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태양의학교-핵없는세상을위한교사학생학부모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cyclem
처음 이 책의 표지 그림을 얼핏 보면 무슨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검은색과 흰색의 어우러진 그림이 보인다. 이 그림을 우측으로 90도 회전시키면 세계지도이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이 책에는 전쟁에 관한 다소 철학적이고 복잡한 이론과 군사적이고 역사적 사실들이 쭉 열거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예상과 달리 특이한 인물인 클라우제비츠의 암호 풀이를 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저자인 히로세다카시는 자기의 유서를 쓰고 전쟁을 탐구하기 위하여 아무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해 자살행위라는 경고를 들으면서도 홀로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타고 팔레스타인 난민캠프를 들어갔다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다시 돌아온다. 저자가 그렇게 전쟁의 현장을 알기 위하여 유서까지 남기면서 샅샅이 전쟁을 탐구하려고 할 때에는 그동안 그가 얼마나 평화에 대한 강렬한 희구와 치열함으로 절박한 심정이었을까 생각하니 마음 속 깊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히로세다카시 자신이 ‘1인 대안언론’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의 처음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나오는 몇 구절들을 언급한다.
-유혈을 꺼리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에 의해 반드시 정복당한다,
-전쟁은 가혹한 것이며 여기에 박애주의와 같은 부녀자의 정이 개입할 여지 따위는 없다.
-전쟁의 수단은 딱 하나 그것은 투쟁이다.
그러면서 저자 히로세다카시는 자기가 직접 조사한 현실의 전쟁 역사와 천재 군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연결시켜서 왜 인간은 전쟁을 할까라는 암호문을 독자가 스스로 해독해 가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부터 오늘날까지 새로운 시대의 전투를 신문과 책을 참고하여 직접 조사해서 세계지도에 표시하기로 작정한다. 매해 어떤 전쟁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1년에 한 장씩 1991년까지 戰記지도를 만들어서 햇수로 47년 분 47장의 분쟁지도를 처음 부분에 그려 넣었다. 지도를 빼고 나서 글만 읽으려는 분들은 벌써 334쪽의 분량의 책 증에서 136쪽부터 시작해서 읽을 수 있는 수월함(?)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에게 가능하면 이 47장의 지도 부분을 한 번에 훌쩍 건너뛰지 말고 모든 지도에 꼼꼼하게 눈길을 보내서 클라우제비츠의 암호 열쇠 구멍에 맞을 첫 번째 열쇠를 찾아 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한다.
이 처음 부분의 47장 지도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전후 전쟁사’라는 기괴한 이름이 되는데...저자가 내린 결론은 제2차 대전 이후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을 해 왔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저자는 여기서 아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원리를 적용한다.
-전쟁은 단 한 번의 결전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전쟁 중에 양측은 서로가 서로를 도발하고 투쟁은 제한없이 발전하며 멈출 줄을 모른다.
-전투력을 양성하고 유지하며 사용하는 것, 이 모두가 군사행동이다. 하지만 양성해서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전투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만이 군사행동의 목적이다.
만약 미사일을 사들인다면 그것은 인간을 죽이기 위하여 샀다는 것이 클라우제비츠의 원리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흔히 말하는 것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사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군사력의 균형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원리 말이다. 군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적과 같은 수준으로 균형을 맞추면 전쟁에서 틀림없이 서로 찌르고 찔러서 죽는다. 균형이란 군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다.
인간은 전쟁을 하는데 무엇을 사용하는가? 그것은 바로 무기이다.
`
먼저 A-아토믹 즉 원자무기이다.
# A관련 장면1
1961년 1월 20일 존 F. 케네디가 미 대통령으로 취임한 나흘 뒤, 노스캐롤라이나 주 상공에서 폭격기가 갑자기 불을 내뿜더니 불덩이가 되어 상공에서 낙하하기 시작하였다. 이 폭격기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약 2천배의 폭발력을 가진 수폭2개가 실려 있었는데, 이것이 폭발하면 히로시마 원폭 4천발 분량이 단숨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다행이 그 중 하나는 낙하산으로 투하되어 무사히 지면에 닿았지만 남은 다른 하나는 폭격기에 실린 채 밭으로 돌진하였다. 이 때 기폭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1개만 빼고 모두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만약 그 때 마지막 안전장치 1개마저도 날아가 버렸다면.....
