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에는 때 아닌 ‘수혈 논쟁’이 일어났다. ‘늙은 피’를 빼고 ‘젊은 피’를 공급해야 한다는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것. 당시 ‘젊은 피’의 대표적인 얼굴로 차출된 선수가 이영표(25·안양 LG)였다. 그는 ‘벼락스타’라고 불릴 만큼 대표 경력이 전무했던 무명 선수.
그가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 동기였던 신병호가 대표팀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그가 대신 들어가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만약 신병호가 부상하지 않고 계속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면 과연 그에게 2002월드컵에서 뛸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을지 궁금하다.
대표팀에서 처음 생활할 때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은 평소 존경하던 선배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황선홍은 이상형으로 꿈꿨던 모델. 감히(?) 한 팀에서 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자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여자친구를 소개받으려고 주위 사람들의 ‘무수한’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다른 동료들이 여자친구와 전화하거나 틈을 내 잠시라도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면 그는 곧바로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다.
그래서 소개팅 자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여자 보는 안목이 무척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소개해 주는 사람마다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을 한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성실과 노력으로 대변되는 그는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이래 단 한 번도 대표팀 탈락의 쓴맛을 본 적이 없다. 다른 선수들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지만 ‘소금’ 같은 자세로 월드컵 무대를 누빌 것이라고 한다.
‘아파치’ 김태영, 압박수비도 아파치처럼
외국팀과의 평가전이 끝난 뒤 상대팀 선수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한국 선수를 꼽아달라고 주문하면 많은 선수들이 수비수 김태영(32·전남 드래곤스)을 지목한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저돌적이고 악착같은 플레이로 펼치는 그의 압박수비에 시달림을 당한 터라 그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상대 공격수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게 주특기일 만큼 수비에 관한 한 ‘최고’임을 자부한다.
좀처럼 웃지 않는다고 해서 ‘아파치’라 불리지만, 끈질기고 거친 스타일로 인해 ‘아파치’란 별명을 갖기도 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험난한 과정을 걸어왔다.
형들이 모두 축구를 했는데 학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부모님이 축구 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던 것. 축구에 대한 열정은 마침내 부모님을 항복시켰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맘놓고 축구공을 찰 수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때는 주전 한 명에 후보 2명이 끼워서 가는 형식으로 금호고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주전이 아니라 덤으로 포함된 ‘깍두기’였다. 동아대 졸업 후 국민은행에서 생활할 때도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95년 전남 드래곤스에 입단하면서부터 그의 축구인생은 비로소 ‘쨍’하고 해뜰 날을 맞았고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대표팀에서 활약하게 됐다.
축구를 어렵게 시작했고 평탄치 않은 선수생활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터라 그는 축구에 대한 소중함, 간절함, 자신감이 차고 넘친다.
어린 설기현은 별명이 왜 ‘영감’일까
설기현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설영감’, 히딩크 감독에게는 ‘쎄올’이라 불린다. 나이(23)답지 않게 속이 깊고 말수도 적다. 씩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영감이다. 청소년축구대표 시절부터 영감이라 불렸으니 이제는 ‘쉰 영감’이 됐다.
물론 공식 별명은 한국판 히바우드라 해서 ‘설바우드’지만 영감이 더 잘 어울린다.
설기현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89년, 탄광사고로 아버지(설용식씨)를 잃은 후 말하기가 싫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인 설기현을 유난히 사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를 잃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리라. 설기현은 벨기에에서 귀국할 때마다 정선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가장 먼저 찾는다.
설기현은 배우자도 일찍 정했다. 이성을 두루 만나보고 짝을 정하는 요즘 신세대와는 달리, 광운대 1학년이던 98년 학교 친구의 동생인 윤미씨를 만나 철부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 철부지 사랑이 약혼으로 이어져 벨기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생활했고, 오는 8월이면 아기까지 태어난다. 설기현은 아내, 아기와 함께할 32평짜리 아파트를 보금자리로 마련해 두었다.
