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동물처럼 울지 못하는가 / 이기성
설거지를 마친 검은 상자 속에 그녀는 누워 있다. 죽음을 하얀 베일처럼 얼굴에 덮어쓰고서. 눈과 코와 입술이 파랗게 고요하다.
우리는 딱딱한 빵을 뜯으며 그녀의 맨발에 포도주를 부었다. 백발의 여인들이 땅을 치며 탄식했다. 하얀 꽃을 던지며 소녀들이 구슬프게 노래했다. 노래를 모르는 사내들은 옥상 위로 올라가 컹컹 짖었다.
지붕 위에서 헐렁한 그림자 한 벌이 펄럭였다. 물고기의 눈물처럼 뻐금뻐금 흘러내린 문장들이 검은 구멍으로 빠르게 흘러들었다. 장마의 마지막 날처럼 도시가 흥건했다.
시집 『동물의 자서전』(문학과지성사, 2020)
챗GPT 해설
이기성의 「우리는 왜 동물처럼 울지 못하는가」는 죽음을 중심으로 한 의식과 인간의 감정 표현의 한계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사건 앞에서 인간의 슬픔이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형식과 관습에 묶여 있음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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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1. 죽음의 초현실적 묘사
"설거지를 마친 검은 상자 속에 그녀는 누워 있다."
"설거지를 마친"은 죽음을 일상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묘사하여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검은 상자"는 관을 의미하며,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징합니다. 이는 우리가 삶을 마무리하며 '상자'에 담긴다는 은유적 표현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죽음을 하얀 베일처럼 얼굴에 덮어쓰고서"
죽음을 베일에 비유하며, 이를 신부의 면사포처럼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죽음의 신성함과 비애를 동시에 나타냅니다.
2. 의례적 슬픔의 형식
"우리는 딱딱한 빵을 뜯으며 그녀의 맨발에 포도주를 부었다."
빵과 포도주는 기독교적 장례 의식이나 제의적인 행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딱딱한 빵은 감정적 공허함과 의례의 무의미함을 암시합니다.
"백발의 여인들이 땅을 치며 탄식했다. 하얀 꽃을 던지며 소녀들이 구슬프게 노래했다."
장례식의 전형적인 장면을 묘사하며, 세대별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표출합니다. 그러나 이는 형식화된 애도라는 인상을 줍니다.
3. 본능적 울음과 인간의 한계
"노래를 모르는 사내들은 옥상 위로 올라가 컹컹 짖었다."
노래 대신 "짖었다"는 표현은 인간이 언어를 넘어 본능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려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사회적 틀을 벗어나 동물적 감정 표현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며, 인간이 자연스러운 울음과 애도를 잃어버렸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4. 슬픔의 파편화와 소멸
"지붕 위에서 헐렁한 그림자 한 벌이 펄럭였다."
그림자는 실체가 없는 존재로, 죽은 자의 흔적이나 감정의 파편을 나타냅니다. 이는 슬픔이 실체를 잃고 공허하게 떠도는 모습을 은유합니다.
"물고기의 눈물처럼 뻐금뻐금 흘러내린 문장들이 검은 구멍으로 빠르게 흘러들었다."
물고기의 눈물은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로, 슬픔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검은 구멍"은 슬픔이 흡수되거나 사라지는 공간으로, 감정 표현의 소멸을 나타냅니다.
5. 집단적 감정의 범람
"장마의 마지막 날처럼 도시가 흥건했다."
장마는 슬픔과 비애가 범람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도시가 "흥건했다"는 표현은 슬픔이 집단적으로 스며들고, 그것이 환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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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메시지
1. 인간의 제한된 슬픔 표현
시인은 인간이 죽음 앞에서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울음을 잃고, 형식화된 의례나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있음을 지적합니다. 동물적 울음(짖음)으로 돌아가려는 갈망이 드러나지만, 그것조차 인간의 세계에서는 불완전하게 나타납니다.
2. 죽음 앞에서의 인간 소외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운 경험입니다. 시인은 죽음과 그에 따른 슬픔이 진정성보다는 형식적 행위로 가려지고, 인간의 감정은 소멸되고 파편화된다고 말합니다.
3. 공동체와 애도의 위기
슬픔은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감정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현대 사회에서 집단적 애도의 형태조차도 진정성을 잃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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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기성의 「우리는 왜 동물처럼 울지 못하는가」는 인간의 감정 표현이 사회적 제약과 형식에 얽매여 본능적이고 진정한 애도의 능력을 상실했음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시인은 동물처럼 본능적이고 순수한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비판하며,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감정의 해방과 표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듭니다. 죽음 앞에서조차 형식에 갇혀버린 우리의 태도는 진정한 삶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