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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창조주 하나님은 누구신가?
1. 하나님 소개하기 :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말합니다. 과학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사고의 틀 안에서는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본질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고 우리의 머리 속에서 분석이 가능한 분이시라면, 이미 그분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그리고 인간의 머리로 분석이 되지 않으심으로 인해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동양적 사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하늘, 또는 하나님과 같은 궁극적인 존재를 가리켜 도(道)라고 일컬어 왔습니다. 그러한 도의 원리를 잘 풀이한 책이 노자의 도덕경인데, 도덕경 제 1 장 첫줄을 보면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도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도라고 규정을 내리는 순간 이미 도가 아니며, 어떤 이름을 붙여서 도를 설명하는 순간, 이미 그 이름은 도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절대자를 규정하고 분석해 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절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절대자를 결코 분석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며, 그 알 수 없는 하나님만이 참 된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 수없는데, 뭐 하러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 그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배우기 위해 새신자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공부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비록 하나님에 대해 전부를 알 수없을지라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그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분명히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원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가르쳐 주신 일이 있다면, 그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가르쳐주셨는가? 물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 관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revelation)’라고 합니다. 즉, 계시란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말합니다. 실로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 계시를 근거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시에는 자연계시와 특별계시가 있습니다.
2. 자연계시의 하나님 : 창조주 하나님
1)자연계시란 무엇인가
먼저 자연계시란 하나님께서 우주의 자연을 통해 당신을 나타내신 것을 말합니다. 즉 자연만물 속에는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시편 19:1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 19: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 20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그의 만드신 것 안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고 말합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이는 한마디로 우리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가가 그린 그림 속에 그 화가의 정신이 들어 있듯이, 작곡가가 작곡한 음악 속에 그 작곡가의 혼이 담겨져 있듯이, 우주만물 속에는 반드시 그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의 숨결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계시 사상은 하나님이 곧 창조주라고 하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을 ‘여호와(hwhy)’라는 이름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출 3:14).
출 3:14 - 15) 14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2)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hwhy)라는 말의 의미
①나는 나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여호와라는 말은 먼저 “나는 나이다”(I am that I am)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름은 올바른 하나님의 이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질문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는 나”라고 답변하신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관한 놀라운 계시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절대자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이름이나 형상 안에 갇힐 수 없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인간의 말과 사람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규정하고 형상화시킬 때, 우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하나님이다”라고 내놓은 것은 모두가 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론의 금송아지,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사건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아론이나 여로보암이 결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해 우상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체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가 되었습니다.
출 32:4 - 6) 4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왕상 12:28 - 29) 28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29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출 20:4)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②스스로 존재하는 자 : 자연(自然)
여호와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에 대해서 역시 노자의 관점에서 풀이하면, 도덕경 25장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러나 도는 본받을 게 없으므로 자연(自然)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연은 'Nature'로서의 자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의 자연입니다. 다시 말해서 도는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만물이 궁극적인 정점에 다다르면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고, 말과 판단과 이성이 멈추는 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거기에 스스로 존재하는 절대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존재하게 된 피조물이 아니라,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최초의 원인, 곧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세기 제일 첫머리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우주 만물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았다고 믿습니다.
