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어졌습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아직도 세계의 전부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왔지만 엄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빨고 살 냄새를 맡으며 엄마와 일체감을 느낍니다. 그 세계의 부재(不在)를 알아챈 아기는 놀라게 됩니다. 잠을 자던 아기가 깨어 우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점점 분리됩니다. 이 분리는 더 크고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아기는 여러 번 자기 세계의 상실과 부재를 경험합니다. 아이 때 젖니가 빠지면서 상실과 허무를 경험합니다. 두개골 아래에 튼튼하게 고정되었던 이빨이 빠지면서 자기 파괴를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난 뒤에 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엄마의 부재를 알아챈 아기, 그리고 젖니를 잃은 아이가 경험한 부존재와 상실감의 확장입니다.
사람은 이전의 세계를 잃음으로써 다음 세계로 나아갑니다. 또한 잃어버린 세계를 통해 다음 세계로 나아갈 새로운 에너지를 얻습니다. 더 성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당연하게 있어야 하는 것(사람)으로 생각했던 게 없어졌을 때 당혹감과 상실감은 더 큽니다. 엄마, 이빨, 연인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잃어버릴 수도 없고 잃어버려서도 안 되는 것들의 부존재는 상상하지도 예측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 아픕니다.
하지만 그 허무와 쓸쓸함 때문에 사람은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항상 같은 시각으로 사물과 세계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각의 교정이 일어나는 거지요. 특히 자기를 스스로 볼 수 있게 눈이 뜨이는 때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사람은 그에게 자기를 투사하고 몰입합니다. 이별을 상상하지도 못하고 예측할 수도 없을 만큼 일체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별이 찾아왔을 때 더 당황하고 더 큰 허무와 쓸쓸함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자기 내면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자기 존재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요. 당연히 그랬고,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며 나의 인식도 바뀌게 됩니다. 존재하던 것의 부존재를 통해 나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존재의 존재 인식 과정이지요.
김창완이 1982년에 불렀던 산울림의 노래 ‘회상’은 바로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존재에 대한 자각을 보여줍니다. 달빛 밝은 밤길을 걷다가 갑자기 헤어진 연인이 생각납니다. 변함없이 옆에 있어주었고 있어줄 것이라 믿었던 그대가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바람이 차가와지”는 것을 느낍니다. 심리적 외로움에 대한 은유입니다. 얼어버린 듯이 그 자리에 서서 이별의 충격파를 받을 때 그는 울고 맙니다. “마음이 너무 아픈” 상태를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다고 빗대어 말합니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마음은 얼고, 나는 그 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 서 있던 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노래 가사의 종결어미는 ‘~다’가 아니라 ‘~네’, ‘~지’, ‘~어’, 등으로 끝납니다. ‘~다’는 무엇을 진술할 때 쓰는 평서문의 문어체 종결어미입니다. 하지만 ‘~네’는 무엇을 새로 지각했다는 느낌을 주는 종결어미입니다. 그리고 ‘~어’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쓰이고 ‘~지’는 부드러운 어조를 나타낼 때 쓰는 종결어미입니다. 이런 종결어미들은 친한 친구에게 구어체로 자신의 마음을 속삭이듯 할 때 사용하는 종결어미들입니다.
그런데 노래는 떠나간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겪게 되는 화자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대가 떠나게 된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라는 마지막 말을 통해 자기 존재의 모순과 연약성을 보게 됩니다. 자기를 떠나간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자기 존재를 지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타자와 엮여 있음으로 존재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를 터득하는 과정입니다. 부존재를 인식함으로 타자의 자리를 지각하고 나아가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함으로써 사람입니다. 사랑의 상실을 통해 자기 존재를 성찰할 때 사랑은 사람에게 관계를 허락합니다. 상실과 부존재를 통해 존재를 지각하고 자기 존재의 밑바닥에서 우는 것이 사람으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락(Rock)처럼 소리치고 울부짖는 게 아니라 발라드(ballade)처럼 읊조리며 고백하듯 기대고 엎드려 회상함으로써 존재의 차원을 한 단계씩 성숙시켜 나가는 과정이 사람의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 김창완의 노래 ‘회상’의 첫 소절 “길을 걸었지”는 단순히 특정 공간 위를 걸어갔던 행위가 아니라 ‘사람의 길’을 걸어간 과정입니다. 동양철학에선 그것을 도(道)라 합니다. 그래서 노래의 첫 소절을 바꾸어 말하면 ‘도를 터득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창완은 노래를 부르며 도를 닦은 것입니다.
첫댓글 존재하던 것의 부존재를 통해 나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