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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와 무안을 가르는 영산강은 한국의 4대 강3에 들 만큼 큰 물줄기였다. 하구 둑 공사로 옛 위세는 사라졌지만 강 따라 흐르던 맛 줄기3만큼은 아직 살아있다. 눈 내린 다음 날인 6일 아침, 영산강에 물안개가 피었다.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
영산포 홍어·나주곰탕·양파 한우·명산 장어… 지리 시간에 '한국의 4대 강'이라며 꼭 외워야 했던 영산강(榮山江). 실제 둘러보니 진짜 큽니다. 큰 물줄기 셋을 포함 1345개 물줄기가 총 2740㎞. 유역면적이 광주와 나주, 목포 3개 시(市)와 6개 군(郡)에 걸쳐 3429㎢로 전남 땅의 3할을 차지합니다. 국내 강 중에서 유일하게 등대가 있었죠. 영산강을 오르내리는 선박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어르신들은 영산강을 '물고기와 조개가 지천으로 깔려있던 강'으로 기억합니다. 장어, 숭어, 뱅어(빙어), 웅어, 잉어, 자라, 복어가 어찌나 많았는지 일제시대 일본 어부들이 몽탄나루에 모여 살았을 정도지요. 기름진 땅과 풍요로운 강이 만나는 이곳 영산강 유역에서는 화려한 음식문화가 발달했지요.
다 흘러간 영산강의 영화(榮華)입니다.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1972년부터 나주·담양·장성·광주댐이 건설되고 1981년 무안 삼향과 영암 서호를 잇는 하구둑이 바닷물의 유입을 막았습니다. 물이 줄고 강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물고기도, 물고기를 잡던 배들도 사라졌습니다. 한때 추자도 멸치, 흑산도 홍어를 잔뜩 실은 배들이 닻을 내리던 영산포는 얕은 개천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대를 이은 손맛과 노하우가 댐을 세우고 둑으로 막는다고 쉽게 사라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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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집'의 나주곰탕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
나주곰탕 국물은 여전히 맑고, 무안 명산 장어구이는 촉촉하고 부드럽습니다. 무안 '양파한우' 생고기는 인절미처럼 쫄깃하고, 제대로 삭힌 영산포 홍어는 코를 톡 쏘는 맛이 일품입니다. 영산강 큰물 구간 50여㎞를 끼고 있는 전남 나주(羅州)와 무안(務安)의 풍성한 먹을거리를 소개합니다.
::: 청순하고 세련된 맛 나주곰탕
'고기국물이 이렇게 맑을 수가?'
나주곰탕은 고기를 우린 육수가 얼마만큼 세련되고 섬세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나주곰탕은 나주읍성 안, 지금 '매일시장' 자리에 있던 5일장을 찾는 장꾼들에게 팔던 것이 원조로 알려졌다. 소 머리고기와 뼈, 내장 등으로 끓이는 곰탕이다. 나주시 문화관광해설사 김복순(53)씨는 "나주 사람들은 나주곰탕을 안 먹는다"고 했다. "집에서 먹는 걸 뭣 하러 사 먹어요?"
나주 매일시장 부근에 나주곰탕집 10여 곳이 몰려 있다. 이 중 가장 역사가 오랜 집이 '하얀집'이다. 하얗게 페인트로 칠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이 좁고 길다. 오른쪽 벽을 따라 테이블 15개 정도가 길게 늘어섰고, 왼쪽 벽을 따라 커다란 가마솥 2개와 기름을 걷어내는 스테인리스 통, 고기를 써는 커다란 도마가 나란히 놓여 있다. 뒤 선반에는 뚝배기 수백 개가 가지런히 쌓여 있다. 가마솥은 4대를 이어 100년 가까이 사용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윤이 반짝반짝 난다.
국밥을 주문하자 큰 들통에 담긴 밥을 뚝배기에 담고 국자로 곰탕을 붓는다. 얌전하게 썬 파와 달걀 노른자 지단, 깨, 고춧가루를 조금 얹어 낸다. 간은 3년 묵힌 천일염으로 한다. 고기가 무척 많다. 국물이 투명하지만 맹탕이 아니다. 고기 맛이 진하지만 기름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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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식당'의 나주곰탕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
김씨가 설명하는 나주곰탕 만드는 방식은 대략 이러하다. "우선 좋은 소뼈를 오래 고아요. (식당에서는 대개 3시간 정도 끓이면 뽀얗게 국물이 우러난다.) 여기에 양지머리, 목살, 사태, 머리고기 등을 넣고 서너 시간 끓이면 국물이 맑게 변해요. 고기가 뿌연 기운을 빨아들이면서 불그스름한 국물이 됩니다." 이 기본적인 나주곰탕 만드는 법은 어디나 비슷하다. 여기에 식당 주인의 입맛에 따라 재료가 추가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매일시장 안 '남평식당'은 곰탕을 내기 전 토렴하는 정성이 눈에 띈다. 토렴이란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해서 따뜻하게 하는 걸 말한다. 국밥은 미지근한 밥을 토렴한 것이 가장 맛있다. 식당 주인 장행자(48)씨는 소뼈 없이 양지, 사태, 목살, 머리고기 등 살코기만 쓴다. 양파와 마늘을 약간 넣는다. 새벽 5시에 나와 끓이기 시작해 8시 반부터 손님을 받는다니, 3시간쯤 끓이는 셈이다. 깨를 뿌리고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도 조금 얹는다. 파나 지단이 하얀집보다 굵고 투박하다. 국물이 맑고 담백한 건 하얀집과 비슷하지만, 양파 때문인지 조금 달착지근하면서 후추와 고춧가루가 들어가 얼큰한 뒷맛이 남는다.
어느 나주국밥집이 더 나은지는 개인 호불호에 따라 갈릴 뿐, 매일시장 주변 나주곰탕집들의 맛 수준은 전체적으로 높다. 대개 곰탕 6000원, 수육·육회 2만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