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져 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목포 항도 중학교 교사이던 박기동 시인은 동경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서도
우리 나라 말을 가르쳐야 한다고 국어 선생을 택하였다고 한다.
벌교가 고향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고
여수 돌산도에서 한의사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며, 14세 어린 나이로 일본 유학을 갔다.
그는 여러 학교의 교가를 만들었는데, 벌교초등학교,중학교,벌교 상고 교가도 그가 작곡했다.
47년 사랑하던 여동생이 시집 가자마자 폐결핵으로 죽고 나서,
벌교의 부용산에 묻고 와서 엉엉 울며 이 시를 지었는 데, 그뒤, 바로 또,
자기의 사랑하는 애제자 김정희는 전국 문학 콩쿠르에서 시 부분에서 장원한
천재 시인으로 명성을 날렸던, 그 수제자가 폐결핵으로 죽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당시, 그 학교에는 안성현 음악 선생이 있었는 데,
그 또한 동경 제대 음악과 출신으로 뛰어난 작곡가 였다.
그 노랫말을 본 안성현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동이 일어, 이 곡을 작곡하게 되었는데,
이 노래는 우리나라 가장 슬픈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노래는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음악에 귀신인 우리 와이프도 처음 들어 본다고 했다. 나더러 지어내서 부르는것 아니냐고 까지 했다.
더군다나 이 곡을 작곡한 안성현 선생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작은 어머니시다.
그 부인과 아들 딸, 남매를 두고 작은 어머니와 함께 월북을 하고 만다.
그리고 북한의 공식 발표로는 86년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고향은 나주 남평 대교리인데, 지석강 강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 나고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이 노래를 작곡하여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월북 작곡가의 노래,
그리고 빨치산이 즐겨 부른 노래의 작사자는
빨갱이로 몰려 한국에서 살아 남기 어려운 고난의 시대를 살아 가던
박기동 시인은 호주로 이민을 가 살게 되었고,
최근까지 생존해 계시다가 2005년 고국에 와서 돌아 가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인이면서도 시집 한권 내지 못한 이분의 시집을 내고 싶다.>
부용산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 한체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https://www.youtube.com/watch?v=vXq3x4hz9gM
https://www.youtube.com/watch?v=c7UEv78lBFE
위 유튜브를 크릭하면, 음악을 들을수 있다
부용산은 호남정맥 존제산 어름에서 분기하여 벌교읍으로 가는 작은 산줄기 상에 있는 작은 동산이다
지금은 벌교읍민들이 즐겨찾는 벌교를 대표하는 산이 되어있고
그 자락에는 벌교역에 가까이 부용마을이 있고
벌교를 대표하는 택시회사 이름이 부용택시다
(박기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