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금부도사 왕방연의 애절한 詩 왕방연의 시는 1457년(세조 3)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올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지었다고 전한다. 김지남[1559~1631]의 『용계유고』에 따르면 1617년(광해군 8) 용계 김지남이 59세 때 영월을 순시하던 중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위치 왕방연 시조비는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 청령포에 있다.
형태 왕방연 시조비는 장방형의 3단 기단을 놓고 위에 몸돌은 자연석으로 세운 현대 비석이다.
금석문 왕방연 시조비는 몸돌 앞면에 한글로 ‘왕방연 시조비’라고 새기고 기단에는 ‘千萬里 머나먼 길의/고운 님 여희옵고/내 ᄆᆞ음 둘 듸 없셔/냇가에 안쟈시니/뎌 물도 내 안 ᄀᆞᆺ도다/울어 밤길 예놋다’라고 새겼다. 비의 몸돌 뒷면에는 왕방연이 시를 짓게 되는 동기를 새기고 기단의 뒷면에는 글쓴이와 세운 이를 새겨 놓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왕방연 시조비 [王邦衍 時調碑]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첫댓글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금부도사 왕방연 왕방연의 시는 1457년(세조 3)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올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지었다고 전한다. 김지남[1559~1631]의 『용계유고』에 따르면 1617년(광해군 8) 용계 김지남이 59세 때 영월을 순시하던 중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첫댓글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금부도사 왕방연
왕방연의 시는 1457년(세조 3)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올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지었다고 전한다. 김지남[1559~1631]의 『용계유고』에 따르면 1617년(광해군 8) 용계 김지남이 59세 때 영월을 순시하던 중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위치
왕방연 시조비는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 청령포에 있다.
형태
왕방연 시조비는 장방형의 3단 기단을 놓고 위에 몸돌은 자연석으로 세운 현대 비석이다.
금석문
왕방연 시조비는 몸돌 앞면에 한글로 ‘왕방연 시조비’라고 새기고 기단에는 ‘千萬里 머나먼 길의/고운 님 여희옵고/내 ᄆᆞ음 둘 듸 없셔/냇가에 안쟈시니/뎌 물도 내 안 ᄀᆞᆺ도다/울어 밤길 예놋다’라고 새겼다. 비의 몸돌 뒷면에는 왕방연이 시를 짓게 되는 동기를 새기고 기단의 뒷면에는 글쓴이와 세운 이를 새겨 놓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왕방연 시조비 [王邦衍 時調碑]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