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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序 品(5), 부처님의 거대한 모습, 大家의 거대한 착각
(필자의 풀이 글 가운데 이 부분의 글은 좀 길다. 법화경의 핵심과 취지를
드러내는 무거운 내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시간 현재, 시중에 깔려 있는
대부분의 법화경 번역서 및 해설서가 이 부분을 오역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불자는 물론 일반인까지 헷갈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오역임을 알면서도 필자를 향해 입을 삐죽거리는 불자들도 상당 수
있다는 것을 필자는 알고 있다. 난 척 한다느니, 나대지 말라느니 등등.
중요한 것은 눈을 흘기기 전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다.)
1-6, 7.
그때 세존께서는 사부대중이 둘러싸고 공양 공경하며
존중 찬탄하는 가운데, 무릇 보살이 되라고 하시며
대승의 가르침을 펼치고 계셨으니 그 가르침의 이름이
무량의인 바, 보살의 법도를 가르치는 경이요, 부처님께서 잠시도
잊지 않고 마음에 늘 두고 계시던 가르침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부대중들에게 이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설하신 후
결가부좌하시고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완전하게 멈추신 다음,
무량의처(無量義處)삼매에 드셨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만다라꽃, 마하만다라꽃, 만수사꽃, 마하만수사꽃이
부처님 위에도, 사부대중 위에도 비 오듯 내리고,
널리 부처님세계는 육종진동(六種震動)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법회를 가득 채운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
그리고 모든 군소왕들과 전륜성왕 등 모든 대중들은
일찍이 보지 못했던 광경에 놀라움과 기쁨을 가누지 못하고
합장한 채 오로지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爾時 世尊 四衆圍繞 供養恭敬 尊重讚歎
爲諸菩薩 說大乘經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
佛說此經已 結跏趺坐 入無量義處三昧 身心不動
是時天雨 曼陀羅華 摩訶曼陀羅華 曼殊沙華 摩訶曼殊沙華
而散佛上 及諸大衆 普佛世界 六種震動
爾時 會中 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天龍 夜叉
乾闥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睺羅伽 人非人 及諸小王
轉輪聖王等 是諸大衆 得未曾有 歡喜合掌 一心觀佛
【풀이】
●爲諸菩薩 說大乘經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
<무릇(혹은 모두) 보살이 되라고 대승경을 설하셨으니, 그 이름이 무량의다.
무량의는 보살법을 가르치는 經이며, (모든)부처님이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혹은 간직하고 있는)가르침이다>
이 경문의 정확한 번역이다.
바로 이 경문, 치명적인 오역, 뒤집힌 법화경의 취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아마 전부일 것이다) 번역본은 이 짧은 구절의
번역에 세 가지의 매우 중대한 오류를 범하여 법화경의 취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하나하나 살펴본다.
첫째, <爲諸菩薩>에서 <爲>는 여기서 <~이 되다>는 의미의 동사로 쓰였다.
아래 인용에서 보듯 <~을 위하여>라는 뜻이 아니다.
*爲784 이 글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①<~을 행한다(실천한다)>는 의미가 있다.
②<~이 된다>는 의미가 있다.
③<~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④<다스린다>는 의미가 있다
⑤<~을 위하여>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이 된다>라는 의미다.
참고: 이처럼 글자 <爲>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법화경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화경번역본(일본어, 영어 포함)은
<~을 위하여>라는 한 가지 의미에 가장 무거운 포인트를 찍고 있다.
한자를 차용해 글자를 만든 일본이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난센스다.
<~을 위하여>라는 의미는 이 글자의 여러 의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또
그것이 이 글자의 가장 중요한 의미도 아니다.
둘째, <爲諸菩薩>에서 <諸>는 <무릇>, 혹은 <대저>, 혹은 <모두>, 혹은
<모름지기>라는 의미의 부사로 쓰였다.
대부분의 번역문에서 보듯 <모든>이라는 의미의 형용사가 아니다.
따라서 <爲諸菩薩>은 여기서 <모두 보살이 되다>, 혹은 <무릇 보살이
되다>, 혹은 <모름지기 보살이 되다>라는 의미다.
註: <모든 보살을 위하여>라고 번역하게 되면 법화경의 취지는 완전히
뒤집어진다. 법화경은 부처님이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보살이 되라고
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로 하여금 부처가 되라고 설한 것이 아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한글번역본(일본어번역본, 영문번역본
포함, 아마 전부일 것이다)은 이 부분에서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모든 보살을 위하여>라는 이 네 글자의 오역으로 인해 부처님의
법화경 설법은 그 대상이 일체중생들이 아니라 보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敎菩薩法>은 <(일체중생들을 대상으로 보살이 되라고)보살법을
가르친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번역문에서 보듯 <보살에게(혹은 보살에게만) 법을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다.
대부분의 번역서는 <敎菩薩法>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라 번역한다.
말하자면, 무량의라 불리는 대승경전은 <보살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는
법이다>라는 번역인데, 이는 법화경의 근본 취지와 방향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여러분이 갖고 계신 법화경번역본을 참고하시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더 이상 이와 같은 엉터리 번역으로 인해 헷갈리지
않기를 바란다.
대승불교의 중심에는 보살이 있고, 대승경전은 일체중생 모두를 대상으로
보살법을 가르쳐 보살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설법한 경전이다.
여기서 <菩薩法>은 <보살의 법도>, 혹은 <보살의 도리>, 혹은 <보살의
길>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菩薩法>이라는 용어는 불경에 흔히 등장하는
<生滅法>이나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交通法>과 同類의 용어다.
