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인생 미끼
‘사랑은 집적거림으로 시작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완성된다.’
달고 쓴 온갖 인생 경험을 다 겪었다 싶은, 내 나이 예순 넘어서 쯤에 내가 지어낸 말이 그랬다.
집적거리지 않고서야 이루어질 일이 없음을, 내 그 오랜 인생 경험으로 깨닫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
곧 인생 미끼 이야기다.
물고기만 미끼로 잡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인간관계도 미끼를 내던져야 낚인다.
또 그리 낚인 인간관계여야, 그 들인 공이 바탕이 되어, 오랜 세월 동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끼도 미끼 나름이다.
온전한 마음씀씀이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바로 그 마음씀씀이가 온전하지 못하면, 낚인 결과도 온전치 못한 법이다.
곧 인과응보(因果應報)다.
나는 내 인생 어느 길목에서도 온전치 못한 미끼를 던진 적이 없다.
늘 온전한 마음씀씀이로 던졌고, 그렇게 인간관계를 맺었다.
하나같이 늘 푸른 상록수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미끼 이야기라고 하면, 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한 토막 있다.
아내의 바로 밑 동생인 선애 처제의 살아생전 이야기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공안과장 겸 총무과장의 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역시 이젠 고인이 되신 분이긴 하지만, 우리 선애 처제의 시어머니이신 사돈어른의 마음씀씀이에서 그 이야기가 비롯된다.
어느 날 처제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는 것이다.
“야이야, 네 형부라 하는 그 꽥꽥이 말이다. 고맙게도 내게 돈을 보내왔더구나. 성하 애비 하는 말이, ‘혼자 몸으로 오랜 세월 아들 잘 키워 자기 동서 만들어줘서 고맙다’ 하면서 그 돈을 내놨다는구나. 고맙기는 하지만, 내가 사돈한테 받은 그 돈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 네 옷이나 한 벌 사 입어라.”
여기서 ‘형부’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고, ‘꽥꽥이’는 내가 말이 많다 해서 그 사돈어른께서 내게 붙여주신 별명이고, ‘성하’는 천주교 주교이신 시아주버니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처제가 맏이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그러니까 처제의 시어머니는 맏이를 천주교 주교로 키워내실 정도로 엄격하신 분이셨다.
그런 사돈어른의 삶을 생각하면서, 그 애쓰신 삶에 내 나름의 작은 마음이라도 전할 생각에, 딱 옷 한 벌 값밖에 안 되는 30만원을 봉투에 넣어 동서의 손에 쥐어줬었는데, 동서는 나의 그 마음씀씀이가 고맙다면서 자기돈 20만원을 더 보태서, 50만원을 어머니에게 전해드렸던 것이다.
바로 그 30만원이 그 사돈어른에게 던진 내 인생 미끼였다.
그런데 그 어른께서 내 그 미끼를 딱 물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사연은 또 다른 사연을 낳았고, 결국 그 돈은 며느리인 선애 처제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어머니한테 옷 한 벌 얻어 입으면서, 처제는 형부인 나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울컥하고 울음이 터질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다 했고, 옷을 얻어 입는 그날로, 우리 선애 처제는 몇날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했다.
형부인 나에게 선물할 요량에서, 꽃게 30마리를 간장게장으로 맛있게 담그느라고 그랬다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단골집에 특별이 부탁해서 아이 머리통만한 생물 꽃게를 먼저 장만했다 했고, 그리고 간장을 밤새 달였다 했고, 파 양파 마늘 사과 배 등 온갖 양념으로 맛을 내서 담근 꽃게 간장게장이라고 했다.
그렇게 담겨진 꽃게 간장게장은, 그 일주일 뒤에야 내 밥상 앞에 올려 질 수 있었다.
우리 선애 처제는 그 꽃게를 사면서 덤으로 얻은 1마리만 자기 남편인 내 동서의 밥상에 올려줬을 뿐, 30마리 모두를 서초동 우리 집으로 보냈다고 했다.
온 정성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모두를 보낼 수 있는 우리 선애 처제의 자기희생은, 그때의 나와 아내를 너무나 놀라게 했다.
나를 위해 보낸 것이라고는 했지만, 그 꽃게는 오로지 내 몫만은 아니었다.
그 중 20마리를 미리 떼어냈다.
당시 내가 총무과장으로 있던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식구들의 밥상위에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당신만 드시면 안 될까요?”
아내의 뜻은 그랬다.
그러나 그 뜻은 내게 먹혀들지 않았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감히 맛볼 수 없는 그 꽃게 간장게장을 나 혼자의 입에만 집어넣을 순 없었다.
처제의 그 온 정성을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뭐든 혼자 먹으면 탈난단 달이에요. 처제의 뜻은 주위와 두루 나눠 먹기를 바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그렇게 많이 보낸 것이란 말이에요. 내 말 대로 그냥 싸 주세요.”
