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에서
김갑수
일흔이 다 되어가는 그 이발사는 약간의 수전증이 있는 듯했다. 물론 가위질이나 바리캉을 사용하는 동작에서는 별다른 불편이 없는 듯 했지만 면도를 하기 위해 장의자를 뒤로 젖혀 얼굴 가득히 비누거품을 칠할 때부터 시작되는 불안감은 면도질이 다 끝날 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손바닥이 축축해지곤 하였다.
거울 옆 벽기둥에 박아 놓은 넓적한 낡은 가죽 혁대에다 대고 여러 차례 쓱쓱 문질러 시퍼렇게 날이 선 삭도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면서 눈앞으로 다가오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딴에는 꼼꼼하게 면도질을 하느라 애쓰는 거북등 같이 딱딱한 그의 손바닥이 입술 언저리에서 한참을 머물며 자칫 콧구멍이라도 막을라치면 가뜩이나 오금이 저려 제대로 쉬지 못하던 호흡이 자못 질식할 지경이 되곤 하였다.
손님이 거의 없는 한산한 이발소인지라 서두를 것 없는 이발사가 달포에 한 번쯤 찾아오는 고향이 비슷한 단골을 맞아 행하는 일련의 이발 절차는 진부한 세상살이와 이제는 잊혀가는 옛 고향 이야기가 두서없이 섞여 족히 한나절에 걸친 장광설이 시들해질 무렵에야 끝나곤 하였다. 면도날이 스쳐나가는 조금 앞에서 한 마디씩 더듬어 나가는 무딘 손가락이 흡사 자벌레같이 얼굴을 짚어 나가는 동안 나는 이 숨 막히는 면도질과 장황한 설레발이 언제쯤 끝날지 가늠하느라 머릿속이 먹먹해지곤 하였다.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에 인접한 골목길 어귀의 허름한 이발소에서 규칙적으로 지나가는 둔중한 열차의 진동 소리를 세면서 따분하고도 지루한 이발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나마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거울 위 천장 가까이에 걸려 있는 밀레의 그림 <만종>이었다. 낡다 못해 바스러져 가는 액자 틀 안에서 희미하게 바래어진 그림 <만종>은 가뜩이나 어두운 색조의 그림에다 이발소의 칙칙한 분위기가 더해져 수확이 끝난 저녁 들판에서 은은히 퍼져오는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젊은 내외의 평화로우면서도 경건한 이미지가 도무지 살아나지 않는다.
뼛속 깊이 촌놈으로 자라난 나에게 밀레의 <만종>은 어린 시절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황혼의 들판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쁜 들 설거지를 하던 때의 평화와 고요 속으로 번져오던 교회 종소리가 오버랩되는 친근한 그림이다. 들으나 마나한 늙은 이발사의 얘기는 간혹 코대답하면 그뿐, 쇠스랑이 꽂혀 있는 밭이랑에서 몇 알 담기지 않은 감자 바구니를 사이에 두고 일손을 멈춘 채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가난한 젊은 농부 내외를 바라보노라면 농촌 화가 밀레의 자연과 삶에 대한 경건함이 문득 가슴 뭉클하게 전해져 온다. 때로는 알아서 좋을 것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화가 ‘달리’가 밀레의 이 <만종>의 본 그림이 죽은 아이의 시체를 묻고 난 후 부부가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은 나에게는 차라리 모르느니만 못한 것 같다. 너무도 참절한 분위기의 그림이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아이를 묻은 그림을 지우고, 그 위에 감자 바구니를 그린 것이라는 ‘달리’의 이 주장은 후에 특수촬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하니 그림에 얽혀 있는 사연을 애써 부인할 수도 없다. 그림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 그뿐일 것을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어서는 괜히 기도를 올리는 부부의 발밑 주변을 살피게 되고 어쩐지 그 부분이 전체 그림과는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니 이런 것을 두고서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익숙하였던 이 그림에 대한 ‘달리’의 주장은 여러모로 놀라운 충격이었다. 이토록 평화롭고 경건한 풍경의 화폭 속에 화가의 그러한 깊은 고뇌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문득 아릿한 아픔으로 전해져 온다. 낮과 밤의 교차점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은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가. 그러한 시점에서 아이의 주검을 묻고서 애절하면서도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젊은 부부의 헤아릴 수 없는 상실의 슬픔. 그러한 슬픔을 실어 대지 저 멀리까지 실어가는 저녁 종소리를 그려낸 밀레, 인간의 삶은 평면적 도형만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이어서 삶과 죽음, 선과 악, 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 추악함과 아름다움이 빛과 그림자처럼 동류항(同類項)으로 존재하는 것이 속성이라지만 유달리 음지 한 편으로 치우친 삶들 또한 결코 적지 않으니 인생 도처에서 겪는 애환들이리라.