예를 들어, <敎生滅法>이라 함은 생멸법을 가르친다는 의미다. 생멸에게
법을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다.
또 <敎交通法>이라 함은 교통법을 가르친다는 의미다. 교통에게 법을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다.
<菩薩法>은 문법적으로 <敎>의 목적어다.
<敎菩薩法>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라 오역한데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공부해 나가면 알게 되겠지만,
이 문제는 법화경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승경전의
번역본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처럼 한심한 오역이 지금까지도 버젓하게 법화경 한글 텍스트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불자들은 이 오역을 모른 채,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하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爲諸菩薩>, <敎菩薩法>, 그리고 앞으로 수없이 등장하는 <敎化菩薩> 등
이 세 구절은 법화경의 취지와 방향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구절들이다.
그러나 이 세 구절 모두 오역되어 현재 시중에 나돌고 있는 한글법화경(뿐만
아니라, 일본어번역본, 영문번역본)의 내용을 법화경 본래의 취지와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法華經을 설하신 목적은 무엇이며 대상은 누구인가?
모든 대승경전이 지향하고 있는 첫째이자, 마지막 목적은 일체중생을 대상으로
가르침을 펼쳐 보살이 되도록 이끄는데 있다. 일체보살들에게 가르침을 펼쳐
부처가 되도록 이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法華經의 취지와 목적이
그것, 즉 일체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펼쳐 보살이 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통해 바로 이 작업을 하신다.
보살은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부처는 보살 중의 보살, 요즘 말로, 대표보살이시다.
부처라는 자리가 에헴! 하면서 천상을 거닐며 하계를 내려다보고 호령이나
하는 어마어마한 벼슬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대승불자들, 또 그 벼슬자리를 최종
목표라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불교 대가님들과 전문가님들이 우선 대승불교가
무엇인지, 보살이 어떤 위치인지부터 먼저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이런 엉터리
번역에 대해 한 번쯤은 의심해보았을 것이다.
“For the Mahayanists, the goal is to become, like Buddha, a Bodhisattva.”
(대승불교신자의 최종 목표는 부처님처럼 한 사람의 보살이 되는 것이다)
『붓다 없이 나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Without Buddha I could not be
a Christian)』라는 유명한 책을 쓰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폴 니터(Paul
Knitter)교수가 바로 이 책에서 밝힌 그의 대승불교관이다.
그는 대승불교가 무엇인지, 보살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대승불자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법화경의 취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보살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법화경을 엉터리로 번역한 일본 불교인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되었겠는가? 또 그런 엉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껴 써먹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한국 불교인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는가?
爲諸菩薩 說大乘經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
<무릇(모름지기, 모두) 보살이 되라고 대승경을 설하셨으니, 그 이름이
무량의다. 무량의는 (일체중생들을 대상으로)보살법을 가르치는 經이며,
(모든)부처님이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혹은, 간직하고 있는)가르침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법우 여러분들은 이 번역, 잘 기억해 놓으시기 바란다.
이 구절은 法華經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것의 목적과 취지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佛所護念
대승경전은 <부처님께서 자나 깨나 항시 마음에 두고 계신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때가 무르익으면 언제라도 설하기 위해서>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法華經에서 밝힌 것처럼 때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일체중생들을
대상으로 法華經을 설하시는 것이다.
●入無量義處三昧 身心不動 是時天雨 曼陀羅華 摩訶曼陀羅華 曼殊沙華 摩訶曼殊沙華
而散佛上 及諸大衆 普佛世界 六種震動
삼매는 명상이니 누군들 제대로 명상에 들면 만다라꽃, 만수사꽃이 비처럼
쏟아지고 주변이 육종진동하지 않으랴.
다만 각자가 깨친 정도에 차이가 있으니
만다라꽃은 민들레꽃이 되어 쏟아질 수도 있고,
보불세계의 육종진동 또한 각자가 느끼는 육신의 가냘픈 떨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 자체로 좋지 아니한가.
*六種震動 (불사: 註) 대지가 여섯 갈래로 진동하는 것.
첫째, 땅이 진동하는 모습 세 가지
①動 한 방향으로 진동한다.
②起 흔들려 일어나며 진동한다.
③涌 솟아오르며 진동한다.
둘째, 땅이 진동하는 소리 세 가지
①擊 어마어마한 큰 소리로 진동한다.
②震 은은한 소리로 진동한다.
③吼 포효하는 소리로 진동한다.
註: 여기서 “불사”는 『佛敎大辭典』, 金 吉祥 編著, 弘法院 發行,
2008 년 5 월 20 일 4 판을 말한다. 본문 중에 “(불사)”라 표시했다.
●無量義經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法華經은 法華三部經 가운데 本經이다.
法華三部經은 ①序經인 無量義經, ②本經인 法華經, ③結經인 觀普賢經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序經인 無量義經의 설법을 막 끝내시고 無量義處삼매에 드시는데,
그 삼매로부터 깨어나시어 本經인 法華經을 설하신다.
다음에 이어지는 그림은 本經인 法華經을 설하시기 직전, 동방 일만 팔천
불국토에 빛을 놓으시는 장면을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普佛世界 (불사)부처님의 국토 전체.
(계 속)
[이 글은 2018년에 <법화경을 풀어본다>라는 제목으로 본 까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많은 회원들이 댓글을 통해, 이메일을 통해, 때로는 채팅방을
통해 알려주신 내용을 참고하여 다소 미흡한 부분은 보충하고, 중복된 내용은
정리하여 새롭게 올립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첫댓글 이렇게 제대로 일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가르침 계속 기대됩니다.
나모아미타불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