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다보니까 고향 가는길도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예전 같으면 가고 오는길에 차량정체로 인해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허다 했는데..
차츰차츰 도로사정이 좋아져 이제는 이곳 저곳을 곁눈질 할 여유도 생기는걸 보니..ㅎ
해남 땅끝마을에서도 한 참을 더 가야만 나오는 내고향 진도..
보배'진' '섬'도'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뭇 사람들은 '보배의 섬'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세번째로 덩치가 큰 섬이며,
그림과 글씨, 노래가락, 토속 민속이 가득한 아직은 때가 덜묻은 끼와 멋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며,
진도아리랑, 진돗개와 함께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도 이제는 꽤나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찌어찌 하다가 이곳 광양땅에 정을 붙이게 되었지만..
그래도 명절때 고향가는 날이 다가오면 어린애 처럼 밤을 설치며 고향의 정을 그리곤 한다.
인물자랑하지 말라는 순천, 주먹자랑하지 말라는 벌교 보성을 지나고,
정남진 토요시장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장흥을 거쳐,
남도문화유산답사1번지 강진과 육지의 최남단 땅끝마을 해남을 지나면
머나먼 고향 내고향 진도에 도착하게 된다.
기존 2차선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장흥읍을 관통하지 않고 우회하다 보니 몇해전부터 거의 들리지를 못했다.
해서 모처럼 유명세에 끌려 고향가는길에 휴게소 겸 잠시 들러본다. 명품 쇠고기 맛좀 볼려구..쩝!.
장흥 인구가 4만 2천여명인데 반해 한우는 4만 8천여마리라고 하니..ㅎ 우리 도내에서는 한우 사육두수가 제일 많다고 한다.
탐진강변을 따라 도로가로 길게 늘어선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명절 대목을 앞두고 주문이 빗발친다는 상인의 즐거운 비명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농부의 아들인 탓일게다.
휴게소에 들러 김밥과 사발면으로 때우던 것을 큰 맘 먹었단다.ㅎ 십만냥이면 4인 가족이 느끼할 정도니..
'대한민국 정남진 물축제'가 열리는 탐진강변이다.
보이는 산이 예사롭지 않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에 개장한 편백숲 우드랜드가 있는 산이란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정남진 물축제'가 지난 7.28부터 8.1까지 열렸다고 한다.
이곳 토요시장에 들러 명품 쇠고기 맛도 보고.. 한여름 시원한 물 축제도 즐기고..
갈수록 찾아오는 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천변을 따라 조성된 주차장..
우리나라 최초로 세원진 사장교인 진도대교다.
1984년에 하나였던 다리가 2005년에 쌍둥이 다리가 되었다. 69m 높이의 교각 조형물..
정유재란때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함선으로 300여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해전의 주무대인 울도목 해협..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그 소리가 우뢰와 같다고 해서 울도목이라고 불린다.
성묘를 마친후..
해가 바뀔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주름살이 깊어만 가시는 어머님의 얼굴을 뒤로한채 귀가길에 나선다.
옆을 보니 감기 기운에다 명절 뒤끝 피곤기와 겹쳐서인지 차에 오르자 마자 꿈나라행이다.
좋다.. 내친김에 제주도행 쾌속정이 운행한다는 정남진 노력항으로 핸들을 돌린다.
구불구불 커브를 돌고돌아 고개를 한두개 넘자 호남의 5대 명산중의 하나인 천관산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가을이면 5만여평에 달하는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천관산... 몇해 전에 지인 몇이서 올랐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멸류관을 쓰고있다고 하여 천관산이라고 부른다고..
아뿔사..?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었다. 가도 가도 노력항은 나오지 않고..ㅠ∼
어쩔수 없이 노력항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천관산 앞 넓은 들녘을 한바퀴 돌며 해안도로를 따라 귀가를 서두른다.
몇해전만 해도 고향가는길에 정체구간이 수없이 많았다.
광양읍 로타리, 순천 조은프라자 앞 사거리, 팔마체육관 앞, 청암대 앞 삼거리,
벌교읍, 보성읍, 장흥읍, 강진읍, 해남읍..등 그야말로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
서울팀들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 나서는 정체구간이 대부분 해소되었지만,
아직도 순천 청암대 삼거리를 빠져 나가기전 까지는 가다 서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머지않아 광목간 고속도로가 곧 개통된다고 하니 이제 명절 교통체증도
까마득한 옛추억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왠지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경인년의 추석명절..
'고향가는 길'이 곧 '여행가는 길'이라는 걸 일깨워 준 추억의 길이었다.
어 머 니
제 어머니는 시장 한 귀퉁이에서 나물을 파셨습니다.
다리도 불편하신 몸으로 매일 시장 귀퉁이로 나가 나물을 팔던 어머니, 그러나 그런 어머니가 싫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시장 근처를 지나는 일은 고통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나고 있을 때 다리까지 불편한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르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초라한 어머니가 싫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도 없이 자라면서, 궁색한 살림과 가난 그리고 초라한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원래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던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다리를 다쳤던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물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제가 이토록 초라하고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길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머니가 절룩거리는 몸으로 학교를 찾아올 때면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초라한 삶은 살지 않겠다'
결국 저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의 소원처럼,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부자인 아내를 얻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병원도 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헤어진 저는 매달 넉넉한 생활비를 어머니에게 보내는 것으로 아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구질구질한 지난날이 떠오를까봐 어머니를 직접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고향에 있는 모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으로 찾아간 저를 맞아주시는 것도 선생님이셨습니다.
제가 고향을 떠난 뒤에도 선생님은 가끔씩 어머니를 찾아가 안부를 물으셨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계시던 선생님께서 입을 열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난하지만 정이 넘치는 부부가 있었지, 어느 날 그 부부는 포대기에 쌓여 버려진 갓난아이를 발견했어. 가난한 부부였지만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그 아이를 안고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키웠지. 늘 공사장에 나가야 하는 부부는 할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곤 했단다.
그러다가 일이 터진 거야. 포대기에 쌓여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기 위로 철근더미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지.
부부는 급한 마음에 아기를 구하겠다고 달려들었어. 결국 남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아내는 다리를 다쳤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전혀 다치지 않았단다...."
이젠 아무리 울어도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십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습니다.
- 이도환 : 앵콜 새벽편지중에서 - |
첫댓글 이장님!! 명절 잘 보내셨지요.. 요즘 환절기 감기가 극성이랍니다. 밤 수확철이라 바쁘실텐데.. 그래도 건강이 제일이지요..^
힘내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아 참 음악은 이장님방에서 빌렸슴다..ㅎㅎ
가야산님 추석 잘 보내셨어요.
항상 이렇게 찿아주시고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