# A관련 장면2
1967년 6월 지중해에 파견된 미국의 항공모함에 분노한 소련의 코시긴 총리가 핵전쟁을 결의하였다.
# A관련 장면3
1979년 11월 9일 컴퓨터 실수로 전 미군이 핵공격 경계 태세에 들어간 사고 발생하였다.
# A관련 장면4
1980년 6월 3일, 미국방성의 컴퓨터 스크린에 ‘소련이 미사일 발사’라는 오보가 표시되어 전략 공군이 경계태세에 들어감과 동시에 핵 탑재기가 하와이에서 이륙하였다.
# A관련 장면5
1980년 9월 19일 대륙간 미사일인 타이탄이 폭발해서 탄두가 날아가 버린 사고가 발생하였다.
# A관련 장면6
1980년 11월 19일 미국 맥코넬 공군기지에서 소련에 미사일 발사 지령 신호가 내려져 허둥지둥 발사 플러그를 뽑아서 핵전쟁을 막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A관련 장면7
1983년 6월 10일 서독에서 미사일 운반트럭이 트레일러와 충돌해서 미사일이 고속도로에 내동댕이 쳐진 사고가 발생하였다.
...등 1년에 적어도 열 번 이상 인류 절멸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꼴이다. 이 모두가 지상에 5만발의 원수폭이 존재하기 때문이란다. 핵전쟁이 다른 통상 무기와 다른 점은 개전의 구실만 붙여진다면 선 공격이 최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핵무기는 전쟁을 사전 예방한다는 구실하에 유지 확장되어 왔다. 전후 47년 간에 걸친 분쟁사는 통상무기에 의해 몇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도대체 핵무기는 무엇을 방지해 왔다는 것일까? 놀랍게도 저자는 “핵무기는 핵전쟁을 방지해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핵무기는 그 밖에 다른 용도가 전혀 없다. 이 믿기 힘든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궁금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핵무기를 그렇게나 많이 만들었을까? 미국이 1개를 만들면 소련은 2개를 만들고 경쟁을 하는 사이에 어느 한쪽이 갑자기 20개를 만들면 다른쪽은 40개로 늘리고 하는 사이에 2차 대전 후 40년도 안되는 동안에 5만발의 핵탄두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만큼의 핵무기가 생산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연결지으며 말하기를
-전승국의 지위가 반드시 안정되는 것은 아니며 무력의 추가 지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2차전 이후 핵무기는 전장에서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을 계속해서 살해해 온 무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무기 이외의 나머지 무기들을 편의상 BCDE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정치가들은 핵무기를 좋아하지만 실상 군인들은 인간으로서 오감을 자극하는 이런 무기들이야 말로 그들의 전통성을 지키고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어 더 좋아한다고 한다.
B 바이오 –생물 무기
C 케미컬 – 화학 무기
D 다이너마이트-화약 무기
E 에지 Edge –날붙이 무기
인간은 무엇을 이용하여 전쟁을 하는가? 그 두 번 째는 ‘B’ 즉 생물무기이다.
