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5 추석 감사성찬례
요엘 2:21-24, 26 / 1요한 3:17-18 / 마태 25:34-40
인간의 귀향, 하느님의 귀향
해마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죽은 사람을 회상하고,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돌이켜 봅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은 우리 믿음의 고향인 성전에 모여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이 함께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거룩한 제사를 지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바쁜 일상을 살다가도 오늘과 같은 날엔 우리가 왔던 곳이며, 언젠가 돌아가야 할 본향(本鄕)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기나긴 ‘귀향(歸鄕)의 과정’임을 다시한번 다짐합니다.
요즘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the-top)로 집에서 편하게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지만, 전에는 극장에 가서 봤습니다. 특별히, 예전엔 명절때가 되면 오전에는 차례를 지내고, 오후엔 모처럼 만난 일가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습니다.
올해 극장가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를 뽑으라면, 아마도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감독이 만든 《오딧세이(The Odyssey)》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몽골에서 한달 간 안식월을 보낼 때, 마지막 주일 밤에 거기서 사역하고 있는 친구 신부님과 함께 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주인공 오딧세이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과정를 보면서 저의 인생여정 그리고 우리 인간의 인생여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하여 세 가지 단계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욕망과 탐욕의 여정입니다. 영화는 ‘해양민족(Sea Peoples)’이 쳐들어와서 제우스의 법을 파괴할 거라는 공포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제우스의 법이란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손님은 주인을 존중한다’라는 손님과 주인 사이의 상호 의무와 환대의 규범입니다. 이러한 규범을 파괴하는 해양민족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명분으로 그들은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당시 해상무역의 패권을 놓고 트로이와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국 간에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어느 나라가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들끼리 벌인 욕망과 탐욕의 혈투였습니다. 영화는 그리스 군대가 신전에 쳐들어가 여사제와 아테네 여신의 두상을 베어버리는 것을 통해 그 전쟁이 단지 인간들 간의 싸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론 신성모독죄를 지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후, 귀향 때까지 오딧세이에게 종종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건 존재는 여사제의 얼굴을 한 아테네 여신이었고, 그것은 그의 내면에 있는 죄의식을 고발하는 양심의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둘째는 방황의 여정입니다. 트로이 전쟁으로 승리를 한 후, 귀향의 과정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외눈박이 거인, 그리고 거인군대, 마녀, 사이렌의 소리 그리고 거친 파도와 폭풍 등으로 그들은 엄청난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온갖 유혹에 넘어가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하나둘씩 사라져 갑니다. 예컨대, 배고픔으로 인해 군인들은 마녀의 꾐에 빠져 돼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사이렌이 부르는 소리에 어떤 군인은 바다에 빠져 죽고 맙니다. 결국, 다 죽고 오딧세이만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독한 트라우마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리고, 기억이 돌아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기기까지 무려 7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냅니다.
세째는 회개와 회복의 여정입니다. 위풍당당하게 떠났던 오딧세이는 군사들도 다 잃고 늙고 초라한 거지로 돌아옵니다. 그를 알아본 것은 죽기 직전 마지막 숨을 가쁘게 쉬고 있던 그의 애견뿐이었습니다. 왕좌가 비어 있는 긴 세월 동안, 간사한 인간들은 홀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왕비 페넬로페를 유혹하고, 그녀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죽일 작당을 꾸밉니다. 그들은 더 이상 왕좌를 비워둘 수 없으며, 왕비는 재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왕비는 재혼을 하기로 선언합니다. 예식이 벌어지기 전날 밤, 거지가 된 오딧세이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왕궁에 가서 아내이자 왕비인 페넬로페에게 트로이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합니다. 그것은 온갖 명분으로 포장된 가식이 아니라, 기나긴 세월 고통속에서 성찰하고 반성한 회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딧세이는 놀라운 성찰이 담긴 고백을 합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관습인 ‘제우스의 법’을 파괴한 자들은 실은 자신들이었고, 그러기에 자신들 이야말로 그토록 경멸했던 ‘해양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고백은 타자에게 투사한 자신들의 탐욕과 욕망에 대한 자기고백이자 회개였습니다. 그 고백이 끝나자, 그동안 오딧세이에게 나타났던 여사제의 얼굴을 한 아테네 여신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죄책감에서 회복되었다는 것을 암시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혼인할 상대를 정하는 자리에서 오딧세이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사악한 무리들을 처단합니다. 그리고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아내와 함께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말씀을 인생의 황금률로 삼고 살아 갑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우스 법을 소중하게 여겼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갖가지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그 정신을 망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오늘날 기후위기, 전쟁 등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는 것도 이러한 우리의 잘못된 행태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해양민족’이 우리를 파괴할 지 모른다고 하면서, 실상은 우리가 해양민족이 되어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힘없는 나라를 쳐들어가고, 사회를 약육강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합니다.
영화 오딧세이가 오랜 방황을 겪고 마침내 고향에 와서 자신의 삶을 회개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 인류도 각종 기후재앙과 파괴적인 재난을 겪고 나서야, 겨우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우리는 귀향을 합니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명절을 통해 우리는 더 커다란 귀향, 즉 인생이라는 귀향길을 걷고 있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우리는 오딧세이처럼 지금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본향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걷는 귀향길에서 우리가 유혹에 빠져 길을 잘못 들어설 때마다, 우리 내면에서 올바른 길로 가라고 알려주십니다. 마치 영화에서 지혜의 신 아테네가 오딧세이에게 알려주듯이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듣고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래 있던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여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점점 성숙한 존재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우리 인생의 귀향여정은 성공할 것입니다.
우리 각지의 인생 여정을 함께 걷고 계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