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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文武王)의 충(忠)과 신문왕(神文王)의 효(孝)가 서려있는 경주 왕의 길 트레킹(Trekking)후기
2014. 9. 16 경주 왕의 길 탐방로 안내도
신문왕 호국행차길 표지판
대구에서 바다의 맛을 보기 위해 오래전에는 추령(楸嶺)을 넘어서, 근래에는 추령터널을 통과하여 감포(甘浦)에 간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 경주 <왕의 길>은 바로 추령 터널 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시작된다. 이 길은 경주시 황룡동(慶州市 黃龍洞) 추령터널 근처에서부터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慶州市 陽北面 虎巖里) 기림사(祇林寺)까지 약 9.5km 구간이다. 이 구간 길은 신라(新羅)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감포와 장기(長鬐), 장기와 경주를 이어주던 길로 왜구(倭寇)가 침략했던 통로이기도 하다. 용성국(龍城國)의 왕자인 석탈해(昔脫解)가 신라로 잠입(潛入)한 길이며 신문왕(神文王)이 용이 된 부왕(父王)인 문무왕(文武王)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기 위해 행차(行次)했던 길로써 인간의 흔적(痕迹)이 덜 남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곳으로 우리가 경험하기 힘든 트레킹(Trekking) 코스이다.
왕의 길 트레킹에 앞서 기념 촬영
깔끔한 농로를 따라서 걷고 있다
걷기 편안한 농로를 따라서
자연향기 펜션 앞에 서있는 푯말
하나산악회 대원들은 미니버스에 의지하여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추원마을과 추원사를 보지 못하고 자연향기 팬션(pension)에 도착했다. 사실상 여기서부터 <왕의 길>이 시작되었다. 흔히 말하는 <모차골>말이다.
자연향기 펜션
모차골은 동해 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을 알현(謁見)하기 위한 신문왕의 마차(馬車)행렬이 다녔던 곳이다. 마차의 발음이 전이(轉移)되어서 모차골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들었던 이 모차골 길은 비교적 완만하다. 추령의 엄준한 고개를 피해 통행하기 좋은 길을 찾다보니 이 모차골 길을 개발 한 것 같다. 이 길은 문무대왕의 나라를 사랑하는 충(忠)과 신문왕의 효(孝)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民草)들에게는 생업을 등지고 고달픈 고역(苦役)의 길이었을 것이다.
왕의 길은 이어지고
승용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잘 정비된 농로를 따라가니 이름을 알 수 없는 암자(庵子)가 보인다. 허물어져가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전부이다. 주인 없는 마당에는 석탑이 주인 노릇하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폐허 직전의 암자(庵子)
주인 없는 암자에 주인 노릇하는 석탑
이름 모를 암자를 지나니 계류(溪流)가 나온다. 좁은 계류에는 수량이 적지만 산행인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계류를 건너기 위한 목교를 건넜다. 트레킹 길은 오솔길이다. 때로는 산비탈 길을 오르고, 또 계류를 이리저리 건너기도 하였다. 오늘따라 날씨도 적당히 구름이 햇빛을 가리어서 정말 걷기 좋은 날씨다. 하늘을 보기 힘들 정도로 수림이 우거진 길을 걸으니 심신의 힐링(healing)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국립공원치고 잘 정비된 길은 아니지만 인적이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이란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계류(溪流)를 건널 수 있도록 설치한 목교
정말 힘들이지 않고 <수렛재>에 까지 왔다. 수렛재란 왕의 행차 때 수레가 넘어 다녔던 고개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진 이름이다.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목책도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고 이 곳 수렛재에서 동서 수계(水系)의 분수령(分水嶺)이 이루어진다. 즉 여기서 부터 추원 마을 쪽으로 흐르는 수계와 기림사 쪽으로 흐르는 수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수렛재에 꽂혀있는 표지판
잡목이 우거진 숲
그늘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산허리를 타고 오르면서 불령봉표(彿嶺封標)란 안내 표지판이 있는 곳 까지 걸었다. 불령에 이르러서는 1200여년의 역사를 훌쩍 뛰어넘어 조선 후기의 이야기로 바뀐다. 지금부터 200년이 채 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문왕시절의 이야기가 주된 주제인데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지니 뭔가 좀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불령이란 명칭에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예전에는 이곳에 절과 석불(石佛)이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불령재에는 특이한 볼거리가 있는데 바로 불령봉표(彿嶺封標)이다. 지금은 절이 사라져 없어졌고 이곳에 있던 석불은 기림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신라시대 불상 제작 때 잘못된 불상을 묻었던 곳이라고도 한다.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이 비석에는 '연경묘 향탄산인 계하 불령봉표(延慶墓香炭山因 啓下 佛嶺封標)란 표석(標石)이 뉘어져 있다. 연경의 묘에 쓸 향탄(香炭) 즉 목탄(木炭)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일반 백성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연경(延慶)은 효명세자(孝明世子)를 가리킨다.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는 효명세자가 죽은 다음 해인 신묘년(1831)에 그의 묘에 사용할 제수(祭需)에 필요한 경비를 기림사 일원의 산으로 정해 이 부근의 산에서 나오는 목탄을 생산해 충당한 것을 기록한 표석물(標石物) 이기도 하다.