마루타 인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쳤던 일본 관동군의 이시이 731 부대가 한국전쟁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체 실험과 세균폭탄을 개발하고 사용했다. 독가스 무기 또한 독일이 제1차, 2차 대전 중에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임한 미군은 옛 관동군 이시이 시로와 옛 나치군 발터 슈라이버의 자료를 이미 수중에 넣고 있었다. 대전 후에 곧바로 이들 연구자들을 긁어모아 전쟁 범죄를 면책해 주는 대신에 미군의 무기연구에 전면적으로 협력한다는 약속을 받아 내고 세균폭탄과 독가스 무기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마침내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옛 일본과 독일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고 하니 우방이자 2차전 피해국이었던 한국국민으로서는 좀 놀랍다. 냉전체제 하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해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도 그리고 비록 핵무기를 또 다시 사용하기에는 세계 여론의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리더라고 자임하는 미국이 잔학한 전범국가들이 개발한 비인도적인 무기들을 한국전쟁에서 사용하는 장면을 기술한 곳을 보니 정말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 B관련 장면1
1952년 4월 4일 중국 동북부 옛 만주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공군기가 하늘에서 작은 쥐의 시체를 대량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이 쥐들은 모두 페스트에 걸린 쥐들이었다.
# B관련 장면2
뽕나무 밭이나 목화밭 위에 나뭇잎이 산더미처럼 뿌려지기도 했다. 그나뭇잎은 뽕이나 목화에 붙어서 식물의 전염병ㅇ을 창궐하게 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 곳은 하필이면 농민이 삶의 근거로 삼고 있던 지역이었다.
# B관련 장면3
한국전쟁 중 항구 앞바다에 이상한 풍뎅이 떼가 갑자기 나타났다. 모두가 티푸스균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 곳은 풍부한 어장을 자랑하는 곳으로 다양한 어류가 일대에서 잡히고 있었다.
세 번 째는 C 즉 화학무기이다.
# C관련 장면
하늘에서 떨어진 폭탄이 터진 뒤에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며 가스상태로 모락모락 퍼져서 일대를 뒤덮고 점차 기묘한 색깔의 변화를 보이며 노란색으로 변해갔다. 이 가스는 나중엔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묘한 냄새를 풍기며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맴돌았다.
위에서 말한 BC의 이런 기묘한 낙하물이 떨어진 다음부터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절대로 물건을 줍지 마라고 엄중히 단속하고 사소한 물건을 봐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불안해 하는 생활로 내몰렸으며 연이어 피해가 여러 마을을 덮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 전신의 떨림이 멎지 않는 사람, 손발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된사람, 신경이 손상되어 헛소리를 하는 사람, 독가스를 마셔서 괴로워 하는 아이들의 비명, 질식 직전의 몸부림과 구토....여기 저기서 병자가 산을 이루었다. 사건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전반기 6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1952년 3월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이소문을 듣고 조사단을 한국에 급파해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급성 콜레라, 페스트, 티푸스, 이질 등 다수의 전염병균이 공중 낙하물에서 검출되었고 그 낙하물은 쥐, 파리, 빈대, 거미, 투구벌레, 조개, 식물류 등 다양했다. 게다가 독가스탄도 잇달아 발견되었다. 조사단은 이 모든 것들이 미군의 비행기에서 떨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1952년 만이 아니라 그 전년도에도 수 차례 사건이 발생했음을 확인한 증거를 갖고 돌아갔다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미국의 세균 외에도 독가스 살포,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고엽제 다이옥신과 독가스,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의 고엽제와 독가스, 아프리카 각지의 독립전쟁에서 포르투칼의 고엽제, 앙골라 분쟁에서 남아공의 독가스 사용이 악명높았다고 한다. 다이옥신의 독성은 청산가리의 17만 배로 살포한 지역의 모든 생명이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을 뒤집어 쓰면 온몸이 뜨거워지고 모체의 경우에는 절반 이상이 유산이나 사산을 하고 심지어 손발이나 뇌가 없는 장애아의 출산도 격증한다고 한다. 하얀 안개와 같은 것이 하늘에서 뿌려지면 숲은 온통 이상한 냄새에 둘러싸이고 사방에선 사람들이 하나 둘 고통에 몸부림치며 나뒹굴었으며 잠시 후면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만이 그 곳에 남았다고 한다. 타이완, 소련, 이라크, 영국, 이스라엘, 이집트의 각 전장에서 BC무기를 사용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관동군과 나치의 생산물이 지금도 세계 보이지 않는 구소에서 계속 증식하고 있으며 미국 한 나라만 해도 신경가스 저장량이 전 인류의 치사량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소련도 1979년 우랄의 스베르들로프스크의 생물 무기 공장이 폭발을 일이켜서 일대에 탄저균이 크게 유행했었다고 한다.
