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진실 게임'이 아니고 '선동 게임'이다. 상대의 심리를 위축시키거나 도덕성을 일깨우고, 그 과정을 통해 상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고도의 프로파간다' 전술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러시아 용병그룹 '바그너 그룹'의 군사반란 이후, 러시아를 상대로 한 우크라이나와 서방측의 프로파간다는 더욱 잦아진 모양새다. 거꾸로 말하면 러시아측이 그 빌미를 준 것이다.
프리고진의 군사 반란을 미 정보기관이 미리 알았다는 미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지난 11일(본보 13일자 보도) 팽(烹) 당할 처지에 놓인 프리고진에게는 3개의 선택지가 남아 있다며 그의 군사 반란 가능성을 3번째 선택으로 꼽았다.
군사반란을 일으킨 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음성 메시지를 전하는 프리고진/텔레그램 영상 캡처
3번째 선택은 이렇다.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 무장세력이 출몰하는 접경지역인) 벨고로드주(州)로 허가도 받지 않고(무단으로) 이동해 무기 창고를 점령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과격한 '몸값 행사'에 나선다. 그러나 이는 군사 반란이다.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에 맞서는 게 아니라 프리고진이 거듭 충성을 맹세한 푸틴 대통령에게도 대항하는 것이다. 다만,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이 이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벨고로드가 로스토프주(州)로 바뀌었을 뿐, 전후 진행과정은 다를 바 없다. 스트라나.ua는 이미 10여일 전에 프리고진의 반란을 미리 예측했다고 평가해야 할까?
2탄은 프리고진과 가장 가까운 세르게이 수로비킨 특수군사작전 부사령관 연루설이다. 미 NYT는 미국 정보기관의 소식통을 인용해 수로비킨 부사령관과 다른 장군들이 프리고진의 군사 반란을 지원했다는 징후가 있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반란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수로비킨 장군(왼쪽)이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전황을 보고하는 모습/러시아 SNS ok 국방부 채널
수로비킨 장군이 의심을 받는 것은, 프리고진이 그를 가장 군인다운 군인이라고 칭송했고, 또 그가 특수 군사작전 총사령관에 보임된지 몇 개월만에 부사령관(사령관은 프리고진이 비판하는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으로 강등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수로비킨 장군은 반란이 일어나자, 즉각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바그너 전사들에게 참여하지 말것을 촉구하는 등 선을 그었다. 크렘린도 그의 연루설을 "많은 소문의 하나"라고 일축했다.
사실 반란 기간에 프리고진과 함께 있었던 러시아군 장성은 유누스-베크 예프쿠로프(Юнус-Бек Евкуров) 국방차관(러시아 국방부의 12번째 차관)이다. 그는 로스토프나도누의 남부군 사령부에서 다른 장성 한 명과 함께 프리고진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됐고, 사태를 중재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전화를 프리고진에게 바꿔준 당사자다. 수로비킨 부사령관보다 예프쿠로프 차관의 연루설이 더 유력하지 않은가?
3탄은 28일 저녁(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전보 채널들에 의해 터졌다. 수로비킨 부사령관이 부관 안드레이 유딘 대령과 함께 체포돼 전 KGB 감옥인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돼 있다는 것이다. 시작은 러시아 군사 블로거 미하일 즈빈쿠크가 이날 아침 "수로비킨 장군이 지난 토요일(24일) 이후 보이지 않는다"며 "그가 심문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올린 글이다. 그러나 그는 오후 2시쯤 "수로비킨 장군의 체포는 그저 루머일 뿐"이라고 정정했다. 안드레인 유딘 대령도 자신의 체포를 부인했다. 다만, 휴가 중인 수로비킨 부사령관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수로비킨이 체포됐다"는 미확인 보도를 퍼나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러시아군의 방어 요새(위)와 방어 전략 설명/사진출처:스트라나.ua. 원본은 텔레그라프지
우크라이나는 기대와 달리 지지부진한 반격 작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까?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28일 "본격적인 반격작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했고, 잘루즈니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은 이날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과 전화통화에서 "전략적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레즈니코프 장관은 이날 파이낸셜 타임즈(FT)와의 회견에서 "서방에서 훈련받고 현대적 군사 장비를 갖춘 대부분의 여단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주력군은 아직 나서지 않았다"며 "러시아군 측에 큰 손실을 입혀 군사적 대응 능력을 고갈시키는 게 우크라이나군의 현재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잘루즈니 합참의장도 "우크라이나군은 계속 공격하고, 진전도 있다"면서 "적군(러시아군)은 거세게 저항하고 있지만, 동시에 큰 손실을 입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전쟁시 공격과 방어 사이의 손실 비율은 '공격 3, 방어가 1'이라는 게 상식이다.
스트라나.ua도 "러시아측은 키예프(키이우)가 공격에 나서면서 큰 손실을 입어 군사적 잠재력이 고갈될 것으로 주장한다"며 "러-우크라 양측이 모두 동일한 전략을 표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식적으로 어느 쪽에 더 논리적 허점이 보일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자.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州) 주요 도시인 크라마토르스크의 '리아 피자' 카페가 27일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어린이 3명을 포함해 최소 11명이 사망했고 60여명이 부상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크라마토르스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확인했다.
미사일 공격을 받은 크라마토르스크 '피자 가게'의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누가 뭐래도 민간인들이 드나드는 식당(피자 가게)을 공격하는 건 전쟁범죄이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모든 살인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정의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게 입증됐다"며 미사일 공격을 강력히 비난했다.
다만, 전쟁 상황에서 그 곳을 꼭 '핀셋 공격' 해야만 한 다른 요인은 없었을까? 그 단서는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가 제공한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 카페는 외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포격 당시에도 외국인이 몇명 있었다. 포격 후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에도 외국인의 모습이 보인다. 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은 우크라이나군의 외국인 군사 교관도 이 카페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또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이자 정치인이 저녁을 먹다가 미사일 공격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는 이번 폭격을 유도한 첩자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그는(첩자) 27일 피자 카페를 드나드는 방문객의 존재를 확인하고, 폭격 이후 상황을 촬영해 러시아군 정보국으로 보낸 혐의로 체포됐다. SBU는 "그가 보낸 정보에 따라 침략자들(러시아군)이 카페를 폭격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군 제 56기계화보병여단 사령관의 임시 거처가 폭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둘을 종합하면, 러시아측이 우크라이나군 기계화보병여단 사령관이 (외국인 군사 교관들과 함께) 그 카페로 들어가는 것을 첩자로부터 확인한 뒤, 폭격했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단순한 '피자 카페' 폭격일까? 우크라이나군 기계화보병여단 사령관을 겨냥한 '핀셋' 폭격일까?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세계 최대 '팩트체크' 콘퍼런스인 '글로벌 팩트 10(Global Fact 10)'이 개막했다. 전 세계 언론인과 학자들이 허위 정보 확산에 어떻게 대응할 지 논의하는 국제회의다. 세계 각국에서 온 '팩트체커'들이 코엑스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와중에 난무하는 '프로파간다'를 팩트체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