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낙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반성적, 자족적, 긍정적
◆ 특성
① 일상생활에서 느낀 소박한 감동을 별다른 기교 없이 담백하게 표현함.
◆ 주제 : 주어진 순리를 따를 때 얻을 수 있는 삶의 만족과 즐거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잘 살아온 하루
◆ 2연 : 제시간보다 일찍 떠난 차
◆ 3연 :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으며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
◆ 4연 : 잘 살아온 하루를 보내는 행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굽은 길은 굽게, 곧은 길은 곧게 순리대로 살아가는 화자의 모습에서 여유 있는 삶의 행복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불행에 얽매이지 않고 주어진 것들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화자의 긍정적 삶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 나태주가 말하는 나태주 시인
한때 '참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마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요. 시인이 시인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참여'라고요. 대사회적인 발언을 하든 안 하든, 시를 쓰고 있는 한 우주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어디엔가 제가 썼습니다만,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의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라는 글이요. 마당을 쓰는 것 하나도 작지만 지구를 깨끗하게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심정이에요. 이런 걸 제 시와 연계시켜 보면 '가슴 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워졌습니다.'가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인들이시여, 절대로 남을 위해서 자신이 구원자라고, 혹은 예언자라고 말하지 말자고요. 제 생각에는, 시인이란 그저 세상에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듯이 그냥 존재할 뿐이거든요.
-'나태주 시인 대담', "웹진 시인광장" 27호, 2011
[작가소개]
나태주(시인)
출생일 : 1945년 3월 16일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학력 : 공주교육대학교
1945년 3월 16일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1971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대숲 아래서'로 등단하였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2007년까지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정년 퇴임하였으며, 공주시에 위치한 공주풀꽃문학관에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풀꽃'이 있다. 현재는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2007년 정년 퇴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