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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배편으로 아테네 향해 출발하다
| 크리스천투데이 : 2023.10.11 06:03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00] 제2차 전도여행(28) 아테네(1)
마케도니아에서 복음 전한 뒤
베뢰아 외항 디온에서 배 타고
아테네로 이동 학자들 추측해
시외버스 타고, 경로요금 할인
▲데살로니가에서 아테네 가는 길. |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에 도착하자마자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중에, 이곳에서 그들은 빌립보에서 서로 헤어진 디모데를 만났다. 베뢰아에서 바울은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많은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성령의 불길같은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베뢰아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바울의 전도 사역을 방해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베뢰아 교인들에게 안내받아 해안으로 가고(그 후 아테네로 이동),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는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사도행전 17장 13-15절)”.
▲차창으로 들어오는 눈덮인 산. |
제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은 마게도냐(마케도니아)에서 복음을 전한 뒤 아덴(아테네)으로 갔다. 이때 바울은 베뢰아의 외항인 디온(Dion)에서 배를 타고 아테네로 이동하였다고 성경학자들은 믿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토사(土沙)가 항구를 메워 오늘날 디온은 더 이상 항구가 아니고, 그 유적지는 에베소의 경우와 동일하게 해안에서 6km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배를 타고 디온을 출발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앞에 있는 테르마익(Termaic)만을 지나서 남쪽으로 항해하여 아테네 인근 수니온(Sounion) 곶을 돌아 아테네로 갔을 것이다.
수니온 곶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아테나’ 여신을 경배하는 신전이 있다. 그러므로 아테네를 배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수니온 곶을 지날 때 아직도 기둥이 남아있는 포세이돈 신전을 볼 수 있다. 당연히 바울도 이곳을 지나면서 배 위에서 이 신전을 보았을 것이다.
이들 신전은 기원전 5세기 고대 아테네 정치지도자인 페리클레스 시대에 만든 것인데,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은 로마 점령 때인 기원전 86년 로마 총독 술라가 파괴해 버렸다.
▲라미아 마을의 식당. 필자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
아테네 도시의 이름은 아테나 여신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지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페르시아군을 기원전 490년 격파한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아테나 여신상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세워졌는데, 동상이 너무 커서 배를 타고 아테네에 오는 사람들은 배 위에서조차 먼 거리에서 이 동상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요람으로서 바울이 서기 50년경 방문했을 때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지성과 예술의 도시였다.
오늘날 튀르키예 다소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난 바울은 소년 시절 그리스인 가정교사를 통해 이미 그리스어를 배웠고, 가정교사 또는 다소에 거주하고 있던 많은 그리스인들을 통해 아테네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아르키트사 읍 인근의 호수 같은 바다. 이 지역에는 크고 작은 만(灣)이 많다. |
그러므로 바울은 아마 개인적으로 아테네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고,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바울이 이렇게 배를 타고 베뢰아에서 아테네로 간 것에 비해, 필자는 베뢰아에서 데살로니가를 거쳐 버스를 타고 아테네에 도착했다. 오늘날 베뢰아에는 바울 시대의 외항이 이미 육지가 되었으므로 여객선을 타고 아테네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시외버스 승차권 판매소에서 아테네행 버스표를 구입할 때, 필자가 65세 이상인 것을 알게 된 남자 직원은 경로요금이 적용된다며 30%를 할인해 주었다. 경로요금이 적용되는 줄 알았더라면, 빌립보와 베뢰아 등지를 방문할 때도 할인을 받았을텐데…. 아니면 데살로니가와 아테네 구간에만 경로요금이 적용된 건지, 필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여간 할인 혜택을 받으니 일단 기분이 좋다.
