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천리(赤地千里)재해를 입어 황폐해진 땅이 끝없이 넓다는 뜻으로,
입춘 뒤에 오는 첫 갑자일에 비가 오면
봄에 가뭄이 들어 천 리의 논밭이
황폐해지고 흉년이 든다는 말이다. 赤 : 붉을 적 地 : 따 지 千 : 일천 천 里 : 마을 리비가 오랫동안 안 와 물 부족으로
나타나는 기상 재해가 한발(旱魃)이다.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황제(黃帝)의 딸 이름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영웅 치우(蚩尤)와
황제가 격전을 벌일 때 한발이 도와 폭풍우를
날려버린 이후 계속 땅이 메마르기만 했다 하여
가뭄의 대명사가 됐다.칠년대한(七年大旱)은 은(殷)나라
탕왕(湯王) 때의 칠 년 동안 계속됐던 큰 가뭄을 말한다.
이렇게 재해가 심해 땅이 갈라지고 온 백성이
굶주리면 왕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정치를 잘못했는지, 뇌물이 성행하는지 등
여섯 가지를 든 것이 육사자책(六事自責)이다.이보다 덜한 가뭄이지만 삼년을 계속한 것이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아 사방천리(千里)가
붉은 땅이 됐다(赤地)고 하는 진(晉)나라다.
여기에는 특이하게 전쟁이 아닌 음악이 원인이다.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의 영공(靈公)이
진나라로 가는 도중 하룻밤을 유숙할 때
신비한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악관을 시켜 채록한 영공이
진 평공(晉平公) 앞에서 연주하게 하자,
진의 악관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이라며 중단하게 했다.음악을 좋아하는 평공은 고집을 부려
끝까지 듣고 더 감각적인 음악을 청했다.
국력이 약해지고 재앙이 생긴다고
경고해도 끝내 연주를 시켰다.
홀연 서북쪽에서 흰 구름이 솟아올랐고
이어 폭풍우가 몰아쳐 지붕이 날아가자
좌우의 대신들이 놀라 도망쳤다.
평공도 두려워 바짝 바닥에 엎드리고 몸을 숨겼다
(平公恐懼 伏於廊屋之閒)
평공공구 복어낭옥지한.이후 진나라에는 큰 가뭄이 들어
삼년 동안 천리 이내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晉國大旱 赤地三年)
진국대한 적지삼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악서(樂書)에 실린 이야기다.
가뭄의 피해를 말하는데
적토천리(赤土千里)라고도 한다.
-옮긴 글-
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