3)빅뱅이론(Big-bang theory)은 창세기 1장 1-2절을 뒷받침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봅시다. 우주가 얼마나 큰가?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 천체가 약 150억 광년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빛이 150억년이나 걸려서 도달하게 되는 거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관측 가능한 우주의 일부일 뿐, 그것이 우주의 전체는 아닙니다. 그 뒤에는 관측 불가능한 우주가 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우주가 점점 더 팽창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해 과거에는 우주가 지금보다 작았다는 말인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 우주가 원자보다도 더 작은 하나의 점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점이 폭발하게 되었습니다(빅뱅). 그 점이 폭발하면서 만물을 구성하는 무수한 소립자들이 생겨나고, 거기에서 수많은 원소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모여, 별들이 되고, 태양이 되고, 지구가 되고, 산과 바다가 생겨나고, 동식물이 생겨나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빅뱅 사건이 실제로 있었을까? 우리는 창세기 1장 1, 3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는 말씀을 의지해서 빅뱅 사건이 있었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태초의 빅뱅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1965년 미국 벨 연구소의 팬지어스와 윌슨이라는 두 과학자가 대형 안테나를 설치하던 중, 끊임없이 들려오는 잡음 때문에 실험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잡음은 밤이나 낮이나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하늘의 어느 곳에서나 똑같이 들려왔습니다. 두 사람은 1년 동안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잡음을 없앨 수 없었고, 잡음이 생기는 원인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그 잡음이 바로 수백억년 전 우주가 탄생하던 빅뱅의 순간에, 전 우주로 방출된 최초의 빛(광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 1:3) 하시던 바로 그 때에 창조된 최초의 빛이 수백억 년 동안 우주를 여행하면서,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라고 하는 영하 270도의 차가운 마이크로파로 바뀌어서 1965년 팬지어스와 윌슨의 안테나에 붙잡힌 것입니다. 1978년에 이 두 사람은 빅뱅의 빛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태초의 빛을 텔레비전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방송이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 채널의 화면에서 무질서하게 물결치는 무늬 가운데 빅뱅의 순간에 창조된 빛이 5%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늦은 밤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빅뱅의 순간에서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우연이 우연을 낳아서 만들어 낸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우연의 연속을 믿는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믿음을 엄청나게 소유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확률적으로 생각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연세대학교 천문학과의 이영욱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울산에 현대 자동차 공장이 있습니다. 한 대의 자동차에는 약 2만 개의 부품이 필요한데, 이 자동차 공장에는 창고마다 이러한 부품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태풍이 불어와서 공장의 지붕과 벽이 날아가고 창고의 모든 부품들도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습니다. 잠시 후 바람이 멈추자 하늘로 올라갔던 부품들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부품마다 우연히 척척 조립이 되어 어떤 것은 소나타가 되고 어떤 것은 티뷰론이 되고 어떤 것은 그랜저가 되고 또 어떤 것은 에쿠우스가 되어 수 천대의 자동차가 저절로 생산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런데 사실 태초의 빅뱅사건으로 인해 오늘날 우연히 내가 존재할 확률은 이것보다도 훨씬 더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에 나타난 자연계시가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3. 특별계시의 하나님 : 우리의 아버지
1)자연계시의 한계 : 특별계시의 필요성
그러나 이러한 자연계시는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충분히 계시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 자연 계시를 따라간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가기보다 오히려 자연숭배와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롬 1:21-23).
롬 1:21 - 23)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특별계시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연계시 외에 우리에게 보다 확실하고 특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관해서는 제 3 과와 5 과를 통해 따로 공부할 것입니다. 실로 창조주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한하신 절대자이시며, 영원무궁하시고 변함이 없으시며,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성경 말씀에 의하면, 그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3)특별계시가 말하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마 6:9)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주기도문)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갈 4:6) 6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①우리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결코 저 멀리 높은 곳에 앉아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 된 우리와 철저히 관계를 맺고자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돌보아주시는 분이시며, 우리와의 사귐을 원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원하는 분이시며, 우리로 인해 기뻐하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시 121:3 - 4) 3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사 41:10) 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습 3:17)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②우리에게 복 주시기 원하시는 아버지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창 1:27 - 28)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민 6:24)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마 5:3)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③자녀들을 훈련시키시는 아버지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롬 8:17 - 18)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행 14:22) 22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4. 하나님을 힘써 알자(사랑하자)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알려 하지 않고 외면할 때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결국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될 것입니다.
호 4:6) 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알아야 합니다.
호 6:3)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그런데 히브리 개념으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롬 8:29).
롬 8:29)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앎과 사랑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알려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 11:9) 9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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