예정보다 5분 늦은 오전 10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라미나(Lamia) 마을에서 25분간 정차한 뒤 다시 출발하여, 아테네에는 예정보다 25분 빠른 오후 3시 50분에 도착하였다. 여행 도중 버스 창문을 통해 오른편에는 바위산과 멀리 눈덮인 높은 산도 보이고, 왼편으로는 거대한 호수처럼 보이는 잔잔한 바다가 들어온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0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
권박사 지구촌TV
https://www.youtube.com/@Dr.Kwon_Global-TV
아테네 입성한 바울, 건축 중이던 제우스 신전 보았을까
| 크리스천투데이 : 2023.11.08 05:37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01] 제2차 전도여행(29) 아테네(2)
아테네, 신석기부터 사람들 모여
페리클레스, 아테네 황금기 이뤄
B.C. 2세기 로마 점령된 후 몰락
신전 기둥, 104개 중 14개만 남아
▲아테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사도행전 17장 15절)”.
아테네(아덴)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전 594년 아테네 시민은 고대 일곱 현인(賢人)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는 솔론(Solon)에게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전권을 주었다.
그는 모든 시민이 각자의 소득에 따라 의무가 결정되는 금권(金權, Plutocratic) 정치를 했다. 이어 기원전 560년경 피시스트라투스(Pisistratus)가 빈민층의 지지를 얻어 참주(僭主) 정치를 시작하였다. 참주 정치를 시행하는 동안 아테네에는 많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들어서고, 시인들은 서사시를 읊었다. 그리고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가 민주주의 제도를 시작하였다.
기원전 490년부터 480년경까지 아테네는 그리스 영토를 침공하려는 페르시아군에 맞서 저항하였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기간 중 아테네는 두 번이나 불에 타버렸다.
▲서기 132년 완공된 하드리아누스 황제 기념문. 높이 18m의 문에는 ‘아테네는 제우스 신의 도시가 아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도시이다’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
그러나 지도자인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주도로 아테네는 다시 회복하고 해군력을 강화했으며, 기원전 477년 페르시아 침공에 대비하기위해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규합해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의 맹주인 아테네는 당시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폴리스)가 되었고, 크고 작은 도시 150여 개가 가맹한 이 동맹은 기원전 404년까지 70년 이상에 걸쳐 유지됐다.
테미스토클레스에 이어 등장한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그의 통치기간 중 아테네 민주정치는 크게 발전됐을 뿐 아니라 예술, 문학도 크게 부흥했다.
그러나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하자,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양분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전도여행 일정과 경로를 보면,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했으나 그 남쪽에 있는 스파르타를 방문한 적이 없다.
▲기원전 334년 세워진 리시크라테스의 합창우승 기념비. 왼쪽 뒤에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
필자는 개인적으로 스파르타를 좋아하므로 물론 스파르타를 방문하였으나, 바울이 방문한 곳이 아니므로 잠시 옆으로 새 스파르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 연재 제목이 ‘그리스 여행’이든 그리스에 관한 일반적인 것이라면, 스파르타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겠지만….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가 승리하자, 아테네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기원전 399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어리석은 민중에 의해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기원전 338년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에게 점령당했다.
그러나 필립 2세나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후일 부친을 승계하여 왕이 됨)는 그리스의 높은 문명과 문화를 높게 평가했으므로, 아테네를 파괴하거나 약탈하지 않았다. 그 후 기원전 2세기 아테네는 로마에 점령당하고 기원전 86년 로마 총독인 술라가 약탈을 하였으므로 이를 회복하는데 긴 세월이 걸렸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당시의 아테네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과거 그리스의 전성기는 지나갔으나, 그래도 도시는 수많은 신전, 기념비, 예술, 과학 등 과거 영광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바울이 보았던 건물이나 신전, 기념비(그리스 신들의 입상 포함) 일부는 아직도 같은 장소에 그대로 남아있다.
▲오늘날 스파르타 시내. |
시내에 있는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은 일부 기둥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최고 신으로 섬긴 제우스 신을 공경하기 위해 만든 이 신전은 그리스에서 가장 컸던 신전으로, 길이 110.35m, 폭 43.68m이다.
완공에 약 700년이 걸려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통치 시기인 서기 130년 완공됐다. 원래 신전을 받치고 있던 104개 기둥은 오늘날 14개만이 을씨년스럽게 서있고, 2개는 쓰러져 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 신전과 신상도 지진에 흔들려 무너졌고(그리스인들이 최고의 신이라고 여겼던 제우스조차 지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무너진 신전 석재는 튀르키예로 옮겨져 다른 건축물 자재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건축 중이던 제우스 신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과 함께 많은 우상(그리스 신들의 조각)을 본 것은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사도행전 17장 16-17절)”.