네 번 째는 DE 즉 다이너마이트로 상징되는 화약무기와 E(edge) 날붙이 무기이다.
오늘날의 폭탄은 노벨의 시대와 달리 진공폭탄, 접촉폭탄, 캡슐폭탄, 파편폭탄, 인폭탄, 클러스터 폭탄 등으로 바뀌었다.
진공폭탄은 거대한 건물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접촉폭탄은 공중 지뢰로 이것을 하늘에 뿌리면 접촉한 사람의 다리를 빼앗아 간다. 캡슐 폭탄은 무인 기관총이다. 폭탄이 쥐불놀이 하듯이 360도 고속회전하면서 탄알을 발사한다, 파편폭탄과 인 폭탄은 특히 잔인하여 책에 나온 내용을 다시 기술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이들 무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후에도 몇 천만명의 인류 목숨이 이슬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BCDE 외에도 인간은 별세계의 망상을 품고 또 다른 미지의 X 무기를 찾아서 끊임없이 발을 내디뎌갔는데, 1965년 8월 25일 존슨은 우주선의 군사 개발을 지령하였으며, 1983년 12월 2일 레이건은 우주 무기의 거대 프로젝트를 지령하였고 12월 23일에는 NASA가 우주왕복선으로 영국의 군사위성을 쏘아 올린다고 하였다. X 무기는 지금도 하늘을 어지럽게 날면서 우리 머리 위를 지금도 배회하고 있다. ABCDE 무기 모두 전 세계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에서 나오는 엄청난 지출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프랑스의 발명왕 뒤 페론이 기관총을 발명했을 때는 한 번에 24발의 총알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페론이 그 발명품을 루이16세에게 보여주었는데 국왕과 대신들로부터 “지극히 잔인하고 야만적인 도구”라는 격렬한 비난과 “당장 이것을 갖고 물러나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양식을 갖춘 점잖은 신사와 선비들 같던 정치지도자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도무지 예의와 염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로 바뀌어 갔을까?
인간은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전쟁을 하는가?
제 5장에서는 CIA를 다룬다. 전쟁 이야기에서 갑자기 왜 국가의 정보기관이 등장할까?
1965년 5월 1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 있는 마자 교도소에서 자동차가 달려 나와 시내 중심부의 알마르자 광장근처에 한 남자를 내려놓았다. 그는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중앙에 새까만 글씨로 “엘리코언 교수형” 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밤중에 광장은 인파로 넘쳐나고 처형대를 서치라이트가 환하게 비추고 이 처형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리아 전국에 실황 중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보낸 스파이 엘리코언은 시리아의 수뇌부에 숨어 들어가 장군이나 대통령의 친한 친구가 될 정도로 절묘한 수법을 구사하면서 아람 군대의 최고 기밀 정보를 이스라엘로 빼돌렸다. 모든 것이 들통난 1965년 5월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이후 6시간동안이나 밧줄 끝에 매달려 구경거리가 되었다. 당시 그는 마흔 살이었다. 이웃나라 이스라엘에서 자기 남편의 사형 실황중계를 듣던 아내는 미친 듯이 집안의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엘리코언의 처형으로부터 2년 뒤인 1967년 그의 정보를 토대로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하여 불과 엿새 만에 아랍 전군을 궤멸시키고 이스라엘의 승리를 결정한 것이 유명한 ‘중동6일 전쟁’이라고 한다. 근대 전쟁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일깨웠다고 한다.
과연 전 세계엔 어떤 정보 수집 기관이 있을까?
