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은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가 떴다. 사진과 함께.
'친구야 이름 좀 가르쳐 주렴.'
아쉽게도 내 핸드폰의 크기는 아주 작아서 액정화면 넓이가 아주 작다.
사진으로는 나리 계통으로 보여지나 확신할 수 없어서 '사진으로는 모르겠다.'라고 답신했다.
잎과 줄기로 판단하면 영락없이 그 꽃이다. '참나리'라고 즉시 재답신했다.
중학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기에 받았다.
일전 성남 모란시장 근처의 담벼락에서 캔 것이라는 말을 거듭 듣고서야 나는 생각이 퍼득 났다. 대도로변 축대에 흙을 부어서 만든 허스름한 꽃밭(?)에서 키가 제법 큰 모종을 뽑았던 사실이 기억 났다. 손으로 우두둑 잡아채서 캤기에 구근은 없고, 단지 털뿌리가 겨우 있는 상태로 뽑혔던 장면을 떠올렸다.
참나리였다.
내 시골 텃밭에도 제법 많이 번지는 초화이다. 내가 그 작은 핸드폰에서 본 사진 속의 식물. 잎과 줄기를 보고서는 어떤 식물인지를 추정했다는 것은 내가 이미 그 식물의 실체를 제대로 안다는 뜻이며, 전초와 성장 과정이 이미 눈에 익었다는 증거다.
내가 이 꽃을 재배한 지는 여러 해나 된다.
퇴직한 뒤 서해안 벽촌인 고향으로 내려갔으며, 조금은 지루하고 심심하면 인근의 바닷가로 나갔다. 충남 서천군 마량포구의 벼랑에서 위험스럽게 두어 뿌리를 캤고, 당진군 난지도 섬에서도 주아(검정색 열매)를 건져 올렸고, 보령시 원산도 산자락 위에서도 열매를 줏었고, 대천해수욕장 남단 바위 벼랑에서도 모종을 캤다. 여러 군데에서 채집한 뒤에 텃밭에 심었고, 꽃 필 때마다 줄기에 열리는 주아를 따서 즉시 흙에 묻었다. 그 결과 지금은 개체수가 제법 많이 늘어났다.
이렇게 모종을 어렵사리 구해서 심고 주아를 흙 속에 묻는 과정에서 참나리의 전 생육과정을 눈에 익혔다.
전 세계의 나리류는 10,000 종이나 되지 않을까 싶도록 엄청나게 많다고 짐작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나리 종류가 많다는 뜻도 되듯이 내 시골 텃밭에는 여러 종류의 나리가 있다. 사골 장터와 서울 꽃시장에서 종종 샀다. 이들 나리는 무엇인가가 조금씩 다르며, 차이가 뚜렷한 것도 많았기에 내 관심을 끌었다.
2.
퇴직한 뒤에 시골에서 산 덕분에 식물에 관한 지식과 지혜가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그냥 풀이며, 나무였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다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각각의 존재가치를 갖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그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며, 알았다고 해도 그냥 건성으로 어설프게 아는 체를 했다.
식물 재배 과정에서 지금껏 내가 알았던 지식과 상식이 무척이나 잘못된 것도 알았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정확하고 치밀하게 알지 못한 채 얄팍한 지식으로 다 아는 것처럼 우쭐대는 꼬라지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아는 것이 적고 극히 피상적이고 애매한데도 마치 다 잘 아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점과 내가 나를 속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시골마당과 텃밭에 순하게 자생하는 풀들의 모양새 하나하나가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무척이나 다른 모습으로 순차적으로 변하고, 그들의 모습도 무엇인지도 모르게 조금씩이라도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물 이름을 몰라서 사진과 설명이 겻들인 식물도감 등을 펼쳐보아도 사진은 실물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싣지 못했다. 식물도감은 필요에 따라서 어느 특정 부위만을 강조했을 뿐이다. 꽃 도감은 꽃만을 집중으로 인쇄했으며, 산나물 도감은 잎새나 줄기에 국한하였고, 약초 도감은 한약재에 필요한 부위만 선별적으로 사진 찍고, 나무 도감은 나무의 어느 한 모습만 강조해서 보여주었다. 설명도 조금만 달았다. 나로서는 식물도감이 필요했지만 도감이 내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지 못했다.
호미로 캐면서 뿌리를 살펴보고, 물을 주면서 나날이 커가는 재배식물의 변이를 관찰하고, 가지와 줄기 그리고 수피, 꽃과 열매 등을 보다 세밀히 관찰해서야 하나의 식물을 대략이나마 윤곽을 그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도 완벽한 것이 아닌 '그냥 적당히 아는 수준'이었다. 계절에 따라서 식물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예컨대 이렇다. 시중에는 커다랗고 둥근 수박덩어리가 엄청나게 쌓여져 있다. 그게 수박이라는 사실은 아이들도 다 안다. 그런데 수박 이외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주 깜깜한 맹탕이다. 수박이라는 그 덩어리 하나만을 알지, 시장으로 나오기 이전의 수박 모습은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씨앗부터 발아, 떡잎, 잎, 줄기(넝쿨), 꽃, 어린 열매... 등등의 일련과정을 어찌 도시의 아이들이 알냐? 이런 과정은 직접 재배한 사람과 촌에서 자라고, 사는 사람이나 안다.
이처럼 지금껏 내가 알았던 지식과 지혜는 내 필요에 따라서 습득된 것이기에 그 실체는 극히나 편협하고 편견에 치우친다고 본다.
먹어봐야 맛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먹지 않고서는 그 맛의 진정성을 모른다. 이처럼 경험, 체험 등을 통해서 배우며 익히며, 숱한 실수와 반복된 행위, 다른 사람의 것을 통해 비교하면서 겉과 이면의 세계를 두루두루 알 때라야 제대로 된, 진짜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방금 전 보령농업기술센터의 직원한테서 문자가 왔다.
다음 주에 실시하는 '귀농인 영농교육'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면 전화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금 서울에 있지만 아내와 함께 교육을 받으러 시골로 곧 내려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비록 닷세 간의 짧은 오후 교육일지라도 나는 더 배워야겠다. 나이 들었어도, 완숙의 미를 위해서라도 배운다는 그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으면 싶다. 배우고 깨우칠수록 세상을 보는 안목과 분별력이 더욱 정밀해지고 사물에 대한 이해력과 결정이 더욱 찬찬해질 것이다.
2015.5.6.수요일.
첫댓글 어이고...괜히 형수씨까지 고생 시키시는구랴~~ㅎ
영농교육이란 게 뭐 들어 볼만 하던가? 그냥 책 한권 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괜히 고향 내려가고 싶으니까 그러시는거 아닌가?
그래 아파트에서 시간 죽이는 것 보다는 바람 한번 쏘이고 돌아 오시게나
그런 측면도 있게구먼. 오랫동안 비워 둔 집, 텅 빈 집에서 내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 바깥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매겠지. 그게 조금은 미안해서 그냥 바람 쐬게끔 하려고 강의 들어보라고 했지. 교육? 이 나이에 무슨. 사람 사귀는 재미이며, 또 성공한 귀농민의 농장을 혹시 방문할 수도 있으니까. 고향 가고 싶다는 거.. 어찌 그리 잘 아시우?
정말일세 아파트에서 시간 죽이는 거 이거는 사람 할 짓은 안 되는구려. 아직은 쏴질러 다녀야 하는데도
게으름이 잔뜩이나 붙었네그려. 아직은 길 떠날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지만 조만간 나도 새처럼 훌룰 떠나고 싶네그려. 길 떠나면 보이는 게 다 글감이지요. 댓글 감사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