아테네 아고라에 세워진 11세기 그리스정교회 가 보니
| 크리스천투데이 : 2023.11.22 06:35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02] 제2차 전도여행(30) 아테네(3)
필자 느낌에는 이름만 기독교
오히려 불교 절에 들어간 느낌
의자 없어 예배드리기 어려워
제단 위 향 피우고 성자 그림도
▲아크로폴리스 위의 파르테논 신전. |
페르시아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스의 크고 작은 도시 150여 곳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기원전 477년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을 맺은 것은 지난 회에 언급했다.
델로스 동맹 참가국들이 공동으로 지출한 금액을 보관하는 금고가 기원전 454년 아테네로 옮겨지자, 아테네는 이 자금 일부를 횡령해 파르테논 신전 건설비의 일부를 충당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고대 그리스 문화의 상징으로서 기원전 432년 완공된 파르테논 신전 건축의 배경에는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 배경이 있다. 당시 아테네 정치인들은 델로스 동맹국들의 회비 일부를 횡령해 자기들 주머니를 채우기도 했다.
베뢰아 외항인 디온에서 바울을 태운 배는 남쪽으로 내려와 수니온곶을 지난 뒤 다시 아테네를 향하여 북상하면서, 사로니코스(Saronic)만 안에 있는 살라미스 섬과 에기나(Aegina) 섬을 왼편으로 바라보며 아테네 서남쪽에 있는 외항인 피레우스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본 아테네 시내. 사진 가운데 큰 건물은 복원된 아고라 구내 건물. |
테미스토클레스가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피레우스는 오늘날 그리스에서 가장 큰 항구다. 현대 들어 그리스 지도자들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현명한 정책 대신 당장 국민의 인기를 얻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포퓰리즘 대중영합 정치로써 나라의 재정을 바닥나게 하였다. 우리나라도 지난 정권은 과거 70여 년에 걸쳐 역대 정권이 만든 나라빚 600조 원을 불과 집권 5년 만에 1천조원으로 만들었고, 통계조차 조작하며 국민을 속였다.
그리스 정부는 국가 재정이 바닥나자 2016년에 중국의 국영회사에 피레우스 항구 운영권을 맡겼다. 덕분에 중국 해군은 이 항구를 지중해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아, 지중해에서 해상기동 훈련을 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기원전 478년 피레우스와 아테네를 연결하는 도로가 만들어졌고, 연변에는 방어벽이 세워졌다. 그러나 바울이 피레우스에 도착했을 때는 피레우스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특히 기원전 86년 로마 총독 술라는 항구를 파괴했다.
피레우스를 떠난 바울은 아테네에 도착하면서 우선 아테네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을 보았을 것이다. 이 신전은 아테네 시민이 가장 숭배하는 아테나 여신을 경배하기 위해 기원전 447년에서 432년까지 걸쳐 건축됐는데, 뛰어난 설계와 건축양식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1호로 등재돼 있다.
▲하늘에서 본 사로니코스 만. 인근 피레우스 항구는 사진 오른쪽 아래 방향이고, 아테네는 사진의 동북방향이다. |
당시 그리스인들은 아테나 여신을 신전에서 경배했을 뿐 아니라 아테나 여신을 위한 축제와 운동경기를 열었고, 전체 시민이 참가하는 시가행진도 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경사면에는 디오니소스의 야외극장이 있다. 바울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는 이 건축물 역시 기원전 86년 이미 파괴되고 없었으므로, 아마 수리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 가서, 아테네 사람들이 여러 신들을 섬기는데 그 가운데에는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쓴 단(壇)도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그는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했다.
기원전 150년 세워진 아고라(Agora)는 당시 시장의 역할뿐 아니라 아테네 정치, 행정, 상업, 그리고 종교의 중심지로서 도서관, 주거지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 시장에서 바울은 유대인을 포함한 아테네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기독교를 전했다. 오늘날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 보면 길고 큰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아고라가 있던 곳이고 이 건물은 현대에 들어 복원된 것이다.
