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악가가 되었다면
고등학생일 때였습니다. 그러니 5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교회 친구 중에 대학교 음대 성악과 교수님께 레슨을 받던 친구가 있었는데 가끔 그 친구가 교수님을 찾아가 레슨을 받을 때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구 봉덕동에 있던 효성여자대학교였는데 성악과 교수님이셨던 테너 김무중 교수님게 레슨을 받았습니다.
교수님 방에서 친구가 교수님으로부터 레슨을 받을 때 저는 교수님 방 한쪽에 앉아서 구경하거나 간혹 학교 정문 앞에 있던 ‘예지’라는 커피숍에서 기다리곤 했는데 그날은 교수님 방에 앉아서 저도 모르게 친구가 부르던 노래(콘코네)를 따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수님께서 레슨을 멈추시며 저를 부르셨습니다.
“여기 와서 니가 한번 불러봐라”
깜짝 놀라서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피아노 곁으로 저를 재차 부르시며,
“괜찮으니까 니가 한번 불러봐라”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할 수 있는 대로 불러보았습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제 친구에게 말씀하시기를,
“야, 임마, 니보다 야가 성악 하는 게 백배 낫겠다.”
어머니가 노래를 청아하게 잘 하셨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교회 성가대원으로, 중창단원으로 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공하시는 장로님이나 집사님들로부터 발성이나 호흡법을 늘 배웠습니다. 그래서 소리가 많이 다듬어져 있었던 것을 교수님께서 알아들으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 모교회의 남성중창단이 몇 중창대회에 출전하여 늘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 성악을 전공하고픈 마음이 정말 아주 조금 있었는데 그랬다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웠겠지요.
저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곡이나 서정적인 대중가요도 좋습니다. 특히 ‘청산에 살으리라’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 선율도 아름답지만 가사가 제 마음을 울립니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저는 이 가사 가운데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 살리라’를 ‘세상 풍파 시름 잊고 천국에서 실리라’로 바꾸어 부릅니다.
오래전부터 찬양팀을 하나 만들어 대형 버스를 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끝자락의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아프리카-유럽-중동-러시아-아시아-중국을 지나 오세아니아와 남미를 지나 북미와 알래스카까지, 이 세상을 한 바퀴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먼 터키의 시골 마을, Bayramtepe에 황혼이 드리워질 때 그곳 언덕에 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영화로운 노래로 기도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어언 30년 세월인데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풍파와 시름을 다 잊고 본향으로 향하기 전까지 내 주 하나님께서 나의 애절한 간구를 들으시고 이루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찬양팀의 이름은 이미 정해 두었습니다.
‘마라나타 싱어즈(Maranatha Singers)’
저희 필리핀 선교지의 아이들과는 몇 년 전부터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행하려는 준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금,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