“멀거니 눈 뜨고 잠자는 게요?” 드러누워 밀레의 <만종>을 올려다보며 꼬리를 물고 이어져가는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아슬아슬한 면도질이 다 끝나고 머리를 감자는 이발사의 말을 놓친 것이다. 이발사는 세면대에 구푸려 앉아 수그리고 있는 내 머리 위로 차가운 물줄기를 한 차례 쏟아붓고는 비누칠을 하여 잔뜩 거품을 일으킨 다음 억센 손아귀로 사정없이 머리통을 뒤흔들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그렇건만, 어린 자식을 묻은 흔적 위에 남루한 바구니를 그린 화가의 우수에 찬 고뇌가 낡고 빛바랜 화면을 넘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슬프면서도 따사로운 인간애로 전해져 온다. 남달리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 곡절 많은 젊은 시절을 지내오며 어렵사리 익힌 이발 기술 하나로 철도 변에 접한 골목길 언저리에 남루한 이발소 하나를 차려 평생을 살아왔다는 늙은 이발사. 변변한 일가붙이도 없고 도시 한 켠에 붙어 간신히 살아가는 처지인지라 내놓고 고향 갈 입장도 아니어서 어느 해 스산한 겨울날 고향 강변의 하얀 백사장만 쓸쓸히 거닐다 돌아온 후로는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았다는 늙은 이발사. 언제부터인가 그의 얼굴에 검버섯이 하나둘 피어나면서부터 “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며 장황한 수다마저 심드렁해 하던 그가 어느 날 희미한 추억 속에서만 그려지는 향수와 애틋한 미련을 낡은 이발소에 꼬깃꼬깃 남겨 놓고 훌훌 세상살이를 털고 떠나면서 동향인이라는 어설픈 의리의 만남도 끝이 났다.
이발소 벽면을 온통 도배하듯 붙여 놓은 ‘미워도 다시 한번’ ‘빨간 마후라’ ‘팔도강산’ 등의 70년대의 영화 포스터를 비롯하여 그의 부모가 썼던 물건으로 여겨지는 손풍로, 남포등, 화로를 비롯하여 외진 구석에 세워져 있던 도리깨 등속의 황당한 실내 인테리어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고향으로 가는 시월의 황금빛 길은 그 어떤 풍경보다도 훨씬 감동적이고 아름답다던 그의 고향 사랑은 낡은 액자 속에 박제되어버린 추억인 듯했다. 마흔이 훌쩍 넘었을 딸년의 생사조차 모른 채 다만 이 세상에 혈육 한 점 남아 있기만을 바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빛바랜 서러움과 쓸쓸한 눈물이 배어났다. 어쩌면 그가 평생에 걸쳐 낡은 이발소를 지키며 살아온 것도 일찍이 아내와 사별하고 홀아비 몸으로 키웠던 고명딸이 지지리도 가난하고 고리타분한 애비가 싫다며 뛰쳐나간 후로는 종적을 알 수 없었던 딸년을 한사코 기다렸던 간절한 부정(父情)의 세월이었으리라. 지지리도 못난 아비라지만 딸년의 얼굴 한 번 볼 수 있기를 입버릇처럼 소원하며 궁상에 찌든 홀아비 삶을 살았던 그가 쓸쓸히 세상을 하직하면서 끝내 돌아오지 않은 야속한 딸년을 용서하였을까? 아니면 남들처럼 번듯하게 살지 못한 못난 아비를 용서해 줄 것을 바랬을까?
문득,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며,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찾는 것. 궁극적으로 내가 기댈 곳은 오직 자연뿐임을 안다는 것.’이라는 법정 스님의 글귀가 생각난다. 삶의 필드(field)에서는 끊임없이 낡은 것은 떨어지고 새것이 태어나듯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는 것이며, 이별과 새로운 만남으로 끝없이 순환하는 원칙이 이 지구별을 유지하는 불변의 진리로 작용하는 한 세상은 늘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