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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창 47:9)
우리가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지나다 보면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올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 삶은 왜 이리 고되고 다사다난할까?”
“왜 나의 애씀과 노력 뒤에는 늘 또 다른 고난과 갈등이 기다리고 있을까?”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가정의 문제,
아무리 애를 써도 꼬여만 가는 인간관계,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경제적 압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고독 속에서 탄식하곤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굴곡진 삶을 살았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야곱일 것입니다. 그는 노년에 이집트의 거대 권력자인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인생을 단 한 문장으로 정의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세기 47:9)
130세의 노인이 당대 최고의 왕 앞에서 던진 이 고백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선택받고 축복의 약속을 받은 야곱은 왜 그토록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을까요?
야곱이 자신의 삶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한 대표적인 이유는
속임수와 배신,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던 깊은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형 에서와의 갈등과 20년간의 도피 생활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사의 장자권을 사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이로 인해 형 에사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외롭게 도망쳐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일했지만,
외삼촌 라반은 형제 중 언니인 레아를 먼저 밀어 넣어 속였습니다.
결국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더, 총 14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야곱은 라반 밑에서 총 20년 동안 머물며 밤낮으로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양 떼를 쳤으며, 라반은 그의 품쌯을 10번이나 바꾸며 야곱을 이용했습니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 형 에사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세겜 땅에서 딸 디나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고,
이에 분노한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부족의 남성들을 참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변 부족들에게 보복당할까 봐 큰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은 막내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곱이 가장 아끼던 아들 요셉을 형들(야곱의 다른 아들들)이 질투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아들들은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야곱을 속였고, 야곱은 요셉을 다시 만날 때까지 약 22년 동안 아들이 죽은 줄 알고 깊은 슬픔과 한탄 속에서 살았습니다.
야곱은 파란만장한 인생이었기에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없이 여전히 자기 자아(Self)를 의지하는 인간의 삶은 결국 갈등과 속임수, 비극과 절망이라는 '험악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분의 택한 자녀인 야곱에게 이토록 험악한 세월을 지나게 하셨을까요?
1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업자득'과 보응의 법칙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발꿈치를 잡다" 또는 **"속여서 빼앗는 자"**입니다.
젊은 시절 야곱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연약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배고픈 형 에사를 이용해 장자권을 빼앗았죠.
하지만 그 결과는 잔혹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10번이나 속으며 20년을 머슴처럼 일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일 때 염소 새끼의 가죽을 썼던 야곱은,
훗날 아들들이 염소 피를 묻힌 요셉의 옷을 가져와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22년 동안 아들이 죽은 줄 알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와 속임수가 결국 자기 인생의 더 큰 가시가 되어 돌아온 셈입니다.
야곱은 타고난 꾀와 집착, 수단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 순간 야곱이 보인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여전히 자신의 인간적 수완과 꾀였습니다.
가축과 종들을 세 떼로 나누고 선물을 먼저 보내며 형의 마음을 사려 했습니다.
야곱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강 너머로 보내고 얍복 나루에 홀로 남았습니다.
20년 동안 쌓아 올린 물질도,
자신의 치밀한 지략도,
사랑하는 가족도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영적 파산 선고, [자신의 영적 무능력(Helplessness)을 하나님 앞에 선포하고 항복하는 자리입니다.]
즉 오직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하는 그 정직한 고립의 자리가 바로 얍복강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는 이유?
형 에서는 당장의 육신적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에서가 영적인 가치(하나님의 축복과 약속)를 경홀히 여겼다고 평가합니다.
[평소에는 예배의 자리를 지키다가, 주말에 중요한 레저 약속, 개인적 취미, 혹은 조금 더 이익이 되는 알바나 사업 미팅이 생기면 "예배는 다음 주에 드리지 뭐" 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가볍게 넘기는 태도
하루 중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시간은 유튜브, 쇼츠, 세상 뉴스, 자기계발에 투자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은 자다 깨서 피곤할 때 쥐어짜듯 1~2분 겨우 떼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세상의 작은 직장 업무보다 훨씬 하찮게 여겨, 작은 기분 변화나 바쁜 일정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팽개치거나 쉽게 내려놓는 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에서 손해를 볼 것 같아, "현실은 현실이야"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법과 거짓을 너무 쉽게 선택하는 모습]
"눈에 보이는 영원하지 않은 가치(돈, 쾌락, 성공, 당장의 편안함)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하나님의 약속, 구원, 거룩함, 사명)를 가볍게 교환하거나 포기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방법은 비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적인 꾀였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반드시 받고 싶다"는 절박함과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거친 방식은 징계하셨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갈망하는 그 마음 중심을 인정하셨습니다.
2. 고관절(환도뼈)이 부러지는 사건: 자아의 깨어짐 (Brokenness)
홀로 남은 야곱에게 한 어떤 '사람이 나타나 밤새도록 씨름을 했다라고 합니다.
창세기 32장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어떤 사람'과 씨름을 시작했을 때,
야곱은 처음에는 그를 에서가 보낸 암살자나 자신을 해치려는 적, 혹은 단순한 정체불명의 괴한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야곱은 평생 자신의 꾀와 육체의 힘으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따라서 자기 생명과 존재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이고 필사적으로 그 상대와 밤새 맞서 싸웠습니다. 이 시점까지 야곱은 대상을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상대'로 인식했습니다.
