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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화쟁으로 해결하세요
2021.12.18 03:00 입력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달마산에도 차밭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산길로 들어섰다. 20년 전쯤 마을의 청년이 차나무를 심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숲을 헤치며 찾고 보니 차밭이라기보다 차라리 칡덩굴 밭이었다. 3000평쯤의 산자락에 차 씨를 심었는데 칡이랑 뒤섞여 자라다보니 차나무는 마치 무덤처럼 칡덩굴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칡덩굴 제거작업을 했는데 중장비로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얻으려면 칡뿌리를 뽑아낼 수밖에. 이렇게 세 해쯤 정성을 기울이니 제법 차밭이 되었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칡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순식간에 덩굴로 주위를 뒤덮는다. 도심을 걸을 때도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과 갈등의 덩굴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욕망과 갈등의 덩굴 속에서 숨을 헐떡이는 군상들을 보는 것이다.
갈등(葛藤)은 칡(葛)과 등나무(藤)가 얽히듯이 일이나 사건 등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상황을 뜻한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들이 충돌하며 발생한다. 갈등을 방치하면 관계가 파괴되고 삶이 피폐해진다.
한국사회는 유독 갈등이 많다고 한다. 이념과 정파 간, 빈부, 세대 등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가치관과 사회구조, 이해관계 따위로 어지럽게 얽혀 있다. 특히 친구,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이들과 갈등은 견뎌내기 어렵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집착은 상대에게도 같은 집착을 생겨나게 하고,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일으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집단 이익, 자기 이익에 고착되는 진영논리는 이치와 정의를 저버리게 만든다. ‘나는 정의이고, 너는 불의하다’라는 풍조가 만연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적대감이 분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인간을 ‘정보를 자기 욕구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즉 객관적 정보를 왜곡하는 정보처리시스템’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분별심이 몽둥이를 들고 싸우고 논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상태를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와 통한다. 분별심은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분에서 생겨난다. 분별심은 차별심, 차별심은 욕심을 일으킨다. 욕심은 칡덩굴이 차나무를 감싸듯 평화로운 마음과 지혜가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
불가에 화쟁(和諍)이라는 말이 있다. 갈등을 집단지성으로 전환하는 기술과 관련된 용어이다. 원효 스님이 처음 사용한 말로 ‘지극히 올바른 뜻을 펼쳐 여러 학파들의 서로 다른 주장을 화합하게 한다’는 이론이다.
원효 스님은 일심(一心)을 발견했다. 일심은 진실과 진리를 꼭 부여잡고 문제를 다루면 걸릴 것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단편적인 견해들도 모두 마음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한(큰) 마음으로 보면 한쪽 면에서만 보이던 여러 진실이 함께 온전히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옳다. 그러나 나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격하면 외눈박이가 된다. 내가 옳듯 상대도 옳을 수 있다는 이치를 안다면 평화로운 길이 열린다. 논쟁의 장이 싸움이 아니라 배움의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갈등의 상당부분은 자세만 바뀌어도 풀릴 수 있다. 우리는 이기는 것이 최고의 길이라고 듣고 배워왔다. 그러나 화쟁은 너와 내가 함께 이기는 길이다. 일심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근원을 말한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갈등의 당사자를 갈등의 해결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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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 내부에도 갈등이 상존한다. 불교 종무행정을 총괄하는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분출하고, 외부로 표출되는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이런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승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늘 불편했다. 최근 조계종의 화쟁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도 이 문제는 내 마음속의 큰 과제였다. 마흔두 명이나 되는 스님들의 의견을 듣고 설득하는 과정을 직접 겪었고, 마침내 해결이 되었을 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쟁에 참여했던 한 분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는 일이 전부’였다는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열반경>에서 부처님은 ‘대중들이 자주 모여서 법에 대해, 일에 대해 진실하게 토론하면 정법은 쇠퇴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셨다. 갈등의 시대에 이보다 더 적절한 가르침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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