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仙者嶺)을 찾아
2005. 1. 30. 일요일
새해를 맞이하여 군청 등산 팀은 강원도 평창군에 소재 한 백두대간의 한 자락 대관령 북쪽 ‘한국의 희말라야, 라고 하는 민족의 영산을 오르기로 했다. 마침 그저께 눈이 내린 덕분에 겨울 등산을 즐기게되었다. 아침 6시 반 경, 칠곡 델타 크럽 앞에서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탑승하자 동료직원들과 악수를 한다. 탑승자는 38명. 중앙고속도로를 달린 버스가 한 시간 반을 달려도 눈 구경을 볼 수가 없다. 치악휴게소에 잠시 멈춰 커피 한잔을 마신다. 이병진 대장은 해발 고도 1,157m 선자령엔 오늘도 바람이 강할 것이고 횡계에는 눈꽃축제중이라 교통이 혼잡하다고 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기사는 누구와 통화를 하며 빙판 길 조심스레 차를 몬다. 북을 향해 달려온 버스. 차창 밖으로는 온 산천이 눈으로 수북하다. 횡계ic에 도착하니 오전 9시 40분. 읍내 어느 건물엔 겨울연가 라고 쓰인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 적합한 상호가 아닐까. 백설이 쌓인 들판 가운데 별장도 보인다. 이런 골짝에 누가 부동산을 구입했을까. 9시 50분, 버스가 종착지점에 도착 일행은 차에서 내려 스패치부터 먼저 착용하고 아이젠은 하산 길에 신기로 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 신발 끈을 매니 금방 손가락이 어는 기분이다. 선두 주자를 따라 오르니 평창 국유림관리사무소 간판이 보인다. 등산로는 평탄하고 밋밋하다. 저쯤 오르막길에 하얀 평원이 보인다. 논두렁 닮은 길을 슬며시 오르니 듬성듬성 잣나무가 보인다. 잣나무 옆에는 눈바람을 막기 위해 50cm정도 크기의 막대를 박아 망을 덮어씌운 것이 특이하다. 강한 바람막이로는 좋을 듯하다. 한시간 정도 오르니 삼삼오오 사람들이 눈길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피로를 푼다. 눈보라가 날리는 숲 사이로 동부지방산림관리청 간판이 보인다. 이 곳부터는 기온이 급강하여 종이 위에 볼펜 물이 나오지 않는다. 겨우 입김을 부니 희미하게 보인다.
겨울 등산 필수품은 연필이 좋을 듯 하다. 이 곳 낯선 설국에서 성냥 곽처럼 이채로운 KT한국통신 기지국 철탑이 기하학적으로 세워져있다. 어느 산비탈에 차곡차곡 쌓아둔 모래주머니는 현수막을 재활용하여 사용했다. 강원도사람들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다. 드디어 백두대간 등산로 선자령능 경봉구간 1,123m지점에 도착했다. 안내문에는 사계절 등산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적혀있다. 아직 선자령까지는 3.2Km 남았다. 잠시 휴식 후, 비스듬한 눈길을 걸어가니 원형 철조망이 눈 속에 뒹군다. 아마 이 지점부터는 공원경계구역인가보다. 다시 오르막이다. 일부 여성들은 이 곳에서 아이젠을 차고 있다. 숙달된 조교들은 그냥 오른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길을 걸으니 목에 걸려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여기서도 폰이 울리다니 기분 좋으리 만무하다. 받아보니 경산에 있는 청백회원 k씨 전화다. 회원 중 어느 부인이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불과 몇 달 전 모임에서 한번 들었으나 이렇게 허무하게 갈 줄이야. 하얀 눈길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애도를 표했다. 내 앞뒤로 오르는 사람들은 헉헉 숨을 고르며 길을 간다. 