불령봉표(彿嶺封標) 안내 표지판
불령봉표(彿嶺封標) 석물
모래 흙 성질의 흙이라서 길이 많이 파였다
둥근 원목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물이 없는 계류를 건너고 있다
용연폭포를 향하여
비교적 평탄한 길
불령 고갯길을 지나니 길이 너무 평탄하다. 아마 기림사에서 임도(林道)를 낸 모양이다. 개울가의 수림도 잡목(雜木)에서 송림(松林)의 식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활엽수만 보고 오다가 장송(長松)을 보니 이제야 산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드디어 용연폭포(龍淵瀑布)에 도착했다. 용연은 용이 승천(昇天)했던 소(沼)를 말한다. 용연폭포는 폭포 아래 웅덩이를 이룬 소를 일컫는 말로, 삼국유사에 신문왕이 만파식적(萬波息笛 -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신라 전설상의 피리)을 얻은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신문왕은 용왕으로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어 돌아오는 길에 기림사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는데, 이때 태자 이공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는 “이 옥대에 박힌 모든 장식은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는 용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옥대의 장식을 떼어 시냇물에 담그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고 그 자리는 연못이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용연(龍淵)이라고 했단다.
용연폭포(龍淵瀑布)
용연폭포(龍淵瀑布) 동영상
폭포는 탐방로(探訪路)에서 잘 보이지 않아 목책(木柵)을 넘어서야 제대로 된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수원 보호구역을 이유로 계곡 쪽 출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포에 대한 궁금증으로 목책을 넘어서 그곳에 가보았다. 물줄기가 약10m나 된다. 이런 곳에 폭포가 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가기 편한 내리막 길
상수원 보호를 위해 목책(木柵)을 설치 했다
용연폭포를 지나니 길은 자동차가 교행 할 수 있는 폭으로 시원하게 전개된다. 산허리로 난 길을 따라오니 투박한 솜씨로 지은 문향정(聞香亭)란 정자가 나온다. 문향정의 뜻을 풀어보니 ‘향기를 듣는다.’ 이다. 이 이름의 댓귀로 ‘소리를 본다’는 관음(觀音)이 떠오른다. 정말 멋지게 지은 정자 이름이다. 어느덧 오늘 트레킹의 종점인 기림사(祇林寺) 경내에 도착했다.
향기를 듣는다는 문향정(聞香亭)
함월산(含月山) 기슭을 타고 넘는 트레킹으로 심신의 힐링을 하고 나니, 기림사의 고즈넉한 절의 풍광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것 같다.경주에서 한참을 와야 동해안 쪽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기림사는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로 꼽히는 경주불국사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사찰의 전각(殿閣)과 당우(堂宇)와 숲, 드넓고 높은 하늘뿐이다. 마치 속세와 단절돼 자연 속에 머무르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기림사는 이렇게 시내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어 사람의 발길이 드물고 고즈넉한 곳이다. 북적거리는 경주 시내의 명승고적지(名勝古蹟地)의 관광에 지겨움을 느꼈던 사람은 이곳이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다.
기림사(祇林寺) 삼천불전
기림사(祇林寺) 관음전
기림사(祇林寺) 대적광전
승병이 머물렀던 진남루
기림사(祇林寺) 명부전
기림사(祇林寺) 삼성각
기림사(祇林寺) 응진전
기림사(祇林寺) 경내
기림사(祇林寺) 천왕문
함월산기림사(含月山祇林寺) 일주문
하나산악회원들이 경주지방으로 산행을 할 때마다 경주에 거주하는 김영목·김중진 동기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경주남산>의 유적을 답사와 <경주무장산> 억새군락지를 탐방했을 때, 그리고 이번 <왕의 길> 트레킹에도 한사코 맛있는 동동주와 오징어 파전 그리고 귀한 더덕구이로 우리를 대접했다. 너무나 미안하고 고맙다. 김영목·김중진 동기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이게 융숭한 대접을 한 김영목·김중진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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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곳 잘 다녀오셨군...덕택에 감상 잘 하였네.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도 잘올렸네. 항상 우리윤중 친구는 답사기 작성에 수고가 많네. 고맙기도 하고...
수도권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왕의 길과 용연폭포, 그리고 기림사 등을 소개해 주어서 잘 보았습니다.
끝까지 남아 인사 못하고 와서 모두에게 미안하군요. 병원 마감시간이 다되어서
죄송
대구 하나산악회원들을 위해서 밤 늦도록 약밥을 준비해 온
별식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김선생님의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조금 불편한 몸이지만 트레킹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코스모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물리치고 우리회원들을 생각해서
많은 성원 주심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 댓글도 못달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 여행단의 전속 사진사님의 답사기는
최고라니깐요. 참말로 그렇다니까요. 고맙습니다요. 감사합니요.
경주에 또 오세요. 환영합니다. 모두건강한모습들 보기 좋았읍니다 .하이팅
김영목과 김중진님 융숭한 한턱에 세상을 잠시 잊었더랬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스탄불 교류도 잠시 본 것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