일단 미국의 CIA와 FBI, 소련의 KGB, 요즘 다시 말이 많은 한국의 안기부, 팔레비 국왕시대의 이란에서 암약하던 사바크, 이스라엘의모사드 등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 미국중앙정보부인 CIA가 발족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태평양 전쟁에 휘말리게 만든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공습은 사실상 그 기습을 전하는 암호문이 미국의 암호 천재 윌리엄 프리드만에 의해 해독되어 경고가 발해져 있었다. 이 때 군부가 첩보기관으로부터의 타전을 중시했다면 그런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2년째에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등 주요 구성원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만들었고 그 밑에 중앙정보국 CIA를 추가하였다. 하지만 초대국장 힐렌쾨터 해군 소장이 이끈 CIA는 실패를 거듭하였고 발족 2년 뒤에 소련이 원폭 실험을 하기에 이른다. 미국 전역에 기밀을 유출한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빨갱이 사냥의 광풍이 몰아쳤다. 이 때 이미 소련의 원폭실험으로 강력한 권한이 주어져 빨갱이 사냥에 위력을 보이던 CIA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간 것은 덜레스 형제였다. 의회의 승인없이 어떠한 활동도 가능하다는 보다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거대 예산이 책정되었고 활동보고조차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활동 구성원의 이름이나 인원수를 밝히지 않아도 되었다. 덜레스 형제는 “중앙정보국은 단순한 정보수집 기관이 아니다. 옛날 영화처럼 스파이 짓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군사행동을 몸소 행하라!” 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47장의 분쟁지도를 설명하는 열쇠로 “인간은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전쟁을 하는가” 라는 의문을 풀기 위하여 델레스 형제에서 시작하는 8개의 역사적인 사건을 골라서 CIA의 특징을 골라내고 그것을 군인의 원리와 맞는지, 그리고 CIA가 심혈을 기울인 파괴공작의 목적은 클라우제비츠의 이론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제1 사건은 앨런 델레스가 국장에 취임한 1953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이란은 중대한 정국을 맞았는데 이란의 대지주이자 민족주의자였던 모하마드 모사데크는 당시 새 팔레비를 몰아내고 영국이 장악하고 있던 막대한 이란의 석유를 국유화해 민중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고 있었는데, 1953년 8월 19일 이른 아침, 이란의 수도 테헤란 중심에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흡사 집시 행렬 같았는데 입에서 불을 내 뿜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거나 공중제비를 넘어 보이는 등 곡예와 차력 시범 같은 다양한 묘기를 선보였다. 대군중이 이들을 둘러싸고 구경을 하느라고 소동이 벌어졌을 대에 갑자기 그 집시들이 “모사데크를 타도하자!“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더욱 이상하게도 팔레비 국왕 만세! 라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갔다. 급기야 언제부터 대기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국왕의 군대가 사방에서 나타나더니 단숨에 모사테크 총리 공관을 포위하곤 단숨에 정부군을 항복시켜 버렸다. 파테미 외무 장관은 군중의 손에 학살되었으며 국민의 85% 지지를 얻던 모사데크는 하루 아침에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는 3년간 옥살이를 하고 풀려나서 평생 가택 연금을 당했다. 팔레비 국왕은 소라야 왕비와 더불어 귀국하여 제왕의 자리를 되찾았다. 그날 소동에 중대한 역할을 해낸 집시와 군중의 호주모니에는 미국의 달러가 넘쳐 났으며 국왕의 군대가 사용한 작전에는 미국의 병술의 그대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델레스 CIA국장은 워싱턴으로 돌아와 시치미를 뚝 떼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또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는 제 3사건은 이른바 덜레스 형제가 계획한 이른바 '진먼도 사건' 이다.
1953년 12월 4일~8일 한반도가 휴전에 들어간 상태에서 아시아에서는 소련을 대신하여 중국이 한국과 티베트는 물론이고 인도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미국은 버뮤다 섬에서 만약 한반도 휴전이 깨진다면 미국은 원폭으로 보복한다고 처칠에게 은밀히 전한 상태였다고 한다. 12월 8일 아이젠하워는 그 길로 곧장 유엔으로 달려가 ‘원자력의 평화이용’을 전 세계에 선언했다고 하니 같은 날짜에 원자폭탄 보복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생각해 내는 것을 보면 둘이 근본적으로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 하다.
