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6]심리학자 김태형의 저서 두 권!
사실 ‘굥정권’이 출범하지 않았다면, 심리학자 김태형씨를 여지껏 몰랐을 것같다. ‘가수 백자’와 함께하는 유튜브 ‘ㅆㄷㄱ(싸대기)’ 방송을 애청하면서 알게 된 김태형 소장. 투박한 촌놈처럼 생긴데다 잠바때기 차림의 수수한 외모. 말씨조차 어눌한 듯한데, 툭툭 던지는 코멘트가 갈수록 매력 있고 정곡을 찌른다. 중독성까지 있다. 무엇보다 ‘사람(그게 오늘날의 정치가든 쟁쟁한 역사인물이든)의 심리心理’를 파악하는데 바늘처럼 콕콕 찌르며 정통하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가며 쉽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고 또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라는 문제에 대한 적확한 대답은 이 심리학자의 프로파일링에 몽땅 근거한다. ‘그 사람’을 조금만 공부하면 다 나온다고 한다. 읽다보면 ‘정말 정답이네’라는 생각에 소름까지 끼친다. 심리학박사라는 게 결코 불로소득이 아님을 알게 된다.
최근 그 분의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이것은 통독通讀이 아니고 숙독熟讀이고 정독精讀이다.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2013년 5쇄, 역사의 아침, 380쪽, 15000원)와 『한국인의 마음 속엔 우리가 있다』(2023년 6월, 온더페이지, 287쪽, 17000원). 앞에 책은 ‘사람은 누구나 네 가지 심리적 유형의 쌍(내향intorvert-외향extrovert, 감각sensation-직관intuition, 감정feeling-사고thinking, 실천judgement-인식perception)을 갖고 있다’는 그의 ‘성격이론’을 바탕으로, 조선의 ‘문제적 인물’(정조, 이이, 허균, 연산군)의 마음을 분석했다. 역사학자 뺨치게 이들의 기록과 일화들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해 이들의 인생을 추적했다. 우리가 평소 이 네 인물에 대해 궁금해하고 의심했던 여러 일(사건)들이 시원스럽게 풀린다.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 네 가지 심리적 유형이 각각 다른 유형과 결합함으로써(예: ISTJ, ISTP, ESTP, ESTJ 등), 그들만의 독특한 심리적 특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하여, 어떤 사람은 자신을 성취인으로, 어떤 사람은 자신을 파괴하기도 하고, 어느 임금은 국가를 발전시키며, 어느 임금은 역사를 퇴행시키기도 한다. 흥미로운 주제를 시종일관 재밌게 풀어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깝거나 멀거나 나와 관계되는 사람을 이해해 나가야 하지 않던가.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물음에는 앞으로 그가 어떻게 행동할까?의 답도 들어있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프로파일링에 걸려들면 ‘외수’(빠져나갈 길)가 없다. 철저하게 재단하고 분석하여 해답을 내놓는다. 놀라운 내공이다. 거의 신기神技에 가깝다. 심리학이란 학문을 새로이 봤다.
올해 나온 신간 ‘한국인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을 거울 들여다보듯 심리와 역사와 문화로 낱낱이 파헤친다. 도대체 유사 이래로 한국인에게 공통적으로 체화體化된 의식은 무엇일까? 첫째 한국인은 일심동체와 이심전심을 추구하는 ‘집단주의’라는 것이고, 둘째 한국인은 인간을 가장 사랑하며 존중하는 ‘인간중심성’이라는 것이다. 셋째 한국인은 신이 아닌 오직 인간을 위한 종교를 따르며, 넷째 한국인은 도덕적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인은 슬픔 속에서도 해학으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다섯가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민족심리民族心理’를 한 단어로 관통, 커버하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와 나’라는 좁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공동체, 커뮤니티, 집단을 뜻하는 광의의 개념인 것을.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당황한 말이 ‘우리 마누라’라고 한다. ‘my wife’가 아니고 ‘our wife’ 말이 되는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도, 나라도, 말과 글도 모두 ‘나의’가 아닌 ‘우리’이다. ‘우리’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우리’는 대체 무엇인가? 오죽하면 ‘우리나라’ ‘우리집’ ‘우리말’ ‘우리글’ 등 네 단어는 붙여 쓰는 걸로 사전에 올라있을까? 띄어쓰면 맞춤법에 어긋나는 것을 모르는 이도 많을 터. '우리 손자'는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꼭 ‘내 집’ ‘윤슬이집’이라고 말해 바로잡아줬는데 소용이 없다. 손자세대부터는 ‘내 집’이고 ‘자기 집’인 모양이다. 흐흐.
아무튼, 저자는 우리 한국인의 마음(민족심리)에는 너무나 긍정적인 ‘우리’(우리주의主義, 우리 의식, 우리 감정, 우리성性 등)가 있으므로, 그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에 맞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것을 높이 발양發揚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고, 우리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결론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아니 개인주의로 체화된 서양인들이, 동양인, 특히 한국인의 ‘우리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알 수 있겠는가? 미국에 ‘한국인의 우리주의(URIISM)를 연구하는 학회’가 있다고 들었다. 바보같은 놈들이다. ‘우리’처럼 쉬운 게 어디 있다고, 그것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관련학회지 <우리>를 정기적으로 발행한다니 참 우스운 일이다. 우리를 우리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할까? 은행도 우리은행인데, 스펠링이 URI가 아니고 WOORI인 것이 WORRY(근심, 걱정)인 것같아 마음에 걸린다.
희한한 일 하나를 고백하자. 내가 대학때 무엇을 안다고,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에 졸시를 투고했는데(1979년 12월호), 그 마지막 구절이 <너와 난, 언제고 우리이어야 한다>였다. 천재였을까? 아니면 또라이였을까? 그때 썼던 필명penname이 <최상崔相>이었다. '서로 상'의 '서로'도 '우리'였을까? 그 우리와 심리학자가 말한 ‘우리’가 같은 의미일까? 모를 일이지만, 신기한 일인 듯하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