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로 인한 비선 실세 논란이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까지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지만 회장이 문건에서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를 겨냥하는 듯한 내용의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말이 전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피보다 진한 물은 없었다.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에게는 그래 보였다. 지난 12월 26일 오전에 박 전 이사장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근령 전 이사장은 나와 남동생은 형님(박 대통령)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믿음이 있다고 강조했다. 작은 사진은 박 전 이사장 어릴 적 모습(맨 왼쪽). 이종현 기자
이날 인터뷰에서 눈길을 끈 것은 박근령 전 이사장이 언니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언니’가 아닌 ‘형님’이나 ‘VIP’라는 호칭을 쓰며 적극적인 대변에 나섰다는 점이었다. “언니라는 호칭은 내가 그 분을 독차지 하는 것 같아 보여 쓰지 않는다. 그 분은 나라의 국모로서 공적인 자리에 계신 분이다”라는 게 박 전 이사장의 호칭에 대한 설명이었다.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어떤 일을 하며 지내나.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뛰고 있다. 바이오운동본부에서 총재를 맡아 자본주의 경제 선순환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또 방송 출연이나 특강 등도 하며 지낸다.”(박스 참조)
―빚쟁이들에게 시달린다고 들었다. 빚이 얼마나 되고 갚아 가는데 문제는 없나.
“내가 빚이 8억 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와전된 것이다. 8억 원이 아니라 3억 원 정도 있다. 내가 필요해서 융통을 한 것이고 이리저리 마음을 써 주시는 분들이 도움을 주시고 있고, 특강 요청이 들어와서 특강도 하면서 번 돈으로 다달이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사업 시작할 때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누나인 박 전 이사장이 직접 발로 뛰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생은 수백억 원대 자산가인데 빚 탕감을 직접 도와주지는 않는가.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께서 내가 빚 걱정을 하고 힘들게 동분서주하니까 정확하게 확인을 못하고 여기저기서 들은 얘기들을 사석에서 한 것이 잘못 전달된 것이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놓고 빚은 갚고 있다. 남편은 이 부분에 대해 처남인 박 회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1980년대 초 결혼할 때(1982년 풍산금속 류찬우 회장의 장남 류청과 결혼했으나 6개월 뒤 이혼) 축의금이 꽤 들어왔다. 성북동 살 때인데 그래서 넉넉히 여유자금이 있었다. 남동생이 군 복무가 끝난 직후여서 마땅히 돈을 융통할 데가 없으니 축의금 받은 돈에서 용돈으로 조금씩 떼어 주고 그랬던 것뿐이다. 그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설령 몇 조 원의 자산가라 하더라도 공과 사는 다르다. 회사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이다. 또 VIP(박근혜 대통령)는 원래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별하시는 성격이다. 신당동에 같이 살 때로 기억하는데, 전기세 등 공과금 심부름을 갈 때도 형님은 늘 1원짜리 하나까지도 정확히 챙겨 주셨다. 예를 들어 3만 8323원이라고 하면 1원짜리 세 개가 봉투에 들어있었다. 보통 그러면 4만 원을 쥐어 보내겠지만 형님은 아니었다. 봉투에서 뭐가 딸랑딸랑 소리가 나서 꺼내 보면 회색 1원짜리 동전이었다. 형님 마음에 우수리가 적으니 오히려 일부러 그렇게 딱 챙겨서 넣으셨을 것이다. 이것은 공과금이고 이것은 용돈이고 이런 식으로 주는 스타일로,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한다. 지금 대통령께서 말씀하시는 ‘원칙’과 ‘신뢰’가 이미 그때부터 확립되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출가외인인데 어렵다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동생(박지만 회장)이 최근 검찰에 출석할 때 마침 생일이라 축하 문자를 남겼는데 답장은 못 받았다’고 들었다. 이후에 연락이 왔던가.
“(첫 번째) 검찰 출석일인 12월 15일이 생일이었다. 다음날 ‘잘 받았다’고 문자가 왔더라. 경황이 없었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과는 취임 전 고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 때 마지막으로 조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로 직접 만난 적은 없나. 연락은 가끔이라도 하나.