설기현은 이번 월드컵이 끝난 후 벨기에보다 더 넓은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할 계획이다. 히딩크 감독도 설기현이 네덜란드 특급 스트라이커 오베르마스와 흡사하다며 영국무대 진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부추기고 있다.
사실 설기현과 오베르마스는 공통점이 많다. 두 선수 모두 파워풀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득점 감각이 뛰어나다. 설기현이 히바우드, 오베르마스 등 외국 선수들과 자주 비교되는 것은 그만큼 플레이 스타일이 빅 리그(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등)에 어울린다는 얘기다. 어쨌든 이번 월드컵은 설기현에게는 빅 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시험무대인 셈이다.
히딩크 총애 한 몸에… ‘얼떨리우스’김남일
얼떨결에 월드컵 대표가 된 김남일(25)은 축구도 얼떨결에 시작했다. 큰형이 축구 하는 것을 보고 송월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화를 신은 것이다.
김남일은 부평고 1학년 때 축구선수로서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축구부에서 이탈한 것은 물론 아예 가출까지 한 것이다. 그 기간이 무려 8개월이나 되었다.
3형제 중 막내인 남일을 누구보다 아꼈던 아버지 김재기씨(51)는 유흥업소 웨이터로 손님을 맞이하는 남일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무조건 남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눈물로 호소했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데 충격받은 남일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곧바로 학교 축구부 합숙소를 찾았다.
김남일은 신세대지만 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받아 ‘황태자’ 소리를 듣지만 오로지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 임할 뿐이다. 김남일이 처음부터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8월15일 체코와의 경기에서 히딩크 사단의 일원으로 처음 A매치 경험을 할 때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많이 했다. 머뭇거리다 체코의 네드베드 선수에게 볼을 빼앗겨 골로 연결되었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인천 무의도 고향에서 아들이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고 돼지 3마리를 잡고 하루종일 잔치를 벌인 아버지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김남일은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를 더 이상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남일은 경기마다 상대 스트라이커의 전담 마크맨으로 기용되었고, 그때마다 무실점으로 막아 까탈스러운 히딩크 감독의 주전 낙점을 받아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되었다.
제주산 오뚝이… 2전3기 최진철
늦깎이 국가대표 최진철(31)은 벌써 학부형이다. 아들 완길(6)은 유치원에 다니는데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아버지 자랑을 한다. “우리 아빤 월드컵 대표야. 그것도 주전 수비수란 말야”라며 어깨를 쭉 편다.
최진철의 아버지 최지수씨(54)도 아들이 자랑스럽다. 아들 3형제 모두 축구를 시켰는데 진철이 처음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최진철은 2전3기로 월드컵 대표가 되었다.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미국 전지훈련까지 갔으나 정작 본선에는 얼굴도 내밀지 못했다. 훈련에만 참가하고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지역 예선대표 멤버였지만 벤치만 지켰고, 프랑스 땅은 밟아보지도 못했다. 이 같은 쓰라린 경험이 최진철을 더욱 분발하게 했고, 지난해 9월부터 붙박이 국가대표가 되어 이제는 스타팅 멤버로 출전하게 되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대표선수 가운데 가장 큰 키(187cm)와 당당한 체격에서 나오는 몸싸움 능력, 헤딩력을 높이 샀다.
최진철은 지금 수비를 맡고 있지만 제주도에서 초·중·고교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팀의 주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숭실대학에 들어가면서 수비수로 변신했다.
숭실대를 졸업하고 프로축구 전북 모터스에서는 스트라이커로 변신해 2시즌 동안 무려 17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이제 월드컵대표에서 다시 수비수로 변신한 것이다.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지난 5월 초 제주도 전지훈련을 했을 때는 제주도 출신 중 유일하게 월드컵 대표선수라는 이유로 제주도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진철이 형님, 이번에 큰일 한번 내봅서”라는 플래카드가 훈련장에 나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