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철만 반짝하는 메뉴가 있다. 메뉴판에 자기 자리도 없이 쫓겨나 살다가 요맘때쯤 얼굴을 내미는 콩국수가 바로 그 것이다.^^
오늘같이 숨쉬기도 힘든 찜통더위에 만사가 귀찮고 입맛 없을 때, 식당 고르기도 짜증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대충 때우기 쉬운데 이럴 때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 어떨까? 시원함과 영양을 골고루 갖춘 데다 맛까지 고소하니 이보다 더 좋은 여름철 음식이 어디 있겠나.
대두- 매주 콩
콩국수는 콩을 살짝 삶아서 곱게 갈아 채로 밭친 국물(콩국)에 국수를 만 음식이다.
콩국수는 파는 식당마다 그 맛이 다양한데 언제부턴가 순수 콩만 갈아 만든 콩국수를 보기 힘들어 졌다. 무얼 넣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걸쭉한 콩국수가 있는가 하면, 다 먹을 때 까지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는 요상한 콩국수도 있다.
얼마 전 종로의 작은 분식집 문에 ‘고창 콩으로 만든 콩국수’라는 글귀를 보고 반가와 한걸음에 달려간 적이 있다. 고창, 함양은 질 좋고 맛있는 콩의 재배지로 유명한 곳이기에 요즘같이 중국산이 판을 치는 시기에 웬일일까 싶어 잔뜩 기대를 하고 간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의 콩국수를 먹어 본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콩 국물 색깔이 누리끼리 한데다가 단 맛까지 났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게야. ㅡㅡ;;
여의도 식당가에서는 점심 때 마다 진귀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콩국수로 유명한 진주집이다. 02)780-6108 점심 때 이 집 콩국수를 먹기 위해 30분 기다리기는 예사다.
진주집의 특징은 수저로 떠먹어야 할 만큼 걸쭉한 국물에 있다. 도대체 무얼 넣고 어떻게 만들면 저리 될까 의문이 들 정도로 심하게 걸쭉하다. 면발도 지나치게 쫄깃하여 씹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집만 한 데 없어 보인다.
서소문의 진주회관 (02)753-5388) 역시 콩국수로 유명한 곳이다. 재료를 강원도 계약 농가에서 공수해 쓴다지만 진주회관의 콩 국물은 콩의 원래 향보다 다른 고소함이 짙다. 밀려드는 사람 때문에 허겁지겁 먹게 되지만 식당을 나서며 여기는 또 뭐가 들어 있을까 고민하는 게 오히려 즐겁다. 이 집의 특징은 일체의 고명도 없이 오로지 노랗고 쫄깃한 면발에 진한 국물만 부어 준다는데 있다.
우연인지 이 둘 식당의 영향을 받은 곳이 올해는 부쩍 늘었다. 콩 국물에 볶은 콩가루 넣기는 필수요, 대두분, 보리가루, 기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맛을 좋게 한다는 이유로 마구 투입되고 있다.
몸에 좋다면 뭐든 다 용서 되지만 콩국수는 순수한 콩국수면 좋겠다. 과거 엄마의 손맛 담긴 고소한 콩국수를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ㅜㅜ...
홍대 LG팰리스 뒤 맛샘분식
요즘은 예전처럼 콩으로만 만든 순수 담백한 콩국수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다. 그런데 길을 가다 우연히 순수 콩국수 집을 발견했다. 국물이 다소 약하긴 해도 일체의 것, 하다못해 깨도 뿌리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콩국수를 만났다.
부드럽고 고소한 콩 국물에 가느다란 소면(이 집은 소면도 무게를 달아 삶는다 ㅡㅡ;;;) 그리고 얇게 채 썬 오이. 이게 다다. 국물이 맑고 가벼우니 면인들 두꺼우랴... 국물과 면의 조화는 여기서도 통용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콩의 은은한 향만 남아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과거의 맛에 고맙기 그지없다.
<순 두부마을> 체인점의 서리태 콩국수
콩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서리태로 만든 콩국수다. 체인점인데 맛이 괜찮다. 색깔도 서리태 껍질을 벗겨 녹색 빛이 돌고, 콩의 입자가 굵어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다.
서리태 콩국수 시원한 콩 국물에 탄력있는 면, 영양가로만 따져도 훌륭해 보인다.
홍대 서교호텔 별관 옆 옛날집 02)338-9113
같은 서리태를 이용한 콩국수인데 위의 것과 너무도 다르다. 흑콩(서리태)을 껍질째 갈아 만든 콩국수다. 흑콩 외에 검은깨, 구운 콩가루등 각종 곡분을 넣어 고소하다. 진주집이나 진주회관의 기계로 곱게 가는 것과는 달리 이 집은 맷돌에 직접 가는데 그 맛의 차이가 어떻게 다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기계로 곱게 간 콩 국물은 걸쭉하고, 고소하지만 뭔가 탁한 맛이 나는데 이 집은 콩 이외의 다른 것이 들어가도 탁하거나 비밀스런 맛이 나지 않는다.
흑콩국수
껍질이 둥둥 떠다녀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다 먹을 때쯤은 고소한 맛에 이끌려 바닥을 싹싹 비우게 된다. 이 집의 영양소는 바닥에 다 가라 앉아 있다.^^
종로 미진의 메밀콩국수
건강을 생각하자면 끝도 없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콩국수에 새로운 열풍이 불었다. 50년 넘게 메밀 하나로 버텨온 미진에서 메밀 콩국수를 내 놓았기 때문이다.
미숫가루 향이 강한 콩 국물에 메밀국수를 넣었는데, 메밀국수가 조금만 더 쫄깃하다면 이도 매력적인 메뉴가 될 듯싶다.
이 밖에 온갖 재료를 이용해 만든 콩국수가 있다. 두부를 이용한 콩국수도 있다는 데 그 맛이 무척 궁금하다.^^
어찌됐든 콩국수는 콩국수다. 콩국수가 이것저것 섞어 맛을 더 고소하게 하거나 진하게 만들어 그럴 듯 해 보일지는 몰라도 각자 기억속의 콩국수는 향이 가득하고 고소한 콩 본연의 맛일 것이다. 그 맛을 찾아 이곳저곳의 콩국수를 먹어 보지만 서울에선 쉽게 만나지지가 않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콩국수를 먹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옛날 맛과 비교해 보는 건 어떨까? 순수한 콩국수의 기억을 따라 지금의 바뀐 내 입맛도 확인해 보고, 비릿해서 싫어했던 어렸을 때의 기억도 떠 올려보고, 또 요즘 식당들의 콩국수는 어떤지 비교도 해 보고... ㅋㅋ 복날이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은 두루 섭렵해 봐야겠지만 소화하기 거북한 음식은 조금 뒤로 미루고 가까운 식당에라도 가서 콩국수 한 그릇 시원하게 비워보자.^^
첫댓글 언제나 맑음님이 올려놓으신 콩국수 입맛당기네요. 나도 콩국수를 무지 좋아하는데 1년이면 약 300일점심은 콩국수로 떼우는데 나는 집에서 직접 서리태를 갈아가지고 메밀면으로 즐깁니다.
와 군침도네요.. 오늘 점심은 콩국수로 해야겠네요...
사리기만 하고 먹는 사람이 없군요. 잘 먹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