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고 병원을 많이도 들락거렸다.
몸과 마음이 약해졌다.
우울증과 술로 인한 간과 위장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천곡동 한마음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다.
그곳은 도심 한 가운데 유흥가 부근에 있었다.
입원실에 누워 있으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옆 병상의 환자와 흡연실에 가서 담배를 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담배도 안피다가 그 때 처음 폈다.
옆 병상의 환자는, 탄광에서 일하다가 몸을 다친 사람이었다.
나는, 1980년 4월에 사북 사태로 군에 강제로 끌려간 경험이 있어서, 광부들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그가 살아온 환경은 너무나 달랐다.
그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다시 병상에 돌아와도 잠을 들 수 없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기나긴 밤을 불안에 떨며 견디는 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그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게 되었고, 2차로 룸싸롱에 갔다.
아가씨들과 노래 부르고 웃으면서 떠들어대니까 우울증이 잠시 가신 듯 했다.
어느 날, 룸싸롱에서 나는 쓰러졌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몸이 나쁜 상태라서 당연한 결과였다.
그곳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나 병원으로 돌아왔으나, 병원에서는 강제로 퇴원 당해야 했다.
원룸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나의 방을 청소하고 식사를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고, 심지어 흑염소 즙을 나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조금씩 글도 쓰게 되고 책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룸싸롱을 운영하다가, 폭력 애인을 피해서 동해로 도망 온 상태였다.
후배가 하는 룸싸롱의 마담으로 취직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를 만난 것이다.
나 보다 한 살 아래였고,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안았다.
그녀의 극진한 도움으로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를 돕고 싶었다.
남은 돈 2 억을 전부 주면서 룸싸롱을 때려치게 되었고, 강릉역 앞에 대게 전문점을 차렸다.
음식 솜씨가 있는 그녀는 가게를 잘 운영했다.
그러나, 작년 10 월 그녀는 벌어 놓은 돈을 전부 사기 당했다.
“오빠, 미안해요. 도와 주신 것이 고마워서 잘하려고 하다가.....”
“어디 아픈덴 없지. 아프지만 안으면 된거야. 당신이 사기 친 것이 아니고 당한 것이기 때문에 잘 된거야”
의기 소침해 있는 그녀를 다독여 주는 것이 그녀에 대한 보답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가게 자리에 노래 클럽을 운영중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녀는 반찬을 해서 방문한다.
나는 그녀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와 나는 서로가 행복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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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전 상황판단이 빨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