“청와대 가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형님께서 가족이기 때문에 오는 것도 안 좋아하시고 그런 원칙을 세워 놓고 있으시다.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으려면 오해 살 만한 행동은 안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가족의 일은 뉴스 등을 통해 다 알게 되고 교신이 되니까 굳이 만나지 않아도 통할 수 있다.”
―과거 육영재단 운영을 둘러싸고 두 차례에 걸쳐 박 대통령, 박 회장과 큰 다툼이 있었고 불화를 겪었다.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애증의 관계일 것 같다.
“어느 가족이든 그 정도 불화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운 감정은 없다. 형님이 퇴임하시면 아마 동생이 모실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서 형님을 모실 것이다. 형님에 대한 충정이 대단하다. 또 동생은 페미니스트 기질이 있다. 지금은 시력이 안 좋아서 잘 안 하지만 과거에 운전을 직접 할 때 스틱(수동기어) 자동차를 몰았다. 그런데 동생은 스틱은 여자들이 치마를 입고 운전하기 불편하다며 내게 오토매틱(자동기어) 자동차를 사 주기도 했다. 육영재단 일할 때 보좌하는 분들의 얘기만 듣고 오해가 생기고 화도 나고 그랬지만 나중에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지고 그랬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조금 남았다. 공인으로 계신 형님 같은 경우 할 일은 무한대고 시간은 유한이기 때문에 뭔가를 이루려는 열의가 대단하시다. 정신없으시다. 형제간이라도 탈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도와줘야 한다. 과거 청와대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안 되고 탈 난다는 것을 연습했다. 우리는 대통령 형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믿음이 있다.”
―역대 정권은 친인척 비리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친ㆍ인척 관리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동생들 입장에서 서운하지는 않은가.
“서운한 점은 없다. 10대나 20대라면 ‘저렇게 사를 다 죽이고 공만 내세워서 국민만 바라보나’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와 가족 중 하나를 희생시켜야 한다면 가족을 희생시켜야 한다. 민생이 특히 중요하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결의와 심정이 남다를 것이다. 고민할 틈이 없을 것이고, 결국 정권의 성공이 국민의 성공이다. 어머니(고 육영수 여사)께서는 생전에 ‘공산당이 집권하지 않는 이상 국민은 친정부적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선출됐으므로 표를 주지 않으신 국민들도 잘 하는지 지켜보고 잘하면 지지해 줘야 한다. 마음으로 성원해 주시면 어려움도 해소가 된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2005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 모습. 왼쪽부터 차례대로 박근령, 서향희, 박지만, 박근혜.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윤회 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박 회장이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됐다. 현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박 회장과 정 씨간 권력 싸움이라는 얘기가 있다.
“남동생은 ‘잃을 실(失)’자를 쓰는 실세다. 남이 소개하면 되고 가족이 소개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할 수도 있다. ‘청와대의 실세는 진돗개’라는 형님의 말이 맞다고 본다.”
―애초에 박 회장은 정 씨 측으로부터 미행을 당했고 관련해 자술서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 씨가 계속 거짓말을 하면 가만있지만은 않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정작 검찰에 출두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으로 바뀌어 자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누나인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많은데 어떻게 보나.
“그런 것도 있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를 양보했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몸을 낮추고 말을 아낌으로써 큰 불을 껐다고 본다. 동생은 미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니까, 굳이 상대방을 면박주고 ‘내가 맞다’라며 시시비비를 가리며 소모적으로 싸움을 끌고 가기보단 말을 아끼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도움이 안 되면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 덧붙여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최 경위)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남편인 신동욱 총재는 2014년 5월 공화당을 창당해 현재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와, 언니에 이어 남편까지 정치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반대가 있었을 법한데.
“신 총재가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만류할 생각을 했다. 중간에 말릴 수도 있는 건데 그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거대 여당과 야당이 민생 챙기기에 너무 바쁘니까, 제3당, 제4당으로서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걸고 신 총재가 발 벗고 나섰다. ‘안전한 대한민국 도보단식’ 캠페인을 진행하느라 9월 1일부터 한 번도 집에 들어온 적 없다. 없는 가운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면서 발품 팔아가면서 뛰는 거 보니, 어머니의 ‘분수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없으면 없는 대로 민초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아마 사위를 자랑스러워하셨을 것이다.”
―야당에서는 일부 측근들이 박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불통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소위 측근분들께서 더 귀를 크게 열고 모든 걸 전달해 드려야지 한쪽으로 편파적인 정보를 드리면 판단이 어렵다.”