다음 해인 1954년 1월 12일엔 덜레스 국무장관(형)이 대량 보복 전략을 발표했는데 이미 미국의 참모총장과 회견하고 있던 일본 개진당의 나까소네 야스히로는 아이젠하워, 덜레스와 연계플레이를 펼쳐 3월 2일에 원자력 예산을 중의원에 제출해서 통과시켰다. 어찌보면 지금 일본의 후쿠시마의 비극이 그 때 이미 시작된 셈이다. 6월 2일 델레스 장관의 주선으로 나중에 ‘방위청’과 ‘자위대’를 발족시키는 ‘방위2법’이 성립하였고 7월 1일에 정식으로 일본 ‘자위대’가 발족하였다. 이 때 이미 CIA 덜레스 국장(동생)은 타이완에 유령회사인 ‘서기업회사’를 설립하라고 CIA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곳에 미국 본토의 참모총장으로부터 대대가 파견되어 왔다. 그 다음 일련의 일본 군비증강과 연동해서 CIA의 군대가 들어왔다고 한다. 자위대 발족으로부터 3주일 뒤 7월 23일 타이완에서 날아오른 미군기가 중국의 비행기를 격추했다. 더욱이 진먼도에는 서기업회사 멤버가 잠입해서 5킬로 떨어진 중국을 향해 공격 중이었다고 한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한국전쟁 때 중국 본토에 대량의 세균 폭탄을 맞았던 중국은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여 진먼도에 대포탄을 쏘고 말았다. 그리하여 미국의 CIA 장교가 죽었다.
덜레스 형제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미국 일본 한국의 국방론을 단숨에 여론화하여 한국 일본의 군대를 이용한 값싸게 먹히는 미국 방위시스템을 확립하였다. 또한 원수폭 개발을 위한 거액의 예산을 고민하던 미국 국내와 일본의 전력회사를 펜타곤의 하청으로 이용하는 ‘원자력 평화이용‘ 시스템을 만드는데도 성공하였다. 우라늄 채굴, 정제, 원자력 연구개발 등을 산업계에 분담시키는 경제적인 원수폭 제조법을 확립한 것이라고 한다. 이 때 툭하면 소련의 흉포함을 전 세계에 경고하던 이들이 바로 덜레스 형제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소련의 실상은 독재자 스탈린이 죽은 후 말렌코프와 후루시초프 등이 스탈린의 한쪽 팔이었던 베리야를 처형해서 미국과 전쟁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동생 델레스가 CIA 국장에 취힘한 후에 대량으로 소련에 첩보원을 보내어 크렘린 내정을 조사했기 때문에 델레스 형제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도발하여 제3차 대전 위기를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은 극동의 군비를 굳히기 위해서 계획된 이 형제의 아시아 대작전이었다고 한다. CIA의 성격은 정보기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보를 손에 넣는 즉시 제멋대로 출동해서 그 문제를 마음대로 처리하는 통제받지 않는 군대로 변모해 갔다고 한다. 참 놀랍고 기가 막힌 일이다.
그 외에도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많고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들을 기술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 번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치를 싫어하는 CIA가 때로는 게슈타포와 손잡고 모사드까지 옛 나치를 이용하는지 역사적인 사건들을 설명하려면 국가나 민족 또는 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동기가 존재해야 한다고 추리한다.
- 전쟁은 방어에 의하여 일어난다. 공격은 물건을 취하려 할 뿐 투쟁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방어는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공격에 저항하는 것으로 전투를 직접 목적으로 한다.
