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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지기는 문을 닫고자 의자에 앉아 있는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 닫을 시간이 되었으니 나가 주셔야 됩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공원지기는 재차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자 거칠게 요구하였습니다.
“이거 어디서 왔어?”
그때 그 낯선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그것을 가르쳐 주시오.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가르쳐 주시오.”인생이 어디서 왔는지를 탐구하였으나 깨닫지 못한 이 사람은 바로 철학자 쇼펜하우어였습니다.
우리도 나의 존재를 가끔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살고 있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앞으로 살면 잘 사는 건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지?’,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걸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의 답을 찾을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해답을 찾아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피해갈 수 없는 질문입니다. 죽음앞에서 다시 그 질문을 대면해야 합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을 떠나기 약 한 달 전, 종교와 내세에 관한 질문들을 남겼습니다. 이 질문들은 언론에 공개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남긴 질문은 모두 24개로 알려져 있는데, 종교와 내세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질문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와 죽음, 그리고 내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두렵겠습니까?
그 질문들의 요점은 이런 것입니다.
우주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지구의 종말은 정말 찾아옵니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이 세상의 역사는 어떻게 끝나게 됩니까? 지구에 질병과 고통이 이렇게 많은데, 신이 존재한다면 왜 가만히 계십니까?
오늘날 이런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결국 이런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그 질문의 명확한 답을 알고 사는 이는 행복합니다.
어떤 경우를 만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그 답을 발견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런 질문을 던지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너는 아버지가 계시냐?"
"예"
"아버지가 계신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날마다 뵙고 또 생활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그럼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고 공급도 못 받는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없겠군, 그런가?"
그들은 어이없이 허허 웃는다. 그리고 논리의 궁색을 느끼며 긁적거린다.
결코 그렇지 않는 것을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가 계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너야 너 자신의 존재란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자녀는 아버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이론이다. 이 사실을 명제(命題)화 하면 "나의 존재는 부모의 존재의 증명이다" 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는 유기적(有機的)이며 개별적(個別的)인 관계의 연속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 내가 있다는 사실은 나의 보모가 있다는 확실한 증명이며 그것은 또한 그 부모가 있다는 증명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와 신들이 있다면, 과연 누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놀라운 사실은 성경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시작과 인간의 기원, 죽음과 역사의 종말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이런 질문들에 어떤 대답을 주시는지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특별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을까요?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존재의 의미와 영원한 생명을 찾도록 하시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어떤 분이신지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최고의 신은 누구인가?
만약 최고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어떤 분이어야 할까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 버리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시작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알고 계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 주시는 분이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만난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에 확신이 생깁니다. 죽음 앞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죽더라도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그분의 약속대로 나를 다시 살리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제부터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이 첫 장을 열자마자 하나님을 창조주로 선언한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설명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논리를 동원합니다. 이렇게도 설명하고 저렇게도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누구신지 길게 변론하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 성경을 읽을 때는 이런 방식이 다소 낯설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존재하시는지 먼저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창조를 선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에서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창조하셨는지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부터 11절까지 기록된 넷째 계명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만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배하는 날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 가운데 창세기처럼 창조의 시작과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경전이 있을까요?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도 설명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의 몸을 지으셨고,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살펴보면 산소와 탄소, 수소 등 지구의 물질과 밀접하게 연결된 성분들이 발견됩니다.
인간은 지구와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땅에서 나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도 자연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기원을 흙과 생명의 호흡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물론 오늘날의 생화학적 지식만으로 성경의 창조 과정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으며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믿음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더욱이 창조에 관한 기별은 창세기에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사야서와 시편, 신약성경,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증언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함께 확인하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기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생명과 존재가 달려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닙니다. 과연 누가 우리의 창조주이며, 누가 우리의 생명과 미래를 책임지실 수 있는 분인지 진지하게 살펴보는 일입니다.
성경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합니다.
2.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이 만든 신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보다 먼저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반면 인류 역사 속에서 등장한 종교들은 각각 특정한 시대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불교와 유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와 사상은 오랜 인류 역사의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각 종교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자신을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일반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그 원인,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탐구하는 종교입니다.
불교의 윤회 사상에서는 생명체가 여러 생을 거듭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따라 일부 불교 전통에서는 생명에 대한 자비를 강조하고 살생을 삼갑니다.
