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날의 성탄절
제가 너댓 살 정도 되었을 적의 추억이니까 벌써 60년이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정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대구서남교회는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다닌 교회입니다. 대구 남산동 언덕에 자리한 나지막한 예배당 건물과 아담하지만 제법 넓은 마당, 그리고 교회 대문 곁의 유치부실과 그 곁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있던 종탑, 그리고 언덕 너머에 있던 강인구 목사님의 사택, 그리고 목사님 손주였던 선묵, 영묵형들과 선희, 경희 여동생들과 함께 뛰놀던 목사님 댁 마당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교회 마당 한가운데 있던 커다란 나무는 성탄 트리로 변합니다. 아버지를 비롯해 교회 사찰집사님과 여러 집사님들이 여러 날 동안 그곳에다 오색으로 빛나는 전등불을 밝히고 하얀 눈 솜을 얹습니다. 그리고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고, 밤이 되어 그곳에 영롱한 불빛이 켜지면 그게 그렇게 제 작은 가슴이 벅차리만치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 바로 앞이 집이어서 늘 교회 마당에서 놀곤 했는데 성탄절의 아름다운 성탄 트리에 불이 밝혀지면 밤이 늦은 줄도 모르고 트리 불빛을 쳐다보며 그 곁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아직도 그토록 아름답고 황홀한 성탄절을 보낸 기억이 없습니다. 성탄 선물을 포장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복한 미소, 부모님 손을 잡고 선물을 들고 목사님 댁으로 향하던 경쾌한 발걸음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아름다운 나날 들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지낸 나날이 벌써 36년입니다.
런던에서, 브뤼셀에서, 파리에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내 어린 날의 그 성탄절은 그 어느 날, 어느 곳의 그 어느 성탄절보다 더 황홀했고 찬란했습니다. 내 마음의 성탄절은 늘 돌아가고 싶기만 한 어린 그 시절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저는 오늘 너무나도 아름다운 성탄 선물을 받았습니다.
어느 한 분이 보내주신 메일인데 저희 가족과 연락이 잘 안 되어 걱정했다는 내용인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요 며칠 정말 바빴거든요. 노엘이의 여러 연주와 교회 일, 학교 방학준비 등으로 말입니다.
그분께서 마음속에 저희 가족을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그 따스한 사랑을 주님 오심과 함께 기뻐하며 그 영롱하게 빛나던 제 어린 시절의 성탄절을 다시 떠올려 보며 그리움으로 미소 짓습니다.
이제 막 독일의 성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2시엔 교회 성탄 축하예배가 있습니다.
노엘이는 프랑스에서 예배드리러 오는 친구 주원이와 여동생 채원이와 함께 성탄 성극을 합니다.