델레스 형제에게 이 말을 적용하면 공산주의에 저항하려고 한 게 아니라 물건을 취하려 했을 뿐이라는 게 된다. 델레스가 왜 이란에 곡예사를 보내 모사테크 정권을 특이한 쿠데타로 쓰려뜨렸는지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사테크가 이란의 유전을 모조리 국유화 한 것에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앵글로 이란석유회가가 이란의 석유사업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모사테크에 의해 국유화되어 버린 것이다. 왜 덜레스는 미국 회사도 아닌 영국회사의 국유화에 그토록 화가 났을까? 덜레스 형제가 그 회사의 고문이었기 때문이다. 쿠데타조차 하나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전쟁지도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을 계속해 왔는데 그 연속성을 예리하게 관찰해 보면 군인은 'A'프로젝트를 완성하면 곧장 'B'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그저 단순히 연속해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체 프로그램이 계획되고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CIA가 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강력하게 방해했던 것도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치즘도 결국 사업이었다고....
이런 사업이 잘 되도록 작업을 성공하려면 우선 첫째로 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긴박한 상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물건을 취해야 한다. 이 때 물건은 개인의 수입이어야 하며 결코 국가나 민족의 수입이 아니다.
6장에서는 소련의 CIA라고 할 수 있는 KGB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요원 훈련과정을 보니 상상을 초월하여 훈련과정만으로도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1948년 2월 25일 체코의 공산당 내각에서 자유주의를 주장하였던 외무장관 얀 마사리크가 자택 창문 아래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의문스런 죽음의 행렬이 계속된다. 체코인들은 훨씬 나중에야 자기네 나라에서 소련의 스메르쉬(사형집행인)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스메리쉬의 명령자로서 예조프와 베리아가 절대 권력을 잡고 있을 당시엔 사형집행인들이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오늘날 자료로는 몇 백만 또는 2천만에서 3천만 명의 인간을 숙청했다고 하니...
7장에서 저자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저자의 결론은 ‘개인적 의지’라고 한다. 이제까지 클라우제비츠의 망령들에 불과한 한 줌의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라서 지구는 온통 학살의 피로 물들여졌다는 것이다. 이들 클라우제비츠형의 인간들에게 공통된 점은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적’을 만들어 내는 기질이라고 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그래로 받아들인 히틀러는 몇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였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팔레스타인 한복판에 유대인 국가 건설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은 나치 잔당이 CIA국장 앨런 델러스에게 인수되어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이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 피어났다. 한편 동측의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에 의한 힘의 사상은 마르크스, 앵겔스, 레닌으로 이어지고 스메르쉬, 스탈린, KGB로 이어져 내려온 한 가닥 굵은 실이라고 밝힌다.
" 1979년 이란의 팔레비 국왕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났을 때 국왕의 군대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민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탱크를 행해 태연하게 행진을 계속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탱크 바퀴 밑에 깔리는 사건이 막 일어나려고 하는 그 때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병사들이 일제히 총을 버리며 “우리는 적이 아니다!”라고 외치고는 서로를 끌어안았다고 한다. 그 순간 그것으로 전쟁은 멈추어졌다." 이것은 실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난 실제 사례이다.
명확하게 구별해야 할 현상은 이 세계는 동측과 서측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라 ‘클라우제비츠형 인간’과 ‘바보 이반’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우리를 부추기고 전장으로 몰아가서 결국 일반 백성들이 학살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고 인간의 의지에 의해 평화가 찾아온다.
저자는 독자들에게도 매일 신문에서 분쟁 기사를 골라서 세계지도 위에 기입하는 적업을 반드시 해보라고 권한다. 분쟁지도를 만들어 가는 작업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의 생명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과연 우리에게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분쟁을 해결할 만한 시간이 남아 있을까? 걱정할 뿐이었다.
* 국정원 관련 뉴스타파 기사 http://v.daum.net/link/47871004
* 이털남 국정원.NLL관련 오마이뉴스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7283&CMPT_CD=P0001
* 표창원 국정원 사건관련 거리 연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483
*표지그림 : http://cafe.daum.net/cultural/5Bk/831?docid=3339156212&q=%C8%F7%B7%CE%BC%BC%B4%D9%C4%AB%BD%C3&r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