내 그 우격다짐을 아내는 감당하지 못했다.
이날 점심 밥상이 푸짐해진 것, 그리고 처제의 정성에 모두가 감복한 것, 그 또한 불문가지였다.
그리고 이어진 내 인생, 늘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는 오늘 지금 이 순간까지다.
내 또 그런 인생 미끼 하나 던졌다.
우리 가족들이 서초동 우리 집에 모였다가 돌아간 바로 그 다음날로, 나 혼자서 점심을 먹던 날의 일이었다.
아내가 봄 농사 준비를 좀 하겠다면서, 이른 아침에 혼자 고향땅 문경의 ‘햇비농원’ 그 텃밭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나 혼자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밥을 지어먹을까, 밖에 나가서 사먹을까, 아니면 아예 굶어버릴까 하다가, 밥을 지어먹기로 작정을 했다.
전날 우리 가족들 모일 때, 맏이가 직접 담아온 꽃게 간장게장 남았다는 사실을 문득 생각해냈기 때문이었다.
하루사이에 좀 더 익었을 그 꽃게 간장게장 맛을 보고 싶었다.
나 혼자서도 밥을 지어먹을 줄 아는 모습을 우리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쌀을 씻고, 얕은 불에 뜸을 잘 들인 밥을 지어내고, 꽃게 간장게장 하나만으로 상차림을 하는 동안에, 쭉 생각을 했다.
그러는 내 모습으로, 아내와 두 아들과 두 며느리와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 해서, 우리 가족들이 각자 나름의 깨우침이 있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이날 점심 상차림은, 내 나름으로 우리 가족들 하나하나에게 던지는 인생 미끼의 의미였다.
밥 짓고 상차림 하는 전과정을 영상으로 남겼다.
그래서 점심을 마치고 난 뒤에,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함께 하는 단체 카카오톡에 찍은 영상들을 메시지로 띄웠다.
그리고 난 뒤에,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서현아~~ 다음엔 내가 이런 밥 해줄게.’
바로 인생 미끼였다.
그 미끼를 큰며느리 지영이가 덥석 물었다.
‘네 좋아요.’
딸아이 서현이를 대신한 답이었다.
형식적으로야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전하는 말이었으나, 그 실상에는 남편 밥을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는데, 지영이는 시아버지인 나의 밥짓는 솜씨에 혹한 것이었다.
내친 김에 미끼 하나를 더 던졌다.
이 역시 형식적으로는 서현이를 상대로 한 미끼였다.
곧 이랬다.
‘그러면 서현이 너와 내가 밥 짓기 내기 함 하자. 나는 오늘 이리 지었다.’
지영이가 또 물고 들어왔다.
이랬다.
‘누룽지가 끝내주네요’
이제는 지영이도 그렇게 노란 누룽지를 눌어붙게 해야 될 판이 됐다.
이번에는 둘째며느리 은영이도 걸려들었다.
이렇게 답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럼 전 시식하러 갈께요^^’
이제는 내 두 아들이 두 며느리들에게 밥 얻어먹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제는 또 하나 미끼를 더 던져야 했다.
그 미끼는 맏이를 향한 것이었다.
이렇게 글 한 편을 붙였다.
‘품평...그거 하나에 다 담겼다. 그냥 아무 거나 산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살 많이 든 걸로 골라 샀다는 상징이다. 보통 사람들은 관심이 없지만, 게 맛을 안은 사람들은 그 통통한 맛을 안다. 애비가 바로 그런 입맛을 갖고 있다는 거지...그래서 자꾸 따지고 따져 보면, 결국은 저 애비 덕이다 이 말씀... 사실 어제도 그걸 먹고 싶었지만, 서현이 먹는 걸 보고,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머니가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지 그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게 두 마리를 냉장고에 넣어뒀더라... 참 잘 먹었다. 그리고 남은 것이라곤, 바로 이 껍데기 뿐...’
전날 꽃게 간장게장을 장만해온 맏이에 대한 칭찬도 하고, 손녀 서현이 때문에 좀 덜 먹었다는 사연까지 보탰다.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얻어먹었으면 하는 내 마음에, 꼭 그래주기를 바라는 심리적 강제의 분위기를 내보인 것이다.
내 그 글을 끝으로 그 점심때의 카카오톡 대화는 끝이 났다.
맏이도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맏며느리 지영이가 이미 읽었을 것이고, 지영이가 저 남편인 맏이를 채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이와 같은 인생 미끼의 의미를, 우리 가족들이 알랑가 모른다.
몰라도 좋다.
내 뜻한 대로, 현실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첫댓글 허연 쌀밥에 꽃게장 백반
원가가 꽤 치이는 밥상인걸
밥도 노릿하게 적당히 눌린
취사 솜씨 혼로 서기 합격 점.
사랑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