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9:37-38
주님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기진하는 사람들을 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던 사람에게 복음을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목자 없는 양을 향한 애타는 심정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마냥 퍼주어야 하고 퍼주어도 불평불만과 싸워야 하는 학교운영은 때로 지치게 만들곤 합니다.
복음을 나누고 진정한 목자 되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소원하는 기도가 힘들음에 파묻히지 않도록 간절한 간구를 올려드립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아이를 고치시고
12년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고치시고
두 맹인의 눈을 만지시고 믿음대로 되기를 선포해 주시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는 바쁘신 시간 속에서도 영혼을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 닮은 제자이고 싶습니다.
오늘은 체육대회입니다.
이 바쁜 시간 속에서도 영혼을 바라보기 원하시는 마음을 새깁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21절)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있기까지 그리고 예수님의 겉옷에 손대기까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이겨낸 믿음의 행보임을 묵상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으며 이런 말씀이 여기 있었네 할 때가 있습니다.
읽고는 또 잊어버리고 하지만 다시 읽습니다.
어제 그제 먹은 음식 메뉴를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 음식이 우리 몸에 영양을 공급해 주므로 살아가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처럼 매일 말씀을 읽어도 늘 새롭게 느껴지지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나의 영혼을 살게 하고 성장시킴을 믿습니다
매 끼니를 잊지않고 먹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매 끼니 챙기듯 챙기는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하고 사모가 됩니다.
녹음된 말씀을 들으며 뵌적이 있는 목소리는 반갑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의 소리는 모습을 상상하게도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분들과 말씀으로 만나게 하시니 감사하고 선한 영향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소경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겠다 생각됩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예수님을 만질 수도 없었고, 그저 크게 고쳐달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아 하나님이 과연 살아계신가 믿지못할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던 경험도 금방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 연약한 믿음이 부끄럽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었던 소경들처럼 주님이 이 순간도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고쳐주심을 믿는 그 간절한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나를 만지시고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중풍병자를 친구들이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예수님은 먼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고통보다 영혼의 문제를 먼저 보시며, 죄 용서와 그의 병도 고치십니다.
이어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비난에도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죄인들을 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영혼이심을 봅니다. 저도 기도와 삶 속에서 영혼의 회복을 먼저 구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는 마음 되길 원합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 예수님의 겉옷을 잡은 혈루병 여인, 죽은 딸을 위해 달려온 한 관리,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한 두 맹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던 그 믿음과,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던 그 간절함을 배우기 원합니다.
특히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 제 마음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사랑으로 이웃을 품고,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 9: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나를 따르라 하시는 예수님의 한 마디에 마태는 그 즉시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무엇이 마태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예수님은 마태의 무엇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을까가 또 궁금해졌습니다
부유하지만 무시를 당했던 직업을 가진 마태의 진리에 대한 갈증을 알아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갈증을 채워주실 것 같은 예수님의 초청에 마태는 현실을 박차고 따랐던것 같습니다
나의 갈증은 세상것인지 하늘나라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 성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에 목말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기를 소원합니다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하루하루가 갈수록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길 원합니다.
주어진 말씀 잘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 생각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9장에는 수많은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보이는 많은 기적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기준과 방법보다 너무 쉽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계와 규칙들을 만들어놓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그 테두리와 규칙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을 늘 경험하지만
눈앞의 고난과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두려워하고
나의 경험과 지식안에서 그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에 서기관들을 예수를 참람하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내 마음대로 나의 우선순위를 만들어서 그것이 내 신앙의 잣대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중요한 내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늘 겸손함으로 알아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내 믿음의 고백가운데 주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모든 병과 모든 약함을 고치시고, 죄인과 함께 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이신데, 주님을 찾지 않으니 목자 없는 양이되어 표류함을 봅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딸아 안심하라 말씀해 주시는 주님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옷자락만이라도 스치기를 원했던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제게도 주사, 주님 발 앞에 잠잠히 머무는 은혜의 하루 되게 하옵소서.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속으로 믿지 못하는 서기관들과 마음으로 믿은 혈루증을 앓는 여인 두 사람의 속마음이 정반대 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말씀이었습니다.
나의 믿음을 돌이켜보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모습이 아닌 믿지 못한 서기관들의 모습이 제게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믿는다 의지한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늘 의심하고 믿지 못하던 저의 모습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늘 저의 마음가운데에는 언제? 진짜? 왜? 라는 질문이 항상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부족함에서 나온 질문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없어도 만질 수만 있어도 내가 나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겠다는 온전한 믿음과 확신을 품기 원합니다.
이미 나의 마음과 생각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 아니하며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아름다운 믿음, 신뢰와 확신으로,
마음으로 나를 돌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굳건하고 온전한 믿음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