그러나 모든 불교인이 같은 방식으로 식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의 여러 전통과 종파에 따라 가르침과 실천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핵심은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하나님과 다른 종교들이 제시하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역사의 마지막까지 이끌어 가신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특징입니다.
이사야 40장 26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만상을 수대로 이끌어 내시고 각각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분의 권세와 능력이 크다고 증언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창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사람들이 창조에 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때 성경은 어떻게 대답할까요?
욥기 12장 7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말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그것이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어서 성경은 모든 생물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사람의 호흡도 그분의 주권 아래 있다고 증언합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자연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명의 신비와 창조 세계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십시오. 바다의 생물들을 보십시오. 땅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를 보십시오.
각각의 생명체는 놀라운 특성과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생명의 신비를 바라보며 창조주의 지혜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의 생명 역시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섬겨야 할까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밤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수많은 별과 은하가 광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천체들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우주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고 복잡합니다.
그 질서와 광대함을 바라볼 때 인간은 자신의 작은 존재를 깨닫습니다.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빅뱅 이론도 현대 우주론의 중요한 이론입니다. 빅뱅 이론은 우주가 초기의 매우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에서 팽창해 왔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다만 빅뱅 이론 자체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궁극적으로 무엇이 우주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는지에 관한 모든 철학적·신학적 질문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주의 기원과 질서를 연구하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믿음이 흔들릴 때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창조 세계를 묵상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넓히고,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4. 자연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
성경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창조 세계에 나타나 있다고 말씀합니다.
자연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았는지 적게 받았는지가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향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과 양심을 사용하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증언이라고 선포합니다.
시편 14편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배제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영적 상태를 깊이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양심, 그리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그분을 더욱 알아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이 믿는 바를 진지하게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단지 지적인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5. 하나님의 심판과 우리의 소망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심판주이시기도 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선과 악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며,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사용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심판대 앞에서 누가 우리를 변호해 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발견합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로 소개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만을 내세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로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두려움만 가져서는 안 됩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고 진실을 드러내시며, 억울한 자를 변호하시고 공의를 세우시는 일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올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죽음 이후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 수 있을 때,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의 용서와 새로운 삶,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발견합니다.
아멘!
6. 다른 신을 섬기다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고백
이제 오랫동안 다른 종교를 믿다가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한 사람의 간증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와 도덕,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에 관해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기독교 신앙에 깊은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윤리와 도덕이 기독교 신앙에 비해 크게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 높은 도덕성과 훌륭한 인품을 지닌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일 년에 몇 차례씩 스님을 만나 장래의 운세를 물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불교의 명상을 통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정말 내가 섬기는 신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인가? 이왕 신을 섬길 바에는 가장 강한 신을 섬겨야 할 텐데, 그분은 누구일까?’
나는 오랫동안 신에 대한 고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며, 역사를 주관하시고 미래에 대한 약속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반면 내가 이전에 믿었던 종교의 가르침에서는 내가 찾고 있던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충분히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믿던 종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내 조상은 어디에서 왔으며, 인류의 시조는 누구인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우주 만물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끝나게 되는가? 지구의 역사를 주관하는 신이 존재하는가? 내가 믿는 신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들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했습니다.
성경은 나에게 놀라운 빛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예언을 역사와 비교해 보면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류 역사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은 내게 매우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이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 그리고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인지 성경을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과학자 가운데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과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신비를 깊이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게 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 성경의 진리와 예언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내가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람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질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살아가면서도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죽음 이후의 소망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진지한 질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특히 성경의 예언을 공부할 때는 예언의 문맥과 역사적 배경을 정확히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예언은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수수께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인간에게 소망을 주신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언을 살펴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미래를 두려움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역사의 의미를 깨닫고, 그분의 약속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입니다.
7. 인간은 누구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어지는 27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중요한 선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이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인 존재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이웃을 돌보고, 선과 악을 분별하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배제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 가지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창조주가 계시다면 우리는 그분의 뜻을 고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과 시간,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왜 존재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명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제시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선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에게 가장 참된 소망을 줄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살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구원의 약속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찾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게 말씀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마음속에 확신과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Z6M_3-OTS8M?list=RDZ6M_3-OTS8M
https://youtu.be/LzwIpN0SaJ0?si=gNh_by4xvsXqaN-c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