―항간에는 ‘만사올통’(올케를 통하면 다 된다)이라는 말도 있다. 박 대통령은 박 회장의 아내이자 자신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와 조카들도 매우 아낀다고 알고 있다. 서 변호사, 그리고 조카들과 교류는 있나.
“돈암동 한신아파트에 9년 살았다. 난 이 지역을 재수 있는 곳이라고 권한다. 이 지역에 이사 오자마자 3개월도 안 돼서 동생으로부터 ‘누나, 나 결혼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정말 바라던 바였다. 대가 끊어질까 이런 걱정도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손주는 물론 자식들 결혼 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가슴 아프다. 그렇지만 돌아가신 후라도 아들 둘씩 놓아 주고 키워주느라 고생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고마울 따름이다. 남동생의 가장 가까운 반려자로 도와줘서 고맙다. 내가 오죽하면 조카들에게 ‘영웅과 호걸’로 자라달라고 카드를 보내기도 했겠는가.”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3번째 개명 예정 단독공개 이제 ‘박다효지’라 불러주세요~ 간간이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나 얼굴을 비추던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최근 부쩍 언론 노출이 잦아졌다. 그는 인터뷰 전날인 성탄절에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와 “예민한 과거사 질문은 최대한 자제해 달라. 주위에서 ‘왜 자꾸 언론에다 안 해도 될 얘기를 해서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느냐’는 말이 들려온다. 미래 지향적인 측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예민한 질문도 피해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또 인터뷰 후 별도의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 예쁘게 찍어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표정이 있는데…”라며 사진기자에게 소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내의 나무 화분 아래에서 찍는 게 낫겠다며 자유롭게 위치를 옮기기도 했다. 박 전 이사장은 돈암동에 위치한 바이오운동본부 사람들과 격 없고 소탈하게 어울렸다. 스스럼없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사소한 선의에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도시락도 직접 자신이 지은 현미밥을 싸 갖고 다녔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 조합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도 허심탄회하게 일상을 얘기하며 웃음을 보였다. 기자가 개명(근영-서영-근령)한 이유에 대해 묻자 “부산의 유명하신 분이 좋다고 해서 바꿨는데, 지금 기자님께 드린 명함이 다 떨어지면 그 분이 지금 이름과 같이 말씀해 주신 ‘박다효지’라고 이름을 바꿀 생각이다. 무슨 뜻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박 전 이사장은 개명 계획 사실을 실수로(?) 일요신문에 처음 밝히고 말았는데 주변 측근들이 ‘왜 그런 것까지 얘기하시느냐’면서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편 박 전 이사장의 적극적인 공개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남편인 신동욱 총재에 대한 지원사격에 기인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호] |
바이오운동본부 어떤 곳 “무에서 유 창조…다단계는 오해야”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요즘 어딜 가든 자신이 총재를 맡고 있는 바이오운동본부 홍보에 열심이다. 2014년 10월 말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합류하게 된 이후로 이곳의 활동이 “창조경제 활성화”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다. 국가 경제가 재도약 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경쟁력과 생산성, 수익성이 가장 높은 바이오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게 박 전 이사장의 설명이다. 현재 바이오운동본부에는 ‘다있넷소비자생활협동조합(다소생협동조합)’, ‘다있넷쇼핑몰’, ‘NGOTV연합방송’, ‘역사바로알기’ 등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다소생협동조합’에서는 이미 12년 전에 융·복합마케팅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해 특허를 받고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다는 전언이다. 융·복합마케팅 시스템의 기본원리는 최첨단 바이오상품과 기업이나 농어촌에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자(조합원)에게 직접 연결해 판매를 촉진시켜줌으로써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 최첨단 바이오 상품과 기업, 조합, 개인, 생산자, 단체, NGO(비정부기구) 등을 하나의 가맹점화해 ‘다있넷’이라는 신개념 쇼핑몰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 몰 안에서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이며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공익사업에 환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단계와 비슷한 운영 원리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있지만 다단계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박 전 이사장은 강조한다. “다단계는 투자금이 있어야 한다. 선투자·후수익이 원칙이고, 수익이 없으면 피해보상까지 해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이 없어도 된다”며 “경제 선순환, 생산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최상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