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모씨(30·경기도 안양시 석수동)는 얼마전 혈압을 재보고 깜짝 놀랐다. 최고 91mmHg, 최저 53mmHg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낮은 혈압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4년 전 그의 외할아버지가 저혈압으로 쓰러져 갑자기 돌아가셨던지라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혈압은 말 그대로 혈압이 정상치보다 낮은 것인데, 보통 최대 혈압이 100mmHg이하거나 최저 혈압이 60mmHg이하일 때를 말한다. 그러나 나이나 성별, 국가에 따라 조금씩 기준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혈압은 정말 병일까. 고혈압처럼 방치해두면 언제라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인가.
이에 대해 울산의대 순환기내과 박종훈 교수는 “건강상 특별한 문제없이 혈압 수치만 낮은 상태일 때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저혈압은 혈관이나 간, 콩팥 등 장기에 손상을 가져오는 고혈압과는 달리 일상 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증세는 아니라는 것.
그러나 저혈압은 때로 심근경색이나 패혈증 등으로 쇼크에 빠지거나 생명을 잃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갑작스럽게 혈압이 내려가거나 운동 또는 스트레스에 시달린 후 혈압이 떨어지는 급성 저혈압인 경우엔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일 저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지는 응급 상태가 발생하면 소금물을 먹여 혈압을 올려준다.
대개 저혈압은 키가 작고 마른 사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간혹 중년 이후 살진 여성에게도 많이 발견되는데, 자율신경계통의 이상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저혈압인 사람은 자주 피로하고 아침에 눈을 떠도 일어나려면 아주 힘이 든다. 얼굴이 창백하고 어깨가 아프며 손발이 잘 저리고 식욕이 없을 뿐 아니라 멀미처럼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머리나 목뒤가 당기고 아프며 어지럽고 심하면 실신하는 경우도 있다.
빈혈과는 관계없다
또 평소엔 아무 증세가 없으나 앉았다 일어설 때면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기립성 저혈압이라 부르는데, 1분 동안 가만히 서 있을 때의 수축기 혈압이 앉아 있을 때보다 20mmHg 이상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증세는 주로 노인층에서 나타난다. 나이가 들면 심박 출량이 갑자기 감소하고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지면서 뇌나 심장으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들어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외에 출혈이나 탈수로 인한 체액 감소, 이뇨제·항우울제·진정제·혈압강하제 등 약물을 복용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립성 저혈압은 정상인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증세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간혹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중에 식은땀을 흘리고 안색이 창백해지며 조회시 졸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혈압을 조절하는 신경이 예민해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눕게 하면 곧 원상으로 회복된다.
그런가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혈압은 빈혈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과 전문의들은 빈혈 증세가 있는 사람들 중에 혈압이 낮은 경우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서로 연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빈혈은 혈액 중 산소 운반을 맡고 있는 적혈구의 양이 부족해 나타나는 것으로 혈액 검사를 통해 저혈압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한편 저혈압은 만성피로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심장학자 휴 콜킨스 교수에 의하면 혈압이 낮으면 뇌로 공급되는 산소량이 줄어들어 만성피로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혈압의 생활요법
저혈압은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므로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 무리하게 혈압 상승제를 사용하면 고혈압과 호르몬 분비 에 불균형을 초래하는 등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이보다는 균형잡힌 식생활과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저혈압인 사람이 지켜야 할 생활 지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혈압을 가져올 수 있는 이뇨제, 혈관확장제, 안정제 등의 사용을 가능한 한 금한다.
둘째, 머리를 15~20도 이상 올린 상태로 잔다. 특히 이른 아침에 저혈압 증세가 잘 나타나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셋째, 앉거나 일어설 때 천천히 한다.
넷째,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샤워를 하거나 장시간 서있는 것은 좋지 않다.
다섯째,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먹거나 과음하는 것은 삼간다.
여섯째, 저혈압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 섭취량을 조금 늘린다.
마지막으로 저탄수화물, 고단백질 음식을 섭취한다. 저혈압에 좋은 음식으로는 들깨인삼죽이나 땅콩죽, 알로에잎차, 생오이즙, 대추, 뽕잎 달인 물 등이 있다.
저혈압은 혈액 순환이 나빠져 생기는 증상 이외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장수에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저혈압 증세를 이해하고 편안한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