누군가 “훤히 보이는 저곳이 대관령 목장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너무 추워 꺼내지 못한 카메라를 들고 한 장 찍었다. 목장 부근에 도달하니 사람들은 이리떼처럼 흩어져 유유히 오른다. 바람은 여기가 가장 쎄게 불어오는구나. 모자를 눌러 써도 귀가 시리다. 사진을 잠시 찍기 위해 장갑을 벗으니 손가락이 날아 갈 것 같다. 중식 시간이 가까워졌다. 정상에 오른 후 바람이 잠든 곳을 찾아 식사를 했다. 계곡에 옹기종기 모인 식구들은 마치 빙하의 나라 팽귄들이 앉은 것처럼 날개 짓을 한다. 눈 길 위 추위와 싸우며 식사를 하니 동료들이 따끈한 오뎅 국물로 소주를 권했다. 잘 익은 멸치 한 마리가 구미를 당긴다. 연거푸 댓 잔을 마시니 속이 편안하다. 핏기가 돈다. 내 속살이 하얀 눈 속에 녹아 내리는 듯하다. 휴식도 잠시 강풍을 타고 뿌리는 눈보라에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하산 길 초막 골로 접어든다. 초막교 까지는 아직 2.5Km 거리. 여기서는 일제히 아이젠을 차기로 했다. 계속 내리막길. 아까 입구에서 받은 비료포대를 깔고 엉덩이썰매를 탄다. 지금부터는 신나는 동심의 세계. 이 곳은 비교적 내리막길인데 돌산이 많은 편이다. 너 댓 차례 타고나니 벌써 엉덩이가 아프다. 산 아래는 동해안 강릉시가 보인다. 백설이 덮인 시내 아파트 단지는 왠지 해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층 아파트가 건립된 여기도 부동산바람이 한바탕 불었나보다. 계속 떡시루처럼 쌓인 눈길. 일행이 걷는 발자국소리는 개구리울음소리를 낸다. 뽀드득뽀드득, 개골개골, 계곡 아래로 얼음물이 흐른다. 어느 한 사내가 엎디어 물을 마신다. 나도 내려가 배를 깔고 마시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토록 시원한 맛 혼자 마시니 아쉽다. 여기까지 많은 등산객들이 하산하면서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우루루 눈길을 내려왔으나 나는 그냥 탈 없이 내려왔다. 마치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균형을 잃지 않고. 언젠가 세월이 가면 나도 지팡이를 짚을 것이다. 아직은 그 물건이 나에겐 불편 할 따름이다. 언젠가 내 손도 삼손이 되겠지. 초막 골 마지막 눈길이다. 여기서는 다들 아이젠을 풀고 또 엉덩이썰매를 즐긴다. 하늘은 코발트빛. 내가 고함 치는 소리는 대관령 눈 덮인 계곡 아래서 마구 웃는다. 버스 있는 곳까지 내려오니 오후 2시 반. 아직 이르다. 돌아오는 길. 눈꽃 축제 구경을 가기로 했다. 축제장에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다. 얼음무대랑 얼음 집, 얼음조각상이 볼만하다. 일부러 얼음집 내부를 구경하니 아취로 만든 철 파이프가 지붕과 벽을 지탱하고 있다. 그 장면을 헨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빙판 길 붐비는 축제장을 나와 읍 소재지 어느 식당에서 삼겹살과 오징어 두루치기(오삼 불고기)를 구워 참 이슬주 한잔 하니 추위가 싸악 가신다. 종일 눈 속에서 나뒹군 동심의 세계. 오늘 하루 더 젊어진 기분에 잔을 드니 대관령 바람소리는 귓가를 스친다. 겨울 하루, 온 종일 즐거움을 선사한 군청 등산대장과 회장께 큰 박수를 보내며 버스에 오르니 아득한 길이 멀게만 보인다. 휘청거리는 찻간에서는 젊은 열정이 달아오른다. 오래 간 만에 뒷좌석에 앉은 회원들은 하나, 둘 번호 부르기를 시작하고 차머리 TV에는 서부영화 한 장면이 신나게 돌아간다. 아득한 눈길을 뒤로하며 안녕.
첫댓글 선자령 산행기를 보면서
산행의 행복을 느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