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썩은 강을 다음 정권에 넘기지 마라 / 김택근
캐나다 서부 지역의 기온이 49.5도까지 치솟았다. 마른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고, 산불이 수백 건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에어컨이 필요 없었던 마을이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기상지식이 얕아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국지성 폭염이 이글거렸다면 바람에 실려온 열파(熱波)가 아닐 것이다. 게릴라성 폭우처럼 하늘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하늘에서 수만 갈래의 번개가 치고 화염이 주택을 삼키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종말론이 어른거린다. 가본 적이 없지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작은 마을 리턴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이는 불벼락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기후 재앙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 인간들이 불러온다는 것을.
먼 나라의 사변이지만 머잖아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다. 새삼 우리 주변을 살피게 된다. 2020년 세계 환경위기 시계는 오후 9시47분을 가리키고 있다. (인류 멸망의 시간은 자정) 그런데 한국은 오후 9시56분이라고 한다. 민주정부에서도 환경오염지표가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생명, 환경, 생태라는 단어를 보면 불현듯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무참히 짓이겨진 가리왕산이 떠오른다. 단 며칠간의 경기를 치르려 수백년 동안 손을 타지 않았던 원시림을 베어버렸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행사 후 전면복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났지만 가리왕산은 흉측하게 널브러져 있다. 이것이 바로 ‘기후악당들의 나라’라는 징표이다.
4대강 복원사업은 왜 질척거리고 있는가. 금강과 영산강 일부 보의 수문만 ‘겨우’ 열어 놓고는 뒷짐을 지고 있다. 수문 개방만으로도 멸종위기의 물고기들이 돌아오고 새들이 다시 찾아들었다. 그렇다면 강은 흘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4대강 복원을 공약했고, 집권초기에는 수문 개방과 보 철거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 강을 살려달라며 오체투지와 단식기도를 했던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자신의 몸을 사른 문수 스님의 자연을 향한 순교를 잊었는가. 아직도 개발 이권으로 뭉쳐있는 기득권 집단의 요설에 농락당하고 있다면 분노를 넘어 서글픈 일이다.
“4대강사업을 만들어낸 것은 이명박이라는 하나의 괴물이 아니다. 그는 토건사업을 대변해온 수많은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4대강사업 역시 강을 개발하고 착취해서 이익을 보려는 수많은 이들의 욕망을 담아낸 하나의 그릇이었을 뿐이다.”(신재은 <대한민국 녹색시계>)
그러면서도 정부와 여당은 또 다른 악수를 두었다. 바로 가덕도신공항 건설계획이다. 오로지 표만을 구걸하기 위해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였다. 이는 새만금·4대강 사업과 다르지 않다. 두고두고 민심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가덕도는 7000년 전 신석기 문화가 피어난 문화·생태계의 보고이다. 하지만 여당 누구도 이를 말하지 않았다.
“네 번 국회의원 하면서 낯부끄러운 법안과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것을 보아왔지만 이번처럼 기막힌 법은 처음 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이 선거를 위한 매표공항이 아니고 무엇인가. 21대 국회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길 것이다.”(심상정 의원)
이로써 정부의 환경정책 기조는 이명박 정권의 개발우선 정책과 다를 바 없어졌다. 관변단체와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4대강을 파헤치며 ‘녹색 뉴딜’을 외쳤던 이명박 정권을 우리는 얼마나 경멸했는가. 요즘 정부와 여당이 선진국으로 지위변경이 되었다고 연일 대한민국을 자랑하지만 그들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것 같다. 산과 강이 신음하고 산하가 쓰레기로 덮여가는데 인간들만이 선진국 속으로 들어가서 무얼 하겠다는 것인가. 저 썩은 강이 우리 마음이다.
여전히 케이블카에 산악열차를 놓겠다고 산을 노려보고, 새 나무를 심겠다고 산과 숲을 뭉개고 있다. 막아야 한다. 바른길을 놔두고 엉거주춤 좌고우면만 하고 있다. 가야 할 길임에도 그냥 멈춰서 있음은 소신이 없거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추진력 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기후위기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에도 지속 가능하냐고 묻고 있다.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오염시키지 말라고, 기후위기 문제를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 문재인 정권도 환경과 생태 문제를 다음 정권에 떠넘기지 마라.
김택근 시인·작가
입력 : 2021.07.10 03:00 수정 : 2021.07.10 03:00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71003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