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편집하다
글을 쓰는 일보다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 시간이 있다. 문장을 고치는 시간이다. 한 줄을 쓰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하지만, 그 한 줄을 지우고 다시 세우는 데는 한나절이 걸리기도 한다. 어느 날 원고를 들고 문우들과 마주 앉았다. 책상 위에는 출력한 원고가 놓이고, 책장에는 오래된 책들이 빼곡하다. 누군가는 문장을 읽고 누군가는 조용히 밑줄을 긋는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날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화려한 문장이 아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마음이었다.
퇴고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말을 되풀이한 곳, 욕심 때문에 길어진 문장, 멋을 부리느라 뜻이 흐려진 표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쓸 때는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문장이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오히려 글의 흐름을 막고 있기도 한다. 그럴 때 과감히 줄을 긋는다. 애써 쓴 문장을 버리는 일이 아깝지만 글은 이상하게도 덜어낼수록 제 모습을 찾아간다.
문장을 편집한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을 편집하는 일인지 모른다. 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말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표현 하나를 발견하면 놓치고 싶지 않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어떻게든 원고 안에 넣고 싶어진다. 그러나 좋은 글은 많은 것을 말하는 글과 반드시 같지 않다. 때로는 한 문장을 덜어냈을 때 다음 문장이 살아난다. 설명을 하나 지웠을 때 독자가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침묵도 문장의 일부라는 사실을 퇴고하면서 배운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젊은 날에는 채우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지식을 채우고,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쌓고,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앞으로 나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는 채우는 능력만큼 덜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요 없는 걱정을 덜고, 오래된 서운함을 지우고, 타인의 시선을 조금 내려놓는다. 모든 관계를 붙잡으려 하지 않고 모든 일에 해답을 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씩 덜어낸 자리에서 오히려 자신이 선명해진다.
퇴고에는 거리도 필요하다. 방금 쓴 글은 자신의 마음과 너무 가까워 잘못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쯤 묵혀 다시 펼쳐 보면 어제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 낯설게 다가온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너무 가까이 있을 때는 상대의 작은 흠만 크게 보이기도 한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그 사람의 사정이 보이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에도 빈틈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여백인지도 모른다.
문우들과 원고를 읽는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혼자서는 지나쳤던 문장을 다른 사람이 짚어 준다. “이 부분은 조금 길지 않을까요.” “여기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짧은 말 한마디에 문장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내 문장을 지적받는 일이 조금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좋은 조언은 문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손을 놓아 주는 일이라는 것을.
한 사람의 시선만으로 완성되는 글은 드물다. 글에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들어가기에 자신도 모르는 습관과 편견이 스며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문장을 바라보는 경험은 중요하다. 그것은 문학의 공부이면서 동시에 삶의 공부다. 내가 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같은 문장도 사람마다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글의 폭도 삶의 폭도 조금 넓어진다.
오랜 시간 원고를 들여다본 뒤 잠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셨다. 조금 전까지 문장의 쉼표와 조사 하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이제는 웃으며 일상을 나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 서서히 줄어드는 동안 이야기는 문학에서 가족으로, 여행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편집하고 있는 것은 원고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삶에도 퇴고가 필요하다. 잘못 선택한 길을 발견하면 방향을 고칠 수 있고, 상처를 준 말이 떠오르면 뒤늦게라도 사과할 수 있다. 지나치게 길어진 욕심은 줄이고, 빠뜨렸던 감사는 한 줄 더 보탤 수 있다. 젊은 날의 문장이 다소 거칠었다면 중년 이후에는 조금 부드럽게 고쳐 써도 좋다. 인생은 한 번 쓰고 끝나는 원고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는 초고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우기만 한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남겨야 할 문장도 있다. 세월이 지나도 지켜야 하는 마음, 어려울 때 손 내밀어 준 사람, 자신을 일으켜 세운 한마디는 지워서는 안 된다. 퇴고의 지혜는 무조건 버리는 데 있지 않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를 알아보는 데 있다. 삶 역시 그렇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일이 아니라 끝내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
원고를 다시 펼친다. 빨간 표시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지운 문장도 있고 옮겨 놓은 문장도 있다. 처음의 원고보다 빈자리가 많아졌는데 오히려 글은 편안해졌다. 문장 사이로 바람이 통하는 듯하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기억을 불러오고 자신의 이야기를 놓아 볼 것이다.
글 한 편을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완성이라는 말은 쉽게 붙일 수 없다. 오늘 좋았던 문장이 내일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고, 지금의 내가 옳다고 믿는 생각도 세월 뒤에는 다시 고쳐 쓰고 싶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고, 지우고, 고쳐 쓴다.
문장을 편집하는 동안 조금씩 알게 된다. 잘 산다는 것은 완벽한 문장을 한 번에 써 내려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못 놓인 단어를 발견하면 고치고, 지나치게 길어진 문장은 줄이고, 부족한 곳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보태며 살아가는 일이다.
오늘도 원고 위에 연필을 올려놓는다. 한 문장을 지우고 한 문장을 남긴다. 그러면서 마음속의 오래된 문장 하나도 슬며시 고쳐 본다. 삶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퇴고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