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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의 ‘구운몽’(새로읽는 고전:50)
◎‘꿈 깨는 자’만이 꿈꿀수 있네
욕망의 부질없음을 깨우친 사람은 그나마 남은 삶을 의미있게 살련가
현재의 선계·꿈속의 속계 “특이 구조”
갈등과 다툼없는 낙원에 대한 염원인생은 일장춘몽이라고 생각한 것에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가보다. 끊임없이 인간은 태어나고,부질없는 꿈을 좇다가 또 모두 사라진다. 단 한사람도 남김 없이. 인간의 욕망이 부질없음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친 사람은 그나마 남은 삶을 의미있게 살 수 있고,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세상 헛살았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욕망은 구름과 같으니 때가 되면 다 사라지고 만다.
아홉명의 남녀가 꿈을 꾸듯 구름같은 헛된 욕망을 좇다가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꿈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동서양이 서로 교통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인간의 각성을 위한 도구로 발전해 왔다. 꿈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이 나와 있는 요즘에도 미래를 예측케 해주는 예언의 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때로는 현실의 세계와 초월의 세계를 뛰어넘는 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의 선계(仙界)와 꿈 속의 속계(俗界)를 넘나드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대사의 제자인 성진이 용왕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석교(石橋)에서 팔선녀와 만나 희롱을 하고 난 뒤 선방에 돌아온 뒤에도 팔선녀의 미모에 취해 불문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급기야 속세의 부귀와 공명을 원하다가 육관대사에 의해 팔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된다. 그 지옥은 다름 아닌 현실 인간의 세계다. 그곳에서 양소유라는 인물로 환생하여 팔선녀를 2처6첩으로 취하고 부귀공명도 얻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생일날 종남산에 올라가 가무를 즐기던 양소유는 영웅호걸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문득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그와 처첩 등이 모여 장차 불도를 닦아 영생을 구하고자 한다. 그 자리에 호승이 찾아와 문답을 하는 중에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이 육관대사의 앞에 있음을 알게 된다. 아홉 사람은 불도에 정진하여 본성을 깨치고 영생을 얻어 극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소설의 겉구조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당시 권력싸움에 눈이 먼 사대부들에 대한 경멸이며,자신과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위안하고자 함이었다. 극심한 당쟁 속에서 서인에 속해 있던 김만중은 한 차례 관직을 박탈당하고,두 차례나 유배당하는 환우를 겪었다. 이 와중에 그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을 걱정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며,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은 어머니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쓸쓸히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소설 ‘구운몽’은 김만중이 선천(宣川) 유배지에 있을 때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조선의 사대부였던 이재(李縡)는 이 ‘구운몽’의 창작 동기가 김만중이 부귀공명을 일장춘몽에 돌려 어머니의 근심을 풀어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며,인생무상이라는 창작 의도를 불교라는 형식과 사유체계를 빌려 형상화한 것이라는 시사를 한 바 있다.
물론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밝혔듯 평소 불교에 대해 개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선천 유배시에 보광사 설동스님에게서 불교서적을 빌려 탐독한 것으로 보아 인간이 아귀다툼 속 같은 현세를 떠나 귀의할 수 있는 종교적 안식처로서의 불교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김만중이 ‘구운몽’에서 갈구한 세계란 불교의 세계라기보다 갈등과 다툼이 없는 인류의 보편적 낙원에 대한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김만중은 어쩌면 이러한 극락세계를 현실 속에서 이루고 싶어 했을 것이다.그래서 극락세계를 ‘현재’로 설정했으며,현실세계를 지옥으로 묘사하였다.자신도 권력투쟁에 참여하여 결국 귀양까지 가게 되자 갈등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 대하여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김만중은 이 소설 속에서 현실에 두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현실=극락,지옥=현실’이라는 순환적 구조를 꿈이라는 현재적 시점으로 연결시킨 것은 윤회라고 하는 것이 다른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인간의 각성에 따라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이것이 약 3백여년 전의 소설이 아직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바이다.부귀공명을 추구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각성하느냐,각성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이 현실세계가 극락과 지옥으로 갈라진다고 말하고 있다.
‘구운몽’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성찰은 무엇인가.부귀공명이 왜 헛되단 말인가. 김만중은 이 점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고 있다.개인이 추구하는 욕망은 그 한 사람만의 문제인가.현재의 안락한 삶만이 인간이 추구하는 전부인가.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욕망과 욕망은 충돌하게 된다.갈등과 다툼이 시작되며 이는 결국 인간의 삶을 끊임없는 분쟁 속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현재의 안락한 삶만이 전부라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배불리 먹고,좋은 옷 입으며,편안한 집에서 자는 것만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지금 죽으나 10년 후에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에 대해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모든 가치판단의 중심에 있는 20세기의 끝에서 우리는 인간 ‘성진’으로도 살 수 있고,양소유로도 살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어서 그 어떤 쾌락으로도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옥(속세)의 인간이었던 양소유는 모든 복락(福樂)을 다 누렸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절대 현실 앞에서 그것들이 무의미함을 깨달은 것이다. 더군다나 서로를 모략하고 죽이려고까지 하는 극한 상황에서야 어찌 인생의 덧없음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서로를 괴롭혀야 하며,더 무슨 쾌락을 위해 욕망을 불태우는가. 그것은 모두 찰나에 꾸는 꿈과 같으니 사는 동안 극락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 각자의 생(生)과 이 사회에 남겨진 숙제다.
◎서포 김만중의 행장/홀어미 슬하 면학… 강건한 주체의식
1637년(인조15년) 태어나 1692년(숙종18년) 세상을 떴다.호는 서포(西浦).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요,김익겸의 유복자며,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아버지 익겸이 정축호란(1637)때 강화도에서 일찍 순직했기 때문에 어머니 윤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어머니 윤씨는 군색한 살림에도 서책을 구입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28세때 과거에 급제한 후로 당쟁에 휘말려 두번이나 유배당했으며,두번째 유배지인 남해에서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그의 사상은 상당히 진보적이어서 당시 금기시되던 불교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했으며,한문을 ‘타국지언(他國之言)’이라 하고 우리 글자로 문장을 짓자고 한 것은 강한 국자의식(國字意識)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대표작으로는 소설 ‘구운몽’ ‘사씨남정기’와 수필집 ‘서포만필(西浦漫筆)’이 있다.‘구운몽’은 한글본과 한문본이 다 현존하나 어느것이 진짜 원본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