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용병들의 6·24 군사반란 이후 부쩍 늘어난 우크라이나의 '정보 작전'(프로파간다) 중 하나는 유럽 최대 원전인 자로포제(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의 폭파 계획설이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이후, 자포로제 원전의 장악을 놓고 다퉜던 양측의 대립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우크라이나는 노골적으로 '러시아의 원전 폭파→핵전쟁'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우크라이나 헤르손주(州) 일대를 물바다로 만든 '카호프카 수력발전소'의 댐 붕괴다. 댐 붕괴의 책임을 러-우크라 양측이 계속 상대에게 떠넘기고 있는데, 미국 등 서방측에선 아직 객관적인 판단이 나오지 않는 상태댜.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에서 본 자포로제(자포리자) 원전의 모습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반격작전을 차단하기 위해 카호프카 댐을 폭파했다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측은 '자포로제 원전 폭파'가 그 다음 수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 내부 곳곳에 강력한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공식 발표로까지 나아갔다. 방사능 오염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요오드의 구입을 위해 우크라이나인들이 대거 약국으로 달려갔고, 곧바로 매진됐다는 소식도 들렸지만, 우크라이나 수뇌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6·24 군사반란'으로 푸틴 대통령의 군 장악력이 약화하면서 현장 군 지휘관의 섣부른 판단으로도 '원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게 한단계 더 진화한 우크라이나 측 주장이다. 자포로제 원전과 가까운 자포로제주 일부 지역(우크라이나 통제 지역)과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에서는 지난 29일 원전 폭파에 대비한 대규모 화생방 훈련이 진행되기도 했다.
자포로제 원전 사고에 대비한 우크라이나 화생방 훈련/사진출처:텔레그램 영상
이같은 '원전 위기설'에 우크라이나 언론 매체마저 지난 30일 '진짜 원전 폭파 위협이 있느냐'고 되물으면서 그 가능성을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군정보국(GUR)은 30일 (원전을 장악한) 러시아인들이 점차 자포로제 원전을 떠나고 있으며, 나머지 인원에게도 '비상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연방 원자력 본부 '로사톰'(Rosatom)에서 파견된 고위 인사 3명이 가장 먼저 원전을 떠났으며, 우크라이나인 직원들에게도 7월 5일 이전에 대피하라는 권고가 접수됐다고 했다. 자로포제 원전의 배후도시인 '에네르고다르'시(市)를 순찰하는 러시아 군인들도 줄어들고 있다고 GUR는 밝혔다.
그러나 자포로제 원전을 사실상 통제하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스에네르고아톰'(Rosenergoatom)은 "직원들이 며칠 출장을 떠났다"고 반박했다. 또 러시아는 전날(29일) 자포로제 원전을 폭파할 계획이 없다는 내용의 서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내 전 회원국에게 돌렸다.
자포로제 원전 내부 통제실(위)과 IAEA의 사찰단
러시아측의 반박은 또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화생방 훈련을 겨냥했다. 우크라이나가 자포로제 원전에 대한 '사보타주'(비밀 폭파작전)를 계획하고 있으니, 미리 화생방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다. 수도 키예프(키이우)에 새로운 방사능 센서를 설치한 것은 같은 이유라고 몰아붙였다.
국제사회의 객관적인 판단은 아직 원전 훼손의 징후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IAEA 전문가들은 원전 폭파 준비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적대 행위(전쟁) 중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계획적인 게 아니라 우발적인 사고를 예상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하긴, 원전 장악을 위한 포격전 과정에서, 혹은 러시아군이 원전에서 철수할 때 '원전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미 백악관도 우크라이나가 퍼뜨리는 '(러시아의) 원전 폭파 계획설'에 대해 침묵을 지키거나 러시아측이 폭파를 준비하는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미국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개시 전후, 원전 사고 위험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며 "원전 사고가 가져올 참담한 결과를 감안하면, 서방이 실제로 사고 위험성을 인지했다면, 태도나 어조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원전 폭파를 계획하고 있는 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이 매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측은 (카호프카 댐 붕괴와 마찬가지로) 자포로제로의 반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이 빠진 카호프카 댐 저수지가 부분적으로 바닥을 드러내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원전이 있는 에네르고다르시로 반격을 개시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한 러시아측의 시나리오라는 설명이다.
이 주장에 대한 스트라나.ua의 반박은 이렇다.
"원전 주변과 인근 도시에 러시아군이 많이 주둔하고 있다. 원전 폭파에 따른 방사능 노출은 러시아군이 가장 먼저 받는다. 자국군을 방사능 오염에 빠뜨리는 '자살 행위'나 다름 없다. 크림반도와 러시아군 장악 4개 지역(돈바스와 자포로제, 헤르손주)도 방사능 노출 위험에서 피해가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 기업 '에네르고아톰'(Energoatom)은 자포로제 원전의 위기가 고조됐던 지난해 8월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영향을 받는 지역의 지도를 제시했다. 이 지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점령 4개주와 크림반도는 물론, 러시아의 로스토프주(州)까지 영향권에 포함됐다.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을 개시한 주요 목표 중의 하나이자, 현재 확보한 러시아 본토에서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육상 교통로가 쓸모 없는 땅이 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측이 제시한 자포로제 원전 사고 10일 후 방사능 영향을 받는 지역. 바람의 영향으로 자포로제 원전 남쪽이 영향권 안에 드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의 왼쪽 아래쪽이 크림반도, 크림반도와 이어진 오른쪽은 러시아 본토 로스토프주/사진출처:스트라나.ua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지난 29일 화생방 훈련까지 실시한 이유는 뭘까?
스트라나.ua(6월 29일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은 계속해서 핵 위협에 도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가 자포로제 원전에 테러 공격을 가하고 방사능 유출이 시작될 경우를 대비해 지난 29일 진행된 대규모 화생방 훈련에는 약 8,000명이 참가했고, 특수 차량 약 350대, 대피용 버스 400대가 동원됐다.
이론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에네르고다르시와 자포로제 원전에 진입할 경우, 미리 설치해둔 폭발물을 원격으로 조종해 원전을 폭파할 수 있다. 러시아군은 이미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후퇴한 상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1일 이 시나리오에 동의하기도 했다.
16.00 Зеленский заявляет, что у РФ есть план "дистанционного подрыва" Запорожской АЭС, после того как россияне передадут контроль над атомной станцией МАГАТЭ и Украине.(오후 4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통제권을 IAEA와 우크라이나로 넘기게 될 경우, 자포로제 원전을 원격 폭파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크라이나는 기술적으로 원격 폭발을 막을 수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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