▲피레우스 항구. |
옛날 아고라가 있던 곳에는 11세기 세워진 ‘거룩한 사도들의 교회(The Church of Holy Apostles)’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정교회 교회가 있으므로 필자는 그 안에 들어가 보았다. 필자가 느낀 그리스정교회는 이름만 기독교이지, 그 교회 속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오히려 절에 갔을 때 불교의 느낌이었다.
작은 교회 안에는 교인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다. 사람들이 바닥에 앉는다면 약 30명 정도 들어차 앉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또 불교처럼 제단 위에 향을 피워 놓았고 성자들의 그림을 여기저기 그려놓았다. 그 안에는 기독교의 구원에 관한 살아있는 말씀이 없고 형식적인 예배나 예불 절차가 있는 것이다(필자가 느끼기에는).
바울은 아고라에서 스토아(Stoa) 학파와 에피쿠로스(Epicurea) 학파의 철학자들과 변론했는데, 이때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에 대해 설명했다.
아테네에서 바울이 맞닥뜨린 두 철학 학파들
| 크리스천투데이 : 2023.11.29 06:12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03] 제2차 전도여행(31) 아테네(4)
아고라 뒤편 왼쪽엔 아크로폴리스
오른쪽엔 바울이 섰던 아레오바고
스토아, 개인 자유와 행복이 목적
에피쿠로스, 절제 통한 행복 주장
▲아크로폴리스 위 파르테논 신전. |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사도행전 17장 18절)”.
에비구레오(에피쿠로스)와 스도이고(스토아) 철학자들은 바울을 아크로폴리스 서쪽에 있는 아레오바고(Areopagus) 바위 언덕에 끌고 가서 예수와 부활에 대해 더 듣기를 원하므로, 바울은 많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아레오바고 언덕 위에 서서 강론하였다.
아고라에서 뒤편에 있는 높은 언덕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있고, 오른쪽에는 이 언덕보다는 조금 낮으나 바위로 된 언덕이 보이는데, 이곳이 아레오바고 언덕이다.
바울은 이곳에 올라가 예수와 몸의 부활에 대해, 담대히 아테네의 내로라 하는 철학자들에게 증거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증거하는 부활에 관한 복음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비웃고 어떤 사람들은 믿었다.
▲바위로 된 아레오바고 언덕. 건너편에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
사도행전 17장 18절에 나오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출현(기원전 336년)으로부터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변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등장(기원전 27년)까지 약 300년 동안을 가리키는 헬레니즘 시대를 지배한 철학이다.
바울이 쟁론한 두 철학에 대해 잠시 언급한다. 스토아(Stoa)는 ‘기둥들이 늘어선 강당 또는 강연장’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기원전 5세기 출생해 스토아 학파(Stoicism)를 만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Zenon)이 아테네에 있는 강연장 건물 속에서 그의 철학을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강연장에 모여 그의 철학사상을 논하였으므로, 그의 철학은 ‘스토아 철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스토아 철학은 신(神)의 개념을 부정하며, 지혜·용기·정의·절제를 4대 가치로 여기고 있다. 즉 이성(理性)·금욕(禁慾)·절제·관용을 행복의 의미로 중시하고 불행이 인간의 행복을 감소시킬 수 없다는 주장을 통해, 불행을 극복하는 철학이자 도덕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제논보다 앞서 등장한 소크라테스의 도덕론이나 플라톤의 행복론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 공동체를 전제로 하고 도시국가 공동체의 보존을 목표로 하는 도덕임에 비해, 스토아 학파가 말하는 도덕은 개인이 서로 갖고 있는 자유 실현과 행복의 원리로서의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연은 스스로 질서정연하므로 인생을 살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추구하는 허욕(虛慾)보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삶을 중시하는 철학사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는 서로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중요하지 않다는 스토아 철학 사상은 로마 제국의 귀족이며 정치인·사상가·문필가·철학자이던 세네카와 로마 제국의 제16대 철인(哲人)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본 아테네 시내(1). |
에피쿠로스가 창시자인 에피쿠로스 학파(Epicureanism)는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철학파이다. 고통을 피하고 만족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곧 행복한 삶이라는 이 철학에서 말하는 쾌락이란,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쾌락을 말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려면 그의 재산을 늘려주는 것보다 그의 욕정을 줄여주는 것이 더 나으므로, 절제하는 생활이 더 큰 행복을 누리게 한다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하였다.
