그 성씨의 시조가 당초에 성을 사사 받을 적에 거주하던 고향 이라고 보면 된다. 안동 권씨는
시조 할배가 본디 경주 김씨 였었으나 후삼국 시절 공을 세워 고려의 왕 건 으로 부터 새로운 성씨인 권을
사사 받으면서 시조 할배가 안동땅에 거주를 하였기에 안동 권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
광주는 내 할머니의 본관인 광산 김씨가 유명하고 광산 김씨 중에서도 무등산과 많은 관련이 있는 분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용맹을 떨쳤던 충장공 김 덕영 장군이 계신다.
광주 무등산 이라면 수박과 함께 무등산 폭격기로 불렸던 야구선수 선 동열을 우선 떠 올리는데 이 무등산의
산명이 그 내력을 알아 보면 의미가 기묘하기 그지 없다. 무등산을 올라
장불재에서 입석대 그리고 서석대를 올려다 보노라면 높은 산 이라기 보단 한마리 그리즐리 베어 즉 거대한
회색곰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높은 산 이지만 정상부가 첨탑 처럼 결코 뾰족 하지 않아 이곳에
오면 파미르 고원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데 결코 뾰족해선 안 될 것이 또 하나 더 있다.
남자 가운데 토막이 바로 그것인데 끄트머리가 송곳 처럼 뾰족한 물건은 한마디로 젖도 아니다.
송이 버섯 처럼 저끝은 뭉툭하면서 쪄억 벌어 져야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즐겨 먹는 대파 쬭파 그리고 중파 하는 파의 원산지가 바로 파미르 고원이다. 그래서 파라는 이름이
붙여 졌고 봄이 되면 철쭉 보다 미리 피는 개나리의 원산지는? 개장국이나 개차반이 아니구요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입니다. 잠시 얘기가 엇찔로 빠졌는데
무등산의 무등은 불교 반야심경 중에서 나오는 시무상주 시무등등주에서 그 유래를 찾는 분이 많다.
더 이상 상주 즉 높은 것이 없으며 시무등등주는 이 만한 높이를 따를 높이가 없다는 뜻 이라기 보단
더 이상 비교가 불가능한 그 어떤 높이를 뜻한다고 한다. 시무등등주의 무등산은 전면부의 입석대와 서석대의
장엄함 보다 정상 후사면에 수줍은 새색시 처럼 아니 은자 처럼 숨어 계시는 광석대와 규봉 그리고 규봉암이
무등산의 진정한 보물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규봉암을 빼고는
무등산을 논하지 말라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원효사에서 출발하여 잠깐 걷다 무등산 옛길과는 잠시 작별을 하곤 꼬막재를 넘어 이 보다 더 좋은 길은 없어
보일 듯한 무등산 후사면 길의 정취를 한껏 즐기며 걸어 보는데 길 옆으론 비록 철이 지났지만 그래도 늦은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 보낼 수 없다고 뽀알간 철쭉들이 늙은 기생의 분 바른 볼따구니 처럼 약간은 쬬그라
들었지만 구래도 반갑기 그지 없다. 봄산엔 참꽃이라 불리우는 진달래 그리고 길을 가다 도저히 그 아름다움에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어 잠시 머무른다고 하여 척촉 이라고 불리우는 철쭉이 대부분이고 배수가 잘 되는
능선길을 벗어 나 수분이 많은 계곡길로 내려 가면 꽃닢의 색이 다소 연한 산철쭉이 있는데 이 산철쭉은 우리
느림보의 강 대장님과는 달리 다소 키가 큰 편이다.
규봉암을 올라 가는 목전에 교자상 처럼 생긴 석판이 하나 놓여 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느림보
대원들은 그곳에서 점심상을 펼쳤는데 무어라 형용할 말이 없다. 이런 밥상을 무등산의 무등상 이라고
하는 가 보다. 아마도 이런 맛있는 점심 한끼를 얻어 먹을려면 삼대가 크디 큰 적선을 하여야 가능하다고
한다. 은목서님은 드룹과 엄나무순을 커다란 소쿠리로 항거석 담아 오셨고 영애님은 쏘세지와 빵을 준비해
오셨는데 쏘세지 모양새가 예사롭지가 않아 몇가지 여쭈어 보았다. 원래
핫도그란 것이 사전을 찾아 보면 뜨거운 쏘세지를 구녕 뚫린 빵에 끼워 먹는 것이라고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핫도그 하면 한장의 춘화도를 연상키 마련인데 내가 집에서 쏘세지에 칼집을 내어 후라이팬에 구우면 옆구리가
터지고 색갈이 거무튀튀하게 변해서 모양새가 영 엉망인데 영애님이 준비해 오신 쏘세지는 불에 그을린 흔적도
없고 모양새도 비뇨기과에서 제대로 껍띠기를 벗긴 그 물건 처럼 매끈하기 그지 없어 보면 볼 수록 입에
넣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나는 대물이다. 내력을 물어 보니 비법은 참으로 간단하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면 된다는 것이다.
상상 속의 새라고 하면 봉황,주작,현무 그리고 고구려 시대에 많이 유행하던 세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가
있는데 삼족오의 유래는 본디 삼족인 이라고 합니다.
안양산에서 제법 급한 경사길을 내려 오는 삼족인 한 분이 내려다 보이기에 말을 걸어 보았다. 자네가
어쩐 일로 무등산을 찾았느냐고 인사를 건네니 언젠가 어데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며 반가운 얼굴을 한다.
자네와 내가 삼족을 길게 끌고 이산 저산을 다닌지도 제법 오래 되었구나
삼족에 힘이 빠지기 전에 이런 좋은 경치 한곳이라도 더 보면 증말 좋을 것 같네 그려
소문에 들으니 미국이란 나라엔 우리 보다 다리가 하나 더 달린 놈이 있다고 하네 조지 포맨 이란 헤비급
복서가 바로 그놈이져.
그러니 우리도 한살이라도 나이 더 묵기 전에, 그러니깐 죠지 시드니 신세가 되기 전에 전국을 많이 유람하세
그려.
빛고을 광주땅에서의 오롯한 하루 넘 행복한 하루 였습니다.
돌아 오는 느림보 리무진 내에서 스쳐 지나 가는 고속도로 풍광을 보노라니 규봉암에서 잠시 먼발치로
뵈었던 스님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자꾸만 떠 오른다.
높은 산에 불당 지어 불심공덕 한번 해 보았으면...
분당 탄천변에서 쏘세지맨 돌삐 드립니다.
첫댓글 십여년전..규봉암은 오두막에 불과했습니다.
부처님도 달랑 한 분..
그런데 사진에보니 처머가 살짝 들린 기와지붕에 ..
마당가에 관세음보살님도 계시고
사세가 많이 번창한 듯 싶습니다.
오래전에 규봉암 스님께서 점심먹는 우리에게 된장국을 주셨던 생각도 나구요 ㅎ
안양산에서 올려다보니 광석대 규모가 상당히 커 보였습니다.
규봉암 가까이에서는 그 규모가 보이지않지요.
그 산에 들면 그 산이 보이지 않듯..
안양산에서 바라 본 부등산은 둥그스럼한 옛 신라의 고분 같았습니다.
장불재에서 낙타봉을 타고 안양산에 이르는 백마능선에 철쭉이 고왔겠지요?
봄날의 무등산은 활짝핀 아가씨 얼굴처럼 발그레 어여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