날이 새려 할 때, 그 인물은 손가락 하나 대는 정도의 한 번의 터치로 야곱의 가장 강한 부위인 고관절을 어긋나게 만듭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권능이 일어난 순간입니다.
평생 자기를 지탱하던 육체의 중심축(자아)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야곱은 이때 비로소 "이 사람은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생사화복을 쥐고 계신 초자연적 존재(하나님)"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상대가 하나님(또는 하나님의 현현)임을 깨달은 야곱의 태도는 180도 뒤바뀝니다.
더 이상 버티거나 제압하려는 씨름을 하지 않고,
부러진 다리를 끌고 상대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세기 32:26)
호세아 선지자는 이 장면을 훗날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호세아 12:4).
야곱은 이제 힘으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복을 주시지 않으면 저는 죽은 목숨입니다"라며 완전한 항복과 영적 간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 어려움, 고통, 어려운 고비때 그 문제만을 가지고 싸우다가 ,,,이것은 나와 하나님의 문제에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경험 합니다.
조지 뮬러(George Müller)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운영하던 고아원에 아이들은 수백 명이었지만, 당장 다음 날 아침에 먹일 빵 한 조각, 우유 한 병조차 완전히 떨어진 날이 있었습니다.
식품업체나 부자들에게 찾아가 사정을 열악하게 하소연하며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지만, 뮬러 목사님은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었습니다. 이 문제는 돈의 문제나 공급업자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아원 문을 잠그고 홀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은 제 아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들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으면 아침을 먹일 수 없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없는 식탁에 아이들을 앉혀두고 감사 기도를 드렸을 때, 쿵쿵 소리와 함께 빵집 주인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어젯밤 이상하게 마음이 괴로워 잠을 잘 수 없어 밤새 고아원 아이들을 위한 빵을 구웠습니다." 이어 우유 마차의 바퀴가 고아원 앞에서 부러지는 바람에 우유 기사가 "우유가 상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다 주겠다"며 들어왔습니다.
뮬러는 문제(식량 부족)나 사람(후원자)을 찾아다니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직진하여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는 거룩한 항복을 했을 때, 문제의 물꼬가 터졌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 자아의 강함이 무너지는 데서 시작된다"고 단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그 사람의 자아를 깨뜨리는 일이다.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한, 그는 결코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할 수 없다."
환도뼈가 부러진 순간, 야곱은 더 이상 씨름으로 상대방을 눌러 이길 수 없는 불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절뚝거리며 그분을 붙잡고 은혜를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것은 자기 힘으로 축복을 쟁취하려는 탐욕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완전한 무능력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철저한 항복이자 구원의 애원이었습니다.
3. 이름의 변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구원과 거듭남)
그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셨겠습니까?
이 질문은 "너는 지금까지 어떤 존재로 살아왔느냐?"라는 영적 신문이었습니다.
야곱은 고백합니다.
"야곱이니이다." (저는 남의 발꿈치를 잡는 자요, 속이는 자요, 내 욕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비참한 죄인입니다.)
자신의 죄인 됨과 깨어진 정체성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인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위대한 새 이름을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 32:28)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겨루어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고집과 힘을 내려놓고, 오직 은혜만을 바라며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자에게 기꺼이 패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은혜의 승리'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던 '속이는 자(야곱)'가 죽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은혜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왕자(이스라엘)'로 거듭난 순간이었습니다.
얍복강 사건이 끝난 후, 성경은 아름다운 한 구절로 그날 아침을 묘사합니다.
"그가 브니엘을 날아갈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창 32:31)
야곱의 허벅다리는 부러져 절뚝거렸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약해졌고 무력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영혼 위에는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의 거룩한 해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역설(Paradox)입니다.
내 힘과 내 꾀가 살아있을 때 내 인생은 험악한 밤이었지만,
내 자아가 깨어지고 내 환도뼈가 부러져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 영혼에 참된 부흥과 빛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지금 혹시 인생의 거친 풍랑 한가운데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홀로 된 '얍복 강가'에 서 계신 분이 계십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꼬여만 가는 인간관계의 문제,
나를 죄어오는 경제적 압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가정의 아픔을 안고 홀로 밤새 씨름하고 계십니까?
그 문제와 사람만을 붙잡고 밤새 피흘리며 씨름하는 것을 이제 멈추십시오.
"아, 이것은 문제와의 싸움이 아니었구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 내 힘과 꾀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내 자아와 고집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은혜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십시오.
부러진 다리를 끌고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았던 야곱처럼,
조지 뮬러 목사님처럼 하나님 앞으로 직진하십시오. "하나님, 당신이 해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환도뼈를 치시고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여러분을 망가뜨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여전히 내 힘으로 살아보려는 완악한 '야곱'을 끝내시고,
오직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참된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폭풍우가 밀려올 때 작은 새들은 바위 틈이나 나뭇가지 뒤로 숨기 바쁩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다릅니다. 독수리는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을 마주하고 날개를 곧게 펴서 바람을 탑니다.
독수리를 더 높이 끌어올리는 것은 정작 자기를 위협하던 그 사나운 폭풍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힘이 있다고 믿는 교만한 자에게는 패배하지 않으시지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자에게는 기꺼이 패배해 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 내 힘을 완전히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 앞에 항복합시다.
여러분을 가누던 험악한 고난의 밤은 마침내 지나가고,
여러분의 삶과 가정, 그리고 영혼 위에 하나님의 얼굴을 빛내시는 '브니엘의 찬란한 해'가 반드시 떠오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