즉 쾌락은 즐거운 것을 보태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을 제거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절제하는 생활이 쾌락을 가져 온다는 점에서는 스토아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다.
스토아 학파가 신의 개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학파 역시 신은 있어도 환희에 빠져 있으므로 인간 문제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사실상 신의 존재나 신의 주권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거나 견고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본 아테네 시내(2). |
아테네인들은 당대에 높은 수준의 철학과 수사학(修辭學)을 갖고 있었지만, 바울이 말한 예수와 부활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말이므로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로부터 더 듣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논쟁하다
| 크리스천투데이 : 2023.12.07 06:40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04] 제2차 전도여행(32) 아테네(5)
생명의 말씀으로 인간사상과 토론
바울 전도로 예수님 믿은 이들 있어
신전, 복음 흥왕 후 교회로도 사용
바울이 뿌렸던 복음의 씨앗, 결실
▲아레오바고 언덕(2004년). 오른편에 성경말씀 동판이 붙어있다. |
아레오바고 언덕 위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써 사망선(死亡線) 이하 인간사상인 철학을 주장하는 스토아 철학자들과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논쟁했다.
바울이 이들과 아테네 시민들에게 담대하게 행한 연설은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본문이 좀 길지만 모두 인용한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저희가 즉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사도행전 17장 22-34절)”.
▲아레오바고 언덕(2004년). 오른편에 성경말씀 동판이 붙어있다. |
바울이 아고라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울의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바울과 친하게 된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디오누시오는 후일 아테네의 기독교 감독이 됐고, 3세기 말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순교했다고 한다. 디오누시오는 오늘날 아테네의 수호성인이며, 그의 축일은 매년 10월 3일이다. 그의 기념교회가 아테네 시내의 스코파(Skoufa) 거리에 있다.
서기 2세기 아테네에서는 기독교인이 증가했고, 전설에 의하면 아리스티데스(Aristides)라는 기독교인은 로마 제국 14대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에게 직접 기독교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아테네에서 기독교가 흥왕하면서 그리스 신들을 위해 세워진 신전이 기독교 교회로 용도가 변경됐다. 즉 서기 5세기에는 파르테논 신전 밑에 있는 디오니소스 야외극장에 교회가 세워졌고, 서기 6세기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여러 신전이 교회가 되었다.
▲동판에 적힌 그리스어 성경(사도행전 17장 22-32절). |
그 후 비잔티움 시대에 아테네에는 많은 기독교 관련 건축물들이 세워졌으나, 1458년에 이슬람 오스만 제국이 아테네를 점령하자 아크로폴리스는 튀르키예인의 마을이 되었다.
1687년 기독교 베네치아 군대가 오스만 제국 군대를 격퇴하고 잠시 아테네를 점령했으나, 1690년 오스만 제국은 다시 아테네를 점령했다. 아테네는 1833년 자유를 회복하고 그리스가 독립하면서 수도가 됐다.
하여간 바울이 이곳에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써 아테네는 한동안 기독교의 도시가 됐었다.
▲(왼쪽부터) 아고라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과 아레오바고 언덕. |
아레오바고 언덕 계단(파르테논 신전 쪽에서) 옆에는 1938년 바위에 설치한 동판이 붙어있는데, 여기에는 사도행전 17장 22-32절 말씀이 그리스어로 기록돼 있다.
필자는 2004년과 2018년 아레오바고 언덕을 방문하였다. 바위 언덕 모습은 그대로이나, 언덕 입구에 심겨진 이탈리안 사이프러스 나무 두 그루는 지반이 흙이 얇은 바위이므로 14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충분히 내리지 못해 성장을 거의 못한 상태였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2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
권박사 지구촌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